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tual - non - mutual

김수진 회화展   2007_0124 ▶︎ 2007_0206

김수진_BⅡ_캔버스에 유채_162×130cm_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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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124_수요일_05:00pm

난달 2007-2 창작지원기획

스페이스 아침 서울 종로구 화동 138-7번지 Tel. 02_723_1002 mooze.co.kr

차가운 모듈의 반복되어지는 풍경 ● 지상에서 하늘로 이어질 것 같은 형세로 솟아 있는 초고층건물의 빌딩은 현대의 생활의 거처이며 개인만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내는 종합시스템의 거점이기도 한다. 절대적으로 인공미에 의존하여 만들어진 구조물은 위상과 위엄이 가히 하늘을 앞도하고도 남는다. 프랑스의 시인 코페Coppee, Francois는 "신은 촌락을 만들었지만 인간은 도시를 만들었다."라고 말을 했다. 이는 인간의 쾌락과 욕망이 신의 축복으로 만든 인간의 삶의 터전을 사막의 신기루의 도시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빌딩숲의 형국은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하늘아래 신의 도시를 모방한 아둔한 인간도시의 구성원이며 하나의 객체이다. 도시의 주체인 인간은 그들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자연적인 순리 보다 이익의 굴레에 갇혀 항상 자신을 감추고 숨는 불특정한 분모를 만들어 버렸다. 자신의 존재의 특수성이 사라지고 불명의 빌딩이 거대한 한 분모아래 묻혀 버린다는 것이다. ● 빌딩을 구성하고 있는 콘크리트, 알루미늄, 유리, 철 등의 합성 화학재료는 인간이 만들어낸 산물이며, 이것들은 욕망이 커짐에 따라 기술이 진보하여 많은 이로움을 주기도 하고 동시에 해로움을 받기도 하는 양면성을 가진 두 가지 얼굴을 지니고 있다. 이것은 서로 극한으로 대립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는 빌딩이 잠재적인 인간의 선과 악의 양면성과 결부시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의 억압된 욕망의 얼굴은 도시의 빌딩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빌딩은 인간에게 있어 부의 축척을 의미하며 계층상승의 상징물이며 표상으로 서로 끊임없이 높이 짓고 또 짓는다. 이것은 인간의 힘과 능력을 과시하는 무의식의 행동 결과물이라 말할 수 있다. 이는 무의식 속에 불명의 빌딩을 구성하고 있는 서로 다른 군상들이 거대한 욕망의 덩어리의 분출물이며, 이들의 종합적 균형을 이끌어내는 것 또한 자아의 의지이다. 인공적인 균형미로 만들어낸 불명의 빌딩을 김수진 작가는 부분적 시각초점으로 확대시켜 자신의 조형 화면으로 옮기고 있다. 빌딩이 가지고 있는 가장 기초가 되는 순수한 선과 면을 여과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태양의 빛을 받아 화려한 색채로 무장한 빌딩이 아닌 콘크리트의 건물외형의 선과 인간의 눈을 대변하는 창문을 단순한 사각형의 면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김수진_B_캔버스에 유채_162×130cm_2006
김수진_104_캔버스에 유채_162×130cm_2007

"건축술의 발달은 점점 더 복잡하고 거대한 스케일의 형상을 구체화시키는데, 이는 그 자체로서 견고하고 닫힌 구조를 갖는다. 대상을 바라봤을 때 일정하게 반복되는 형상은 시선을 한곳에 머무를 수 없게 하며, 유리는 외부 공간을 반사함으로써 내부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또 하나의 닫혀있는 벽이 된다." 그녀의 작가노트의 일부분인데 현시대의 군상들을 빌딩구조의 폐쇄성을 빌어 대입시키고 있다. 일차적으로 빌딩의 거대한 규모는 화면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공간의 할애에 힘입어 관심의 대상이 되었고 창문의 크고 작음이 시각적 흥미를 불러일으켰으며 두 번째로 창문의 면적인 분할 규칙성에 의한 직선과 직선의 만남이 현대의 상징적인 의미를 증대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가상의 정방형 선은 서로 교차하면서 많은 도시의 소리를 만들어내고 있으며, 그 사이 사이에 위태롭게 걸친 창문의 사각형 점안에서 인간의 부르짖음이 새어 흘러나온다. 이러한 선들의 집합체에서 모여 있는 창문들은 서로 유기적인 선상에 놓여있지만 열려있는 공간이 아닌 밀폐되어진 폐쇄적인 공간구조를 선택하고 있다. ● 창문이 가지는 유리의 특수성은 모든 만물의 형상을 빛에 의해 받아들여 비추어 다시 역으로 반사시키는 변화무쌍의 다양한 색채로 옷을 바꾸어 입는 것이 일방적인 고착관념이지만 그녀의 작업에서는 실재적인 굴레 밖의 이야기보다는 빌딩내부에서 서로 무리지어 관계를 맺고 있는 폐쇄된 인간의 모습이 그려내기 때문에 색의 향연보다는 면의 규칙적인 배열에 초점에 맞추어진 것이다. 현시대의 빌딩은 인간의 거주와 사무 목적의 이외 생활의 모든 면들을 한곳에서 해소할 수 있는 공간으로 삶의 일부가 되고 있다. 이러한 연유로 인간은 빌딩에 주어진 각자의 공간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한다. 각자에게 주어진 협소한 공간은 인간에게는 유일하게 세상을 볼 수 있는 창이 되면서 동시에 세상의 자연과 소통의 만남을 막아버리는 철창이 된다. 군상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신이 그어 놓은 사각 테두리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빌딩내부의 주상복합구조는 자신의 정욕을 불태우기 위한 제반조건이 모두 갖추어져 열망하는 바를 충족시켜 주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이 작은 창문 하나를 얻기 위해 인생의 모든 것을 투자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며 우리의 자화상임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창문은 하나의 유리가 아닌 인격체를 지닌 얼굴과 동격이며 구체적으로 눈에 해당한다. 불명빌딩이라는 거대한 몸집에 불특정 다수의 인간을 집약해 놓은 동시대가 낳은 많은 슬픈 사각 눈을 가진 유기체라고 말할 수 있다.

김수진_표면_캔버스에 유채_100×100cm_2007
김수진_무제_캔버스에 유채_162×96cm_2006

건축가 르코르뷔지에Le Corbusier가 "훌륭한 비례는 편안함을 주고 나쁜 비례는 불편함을 준다."라고 말했으며 자신의 '모듈러'의 법칙에 의거하여 건축함에 있어 중요하게 여겼다. 이는 건물의 정확한 비례의 패턴화의 시각화하는 과정에서 안정적인 요인으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대목을 받쳐주는 부분이 되고 있다. 그녀의 반복적인 창문의 패턴은 빌딩의 구조선에 의해 조립되어지면서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공간에 정적인 움직임을 자아내고 있다. 그 리듬의 움직임이 크지도 작지도 않지만 시각적인 충돌과 환영을 연출하기 위해 적절하게 운용되고 있다. 빌딩 창문의 규칙적이고 반복적인 패턴의 균형은 현시대의 대중적인 획일성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수많은 창문이 한치의 오차 없이 계산되어져 보이는 균일한 비례는 각각의 창문들이 서로 응집의 고리로 연결되어 빌딩이 붕괴를 막고 인간의 욕망의 극한의 한계에 도달하지 못하도록 서로 대응하여 조율하는 관계구조를 맺기 위한 대안의 방법으로 채택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녀에 의해 정해진 패턴의 모듈에 맞춰 고집스럽게 건물의 반복적인 패턴을 구사하고 적극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빌딩에서 보이는 일련의 수많은 창문의 풍경은 절대 권력자에게 앞에서 행해지는 군대의 사열식을 연상시키듯 화면을 가득 채워 위압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이러한 외부적인 상황전개의 이미지는 급박하고 빠르게 전개되는 과정을 현대의 흐름상을 표면적으로 보여주는 면이며, 그들의 흐트러짐이 없는 창문물결은 모듈화 된 군상을 심층적인 면에서 확대 연출하는 것이다. 빌딩 외벽의 입체적인 방형에서 규칙적이고 일관된 변화의 패턴은 시각적으로 안정감을 조장한 것으로 창문 내부의 삶에 대한 심리적 안정감을 복선을 내재하고 있다. 그녀의 빌딩풍경은 내재와 부재의 상반되는 조건을 기제로 삼아 지극히 단순화된 패턴양식의 사회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 과거 자연미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심미적 산수풍경이미지가 현대에 와서 인공미의 디지털이 가미된 빌딩산수풍경이미지로 옮겨졌다. 이들의 공유점은 시대감성을 표면으로 끌어내는 것으로 자신과 공유하는 일련의 사회적 단면을 적시에 효과적으로 이용하는데 그 의의가 있다. 빌딩산수풍경에 보이듯 수많은 일련의 창문들로 무리지어 살아가는 무언의 인간금자탑을 완성시키기에 이르지만 스스로 생성해 낸 공간으로 들어가 하나의 부속물의 신세로 전략해 버린 차가운 모듈의 빌딩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시대의 공유감성을 잡아채는 그녀의 생기로운 발상에 기대어 더욱 새로워진 이색적인 풍경을 기다려 본다. ■ 조동석

Vol.20070124b | 김수진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