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재생 장치들

임도원 개인展   2007_0124 ▶︎ 2007_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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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124_목요일_06:00pm

기획_대안공간 미끌

관람시간 / 12:00pm~07:00pm

대안공간 미끌 서울 마포구 서교동 407-22번지 에이스빌딩 3층 Tel. 02_325_6504 www.miccle.com

얼마전 책상을 뒤지다가 오래전에 구입해 사용한 컴퓨터 부품의 사용설명서와 예전에 만들어둔 프라모델 사용설명서를 발견하게 되었다. 사용설명서 안에는 내가 그토록 갖고 싶었던 대상에 대한 정보와 사용하는 방법이 너무나 효과적으로 표현되어져 있었다. 한 개한개의 부품의 모양과 그것의 용도, 그것이 망가지지 않도록 어떻게 사용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망가졌을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또 그것을 만들어낸 회사의 책임 한도 등에 대한 모든 정보가 있었다. 비록 그 실제 제품이 이미 내 손이 있지는 않지만 나는 그것을 처음 구입하고자 하는 욕구가 생겼을 때 그리고 그것을 처음 구입하여 집에 오는 전차 안에서 그것의 박스를 두근거리며 열어보고 꼼꼼이 사용설명서와 패키징 박스의 광고문구등을 읽을 때의 환희, 그리고 그것을 사용 할 때의 느낌에 대한 모든 것을 회상 할 수 있었다. 그 사용설명서의 방식에 따르면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들을 보다 효과적으로 군더더기 없이 다가 갈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용설명서는 이미 그것의 정보로써 완결성을 지니지만 그것을 읽어야하는 어떤 인물에게는 그것이 읽혀지는 목적에 대한 중요한 기표가 될수 있다는것이 나의 결론이다. 이번 소심한 사람을 위한 사랑고백 장치의 각종 퍼포먼스와 입체작업 그리고 온라인 작업의 한 부분으로 이 "사용설명서"를 이용해보고자 하였다. ■ 임도원

임도원_소심한 사람을 위한 사랑 고백 장치 사용설명서 부분_디지털 프린트_29.7×21cm_2007
임도원_소심한 사람을 위한 사랑 고백 장치 사용설명서 부분_디지털 프린트_29.7×21cm_2007

흐르는 물과 같이 세월은 흐르고, 그는 그녀와 이별하였다. 가슴은 아프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예술가의 본업을 상기해 본다. 예술가에게 주어진 일이란 창조. 창조. 창조가 아닌가. 다행스럽게도 현대미술의 특징은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허무는 데 있다. 그러니 지금부터 그는 이미 지나버린 행복의 순간들에 멈추어 붙은 멍한 눈길을 거두고, 차라리 현대미술과 현대기술의 진보를 따라 그녀를, 그녀와의 즐거웠던 시공간을, 수 많았던 기억들을 예술의 테두리 속에 묶어 최선을 다해 재생하고 복원하여 손에 잡히는 물질로 둔갑시킨 후, 그것을 온전히 소유해버리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서둘러야 한다. 기억이란, 너무 쉽게 왜곡되고 신비로워지기 마련이니까. 그러면 이 모든 일들이 내게서 벌어진 일이 아니라 마치 지난 시즌의 드라마에서나 본 듯한 틀에 박힌 스토리나, 타인의 낯간지러운 연애담처럼 숭숭 구멍 난 기억들로 변질해버릴 지 모르니까 말이다.

임도원_Prototype - 0_혼합매체_150×50×20cm_2006
임도원_Prototype - 0 부분_혼합매체_150×50×20cm_2006

임도원은 첫 번째 개인전 「기억재생장치들」에서 신묘한 기계 장치들과 아직 출시 되지 않은 기계 장치에 대한 사용자 매뉴얼을 공개한다. 마치 정신의 궤도가 정상 범위를 살짝 이탈한 과학자의 그것처럼, 그의 기계 장치들은 너무도 주관적이고 비실용적인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의 프로젝트는 일련의 규칙과 가설을 사용해서 인간의 기억을 하나의 물리적 시스템으로 바라보고 그것을 복원, 재생하기 위한 프로그래밍 장치를 개발하는 것인데, 가만 보면 그의 기계 장치들은 그다지 정교하지도, 그다지 세련된 기술이나 디자인을 갖고 있지도 않다. 기억을 재생하고 물성화하여 소유하고자 만들어진 이 기계 장치는 오히려 그의 기억을 더욱 모호하고 혼란스러운 것으로 만들어버린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가 복원해놓은 호모 엑스 마키나(기계 장치 인간)를 보고, 그 누가 그녀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다행히도 작가 임도원은 본 프로젝트의 모든 작품 각각의 기본 제목에 prototype(시제품)이라는 어두를 붙인다. 프로토타입이란, 새로운 시스템이나 소프트웨어를 최종적으로 배포하기에 앞서 전체적인 기능을 간략하게 요약한 잠정판을 뜻하는 것으로 이번 전시에서 보여질 그의 모든 기계 장치들은, 관람객과의 소통과 시연을 통해 재고되고 보완될 시제품의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이다. 그럼 작가가 선보일 몇몇 작품을 따라가보자. 먼저 작가는 prototype 0 intro 라는 작품을 통해 실제 첼로의 크기와 색감, 형태를 재현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디지털 음악재생 기기가 내장되어 있어 첼로의 몸통이 스피커의 유닛 기능을 담당하도록 구현하였다. 이 음악재생 기기에서는 작가의 육성(파핼밸의 캐논 변주곡 허밍)이 들려지는데, 실제로 첼로의 음역은 악기 중 인간의 육성에 가장 흡사하다고 알려져 있어 더욱 미묘한 느낌을 갖게 한다. 또한 「기억재생장치 prototype 1」에서 작가는 인간의 실존을 단백질과 물, 석회질 등이 섞여있는 혼합물로 보고, 그 혼합물의 고유한 형상을 인클로져(스피커의 울림통)로 정의한다. 동물의 뼈와 고기를 성형하여 인체 모양으로 제작한 이 물체들은 36.5도의 체온을 발생하며, 이들의 두(頭)부에 스피커의 유닛을 장치해 작가가 헤어진 이와의 기억이 담긴 공간들을 여행하며 채취한 다양한 소리들을 재생한다. 이 외에도 헤어진 이와의 추억의 장소를 찾아 다니며 수집한 기억과 심상, 그 시절의 공기, 소리 등을 새겨 넣어 푸르게 부식시킨 동으로 제작하여, 개인의 역사를 기념비화 하는 「그녀와의 기억재생장치」나, 지난 시절에는 존재하지 않던 디지털카메라를 가지고 과거의 장소로 여행을 떠나 홀로 남은 자신의 존재를 스냅 사진으로 담고 다시 그 흔적을 삭제하는 방식으로 과거를 복원하는 「포트폴리오」사진첩 등 작가가 마련한 이 작품들 속에서 우리는 작가의 주관적인 규칙과 가설이 어떻게든 재생시키고자 하는 과거의 여러 순간들과 만나게 될 것이다. 또한 작가는 오프라인 전시와 함께 온라인 사이트 project Do[duː]를 구동하며 사실상 개인의 홈페이지이지만 마치 한 커뮤니티의 홈페이지인 것처럼 사이트를 구성하여, 방문자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구성하고 있는 여러 가지 모습을 분열시킨 채 가상과 진상의 구분에 혼란을 느끼도록 장치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작가가 그러하듯 임도원의 첫 번째 개인전 역시 개인의 역사를 회고하는 흔한 테마에서 출발했지만, 붙들 수 없는 인간의 기억을 손에 잡히는 물질로 재생, 복원시키고자 하는 이 새로운 형식의 프로토타입 실험장치들이 어떠한 진화를 거듭하게 될 것인지 큰 기대를 갖게 한다. ■ 유희원

Vol.20070124c | 임도원 개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