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외·여가

공성훈 개인展   2007_0206 ▶︎ 2007_0216

공성훈_낚시_캔버스에 유채_130.3×193.9cm_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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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206_화요일_06:00pm

아트포럼 뉴게이트 서울 종로구 신문로2가 1-38번지 내자빌딩 1층 Tel. 02_737_9011 www.forumnewgate.co.kr

공성훈의 "벽제의 밤" ● 우리가 보통 예상하는 그림이란 무엇일까. 무엇을, 어떻게 그렸어도 화면 자체가 색, 선, 구도가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서, 곧, '아름다워'서 보는 이에게 즐거움이나 마음의 위안을 주는 그림일 것이다. 어려운 그림이란 어떤 것일까. 추상이건 구상이건, 무엇을 그렸는지 알 수가 없거나 무엇을 그렸는지는 알겠는데 무슨 의미인지 쉽게 다가오지 않는 그림을 말할 것이다. ● 그러면 흥미를 끄는 그림이란 어떤 것일까. 보고 지나쳤다가도 웬일인지 다시 돌아와한번 더 보게 하는 그림, 무엇인지 내용과 방법이 궁금한 그림일 것이다. 이 흥미는 작가와 관객을 이어주는 소중한 연결고리이다. 어려운 현대미술에서 그 작은 연결고리를 찾아내는 재미를 제공하지 못하면 소통에 실패한 작품이다.

공성훈_기념비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0.6×90.9cm_2007
공성훈_모텔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2×145.5cm_2007
공성훈_모텔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3×193.9cm_2007
공성훈_운동장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3×193.9cm_2007

작가 공성훈의 장르는 회화부터 영상설치까지 넘나든다. 그의 작품은 아름답다거나 위안을 준다거나 하는 범주에서 의도적으로 멀리 비껴나 있다. 적어도 사서 거실 벽에 걸어놓고 두고두고 즐기는 '예쁜' 그림은 아니다. 작가의 제작 목적은 완상보다는 발언에 있다. 그의 작품이 보여주는 이미지는 어떤 것인가. 무엇을 그렸는지, 무엇이 벽에 비쳐져 있는지는 인지 가능하다. 꿈틀대거나 버둥거리는 벌레 또는 인체, 한밤중 개집 앞에 매어있는 개, 인적이 사라진 화장터의 공원같이 가꾼 보도와 나무, 전쟁기념비, 팔각정 등 주위에서 접할 수 있는 일상의 한 부분이지만 너무나도 진부해서 평소 관심을 끌지 못하던 광경이다. 무엇을 그렸는지는 알 수 있으나 대체 무슨 뜻인지는 한 참 들여다보아야 한다. 관객이 그림 속으로 들어갈 작은 연결고리를 숨은그림찾기처럼 애써 감추고 있는, 관객의 인내와 적극적인 접근을 요하는 작품들이다. 공성훈은 우리가 익히 알아온 그림과는 다른 방식으로 작품을 제작한다. 캔버스 위에 색다른 물체를 올려놓는다거나 이상한 부호를 그려놓는 식으로 낯설게 만들지 않는다. 그의 화면은 사실적이다. 그의 작품은 아름답다고는 할 수 없어도 묘한 매력으로 흥미를 끈다. 줄곧 궁금하여 돌아보게 하는 색다른 종류의 그림이다. ● 사실적인 묘사로 이루어져 있는 공성훈의 그림 안에 우리가 알아보지 못할 요소는 없다. 그가 수년째 살고 있는 벽제의 이곳저곳을 밤의 풍경으로 그린다. 대도시 서울의 주변에서 화장장, 비닐하우스, 가구공장 등 보조기능을 하는 지역인 벽제의 밤은 이전에 이 땅에 와서 소중한 생명을 바쳐 전쟁에 참여한 필리핀 사람들의 후예가 가구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현실이 중첩되는 필리핀참전용사기념비가 지키는 밤이다. 핏빛과 짙은 푸른빛의 으스스한 조명이 비치는, 인적이 끊긴 텅 빈 공간들이다. 그의 그림들이 묘사하는 장면은 곧 언어로 치환할 수 있는 설정이다. "수십 대의 환등기에 의해 벽에 비치는 이미지는 꼬리부분을 압정으로 꽂아 고정시켜 움직이지 못하고 몸 부분이 아래위로 움직이며 버둥거리는 벌레이다." "푸른 조명이 비치는 야경. 개집 앞에 개 한 마리가 매어있다. 앞에는 눈 위에 무수히 난 자동차 바퀴자국이 나 있다. 개는 그냥 무심히 지나간 차들의 궤적 앞에 서 있다." "텅 빈 공원과 몇 그루 잘 가꾸어진 나무가 서 있는 곳은 벽제 화장장 입구이다. 낮에 죽음의 뒤처리로 붐비던 장소가 사람들이 모두 돌아가고 텅 비어있는 한밤중, 붉은 조명 덕에 으스스한 분위기이다."

공성훈_자유로_캔버스에 유채_65.1×90.9cm_2007
공성훈_필리핀군참전기념비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81.8×227.3cm_2007
공성훈_호수공원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3×193.9cm_2007
공성훈_호수공원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0×120cm_2007

공성훈의 작품은 어떤 상황만을 제시하고 있다. 관객은 그 상황을 조합하여 각각의 뇌 속에서 어떤 이야기와 사유를 유도한다. 작품이 영상설치이건 회화이건 그들로 작가가 무엇인가 절실히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다. 관객이 마음속에 그려가는 이야기는 곧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이다. 공성훈은 자신의 예술을 사회를 향한 발언의 도구라고 말한다. 공성훈이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그다지 어렵지는 않으나 예상치 못한 이미지이기에 생경한 느낌을 준다. ● 공성훈이 벽에 영상으로 그려낸 벌레 이미지를 보고 카프카의 소설『변신(變身)』과, '벌레만도 못한' 존재란 말을, 개집 앞에 매인 개에게서 '개만도 못한' 존재, 취급이란 말들을 연상한다. 붉은 조명, 푸른 조명으로 비치는 눈이 쌓인 길에 차바퀴가 휘돌아 지나간 자국을 무력하게 지켜보는 개에게서 그 개가 곧 작가자신 또는 이 시대의 대부분의 사람이라고 투영될 수도 있다. 붉고 푸른 조명은 그 색이 상징하는 이데올로기로 받아들여지고 시대를 풍미하는 이데올로기의 흐름에서 비켜서서 참여하지 못하고 무력하게 지켜만 보는 한 무리의 지식인이라고 그 개를 동일시할 수 있을까. 인간이 인간다운 대접을 받고 인간다운 삶을 영위한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그것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자신의 뜻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삶을 뜻하지나 아닐까. 삶의 목적, 존재의 자각, 현실 참여, 성취....... ● 여러 가지 매체를 자유롭게 다루어온 작가 공성훈의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는 이러한 인간의 실존, 인간의 조건이며 그 방법은 은유이다. 그림에서 조금씩 제시된 단서를 연결해 그림을 '읽어'나가는 재미야말로 이 시대, 어려운 그림을 해독해 나가는 방법일 것이다. 알고 보면 공성훈의 그림은 낯설기는 하지만 아주 어려운 그림은 아닐지도 모른다. ■ 염혜정

Vol.20070206c | 공성훈 개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