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해윤, 류장복 회화展

2007_0105 ▶︎ 2007_0118

류장복_2004.1.17 철암천변_종이에 칼라압축목탄_64.8×101.6cm_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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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106_토요일_03:00pm

갤러리 쿤스트독 서울 종로구 창성동 122-9번지 Tel. 02_722_8897 www.kunstdoc.com

조작되어있지 않음, 그리고 세계와 자신을 향한 진솔한 행보 ● 내가 아는 류장복은 '좋은' 작가고, '좋은' 사람이다. 진지하면서도 따듯함을 잃지 않은 표정, 기꺼이 상대를 청해 듣는 겸허한 열림, 그리고 자신을 드러내는, 자주 용기를 요하는 진솔함, 이것이 내가 아는 작가 류장복의 인품이다. 사실 인품이라 했지만, 그것이야말로 나름의 고유한 유형을 가진 깊은 지성의 한 발현 아닌가. 그러므로 누구라서 이런 독특한 스타일의 지성을 소유한 사람과 마주하기를 꺼리겠는가. 이런 덕에 류장복은 대상들을 눈으로 훑는 데 머무는 대신, 깊은 마음으로 만나는 방식을 지속적으로 실험해 왔다. ● 특히 류장복의 드로잉들에는 이런 매력적인 요인들이 고스란히 반영되어있다. 시각적으로 그의 드로잉들은 소박하고 겸허하다. 일체의 장식효과, 인위적이거나 억지스런 변주, 특히나 도회적 세련미와는 거리가 멀다. 차라리 가난해 보일 지경이다. 색채라 해야 목탄의 독주를 겨우 조금 완화시키는 정도다. 채색의 화려함은 절제된다. 영웅적인 구성은 제일먼저 포기된다. 화면의 뉘앙스는 어떤 잠재적인 차원을 제외하면 정적이다. 이 모든 것들은 이성과 의지의 산물이다. 류장복의 필력은 세련미가 물씬 풍긴다. 곰삭은 목탄의 색은 집과 산과 언덕과 나무를 한 번에 끌어안고도 남는다. 필은 날렵하고 더디고의 리듬을 잘도 탄다. 이 모든 것들엔 지나침이 없다.

류해윤_1999 금강산만물도_종이에 혼합채색_2절_1999

류해윤 옹의 회화도 매한가지로 소박하다. 기교라곤 찾아볼 수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여기에 원근법, 비례, 해부학적 엄격성 따윌 들이대는 건 넌센스다. 류 해윤 옹의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모든 제한을 넘어서는 더 너른 자유가 요구된다. 여기서 공간은 뉴튼적인 공간이 아니라, 해석학적 공간이다. 사람들은 유물론적 해부학이 아니라, 해석학적'영향사(Wirkung)'에 의해 조절된다. 시간은 과거의'전승사(Uberlieferung)'의 결들을 고스란히 안고 화면 안으로 들어온다. 그래서 과거와 현재가 그토록 긴밀하게 뒤섞이고 교차하게 되는 것이다. 예컨대 그는 6.25동란이나 1.4후퇴를 그리지만, 완전히 현실을 다루는 방식으로 그린다. 이는 인간은 본질적으로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산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렇듯, 많은 그림들은 실경적인 섬세함과 과거의 향수와 장래에 대한 당찬 포부라는 상이한 시점에 동시에 등록되어 있다. 자유로이 시간을 거니는 그것은 기억의 힘이고, 상상의 힘이고, 무엇보다 현세에 대한 애정의 힘의 결과다.

류장복_2006.6.17 철암천변_종이에 목탄_56×76cm_2006
류장복_2006.5.1 철암역 앞 역전슈 - 아저씨를 위한 기념비적 초상_종이에 목탄_78.5×109cm_2006

역전슈- 아저씨가 가게 앞에서 기지개를 켠다. 사진을 근사하게 한방 찍고 난로가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초상그리기를 시작했다. 그는 부산사람으로 건축사업을 하다 망해 이곳으로 흘러들어왔다. 역전가게라고 상당한 권리금을 치르고 들어왔는데 다 까먹고 지금은 빚지고 산단다. 한창 청춘인데 이 곳에서 썩는다며 연방 땅이 꺼져라 한숨이다. 아저씨는 60세다. 영업보상비를 받아 이곳을 뜨고 싶어 한다. 마누라 놔두고 혼자 여기저기 가보고 싶은 데 마음껏 다닐 거라 하신다. 절대 그렇게 되지 않을 거라고 대꾸했더니 민망했던지 말머리를 돌린다. 돌이 갓 지난 손주 사진을 다운받아 프린트 했다며 보여준다. 놀라는 표정을 지었더니 채팅도 하신단다. 사진쟁이의 아들이라는 소리가 듣기 싫어 건축판에 뛰어들게 되었다며 철암사람들과는 다르다고 벌써 몇 차례 강조한다. 그림으로 보니 미간의 주름이 독특하다. 젊었을 때 한 승질 하셨을 거 같다고 했더니 '성질은 무슨 성질, 사업이 망해서 그렇지'라고 말하다 '성질 급하면 망해먹기 딱 좋아'라며 금새 시인한다. 봇물 터지듯 이야기가 쏟아진다. 꽤 적적하셨던가 보다. (2006.4.16 13:22 - 류장복) ● 류장복의 목탄은 겹치고, 문질러지고, 눌리고, 짓이겨지는 신체적인 과정들을 통해, 역설적이게도 정신과 마음을 드러낸다. 그가 강원도 철암을 사랑하는 모습이 한 예가 되고도 남는다. 그가 어떻게 철암을 만나고, 쓰다듬고, 애무해 왔던가를 보라! 그러면 금방 알 수 있듯, 류장복에게 대상은 없다. 관심을 갖고 다가서고, 애정을 쏟아야하는 상대가 있을 뿐이다. 철암을 방문할 때마다, 사실 그는 (그래서 자신의 것이기도 한) 인간사의 한 상징적 함축을 만나 왔던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철암을 그린 그의 드로잉들은 훌쩍 소박한 풍경을 넘어서, 역사와 문명, 폐허와 희망의 어둡고 밝은 생각의 결들이 수북이 쌓인 퇴적층 같은 것이 되는 것이다. ● 류장복은 사물을 아는 대신 이해한다. 보는 대신, 만지고 끌어안는다. 그는 세계 속으로 들어가고, 세계를 자신의 안으로 불러들인다. 류장복에게 회화와 드로잉은 '볼만한 세계(pitoresque)' 의 재현이 아니다. 류장복에게 세계는 결코 볼거리가 아니며, 볼거리가 되어서도 안 될 숭고한 어떤 것이기 때문이다 : "눈앞의 대상이 나를 본다. 나는 그를 마중하려하지만 목탄을 긋는 순간 그는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 나와 대상과의 거리가 사라진다. 목탄이 짓이겨져 부서진다. 목탄의 알갱이만이 감각할 수 있는 실재로 매순간 다가온다.(...) 최초의 자유가 거기 있다. 자유로운 선택의 자유가 아니라 시작의 자유다."(류장복) ● 작가와 세계 사이에는 우리가 '대화'라고 부르는 것과 거의 유사한 어떤 수평적이고 인격적인 교환이 있다. 이것은 가다머가 데카르트적 '방법'을 버리고 취한 '정신적 분별감(Takt)'으로 사물에 다가서는 것에 보다 해당되는 것이다. 이성이 아니라 직관을 인식기관으로 삼는 것이다. 세계 앞에서 류장복의 위치가 중요한 의미가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류장복은 야외에서 그린다. 기후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추우면 추운 대로, 더우면 더운 대로, 대상 앞에 실제로, 그리고 신체적으로 선다. "류장복은 자신의 화판뿐만 아니라 자신의 몸마저 철암의 대기에 내어 던진다.(...)미술가는 사유나 기억과 같은 삶의 영역들을 등 뒤에 잠시 내버려 둔다."(이희영)

류해윤_2000 백두대호_종이에 혼합채색_3절_2000

류해윤 옹의 그림들은 마치 흡연을 경험하지 않은 폐처럼 맑다. 섬세하고 조밀한 붓 터치는 그 각각의 허파꽈리처럼 투명하다. 류장복이 수십 년 간 몸에 밴 악습으로부터 멀어지려 안간힘을 쓰면서 나름 인고의 시간을 지나왔다는 점을 환기하자. 류해윤 옹은 이런 류장복의 각고의 노력을 단번에 훌쩍 뛰어 넘는다. 작가로서 류 옹은 훨씬 더 세상에 발붙이고 살면서도 훨씬 더 자유롭다. 세상으로부터 도망치거나 자신을 포기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류 옹의 그림들을 보노라면, 대상을 억압하지 않기 위해 주체를 포기해야 한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나가는, 현금의 철학적 풍조와 예술론들이 실로 어처구니없는 자조와 편견에 경사되어 있다는 사실을 대번에 알게 된다. 이런 경박한 당대성에 비하자면, 류 옹의 작품이 지닌 생애의 깊은 긍정성은 실로 격조 높은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해서 더욱 '그림을 배운다는 게 대체 무엇인가'를 물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보다 더 앞서 그림은 '배울 수 있는 것'이기는 한가? ● 결과론적으론 톨스토이가 맞았다. 드문 예외를 제외하면, 오늘날 예술가들은 모두 미술대학출신이지만 정작 이것이 화근이다. 화가와 조각가들은 미술대학에서 결코 배우지 말아야 할 거짓을 몸에 익히는 반면, 자신에 대해서는 더욱 무지하고 무미해진다. 그들의 머리에 (선택의 여지없이) 담겨지는 지식들은 자주 오물(汚物)과 진배없는 것들이기도 하다. 거기서 그들은 자신과 더불어 자라는 대신, 앞선 사람들을 향해 달려나가도록 종용된다. 인식은 관습화되고 심지어 관료화되기조차 하며, 근육들엔 구태와 습성의 인자들이 들러붙는다. 그들은 대상과 만나기도 전에 학습에 걸려 실족(失足)하고 만다. 당대의 미적 강령들에 대한 과도한 학습에 의해 시야는 훼방받고, 시선은 자주 손상되어 있다. 대학 시절 자신의 사고와 감성에 엉겨 붙은 지독한 때를 벗겨내느라 고초를 겪어보지 않은 작가는 없을 것이다. 아마 류장복은 이같은 과정에 대해 누구보다 더 할 말이 있는 작가일 것이다. 인생의 후반부 내내 털어내야 할 먼지를 전반부 내내 뽀얗게 뒤집어쓰는 이런 식의 미술교육이야말로 역설적이고 소모적인 것이 아닐 수 없다. ● 이런 점에서 류 해윤 옹은, 그러니까 류장복의 부친이기도 한 칠순을 넘긴 그는 작가로서 이같은 전철을 밟지 않아도 되었다. 축복이라고까지 할 일이야 아닐지라도, (특히 우리같은 관자에게)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류해윤_2006 꽃그림_종이에 혼합채색_4절_2006

류해윤 옹과 류장복 두 사람 사이의 가장 의미있는 공통점은 바로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에 전적으로 소속되어 있다는 점이다. 기억해내는 것 뿐 아니라, 꿈꾸는 것조차도 애정을 가지고 자신의 현세적 삶을 느끼는 것과 결부되어 있다. 무엇보다 이 흥미로운 부자(父子)가 만들어내는 감동은 이 둘이 마치 손이라도 맞잡은 듯, 세대를 넘는 동반을 통해 삶과 예술을 그토록 둘로 갈라놓아 왔던 바리케이트를 넘어 나가는 모습이다. 그리는 행위의 실존적 차원을 환기해내면서, 그리고 실존의 미학적 자질을 꼬물꼬물 입증해내면서, 그들은 운명적으로, 그리고 아마도 유전적으로 이 인위적이고 관념적인 구획을 신뢰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류 옹의 「백두대호」는 민족의 기백과 나라의 기운에 대한 가장 보편적인 염원의 방식이자 담백한 조치인 것이다. 「북한농장에서 고향을 바라보는 남한 소」같은 작품은 분단된 조국의 복잡다단한 역사를 단번에 함축하고 있다. 류장복의 생각 역시 단지 목탄의 느낌, 종이와의 상호관계, 붓 터치들 같은 것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 그도 인간의 조건과 환경, 문명의 폐해와 상실에 관련된 드라마 전체에 관심이 있다. 그가 철암에 관심을 가졌을 때,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 삶의 조건, 대기, 환경, 개발 등의 것들이 모두 유의미한 요인들이 되는 것이다.

류해윤_2006.이산가족 남매가 20년만에 상봉하는 체육선수 국가대표_종이에 혼합채색_4절_2006

류해윤 옹과 류장복 둘 다 단지 그림에 대한 애정 때문에 그림을 그리는 것은 아니다. 사실 이는 완전한 넌센스에 불과하다. 밥에 대한 애정 때문에 밥을 먹는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밥이 맛있는 건 사실이더라도 말이다) 우리가 말을 하는 것이 과연 언어에 대한 애정 때문인가? 그림을 그리는 것은 그림이 살아있고, 대화하고, 만나고, 서로를 교환하는, 즉 살아있다는 가장 강력한 느낌을 지속적으로 제공해 주는 어떤 힘이 그 안에 내재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삶과 예술, 실존과 미의 이러한 교환, 융합이 이 두 작가의 그림들에 시대를 넘어서는 인간적인 품위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를 '서사적 회화', 또는 '회화의 서사적 자질'이라 말하고 싶어 할 것이다. ● 류해윤과 옹과 류 장복, 이들의 그림들이 동일하게 기대고 있는 미덕은 구분되어 있지 않은 원초성, 조작되어있지 않음, 그리고 세계와 자신을 향한 진솔한 다가섬이다.(모두 미술수업을 통해 습득되긴 어려운 가치들이다) 이 두 출중한 두 화가의 그림이 우리의 마음으로 걸어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 이 예술가는 가느다란 숯필과 붓이라는 가난한 도구로 우리에게 서계와 시대 전체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마술이거나 신비가 아니라면, 이를 달리 어떻게 말할 수 있으랴! ■ 심상용

Vol.20070105a | 류해윤, 류장복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