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나'의 작가

니키 드 생팔 회고展   2006_1117 ▶︎ 2007_0121 / 월요일 휴관

니키 드 생팔_다트 초상화_페인트, 풀과 다양한 오브제_108,5×94cm_1961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로 갑니다.

개막식_2006_1116_목요일_03:00pm

전시설명회(정기)_매주 금, 토, 일요일 (1일 2회: 오후 1시, 3시) 진행_전문 도슨트 / 내용_일반인을 대상으로 전시작품의 이해 도모

국립현대미술관 제2전시실 경기도 과천시 막계동 산58-4번지 Tel. 02_2188_6000 www.moca.go.kr

뚱뚱한 여체로 유명한「나나」연작, 퐁피두 센터 광장의「스트라빈스키 분수」, 20여년의 제작기간을 거쳐 토스카나 지방에 건립된「타로 공원」등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여류 조각가 니키 드 생팔을 대대적으로 소개하는 최초의 국내전시이다. ● 1960년대 프랑스의 '누보 레알리슴' 미술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드문 여성작가로서, 또한 일찍부터 여성 및 문화적 소수자의 존재에 대한 공공연한 표현을 통하여 20세기 후반 페미니즘 미술의 가능성을 열어 보인 선구자로서, '나나'와 공공 프로젝트를 통하여 미술의 대중적인 소통 가능성을 추구한 작가로서, 무엇보다 인간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자유로운 상상의 세계를 보편적인 조형언어로 승화시킨 작가로서, 니키 드 생팔은 20세기 후반의 현대미술에 깊은 족적을 남겼다. ● 이번 전시에서는 니키 드 생팔 전성기의 작품들은 물론, 흔히 접하기 어려운 50년대 말~60년대 초의 초기「앗상블라주」작품과 작가의 존재를 본격적으로 드러내는 계기가 된 60년대의「사격회화」작품, 그리고 '나나'의 형성과정을 짐작하게 하는 초기 모델들까지 출품되어 그녀의 작품세계의 전반적인 면모를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니키 드 생팔_침대(구성) (사격 전)_페인트와 다양한 오브제_120×120cm_1961
니키 드 생팔_감브리누스의 기이한 죽음_페인트, 목판에 석고와 다양한 오브제_182×120×27cm_1963
니키 드 생팔_에리카_여름, 철망에 천과 양털_110×95×65cm_1965

전시의 특징 ● 전시는 작가의 작품활동의 변모과정을 따라, 크게 1.앗상블라주, 2.사격회화, 3.괴물 4.나나 5.공공조각 등으로 구획되어 전시된다. ● 1.앗상블라주에 포함된 작품들은 50년대 후반에서 60년대 초반에 이르기까지 집중적으로 제작된 초기작들이다. 니키 드 생팔 특유의 개인적인 경험에 기반한 상상의 세계가 형성되는 과정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작품들이다. ● 2.사격회화 는 60년대 전반기에 집중적으로 제작된 작품들로서, 실제로 남성셔츠를 걸어두고 머리부분에 과녁을 설치하여 관객들이 직접 다트를 던지도록 했던「다트 초상화」에서부터 여러 가지 사물을 화면에 부착하여 준비한 캔버스에 실제 사격을 해서 완성한「사격회화」들까지 다양한 시도들을 만날 수 있다. ● 3.괴물은 60년대 중반부터 70년대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였다. 비교적 중성적인 내용을 가졌던 초기 사격회화와는 달리 보다 구체적인 상상의 세계 - 특히, '괴물'로서 대변되는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 4.나나는 작가의 대표적인 연작 중 하나로서, 화려한 색채로 장식한 뚱뚱한 흑인 여성을 미의 화신처럼 묘사함으로써 20세기 중후반 여성에 대한 서구 남성들의 고정관념을 비웃고 성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공개적이고 예술적인 방식으로 던지고 있다. 「에리카」,「얼굴 없는 나나」등의 초기작부터「물구나무 선 나나」등 대표작까지 다양한 나나들을 만나볼 수 있다. ● 5.공공조각은 1966년 스톡홀름 현대미술관에 설치된「그녀 Hon」를 비롯하여 1967년 몬트리올 엑스포의 프랑스관을 위해 제작한「환상적인 천국」, 1971년-72년 예루살렘 라비노비치 공원의 놀이조각「골렘」, 1982년 퐁피두센터의「스트라빈스키 분수」, 무엇보다 1978년에 착수하여 일반에 공개될 때까지 거의 20여년의 세월 동안 혼신의 힘을 쏟아 부은 역작「타롯 공원」등 작가의 공공 프로젝트와 관련된 드로잉, 판화, 모델 등과 후기조각들로 구성되어 있다. ■ 국립현대미술관

니키 드 생팔_물구나무 선 검은 나나_천과 양털, 페인트와 철망_150×105×108cm_1965
니키 드 생팔_거대한 얼굴_폴리에스테르에 채색_240×200×85cm_1971
니키 드 생팔_화장실_종이 찰흙에 채색_160×150×100cm_1978

니키 드 생팔 - 나나의 외출 ● 『니키 드 생팔』전은 니스 근현대미술관의 소장품을 중심으로 니키 드 생팔 자선재단(NCAF) 및 프랑스 국립현대미술기금(FNAC)의 소장품 등 71점으로 구성된 회고전이다. 1950년대 말의 본격적인 앗상블라주 작업으로부터 2000년에 이르기까지의 대표작들로 구성된 이번 전시에서는, 특히「나나」연작의 밑거름이 되었던 초기작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니키 드 생팔의 예술세계의 전반적인 변모과정을 종합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드문 기회이다. ● 1930년 프랑스 출신의 은행가 아버지와 부유한 미국계 어머니 사이에서 5남매 중 둘째로 태어난 니키 드 생팔은 대공황의 여파로 급격히 기운 가세로 인해 어린 시절을 부모와 조부모 사이를 오가며 보낸다. 부모는 생팔을 수도원 학교에 보내는 등 전통적인 관습에 순응하는 아이로 키우고자 했으나 오히려 그런 의도가 생팔의 자유로운 본성과 마찰하면서 생팔은 전학과 자퇴를 되풀이하는 순탄치 않은 성장기를 겪었다. 무엇보다 11세 무렵 아버지에게 당한 성폭행은 평생을 통해 그녀가 극복해야 할 정신적 상처로 남게 된다. "아버지와 나 사이에 무언가가 일어났고, 그것이 나와 아버지를 영원히 갈라놓았다. 사랑이었던 모든 것이 증오로 변했다. 나는 살해당했다고 느꼈다." ● 1948년 고교를 졸업한 생팔은 잠시『보그』지와『라이프』지의 사진모델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듬해 해리 매튜(Harry Mathews)와의 첫 결혼과 딸 로라(Laura)의 출산 등으로 잠시 평온한 삶을 누리는 듯 했으나, 여인으로서의 평범한 삶과 독립을 열망하는 강한 개성을 조화시키는 데 실패하면서 결국 1953년 신경쇠약으로 입원하게 된다. 이 때 정신치료의 일환으로 선택한 미술을 평생의 과제로 선택하게 되었고 1956년에는 첫 번째 전시회를 열었다. 이 시기에 선보인 유화와 과슈화들에 이미 괴물, 동물, 여신, 소녀, 성, 교회 등 이후 그녀의 작품세계 전반을 관통하는 주제들이 그대로 등장하고 있어, 그 각각이 작가의 삶의 근원적인 문제와 강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한다. 누보 레알리슴(nouveau realisme)의 이론적 리더였던 피에르 레스타니(Pierre Restany)는 "그녀의 세대 중에 그녀만큼 개인의 삶과 예술적인 작품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사람을 거의 알지 못 한다"고 회상하고 있다. ● 1950년대 말부터 제작된 앗상블라주 회화들은 기본적으로 일상적인 사물들을 무작위로 조합하는 누보 레알리슴의 보편적인 형식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아르망(Arman), 세자르(Cesar), 이브 클랭(Yves Klein) 등 다른 남성작가들이 일상성의 전용(轉用)을 모더니즘 미술의 자폐적인 한계를 극복하고 동시대의 사회적 현실을 반영하는 전략적인 수단으로 이해했다면, 니키 드 생팔의 관심은 오히려 사물들의 조합을 통하여 연출되는 시적인 서사성- 개인적이고 비밀스러운 이야기-에 있었던 듯하다. 이를 통하여 그녀는 자신을 옭아매던 개인적인 기억과 여성에 대한 사회적 억압에 대한 정서적인 반응들을 형상화해낼 수 있었다. 1965년 그녀는 "내 작업은 언제나 내 문제를 표현한 후 그것을 극복하는 방식이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니키 드 생팔_포지티브와 네거티브 용(첫번째 패널)_ 세라믹과 폴리에스테르_110×110cm_1988
작업실에서 두번째 사격회화를 준비하는 니키 드 생팔_ 흑백사진 전사_165×200cm_1961년 2월 25일

1961년부터 여러 차례 실연된「사격」연작은 니키 드 생팔이라는 존재를 본격적으로 드러내는 계기가 된다. 여기서 작가는 앗상블라주에서 더 나아가, 조합된 화면 뒤에 숨겨놓은 페인트를 총을 쏘아 터뜨림으로써 그림을 완성했다. 공연성과 우연성의 중시는 당대의 진보적인 작가들이 공유하던 보편적인 특성이었다. 그러나 생팔은 여기서도 자신의 개인적인 서사성을 보다 강조하는 차이를 보인다. '신부'의 드레스처럼 순백으로 덮인 화면은 그 내면의 복잡한 사연을 감춘 채 사형대로 소환된다. 사격을 통하여 그 순결과 위선의 이중적인 상징은 무참히 살해당하고 시신은 순교자처럼 박제되어 전시되는 것이다. 생팔에게 사격은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위한 장치였다. "나는 나 자신과 시대의 폭력성에 총을 쏘았다. 나 자신의 폭력성을 쏘아 버리자 더 이상 그것을 짐짝처럼 지니고 다닐 필요가 없어졌다." ● 1963년경부터 이어지는「괴물」연작에서는 초기 사격회화에 숨은 서사성이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작가에게 있어 '괴물'은 폭력의 주체인 동시에 폭력의 희생자이기도 하다. 인간을 사랑하게 된 야수 '킹콩', 장난기 많은 요정 '그렘린', 악마와 거래를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인류에게 맥주를 선물한 '감브리누스' 등 그녀의 괴물들은 거의 예외 없이 모순적인 존재들로 나타난다. 심지어 '신부'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여성들조차 거의 괴물에 가까운 외관으로 묘사된다. 어쩌면 괴물은 처음부터 우리들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존재인 것은 아닐까. ● 1965년 첫 선을 보인「나나」연작에서는 이전의 도발적인 공격성이 수면 아래로 잦아들어, 피 흘리던 괴물은 풍만한 몸매의 여성으로 바뀐다. 우스꽝스럽게 부풀어 오른 가슴과 엉덩이는 화려한 색채의 패턴으로 더욱 강조된다. 여기서 나나의 여성성은 사회적 통념을 비웃는 장치로 선택된 것이다. 여성을 판단하는 전통적인 미덕-날씬한 몸매, 조신한 자세, 우아한 취향 등-에 철저히 역행함으로써 나나는 관객의 기대를 짓밟는다. 무수한 악덕의 소유자인 나나가 당당하게 건재함으로써 이번에는 역으로 관객들의 고정관념이 공격당하고 있는 셈이다. ● 또 하나「나나」연작에서 발견되는 흥미로운 변화는 앗상블라주와 사격회화의 비의(秘儀)적인 성격이 점차 공공적인 영역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점이다. 생팔 스스로 내면의 정신적 상처를 서서히 치유해 감과 동시에, 벌거벗은 채 울부짖던 그녀의 작업도 보다 친근하고 따스한 옷을 입기 시작했다. 마침내 나나는 춥고 스산한 밀실에서 나와 광장으로 발걸음을 옮긴 것이다. 그녀의 오랜 지기였던 퐁투스 훌텐(Pontus Hulten)은 생팔의 그 부드럽고도 강인한 면모를 두고, "그녀의 희망, 그녀의 야망은 그녀 주변과 내면의 부정적인 힘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그 힘과 끊임없이 맞섬으로써 결국 그 어둠의 힘과 친구가 되는 것이었다."라고 말한다. ● 1966년 스톡홀름 현대미술관에 설치된 길이 28미터 높이 6미터의 대형작품「그녀 Hon」는 향후 제작될 니키 드 생팔의 공공 프로젝트를 예언하고 있다. 점잖게 차려입은 신사들은 여성의 질을 통해 몸 속으로 줄지어 들어가서 이 비밀스러운 여체의 구석구석을 공공연히 감상할 수 있었다. 생팔에게 있어 광장은 이렇게 상호이해와 화해의 장이었다. 이듬해인 1967년 몬트리올 엑스포의 프랑스관을 위해 제작한「환상적인 천국」, 1971년-72년 예루살렘 라비노비치 공원에 설치한 놀이조각「골렘」, 1982년 퐁피두센터의「스트라빈스키 분수」, 무엇보다 1978년에 착수하여 1998년 공식적으로 일반에 공개될 때까지 거의 20여년의 세월 동안 혼신의 힘을 쏟아 부은 역작「타롯 공원」에까지 이어지는 공공 프로젝트, 그리고 작품 활동과 함께 지속된 연극, 영화, 건축, 출판 등 다양한 분야의 프로젝트들은 광장을 향한 그녀의 모험이 성공적이었음을 웅변해 준다. 자신의 자유로운 영혼을 보다 넓은 세계에서 보다 많은 이들과 함께 나누고자 했던 니키 드 생팔. 그 아름다운 반란자를 함께 만나보도록 하자. ■ 임대근

Vol.20061117e | 니키 드 생팔 회고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