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silence

최영만 사진展   2007_0110 ▶ 2007_0128

최영만_My silence I-6_흑백인화_25.4×25.4cm_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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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110_수요일_05:00pm

작가와의 만남_2007_0114_일요일_03:00pm

협찬_진선출판사

갤러리 진선 서울 종로구 팔판동 161번지 Tel. 02_723_3340 www.galleryjinsun.com

작가 최영만의 사진전 "My silence"는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사진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그의 미디엄이 사진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진을 이용해 눈에 보이는 현실을 기록한다든지 심오한 자연의 형체나 색채를 재현한다든지 하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작품들은 커다란 사진틀에 여백이 가득 차고 그 사이 사이에 붓으로 그려 넣은 듯한 검은 선이 존재할 뿐이다. 이런 모습은 마치 무상(無常)을 느낄 수 있을 법한 동양화적인 미학(美學)을 생각나게 한다.

최영만_My silence I-38_흑백인화_25.4×25.4cm_2003

그렇다면 그가 직접 동양화를 그리지 않고 사진이라는 미디엄을 통하여 여백과 검은 선들을 자아내는 동양화와 흡사한 기법을 사용하는가 하는 궁금증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그에 관한 해답은 아마도 그의 작업과정에서 찾을 수 있을 듯하다. 작가 최영만은 장시간 동안 카메라의 렌즈를 열어 햇빛이 카메라에 풍만이 차아 오를 즈음에 작품의 순간을 만들어 낸다. 그것은 사물의 물질적 혹은 시각적으로 사실적인 모습을 기록한다기 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제재하고 그와 동시에 물질성을 지워내는 것과 같다. 동시에 작가는 사물이 있던 자리에 다른 원초적 에너지를 화폭에 채워 넣는다. 그렇게 함으로써 동양화에서 하얀 화선지에 붓으로 선을 그려 넣어 여백을 찾는 것과는 반대로 눈에 보이는 것들을 점차적으로 지워내려 여백을 찾아내는 것이다.

최영만_My silence I-11_흑백인화_25.4×25.4cm_2003

최영만 작가는 이렇게 사진 안에 있는 여백에 특별한 관심을 갖는다. 여백을 찾아내려고 하는 그의 노력은 어떤 철학을 근거로 하는 것일까? 최영만의 작품은 우주적 실체와 근본에 대한 자신의 종교적이며 철학적인 견해를 은유적으로 시각화한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 혹은 그가 찾고자 하는 여백의 의미를 우주적 관점에서 어학적 형태에 빗대어 찾아낸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작품은 작가가 우주적 존재의 하나로서 우주관적 질문을 가지고 우주적 실체를 창조해낸 절대자(Supreme Being)와 대화하려는 노력에서 얻어진 새로운 언어적 발견이라고 표현한다. 그에게 있어서 사진에서의 여백은 절대자와 대화할 수 있는 공간 혹은 대화 그 자체인 것이다.

최영만_My silence II-7_흑백인화_33×66.5cm_2004

작가는 사진의 여백을 언어적 형태인 침묵에 비유하여 그것의 의미를 재해석하고 있다. 그의 철학은 언어적 금욕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는 듯하다. 작가는 사람은 사물을 볼 때 인지(認知)적으로 본인이 상상할 수 있는 범위 가운데에서 나름대로 해석을 붙이고 빼어 그들을 이해하려고 한다고 말한다. 이런 "지식"의 한계에 근거한 언어적 체계는 미약함을 드러내고 또한 언어가 기교적으로 사용됨으로써 복잡함만을 만들어내니 이런 인공적인 언어적 체계는 오히려 대화의 본질을 상실한다는 것이 그의 비판이다. 이런 언어체계 속에서 생활하고 있는 작가 스스로를 포함한 우주적 주체들은 그들의 실체적 존재를 일궈낸 절대자와의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절대자가 어떤 의도로 우주적 주체를 만들어 내었는지 자아적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언어의 근본적인 존재로부터 너무 멀어져 버렸기 때문에 다른 개체들과 더 이상의 의사소통을 할 수 없고 그런 깨달음도 노력도 찾아볼 수가 없는 것이다. 모든 사물이 우리의 언어체계에 관련하여 침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또한 그들의 언어가 우리의 언어와 상관이 없는 듯이 보여지는 것 또한 우리의 인지적, 언어적 한계가 가져오는 무지(無知)이지 사물이 의사소통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최영만_My silence II-1_흑백인화_33×66.5cm_2004

작가는 이런 비판적인 관점에서 현재 우리의 언어적 사용을 응시하지만 그것을 비관하지는 않는다. 그는 "현재 우리가 자신 외에 다른 사물과 대화할 수 있는 언어체계를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은, 원래부터 그렇게 디자인이 되었다기 보다는 침묵의 언어로 대화하는 방법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절대자와 다시금 존재의 근본에 대해 대화하기 위해서는 내가 중심이 아닌 다른 우주적 존재들과 모든 시공 사이에 쉼 없이 공존하는 절대자의 언어(universal language)체계 안에서 새롭게 발견되어 져야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물을 볼 때 인지적, 언어적 복잡성을 배제하고 우주적 주체들과 상호간에 의사(意思)를 통하고 이해할 수 있는 언어적 순일(純一)성을 관조적인 자세를 가지고 되찾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작가에게 있어서 그러한 언어의 원초적 근본, 즉 순일성은 바로 침묵이다. 침묵이란 언어적 형태를 통해 절대자와 혹은 다른 우주적 실체들과의 근본적인 대화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다.

최영만_My silence III-1_흑백인화_88.9×88.9cm_2005
최영만_My silence III-2_흑백인화_88.9×88.9cm_2005

작가는 사물의 물질성을 떠나 형이상학적인 실체를 기록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작가는 사진이 우리가 현실을 절대적으로 재현한다고 믿지는 않는다. 그는 "사물이 사진으로 표현되어 지는 것은 타자와의 대화를 위한 것이지, 사물의 모습이 완성되어짐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라고 한다. 다시 말해, 사진은 의사소통을 목적으로 사물의 일부만을 기록할 뿐이라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전형적인 사진의 쓰임이 사물의 물질성을 기록한 것이었다면 그의 작품은 그것을 제재함과 동시에 사진을 통해 그동안 우리가 시각적 기교와 부에 가려 보지 못했던 또 다른 사실을 적어도 작가가 그렇게 믿고 있는 또 다른 사물에 대한 형이상학적 진실을 기록해내고 있는 것이다. 최영만의 작품은 사진이란 미디엄을 통해 침묵의 언어적 의미를 재조명하며 그것을 사진의 여백으로 시각화함으로써 우주적인 주체로서 인간이 평이적으로 시공에 현존하는 다른 사물을 되돌아보고 대화하여 그들을 이해하도록 노력하며 상호간에 우주적 존재로서의 동일성을 찾고 그 안에서 자신의 의미를 찾아보고자하는 그의 철학과 미학의 의지와 희망의 발현인 것이다. ■ 김민정

Vol.20070110a | 최영만 사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