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지어 흩어지다

구인성 한국화展   2006_1107 ▶︎ 2006_1116

구인성_횡단보도crosswalk-Day After Day_종이에 수묵채색_140×206cm_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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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6_1107_화요일_06:00pm

한국화 대안 공간 갤러리 꽃 지원 청년작가 기획초대전(NO. 2006-08) 후원_갤러리 꽃_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시간 / 11:00am~07:00pm

갤러리 꽃 서울 마포구 서교동 337-36번지 B1 Tel. 02_6414_8840

인간의 길(道)을 통해 세상을 보는 방법 ● 어느새 오후 6시면 해가 저물어 어두워지고 곳곳에 하나 둘씩 불이 밝혀진다. 겨울을 재촉하는 늦은 가을비가 내리고 난 다음날 5시 30분 경 서둘러 전시장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해가 짧아지는 동절기에는 대게 갤러리들의 오픈 시간도 단축이 되기 때문에 때론 너무 여유부리고 찾아갔다가는 전시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갤러리 측의 눈치를 보기가 일쑤다. 이런 날은 횡단보도의 신호가 참 길게 느껴진다. 갤러리 앞에 도착해서야 가파른 호흡을 가다듬고 천천히 몸을 움직여 들어간다. 30대 초반의 한국화가 구인성의 네 번째 개인전(11.07-11.16)이 열리는 갤러리 꽃을 찾았다.

구인성_지하철subway-Day After Day_종이에 수묵채색_182×364cm_2006

갤러리 꽃은 『한국화 대안공간』을 표방하고 2004년 7월 미술계에 등장했다. 비교적 실험적이고 다양한 동시대 한국화가 소개되는 이곳은 큐레이터쉽이 보강된다면 한국미술계에서 주목할 만한 인큐베이터가 될 수 있는 전시공간이다. 오랜 시간 한국인의 정서와 미감을 반영했던 한국화 혹은 동양화의 전통은 서구화/현대화를 거치면서 정체성의 대혼란을 겪게 된다. 이제는 그러한 혼동과 혼란에서 벗어나 나름의 자기 정체성을 가지고 창작에 몰입하는 작가들도 생겨났지만 여전히 상당수는 자기 스스로 획득한 정체성이 아닌 외부로부터 주입되거나 남의 정체성을 빌어 자기 작업을 이해하는 상황이다. 정체성의 문제는 매우 복잡한 인류학적, 환경적, 시대적, 언어적 자기규정이라 할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명확하게 '이것이다'라고 말하기 어렵다. 단지 '자기체면'처럼 그것이 단지 '자기규정'에 불과한 것이라고 하는 것은 정체성을 파악하기 위한 조건들, 일테면 앞에서 열거한 환경, 시대, 언어들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계속 변화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문제는 그러한 변화 속에서 자신이 어떻게 대응하는가 라는 방식과 태도의 문제라 할 수 있다.

구인성_횡단보도crosswalk-Day After Day_종이에 수묵채색_70×540cm_2006

전시장에는 마침 작가가 있었다. 며칠 사이 갑작스레 추워진 날씨 때문인지 작은 전기난로가 불그스레 전시장 한쪽에 놓여있었다. 난로 앞에서 한 권의 책을 읽으며 전시장을 지키고 있었던 작가는 갑작스런 관객의 등장에 순간 자리에서 일어선다. 나와 안면이 있는 작가는 환하게 손을 내민다. 오랜만이다. 그에게 그 동안의 안부와 함께 작업에 대한 설명을 부탁했다.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변화가 있다면, 대화를 통해 이해되는 변화가 있다. 그의 육성은 그의 작품들을 하나 둘씩 깨우기 시작한다. 우리는 전시장을 느리게 이동하면서 작품을 살펴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때로는 나지막하게 때로는 톤을 높여 대화를 이어나갔다.

구인성_횡단보도crosswalk-Day After Day_종이에 수묵채색_186×102cm_2006

이번 전시에 출품된 그의 작업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 하나는 전부터 계속해왔던 장지에 수묵점묘방식의 도시인물 풍경들이고 다른 하나는 골판지를 칼로 오려 내거나 손으로 뜯어내는 작업이다. 두 작업 가운데 여기에서는 그가 그동안 해왔던 장지작업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장지 작업에서 그가 보여주는 점묘는 손가락의 자국들로써, 마치 조소에서 흙을 만지는 소조작업과 같이 무수한 반복적 지압의 흔적들이 평면에서 점묘로 나나는 것이었다. 그의 작업에서 대게 주요한 형상을 만들어 내는 이러한 점묘가 붓과 같은 화구를 통해 얻어진 것이 아니라 신체-특히 신경이 예민한 손가락을 곧바로 화면의 표면과 접촉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만들어 진다는 것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방법을 볼 때, 작가 구인성은 형상을 '그린다'는 표현보다는 '만진다' 혹은 '더듬는다'라는 표현이 보다 적합할 듯 하다. 그는 이 같은 방법으로 도시와 그 속의 사람들의 풍경을 만져나간다. 그 풍경은 그가 볼 때, '무리지어 흩어지는' 현상으로 다가온다. 아마도 이러한 현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공간은 구인성이 포착하는 횡단보도에서, 버스나 지하철과 같은 내외부의 풍경에서 잘 드러나는 것 같다. 사람들은 어디론가 가기 위해 부단히 움직인다. 잠시의 멈춤은 또 다른 장소로 흩어져 가는 과정 속의 일부이다. 서울이라는 대도시 공간에서 느끼는 한 작가의 시선은 결국 그들의, 나와 아무런 관계를 맺지 않고 있는, 그러한 익명의 무리들의 모임과 흩어짐을 바라보는 자신으로 되돌아오게 된다. 화면 속 군중은 결코 그들을 바라보는 누군가와, 혹은 관객과 결코 눈빛을 교환하지 않는다. 원근법에 의한 흡수된 관객의 시선은 그리 멀리, 깊숙이 도달되지 않는다. 관객의 시선은 별 의미 없는, 막힌 벽이나 먹으로 뭉개진 모호한 덩어리까지 갔다가 화면 밖으로 튕겨져 나온다. 결국 그 시선은 거울처럼 그림을 바라보는 관객으로 반사된다. 즉 구인성의 풍경에서는 풍경을 보는 나-그림 속에 존재하지 않는, 그림 앞에 서 있는 나를 보게 한다. 바로 그 상태, 그 느낌, 그 낯섦의 대한 경험이 작가 구인성이 대도시에서 느끼는 일상이라 할 수 있고, 작품의 주제라 할 수 있다.

구인성_서울역seoul station-Day After Day_종이에 수묵채색_210×132cm_2006

횡단보도 신호는 아직 적색을 밝히고 있다. 곧 신호가 녹색으로 바뀌면 우리는 '안전'하게 이곳에서 저곳으로 건너갈 수 있다(고 믿고 습관적으로 반응한다). 그 다음은 어디로 그들이 흩어질지는 모르겠다. 단지 나는 내가 가야할 갈 길을 가는 것뿐이고, 그 중간에 '그들'을 만난 것일 뿐이다. '옷깃을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은 정말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만 가능한 일일까? 전시장에서 작가가 읽고 있었던 책의 제목이 기억났다. 『녹색시민 구보씨의 하루』■ 이명훈

Vol.20061124b | 구인성 한국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