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에 대한 재해석과 일품화의 현대적 발현

이세정 한국화展   2007_0209 ▶︎ 2007_0225

이세정_Untitled_천에 수묵_각 320×110cm_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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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209_금요일_06:00pm

스페이스 함 서울 서초구 서초동 1537-2번지 렉서스빌딩 3층 Tel. 02_3475_9126 www.lexusprime.com

전통에 대한 재해석과 일품화의 현대적 발현 ● 선에 의한 표현이라는 동양회화의 조형 근간은 서예로부터 차용한 자양분과 경험을 바탕으로 비로소 그 틀을 구축하게 된다. 이른바 서화동원(書畵同源)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보다 엄밀히 말한다면 서화는 같은 근원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 회화가 서예의 조형 경험을 차용하여 스스로의 표현영역과 심미적 내용들을 확장하고 심화하였다고 말하는 것이 보다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서예의 본질적 내용은 단순한 문자의 전달에 있지 않음은 자명한 것이다. 서예의 내용은 모필에 의해 표현되어진 모사와는 일정한 거리가 있는 것으로 그 자체가 처음부터 추상적 의미를 내재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지필묵이라는 도구적 수단과 선에 의한 조형이라는 조형 근간은 비구상성, 추상성을 전제로 한 조형 체계인 셈이다.

이세정_Untitled_천에 수묵담채_110×130cm_2007
이세정_Untitled_천에 수묵_110×130cm_2007

작가 이세정의 작업은 지필묵을 조형의 근간으로 하고 있다. 원칙적인 의미에서 보자면 이는 전통적인 조형 방식을 원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표현의 양태는 자못 파격적이고 분방한 것으로, 이는 활달한 운필과 과감한 색채의 운용으로 나타나고 있다. 함축과 은유라는 전통적인 심미관과는 뚜렷이 구분되는 이러한 작업 방식은 상대적으로 표현적인 요소가 강한 것이다. 결국 작가의 작업은 지필묵이라는 전통적인 매재를 바탕으로 서구적 조형 감각을 수용하는 절충적 양식이라 함이 옳을 것이다. 이는 비단 작가 개인의 작업에 국한되어 나타나는 특징적인 현상이 아니라 이른바 현대 한국화로 명명되는 일련의 작업들에서 종종 발견되는 내용이다. 그중 작가의 경우 상대적으로 지필묵이라는 매재에 대한 수용이 적극적일 뿐 아니라 그 심미적 내용의 발현에 보다 관심과 무게를 두는 경우라 할 것이다. 그럼으로 작가의 작업은 비록 새롭지만 낯설지 않으며, 파격적이고 분방하지만 일정한 틀과 꼴로 수렴되어 수용될 수 있는 것이다. 작가의 작업은 일필(逸筆)로 귀착된다고 할 것이다. 일필은 특정한 규범이나 정형에 제약됨이 없는 파격을 전제로 하며, 그 묘미는 순간적으로 이루어지는 돈오(頓悟)의 세계이다.

이세정_Untitled_천에 수묵담채_73×61cm_2007

지필묵이 어우러져 이루어내는 이러한 조형 세계는 형상 너머에 자리하는 작가의 정신세계의 표출을 전제로 한다. 그럼에도 사물의 닮고 닮지 않음은 물론이거니와 교조적인 품평의 기준마저도 초극한다. 화론에서 강조되는 불구형사(不求形似)의 이론이나 닮음과 닮지 않음의 사이(似與不似之間)등은 모두 이러한 표현에 대한 요구이자 조건이라 할 것이다. 작가는 이를 강한 운필의 거침없는 필세와 감각적인 감필의 묘를 통하여 반영하고 있다. 선에 의한 조형이라는 동양화의 기본적인 조형 방식에서의 선은 원필중봉(圓筆中鋒)의 유려하고 부드러운 선조를 기본으로 한다. 이에 반하여 작가의 선은 오히려 거칠고 억세며 날카롭다. 반드시 모필, 혹은 중봉만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여타 이질적인 도구적 수단의 차용에도 주저함이 없으며 굳이 중봉만을 고수하지도 않는다. 오로지 거침없이 발산되는 기운과 기세를 온전히 수용하기 위한 운율과 호흡이 있을 뿐이다. 물리적으로 강하고 억센 필치는 당연히 일정한 에너지를 동반한 기세로 나타나게 마련이다. 이는 순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일종의 자연기술과도 같은 것이다. 이를 여하히 억제하고 효과적으로 경영하는가에 따라 작가의 개성이 발현되고 조형의 내용이 결정되는 것이다. 분방하되 어지럽지 않으며, 힘차되 지나치지 않음은 이러한 경우 요구되는 덕목이다. 이는 펼칠 때 이미 거두어들일 것을 염두에 두는 함축과 절제의 심미이다. 작가는 이를 일정한 단계에 이르면 스스로 붓을 거두어들이는 감필의 묘를 통하여 해결하고 있으며, 이는 과감한 여백의 형태로 화면에 반영되어 나타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작가의 운필과 조형이 굳이 전통적인 것을 답습하고 있지 않지만 획과 획 사이, 또는 수묵과 여백의 대비 속에서 발산하고 있는 독특한 기운이다. 이는 일종의 문기(文氣)와도 같은 것으로, 격조와 품격의 형이상학적 감각이다. 비록 문기를 추구하거나 존숭하는 세태가 아닐지라도 작가의 화면에서 드러나는 이러한 기운은 작가만의 독특한 개성이자 가치라는 점에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작가의 작업이 지필묵이라는 전통적 방식을 원용하면서 현대적 감각을 가미한 일필의 심미를 추구하는 것이라 한다면, 이미 형사(形似)의 문제점에서 벗어난 것이다. 형상의 번거로움에서 벗어남으로써 작가의 조형 표현은 더욱 넓은 표현의 여지를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이세정_Untitled_천에 수묵담채_61×73cm_2007

근작에 들어 나타나는 눈에 띄는 변화 중 과감한 색채의 도입은 바로 이러한 공간의 확보와 새로운 해석이 반영된 것이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전의 작업들이 수묵과 운필이라는 원칙적인 내용들에 대하여 상대적으로 충실한 것이었다 한다면, 근작들은 작가 특유의 조형감각을 바탕으로 한 보다 개별적인 작업 양태를 구체적으로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거침없이 구획되어진 색 면들과 특유의 분방한 필치는 강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 형상들은 분명 자연물로부터 차용되어진 느낌이 여실하나 굳이 그 원래 형상을 캐물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색은 정교하게 다듬어지거나 장식적인 꾸밈의 형태가 아니라 마치 수묵의 그것처럼 작위적인 표현이 절제된 자연스러운 것이다. 수묵이 색채로 대체됨으로써 오히려 단순화된 화면 구조와 강렬한 대비는 작가가 추구하고 지향하는 바를 더욱 오롯이 드러내고 있다 할 것이다. 그것은 바로 개성의 발현이자 현대성의 추구라 할 것이다.

이세정_Untitled_천에 수묵담채_110×390cm_2007
이세정_Untitled_천에 수묵_각 320×110cm_2007

한국화는 일정기간 현대화를 위한 무수한 실험과 모색을 진행시켜 왔다. 이러한 성과와 내용들은 분명 한국화의 표현 영역을 확대하여 그 외연을 넓혀 주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지나치게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양상으로 경도되어 급기야 한국화의 정체성까지도 회의케 하는 지경에 이르게 하였다. 작가 이세정의 작업은 이러한 급진적인 시류에 비추어 본다면 상대적으로 보수적이고 소극적인 것으로 치부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작업에 나타나는 지필묵이라는 기본적인 조형 방식에 대한 이해와 소화 능력, 그리고 작업을 통해 발현되는 문기라는 형이상학적 감각과 일필의 심미, 나아가 감각적인 색채 운용을 통해 모색되고 있는 현대적 감성의 표출등은 분명 눈여겨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예술이라는 것이 시대를 반영하며 변하게 마련이고, 이러한 변화를 통하여 그 내용을 풍부히 할 뿐 아니라 새로운 생명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변화는 당연하 것일 뿐 아니라 일종의 조건인 셈이다. 그러나 변화하는 가운데 변의 가치를 확인하고 이를 확보하는 것은 더욱 중요한 것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사실 새롭다는 것은 극히 피상적인 것이다. 보다 정확히 말한다면 새로운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변화하는 시대 상황에 따라 새로운 가치관에 의한 새로운 해석과 새로운 발견이 있을 뿐이다. 이러한 점에서 본다면 작가가 추구하고 있는 안정적이고 점진적인 변화와 변혁의 모색은 변화의 말단을 추구하기 보다는 불변의 근본을 우선 확보하고 새로운 변화의 흐름을 수용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는 정체성의 회의는 물론 그 존재의 타당성마저 회의되고 있는 오늘의 세태에 일정한 설득력 있는 메시지를 전해주는 것이 아닐 수 없다. ■ 스페이스 함

Vol.20070209d | 이세정 한국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