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를루프 정원

장 뒤뷔페 회고展   2006_1110 ▶︎ 2007_0128

장 뒤뷔페_모자를 써 보는 여인_캔버스에 유채_60×73cm_1943 ⓒ Jean Dubuffet / ADAGP, Paris - SACK, Seoul,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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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6_1109_목요일_05:00pm

주최_국립현대미술관, MBC 협력_파리 뒤뷔페 재단, 프랑스 대사관 협찬_ 르노삼성자동차, 농협중앙회, 크레디 아그리콜, 대한항공 주요 소장처_ 파리 뒤뷔페 재단, 퐁피두센터, 파리장식미술관, 도요타시 미술관 등

덕수궁미술관 서울 중구 정동 5-1번지 Tel. 02_779_5310 www.moca.go.kr

한불 수교 120주년을 기념한 다양한 행사들이 한국과 프랑스에서 각각 열리고 있다. 한국 문화를 알리는 사인물이 현재 파리의 지하철을 장식하고 있다면, 한국에서도 지금 프랑스에서 온 미술작품들로 넘쳐나고 있다. ● 그 중에서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리는 『장 뒤뷔페(Jean Dubuffet, 1901-1985)』의 대규모 회고전은, 어떤 점에서 올해 한불 수교 120주년의 가장 의미 있는 하이라이트가 될 만하다. 그 '의미'라면 무엇보다, 뒤뷔페가 프랑스에서는 가장 사랑받는 소위 '국민작가'로 프랑스 미술 교과서의 등장 순위 1위를 놓치지 않고 있는 작가라면, 한국에서 뒤뷔페는 대중적으로 거의 잘 알려져 있지 않다는 사실에 있다. 이왕 자국 문화를 알리고자 한다면, 상대방이 모르는 자신의 가장 자랑할만한 작가를 내세우는 것이 좋지 않을까! ● 이렇게 해서 주한 프랑스 대사관이 적극 후원하고, 한국 국립현대미술관과 파리 뒤뷔페 재단의 긴밀한 협력 하에, 약 1년 반의 준비과정을 거쳐, 3개국 16개 소장처의 작품 235점으로 구성된 장 뒤뷔페의 대규모 회고전이, 한국 서울의 가장 아름다운 미술관 중 하나인 덕수궁미술관을 가득 메우게 된다. 총 3대의 비행기에 나누어 무려 70개의 운송 크레이트에 보관되어 운반된, 작품 가액 수백억에 달하는 작품의 출품은 덕수궁미술관의 전시 역사에 있어서도 가장 대규모의 예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장 뒤뷔페_데스누두스_캔버스에 유채_73×60cm_1945 ⓒ Jean Dubuffet / ADAGP, Paris - SACK, Seoul, 2006

장 뒤뷔페, 그는 1901년 프랑스 남부 아브르에서 태어나 1919년 파리의 아카데미 줄리앙에서 단 6개월을 수학한 것이 정규 미술교육의 전부였다. 아카데믹한 교육에서는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선언한 그는, 1942년 41세의 나이까지 가업을 이어 포도주 상인으로 반평생을 살았다. 그리고는 불현듯 그의 문학, 미술, 음악 등 다양한 분야의 재능을 결국 '미술'로 귀결시키기로 마음먹었고, 이후 그는 1985년 84세의 나이로 죽기 전까지 수천 점의 작품을 쉼 없이 그려냈다. ● 처음부터 어떠한 전통적인 관습과 규준도 거부했던 그에게는 더 이상 반드시 따라야 할 미술사적 전통도, 문화계의 관습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의 관심은, 서구 문명이 너무나 맹목적으로 좇던 가치에 의문을 표하고, 반대로 너무나 오랫동안 무시되어왔던 것들의 가치를 회복하는 일이었다. 서구 문명의 끝자락에 서서 그는, "이성과 논리의 불완전함을 깨닫고", "본능, 열정, 변덕, 격렬함, 광기"의 가치를 존중하는 예술을 지향했다. 그를 감동시켜 화가의 길을 가게 한 것은 결코 조화로운 균형잡힌 그리스 조각이 아니라 어린 아이의 서툰 그림이나 정신병자의 솔직한 그림들이었다. 규준에 맞추어져 아름답다고 믿는 것보다, 우리와 항상 함께 하는 쓰레기와 때, 찌꺼기 같은 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에서 오히려 삶과 예술의 진실을 발견하는 것이 그의 목표다. "사상이란 이성과 논리의 과정과 접촉했을 때는 물로 변화하고 마는 증기와도 같다"고 믿었던 뒤뷔페는 "단지 즐거움을 위해 스펙터클을 만들고 축제를 벌이는" 광대와도 같이 작업하며 한평생을 살았고, 1985년 84세의 나이에 생을 마감할 때까지 수많은 작품을 제작하여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 이를 남겼다. ● "문화적 예술보다 더 좋은 원초적 예술(Art Brut)"을 주창했고, 비록 스스로는 어떠한 카테고리에도 묶이기를 원하지 않았지만, 많은 한국, 일본의 작가들에게 '앵포르멜(Informel, '비정형'을 의미함)의 선구자로 칭송되었으며, 2차 대전 이후 현대 미술의 기능과 진로에 결정적인 이정표를 제시한 세계적 작가 장 뒤뷔페, 이번 전시는 그의 진면목을 맛볼 수 있는 다시 없는 기회가 될 것이다.

장 뒤뷔페_작은 정원사_캔버스에 유채_73×92cm_1955 ⓒ Jean Dubuffet / ADAGP, Paris - SACK, Seoul, 2006

이번 전시는 1919년-1984년까지 뒤뷔페의 전 시기 작품을 모두 조망할 수 있도록 회고전 형식으로 구성되었다. 어떠한 카테고리에도 묶이기를 원하지 않았던 만큼 뒤뷔페는 언제나 자신의 양식을 스스로 변화시켜 나갔고, 늘 스스로를 '새로운 세계'로 이끌어갔다. 한편, 엄청난 분량의 원고를 남긴 문학가, 사상가로서의 뒤뷔페를 부각하기 위해, 도록에 뒤뷔페의 중요 원고를 선별 발췌하여 한국어로 번역 출간하였으며, 아스거 요른과 함께 음반을 낼만큼 열정적이었던 음악적 재능을 보여주기 위해 미술관 한켠에 그의 음반을 감상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했다. 이 전시는 문학가, 사상가, 음악가, 미술가, 무엇보다 너무나도 유쾌하게 인생을 즐겼던 한 사내의 여러 다양한 측면을 모두 보여주기 위해 고심했다. 전시는 크게는 시기별로 다음과 같이 구성되었다. 바닥 예찬-1951∼1960 ● 1950년대 뒤뷔페는 파리를 떠나 프랑스 남부의 방스 지역으로 작업실을 옮겨간다. 도시의 인물들을 그리기보다, 이제 주변의 기이한 자연물, 광물 심지어 오물까지도 등이 만들어내는 재료 자체의 직접적인 표현에 관심을 두기 시작하면서, 그의 작품은 다시 한번 변화를 맞게 된다. 작가의 손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대신 물질 자체가 만들어내는 효과를 최대한 온전히 드러내기 위해, 그의 작품은 '지형학', '재질학', '재료학'의 과정을 통과하며 전개된다. '불확실한 것', '흔들리는 것들을 그대로 남겨 둔 채' 생명의 존재, 뇌의 풍경, 우주적 원리를 환기시키는 그의 이 시기 작품은, 20세기 미술사에 있어 뒤뷔페의 가장 빛나는 업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장 뒤뷔페_우를루프 정원_캔버스에 비닐물감_97×130cm_1966 ⓒ Jean Dubuffet / ADAGP, Paris - SACK, Seoul, 2006
장 뒤뷔페_앉아있는 남자가 있는 풍경_캔버스에 비닐물감_178×140cm_1974 ⓒ Jean Dubuffet / ADAGP, Paris - SACK, Seoul, 2006
장 뒤뷔페_잡담하는 사람 II_폴리우레탄 수지에 에폭시페인트_114×85×85cm_1969-70 ⓒ Jean Dubuffet / ADAGP, Paris - SACK, Seoul, 2006

우를루프-1961∼1974 ● 1961년 뒤뷔페는 방스에서 파리로 돌아와 또다시 도시의 소음, 활력, 북적거림, 부질없음으로 복귀한다. 소위 '파리의 서커스'라 불리는 이 시기의 연작(1961-1962)에서부터 시작하여, 제3전시실은 이후 뒤뷔페의 가장 유명한 연작이 된 '우를루프(1962-1974)' 작품들로 가득 차 있다. '우를루프(L'Hourloupe)'는 프랑스어로 '소리지르다(hurler), 새가 지저귀다(hululer), 늑대(loup), 곱슬머리 리케(Riquet a la Houppe), 혹은 정신적 방황을 그린 모파상의 소설 오를라(Le Horla)' 등을 연상시키지만, 사실 어떠한 규정된 의미도 가지지 않는, 뒤뷔페가 지어낸 단어이다. 그는 자신이 창안한 우를루프의 세계 안에 집과 사람, 탁자와 의자, 침대와 가재도구들을 꼼꼼하게 챙겨 넣는다. 그리고는 우리의 세계와 나란히 가고 있는지도 모르는 '새로운 세계'에 대해 불현듯 깨닫게 하고, 그럼으로써 우리를 낯선 인식과 뜻밖의 시각적 경험으로 문득 인도한다.

장 뒤뷔페_과도기적 상황_종이에 아크릴, 캔버스에 부착_249×185cm_1978 ⓒ Jean Dubuffet / ADAGP, Paris - SACK, Seoul, 2006

뒤뷔페의 마지막 날들-1975∼1984 ● 1975년, 뒤뷔페는 12년간 지속되었던 '우를루프'의 세계에서 갑자기 미끄러져 나온다. 70, 80대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는 끊임없이 새로운 작업들을 시도하며, 「사교계」, 「파라쉬프르」, 「기억의 극장」 연작, 「심리적 장소(시코-시트)」 연작 등을 통해 예술 표현의 가능성을 계속해서 열어간다. 마지막 날들에 이르러 뒤뷔페는 「미르(Mire)」 연작, 「무공간(Non-lieux)」 연작 등을 제작하면서,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 그의 말대로 '제2의 실재'를 찾아 경계 없는 여정을 떠난다. 더 이상 구상과 추상, 대상과 공간, 사물과 사람, 물질과 정신의 구분은 그 의미를 상실한다. 대신 뒤뷔페는 그의 말년의 작품을 통해 극도의 자유로운 사유와 무한히 가능할 창안의 세계에로 흘러 들어간다. ● 왜 '우를루프 정원'인가? 전시의 부제인'우를루프 정원'은 뒤뷔페의 연작 중 가장 오랫동안 지속되고 대중적으로 사랑받았던 '우를루프(L'hourloupe)'연작(1962-74)의 작품 제목 중 하나이다. '우를루프'는 뒤뷔페가 직접 창안한 단어로, 불어 어감으로는 뭔가 환상적이면서도 어쩐지 그로데스크한 분위기의 대상이나 인물을 연상시킨다고 한다. 뒤뷔페는 스스로 만든 이 '우를루프'의 세계에 빠져들어 자신이 접하는 모든 주변의 사물과 대상과 사람들을 그 세계 안으로 끌어들였다. 뒤뷔페는 우리가 인식하는 실재와 나란히 존재할지도 모를 '그 어떤 신세계'를'우를루프'로 표현하고자 했고, 이번 전시는 전시 그 자체가 뒤뷔페를 통해 우리가 만나는'또 다른 신세계'일 수 있기에, 이와 같은 부제를 붙였다.

장 뒤뷔페_자화상_종이에 마커_25×16.5cm_1966 ⓒ Jean Dubuffet / ADAGP, Paris - SACK, Seoul, 2006

길들여지고 제도화된 '문화'의 이데올로기에 반기를 들고, 이성과 논리로 무장한 서구 문명의 진로에 '멈춤'을 선언하며, 대신 순수함과 광기와 원시성을 다시금 예술의 영역으로 불러들인 장 뒤뷔페는, 오늘날 한국의 문화 현실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난무하는 '문화' 라는 미명 아래 추구되는, 세련되고 다듬어진, 그래서 특별하고 사치스러운 취미인 우리의 '문화'는, 이미 반세기 전 뒤뷔페가 그토록 애써 무너뜨리고자 했던 그 견고하고 재미없는 문명화된 '문화'인 것이다. 제도화된 문화의 영역보다 훨씬 앞서 이미 존재하는 원초적(brut)인 것, 문명의 기치 아래 너무 오래 가려지고 숨겨져 있는 그것, 그러나 실은 우리가 주변으로 눈을 돌리기만 해도 언제든 문득 발견할 수 있는 바로 그것을, 예술은 온건히 드러내 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예술이야말로 인류가 '즐거이' 감상할 만한 것이다. ● 만약 언젠가 돌 하나가 너에게 미소 짓는 것을 본다면, 그것을 알리러 가겠니? (기유빅 Guillevic,「만약 언젠가」)덕수궁 미술관

전시 관람 초점 정리 ● 한불 수교 1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된 문화행사로, 프랑스대사관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한국 국립현대미술관과 파리 뒤뷔페 재단의 긴밀한 협력 하에 기획된 전시이다. ● 2차 대전 이전 파리에 피카소가 있었다면, 2차대전 이후 파리의 대표적인 작가는 단연 장 뒤뷔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는 프랑스의 교과서에 등장하는 화가 순위 1위를 기록하는 명실상부한 프랑스의 국민작가이다. 세계적으로도 '앵포르멜'의 선구자로, 2차 대전 후 폐허의 유럽미술의 진로를 개척한 선도적 작가로 알려져 있다. 이번 전시는 국내 최초로 개최되는 그의 대규모 회고전이다. ● 파리 뒤뷔페 재단, 퐁피두 센터, 파리 장식미술관, 일본 도요타시 미술관 등 3개국 16개 소장처에서 소장하고 있는 작품 총 235점(회화 120점, 조각 10점, 드로잉 43점, 판화 62점)이 전시되어, 작품가액만도 수백억에 달한다. 이와 같이 대규모로 뒤뷔페의 작품을 한꺼번에 많이 볼 수 있는 기회는 파리를 가도 만나기 어려울 것이다. ● 포도주 상인으로 반평생을 보낸 후 41세가 되어서야 돌연 화가가 되어, 1985년 죽기 전까지 5000여점의 작품을 남긴 작가 장 뒤뷔페, 그는 아카데믹한 미술교육을 거부하고 오히려 세계 현대미술의 새로운 흐름을 창시하였다는 점에서 한국 미술교육계의 새로운 지침서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한다. ● 어린 아이의 순수함에서 영감의 원천을 제공받고, 문명과 문화 진보의 결과보다 '원초적(brut)'인 아름다움을 주창했던 뒤뷔페의 솔직하고 친근한 작품은, 인간과 사회의 원초적인 순수가 그리운 오늘날의 현실에 시사점을 던져 주고 있다.

Vol.20061126b | 장 뒤뷔페 회고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