오영-Oh Young

오영 회화展   2006_1110 ▶︎ 2006_1202 / 월요일 휴관

오영_무제_여러 겹의 한지에 아크릴채색_40×30cm_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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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6_1110_금요일_06:00pm

갤러리 정미소 기획초대전 작가와의 대화_2006_1122_수요일_03:00pm 위치_혜화역 2번 출구 방송통신대학교 뒤편 월간객석건물 2층

협찬 및 후원_월간 객석_운생동 건축사무소_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시간 / 11:00am~08: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정미소 서울 종로구 동숭동199-17번지 객석빌딩 2층 Tel. 02_743_5378 www.galleryjungmiso.com

Murmurs ● 오영의 2005년 그림에는 신체의 일부분을 연상시키는 모티브들이 많이 있다. 그것은 특히 여성의 신체를 연상시킨다. 그렇지만 그 신체들은 파편화된 채로 표현된다. 그리고 어떤 동물의 형상도 있다. 손이 나오는 그림은 수화를 하는 듯 보이기도 하고, 얼굴의 표정은 뭔가 미묘한 상황과 심리상태를 표현한 것 같기도 하다. 파편화된 조각들은 분명하게 무엇을 전달하려는지 알 수 없는 웅얼거린다. 이들 전체가 이루어내는 전체 화면은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준다. 그 이야기들은 여기저기서 속삭이고, 웅성거리고, 사각거리면서 어떤 미묘한 느낌들로 가득 차 있다. ● 또한 오영은 어떤 동그라미들을 그린다. 작은 동그라미 하나를 그리고, 그 곁에 또 하나를 그리고, 또 하나를 그리고, 그렇듯 하나하나 이웃한 동그라미들이 커다란 화면으로 퍼져나간다. 그래서 만들어진 화면은 그물 같기도 하고, 커다란 웅덩이 같기도 하고, 심지어 어떤 구멍 같기도 하다. 하나 하나의 동그라미들은 어떤 웅성거리는 소리들로 메아리친다. 이런 오영의 이미지들은 우리에게 뭔가를 속삭이는 것 같다. 어떤 웅성거리는 파편들, 이야기들, 느낌들은 현대 주체의 어떤 발화들을 보여주는 것 같다. ● 이 이미지들의 소리는 명확한 언어로 전달되지 않는다. 그것은 언어가 아니라 어떤 불명확하고 잘 들리지 않는 소리들이다. 그것은 규정할 수 없는 이미지이면서, 알 수 없는 빛이기도 하고, 알 수 없는 흔적들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어떤 두께와 깊이로 한꺼번에 응축되어있다. ● 오영의 이런 흔적들, 알 수 없는 흔적들은 개인에게는 무의식의 흔적이기도 하고, 심지어 어떤 트라우마이기도 하다. 그런 트라우마들, 알 수 없는 흔적들은 우리의 삶에서처럼 어떤 역사와 시간과 기억들로 우리의 무의식을 형성하고 있다. 오영의 작품 들 속엔 이런 흔적들과 그 흔적들 웅성거리고 있다. 우리가 듣는 그 흔적, 증상들의 중얼거림은 한 개인의 이야기라고만 보기 어렵다. 그것은 그 비형상적 특성으로 인하여, 현대 주체의 집단적 중얼거림이 된다. 현대 주체의 비형상적 중얼거림, 어떤 발화들은 그것이 발화되는 시점, 지점, 즉 정오와 같은 경계에서 부유한다.

오영_무제_여러 겹의 한지에 아크릴채색_40×30cm_2005

우리는 항상 현실에서 어떤 위협을 느낀다. 그것이 50여년 만에 급격한 근현대화를 이루려는 (실패한) 야망의 국가에서 살고 있기 때문인지, 아니면 온 세계가 허상의 이미지들로 알 수 없는, 부정확하고, 음모적으로만 보이는 어떤 판타지들만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어떤 이유이건, 우리는 항상 어떤 위협, 정확히 말하면 불안 속에서 살아간다. 현대의 철학이라고 할 수 있는 정신분석의 논제에 바탕한 철학자들과 이론가들은 그 불안을 여러모로, 그리고 생산적으로 해석한다. 분명, 그 불안은 객관적인 증상이지 주관적인 판타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 불안으로 인한 여러 증상들은, 그것이 개인적 차원이건, 국가적 차원이건 어떤 사건, 현실은 만들어내고, 역사를 만들어내고 있다. 분명 우리의 현대사의 특징인 갖가지 대량 학살과 폭력, 전쟁들의 원인의 중심에는 어떤 내재된 불안이 자리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런 불안, 장전된 총 같기도 하고, 핵폭탄 같기도 한 그 불안은 도대체 어떤 종류의 현실화를 필요로 하는 것일까. 일종의 질병처럼 증상으로 나타나는 불안의 증세들을 앓고 있는 현실의 주체(개인, 국가 모든 것을 포함한다)는 그 증세가 심각하면 심각할수록 어떤 경계에 다가간다. 그것은 일종의 진리의 경계일지도 모른다. 유동하고 산란하고, 변덕이 심한 진리는 현대에는 심각한 불만들 속에서 희구되고 있다.

오영_무제_여러 겹의 한지에 아크릴채색_40×30cm_2005

필요한 것은 현대의 주체, 개별 주체, 심지어 개인에게 중요한 것은 어떤 다른 종류의 새로운 발화이다. 그리고 그 발화는 가능하다면 '주체적'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것이 어떤 객관적 증상임을 인지할 필요도 있다. 최소한 일종의 소수자 장르에서 그러한 발화들은 일종의 새로운 언어, 아니 기존에 있어왔지만 새롭게 인지해야하는 어떤 언어들을 상징화시키고 있다. 가령 그것은 체계화된 문자 언어가 아닌 몸으로 하는 어떤 소통들, 여성의 히스테리적 증상들, 정신병자의 발작 등과 같은 것이다. 일종의 이런 비(非)언어들은 쉽게 말하면 일종의 중얼거림 murmurs라고 할 수 있다. '중얼거림'은 언제나 알 수 없는 기호나 마찬가지이다. 왜 주체들은 중얼거리는가. 그 중얼거림은 혼잣말이거나,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단말마의 소리이거나, 불만의 표현일 수도 있다. 이런 색다른 어떤 기호들은 어떤 특징이 있다. 파편화되고, 기존의 상징으로는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어떤 대상을 가리키는지, 전달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지 조차 알 수 없다. 그렇지만 보다 분명한 것은, 이러한 중얼거림들은 실현되어야 할 새로운 진리의 출현의 증상들이라는 것이다. ■ 이병희

오영_무제_여러 겹의 한지에 아크릴채색_30×40cm_2005

나의 작업은 유동적이며, 겹쳐지게 그리는 작업이다. 그림을 이루는 겹겹의 층들은 세월이 쌓인 지층들처럼 자리잡고 있다. 나는 나의 작은 스케치 노트에 나의 순간 순간의 생각들을 잡아 놓는다. 이 순간의 생각들이 나의 작업의 출발점 들이다. 이 드로잉으로 메모해놓은 생각들을 종이 위에 펼쳐 놓는 것이 나의 작업이다. 서로 겹쳐지는 그림들은 동시에 겹쳐지는 나의 생각들이며 새로운 시도의 과정 들이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어떤 한 생각을 하다가도 그 생각의 끝은 처음과는 정반대의 생각에 도달하거나, 전혀 다른 생각을 하게 되는 경우와도 흡사하다. 따라서 처음 그려진 그림과 가장 나중에 겹쳐지는 그림은 전혀 다른 그림이 되는 경우가 있다. 나는 이렇게 작업의 과정 중에 새롭게 생기는 생각들을 전혀 거부하지 않고, 그대로 종이 위에 풀어놓고 싶다. 때로는 한지 위에 그림을 그리고, 말리는 동안 처음의 의도와는 다른 생각이 들어, 그 위에 또 그리고, 말리는 과정의 반복 끝에 처음 과는 전혀 다른 그림이 될 때도 있지만, 이것은 나의 생각들이 그림 위에 겹쳐져 있는 것으로 겹쳐진 그림이 많이 쌓여 갈수록 내 생각도 그만큼 많이 겹쳐져 있는 것으로, 내 생각의 궤적들이라 할 수 있겠다. 생각들이 포개어져 하나의 완성된 그림을 만드는 것이지 그것은 결코 처음 그리고자 했던 의도에 정확하게 도달 하고자 하는 연습의 공간은 아닌 것이다. 내 작업은 결국 그림이라는 공간 속에서 새로운 생각들을 기다리는 일련의 과정인 것이다.

오영_무제_한지에 드로잉, 왁스를 입힘_70×200cm_2006
오영_무제_한지에 드로잉, 왁스를 입힘_70×200cm_2006

2m x 1.5m 크기의 커다란 드로잉 작업들에서 나는 시간을 써넣는다. 현재를 그리고, 과거를 그린다.이미 쓰여진, 그려진 작은 동그라미들은 채워져 버린 매 꿔진 시간들이다.작은 동그라미들은 매일 서로 다른 감정을 지니고 쓰여진다. 그 존재는 비어있고, 말할 수 없이 가벼우며 섬세하다. 그것들은 자신의 영역을 넓혀나간다. 나는 그만두지 않는다. 사람이 일상을 살 듯 그 빈 공간이 채워질 때까지 계속해서 그려나가야 한다. 이 지속적이고 끝없는 쓰기는 외로움을 필요로 한다. ● 나는 쓰고 또 쓴다. 나의 동그라미 세포들로 이루어진 들판은 가볍고 부드러운 담요처럼 커져간다. 그것들은 작업 공간 위를 떠다니고 있다. 동그라미들은 때로 터널이나 관처럼, 또는 입체적인 형상으로 서로 가볍게 맞닿아 있거나 위 아래로,앞뒤로 쌓여간다. 그것들은 맞물려 자라나고, 서로의 모습을 비치고 있다. 확대경으로 본 단면처럼 확대되고 돌출한다. 그림 중앙에 하나의 구멍이 위치해있고, 망으로 둘러 쌓여 있다. 나의 작업은 그저 순수한 행위를 보여준다. 무언가를 그리려 시도하거나 어떤 생각을 형상화 하려 하지 않는다. 나는 무언가 열려있는 것에 도달하기를 바라며 순수한 흔적을 그리고, 그 작업은 관조의 장소가 된다. ■ 오영

Vol.20061112c | 오영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