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생각하기

김비타 사진展   2006_1116 ▶︎ 2006_1122

김비타_사진으로 생각하기展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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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6_1116_목요일_06:00pm

경향갤러리 서울 중구 정동 22번지 경향신문사 별관 1층 Tel. 02_6731_6752 gallery.khan.co.kr

The Veil of Maya-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조형적 탐구 ● 머리카락. 태초에 神이 우리 인간을 만들 때부터 우리에게 붙어 있었고, 죽음의 순간까지도 우리와 함께 할. 모든 감정과 사고, 기억이 깃드는 머리에서부터 한 그루 나무와도 같이 자라나와 인종, 문화, 성격, 생활태도 등 인간의 정체성을 대변하며 우리와 함께 할. 만물 속에 편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시간'이라는 괴물과 함께 끊임없는 생성과 소멸의 법칙을 따라, 잡을 수 없는 미몽처럼 우주를 떠돌다 덧없이 사라질. 그것들은 나의 카메라 렌즈를 통해 실타래처럼 엉키고 해체되며 인화지위 혹은 캔버스위에 형상화된다. 이렇게 형성된 이미지들은 하나의 오브제로 작용하고 있는 머리카락의 형태를 넘어서서 한 폭의 수묵화나 풍경 혹은 추상이 되기도 하는데, 이처럼 나의 작업은 머리카락이라는 形象의 세계에 無形의 본질을 투사시키며, 이 근원을 알 수 없는 '존재의 뿌리'에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는 일이다.아울러 내 작업을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는 「마야」라는 다소 생소한 말이다. ● 이것은 또한 지난 수년간 나로 하여금 빠리의 작업실에서의 무수한 밤들을 괴롭혔던 단어이기도 한데, 어원학적으로는 고대 산스크리트어로, 사전적 의미로는 '여신, 여왕, 환영'의 뜻을 지닌다. 즉, 그것은 환상의 세계를 만드는 神的인 힘, 환상의 힘, 모든 것에 애초부터 존재하던 끝없이 정묘한 불멸의 물질이자 눈에 보이는 형상을 만드는데 神들이 쓰던 實在性 없는 물질이며 實在에 대한 '감각적 현상세계'를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다.

김비타_The Veil of Maya_디지털프린트_160×120cm_2004
김비타_The Veil of Maya_디지털프린트_120×90cm_2005
김비타_The Veil of Maya_디지털프린트_136×80cm_2004

그리고 이 말은 베다, 탄트리즘, 쉬바이즘등 수많은 힌두思潮에 속하는 말이기도 한데, 이해를 돕기 위해 먼저 각 종파에서 의미하는 마야를 살펴보면, ● 1. 베다교(원시 바라문교) : 마야는 환영의 힘, 우주적 환영, 형상들을 투사시키는 기술, 가상의 마술적 작용.다채로운 일성들이 결국은 하나의 존재, 한 현상의 여러 가지 양상을 보는 것을 방해하는 방해꾼. ● 2. 베단타 철학 :마야는 환영, 공허한 특성 혹은 환상의 힘. 현상세계는 그 고유한 실존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그 자체로서 우리가 지각할 수 있도록 현상으로 나타나 형상들을 만드는 것은 마야의 힘. ● 3. 탄트라교 :마야는 신의 과잉(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신들이 존재하는가!)으로 비롯된 우주의 무한한 다양성의 근원이라기보다 '커다란 환상'이 불러일으키는 온갖 오류의 근원. ● 4. 시바교 : 마야는 오로지 불순한 영역에 있어서만 세상의 첫 번째 물질. ● 5. 상캬철학 :인간에게는 3가지 속성(Guna)이 있다고 함.-사트바(Sattva): 균형, 인식, 충족의 양상.-라자스(Rajas): 행위에 대한 강한 집착과 서로 충돌하는 감정의 모드-타마스(Tamas): 무지와 무기력의 모드만물을 보는데 있어 그토록 잘못된 시각을 만들어 내고 그들에게 열등한 성격을 부여하는 3가지 속성의 하위천성이 바로『마야』임. ● 위와 같이 우리의 의식을 가로막고 잘못된 가치를 만들어 내는 이 환영의 힘은 정신병 환자, 육체적 쾌락, 물질적 존재, 한정된 지식 등으로 우리를 에고ego속에 가두고 우리 존재의 광대무변하고 지고한 진리를 그 속에 숨긴다. 이 기만적인 마야는 우리 자신이 곧 신/하나님 이자 무한한 불멸의 혼임을 은폐한다.만일 우리가 우리 존재의 실재 참다운 모습이 바로 신이라는 것을 볼 수 있다면 우리의 직관에 따라 나머지 모든 것들도 바뀔 것이고 그 참모습을 띨 것이다.

김비타_The Veil of Maya_디지털프린트_100×100cm_2004
김비타_The Veil of Maya_디지털프린트_97×130cm_2004

또한 우리의 삶과 행위는 다시금 신성한 가치를 획득할 것이고 신성한 자연의 법칙에 따라 움직일 것이다. 그러므로 사트바, 라자스, 타마스 이 세 가지 인간의 속성은 신이 우리의 이성둘레에 쳐놓은 한없이 넓은 우주적 장막인 것이다. 이 장막 너머로 자연 현상의 모든 운행의 실체는 가려져 있다. 그러므로 신은 각 인간의 내부에 깃들어 있고(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눅17:21), 그 신은 또한 자연의 신비로운 작용의 주관자이다. 그리고 이 우주의 靈, 이 모든 것인 유일자는 우리로 하여금 그의 마야의 힘에 의해 끊임없이 세상의 수레바퀴 위를 돌게 만드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우리가 하나의 커다란 기계의 부속물인 것처럼. 그리고 우리가 무지 속에서 매일 거울 앞에 서서 머리카락을 빗는 것처럼.

김비타_二元性에 관한 연구_디지털프린트_53×60cm_2005

그러므로 마야는 존재로 보이는 모든 것의 기저에 깔려 있다. 모든 현상은 그것에상호의존하고 그것들의 실체는 보이는 것에 불과할 뿐이다.우리의 이러한 무지의 베일이 벗겨질 때 우리의 영혼은 비로소 '인식의 상태'를 회복하리라고 믿는다. 또한 그것은 우리 존재의 실체인 '생각'에 따라 우리 안에서 자라고, 우리 안에 있는 이 신성한 神인 영혼의 비밀스러운 진리와 조응함으로써 우리의 인격을 점진적으로 연마하게 만든다. 따라서 마야는 인간적 의식을 둘러싸고 있는 장막이요, 존재한다고도 할 수 있고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할 수 있는, 허위이자 동시에 진실한 그 무엇, '눈에 보이는 세계 저 너머의 어떤 것'인 것이다.작업의 주조색은 극히 제한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흑백의 이미지이다. ● 玄色. 너와 나의 구별이 없을 것만 같은(非他) 색. 아주 오래전, 하나였던 우리들의 고향 같은 색.그것은 어두운 정적 속에서 침묵하는 세상의 알려지지 않은 어떤 부분들에 대한 표현이자 일종의 색채에 대한 금욕이라고도 말하여질 수 있는데, 달리 말하자면 천지가 만들어지기 이전의 검은 침묵의 상태를 동경한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하겠다. 정신의 고양이라는 것이 우주만물과 하나가 되는 것이라면, 그 조응의 순간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굳이 우리가 성경의 첫 구절(창세기1: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神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나는 그 순간에 보이는 빛을 검은 색이라 상정한다.이제껏 한 번도 형상을 갖지 못한 것들을 향한 긍휼의 시선을 닮은 색 말이다. ● 그리하여 구원을 향한 먼 길을 돌아가는 순례자처럼, 마야의 베일인 '현상'에 기만되지 않고, 보다 직관적이며 깊은 사유를 관통하고 나오는 작품들을 매개로 하여 나는 그곳에 이르고 싶다. 왜냐하면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더 이상 희망이 아니므로. ■ 김비타

Vol.20061119c | 김비타 사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