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ttle Field

황호석 개인展   2007_0106 ▶ 2007_0204

황호석_The Battle Field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5.5×163cm_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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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106_토요일_03:00pm

갤러리 터치아트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법흥리 1652-235번지 예술마을 헤이리 ㈜터치아트 Tel. 031_949_9437 www.gallerytouchart.com

황호석 배틀필드_하나의 화면에 펼쳐낸 이야기책 ● 예술의 표면은 아름답다. 아니, 아름답다라는 형용사 말고도 예쁘다, 놀랍다, 장엄하다, 신비하다, 숭고하다, 기발하다 등 무수한 표현법이 그 뒤를 따른다. 그러나 이 세상에 예술보다 예쁘고 아름답고 숭고하며 기발하되 신기한 것은 무수히 많다. 우리의 인식이 도저히 따를 수 없는 자연의 현상과 작동원리들은 숭고하다 못해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이에 비해 우리가 만들어내고 있는 예술은 그야말로 빈약하며 무르고 불완전한 감상의 대상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신이 창조하는 활동을 여전히 모방하고 있으며 이러한 활동을 귀히 여기는가 하면 열광하기도 한다. ● 그렇다면 예술이 지니는 표면의 아름다움 너머에 무언가 다른 뜻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과학은 세계에 대한 정확한 해석이며 역사는 인간사에 대한 기록일 것이며 문학은 언어를 통한 온갖 감정과 이야기의 집합체이며 철학은 세계에 대한 반성적인 생각의 체계일 것이다. 예술 특히 회화는 붓질(brush strokes)을 통한 세계와의 만남이자 반성인 동시에 아름다움마저도 포섭하려는 복합적인 야심이다. 누군가는 선대의 작품내용을 차용하기도 하며, 누군가는 유명한 인물을 담기도 한다. 또 누군가는 최고조 상태인 르네상스 회화를 연구하면서 기법과 기교의 무덤에 매몰되기도 하며, 누군가는 무의식의 영역에서 화면의 아름다움을 낚으려 하기도 하며, 심지어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일상의 대상을 채집하기도 한다. 그 무엇이 되었던 간에 무엇을 그렸던 간에 이 회화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나름의 회화 역정의 기나긴 길을 떠나며 그 생멸의 잔혹사를 무한히 반복한다.

황호석_The Battle Field-All Growing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86.5×162cm_2006 황호석_The Battle Field-An A-Bomb Explosion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86.5×162cm_2006

황호석의 타이틀은 '배틀 필드(battle field)'이다. "전쟁터"나 "전장"을 가리키는 이 말과 어울리지 않게 그의 작품은 여린 핑크 빛과 연한 녹색, 마일드한 블루나 차분한 노랑의 빛깔로 가녀리게 채색되어있다. 황호석은 세상을 그토록 예쁘고 부드러우며 온화한 색채로 묘사한다. 그러나 유년의 즐거움과 몽환이 어려있는 놀이터의 회전목마와 인형들 사이로, 그러나 탄환이 날아들며 선혈이 낭자한다. 황호석은 한없이 아름다울 수 있는 우리의 물리적 공간이 사실인즉 전쟁터이며 경쟁의 각축장이라고 생각한다. 황호석에 의하면 바로 온화한 외부를 우리의 "내면(inner state)"이 오히려 "사납고 무례하며 무섭게 만들었다." 바따유(Georges Bataille)가 우리의 내면을 가리켜 "온갖 질병이 도사리고 자라나는 불손한 마음의 사육장(breeding ground for that terrible sickness, bad conscience)"이라고 개탄했듯이, 황호석 역시 오히려 화사한 채색과 필치로 온화함을 해치는 근원을 역설적으로 그려낸다.

황호석_The Battle Field-Rocket Div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45×70cm_2006

맹렬히 폭발하는 버섯구름 아래로 온갖 양태의 인간상이 쏟아지며 맹목적으로 회전하는 회전목마의 글귀가 지시하는 바는 사랑(love)과 권세(power), 미움(hatred), 전쟁(war), 그리고 영혼(soul)이다. 실로 기계처럼 돌아가는 우리의 삶의 편린은 보다 달콤하고 좋은 사랑이나 보다 강력하고 높은 권세를 얻기 위해 펼쳐지는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선망을 실현시키기 위해 싸움도 일어나고 미움이라는 감정이 생기며 영혼은 커다란 혼란을 겪는다. 황호석의 회화는 말하자면 이러한 혼란의 순환에 대한 우의적 네러티브이다.

황호석_The Battle Field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0×162cm_2006

우리가 갈망하고 바라며 들이마시고 싶은 세상의 분위기와 공기는 마치 황호석 회화의 채색처럼 차분하고 달콤하며 몽환적인 이미지일 것이다. 사랑을 얻었을 때 몰려오는 낮잠처럼 달콤할 "나른한 즐거움(narcoleptic pleasure)", 권력을 쥐고 누릴 때는 어김없이 찾아올 "즐겁기 그지없는 욕망(pleasurable desire)"은 황호석의 회화의 총체적 채색과도 같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욕망들이 자라며 커질수록 진정한 가치의 모럴은 오히려 점점 작아지다 퇴색되어갈 것이다.

황호석_The Battle Field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2×145cm_2006

회화를 비롯한 예술이 상위층의 소수자만에 의해 향유될 때 그것은 "성역(sanctuary)"이 된다. 이때 표면의 아름다움이나 기교와 기법의 찬란함이 회자되며 세속적 가치의 등가관계에 쉽게 얽매이게 된다. 그러나 예술은 가장 아름다운 형식으로 발언하고 역설하고 싶은 세상에 대한 한 예술가의 이해이자 해석일 때 비로소 의미를 지닌다. 화려하고 유희적이며 즐겁되 맹목적으로 순환하며 실상은 공허한 회전목마는 우리 모두의 삶의 과정을 닮았다. 작가는 "지금 주위를 둘러봐라. 주위에 있는 사물이나 온갖 사람들 중 소중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 이들을 포용하고 소중히 안을 때 세상이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올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렇지 않을 때 세상은 말 그대로 "배틀 필드"가 될 것이다. 결국 황호석의 회화는 이러한 내용의 이야기들이 단 하나의 화면에서 적절하게 배치되고 구성된 한 권의 이야기책인 셈이다. ■ 이진명

Vol.20070106a | 황호석 개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