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한 조합 IMPOTENT COLLAGE

이보람 회화展   2007_0508 ▶︎ 2007_0519

이보람_자화상-보도사진 그리기_캔버스에 유채_50×100cm_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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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508_화요일_06:00pm

예술공간 헛_HUT 서울 마포구 서교동 368-13번지 Tel. 02_6401_3613 club.cyworld.com/hut368

무기력한 조합 IMPOTENT COLLAGE ● 절단된, 잘려 나간, 가혹한, 가슴을 저리게 하는, 검게 탄, 치유할 수 없는, 앗아가 버린, 처참한, 죽어 버린, 애절하게, 무참히 잘린, 절규하는, 끔찍한, 기약할 수 없는, 고통스러워하는, 겁에 질려, 떨고 있는, 불타는.......-전쟁보도사진의 캡션들에서 사용되는 단어들-

이보람_무기력한 조합_캔버스에 유채_80×130.3cm_2006
이보람_무기력한 조합_캔버스에 유채, 실리콘_130.3×80cm_2006

나는 전쟁보도사진을 소재로 작업을 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들은 희생자를 포착하고 있는 사진들이다. 거기에는 폭격으로 팔이나 다리를 잃은 사람들, 온몸에 화상을 입은 사람들, 부모를 잃은 어린이들, 폐허가 된 집과 도시가 있다. 사진 속에서 희생자들은 특별히 무력해보이고, 특별히 약해보이며 그렇기 때문에 슬프다. ● 일반적으로 전쟁을 다루는 사진들, 특히 전쟁의 희생자들을 다루는 사진들에 대한 신뢰와 의존도는 매우 높다. 타인의 고통을 다루는 그토록 생생한 이미지를 보는 이들은 아무런 의심도 없이 받아들이게 된다. 표피적으로 그것은 의심이 없는 의미지이며 윤리적으로도 의심을 허락하지 않는다. 처참한 현실을 담고 있는 보도 사진에 대한 의심은 사진 속 희생자들에 대한 의심과 동일시된다. 그래서 전쟁보도사진을 바라보는 데에는 어떠한 반성도 요구되지 않는다. 전쟁이라는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사건에 대한 보다 현실적이며 구체적인 관심이나 전쟁보도사진에 대한 이해, 다시 말해서 전쟁보도사진의 처참한 이미지가 어떤 목적으로 어떻게 사용되는지, 왜 바로 그 이미지가 신문에 실려서 거실까지 오게 되는지에 대한 이성적인 접근은 무시되며, 오로지 감정적이고 도덕적인 관점에 의한 반응만이 남게 된다. 신문이나 잡지, 혹은 인터넷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전쟁보도사진의 자극적인 이미지들은 타인의 고통을 극대화하여 보여줌으로써 전쟁이라는 현실을 단지 고통과 슬픔이라는 감정으로 소비하게끔 한다. 카메라 렌즈에 포착된 바로 그 장면은 구체적인 현실에서 떨어져 나와 그저 부유하는 이미지가 된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슬픔'이나 '희생', '고통'과 같은 단어들을 생각나게 할 뿐이다. 결국 사진에 실린 이미지들이 전달하는 것은 현실에 관한 것이 아니라 고통의 은유이며 충격에 관한 것으로 전락된다. ● 그 때문에 신문이나 뉴스에서 볼 수 있는 전쟁보도사진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어찌할 수 없는 무력감에 빠지게 한다. 그리고 무력감은 일종의 죄의식으로 연결된다. 이러한 죄의식은 앞서 말했듯이 타인의 고통을 참혹한 이미지 상품으로서 전달하는 매스 미디어의 전략과도 관계가 있다. 타인의 고통이 한 순간에 생생한 이미지로서 포착되고, 비슷한 이미지들이 마치 홍수처럼 쏟아지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독자들은 스스로 판단하거나 비판하는 능력을 상실한 채, 그저 수동적인 구경꾼이 되어 버린다. 이미지들이 보여주는 것은 고통스럽지만 동시에 무력감과 가벼운 죄의식만을 남긴 채 빨리 잊혀져버린다. 보이는 것에만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는, 수동적인 개인이 지니는 죄의식은 무언가를 해결하기 위한 현실적인 의지로 연결되지 못한다. 수동적인 객체로 전락한 개개인들은 그 뿌리를 알 수 없는 죄의식을 해소하고자 하지만 결국에는 자기 위안적 행동만이 남을 뿐이다.

이보람_그것은 정말로 끔찍하고 처참한 광경이었다_캔버스에 유채_97×162.2cm_2007

전쟁보도사진을 바라보는 나 또한 바로 이러한 경계 위에 있다. 나에게 죄의식은 작업의 근원적인 동기이자 모태라고 할 수 있다. 전쟁이라는 구체적인 현실, 그리고 전쟁보도사진이라는 또 하나의 현실과 관련되어 나 자신이 느끼게 되는 죄의식은 개인적인 이유로 형성된다기보다는 사회적인 문제점들과 관련하여 형성된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개인적인 트라우마라기보다는 보다 보편적으로 사회 구성원들이 느끼게 되는 죄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앞서 말했듯이 전쟁이 보도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종류의 수정과 삭제와 편집들이 어떠한 사건의 진정한 이면이나 근본적인 원인을 들여다보는 것을 방해하고, 이 때문에 오직 표면으로 드러나는 것에만 반응하게 되는 독자들은 수동적으로 그에 대한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책임감을 강요받게 된다. 이런 식으로 형성된 죄의식은 사람들로 하여금, 다만 천진하게 "전쟁은 나쁜 것이다"라고만 외치게끔 한다. 나의 작업의 모태로서의 죄의식 또한 바로 이러한 성격의 죄의식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보람_전쟁보도사진을 위한 수집함-분홍색 팔다리_혼합재료_30×30×30cm_2006
이보람_전쟁보도사진을 위한 수집함-사랑을 담아_혼합재료_30×30×30cm_2007

작업의 진행에서 이러한 죄의식과 무력감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최근의 작업들에서 나의 무기력함은 밝은 핑크의 색면과 파스텔톤의 가볍고 평면적인 이미지들로서 표현된다. 무게감 없이 가볍고 평평하게, 밝은 파스텔톤으로 칠해진 이미지들은 충격과 고통이 이미 지나가버린 후에 남겨진 무력감과 가벼운 죄의식을 나타낸다. 일상에 해를 끼칠 수 없는, 평범한 고통의 은유로 변질되어버린 이러한 이미지들은 나의 회화작업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전체적인 작품들의 색조는 가벼운 파스텔톤이며 특히 분홍색을 주로 사용한다. 일반적으로 분홍색은 '사랑'을 상징하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역설적으로 가장 상업적인 색이기도 하다. 감정이 담겨있는 듯 따뜻해 보이지만 사실은 텅 비어있는 색인 분홍색은 현대인이 가지는 가벼운 죄의식과도 닮아있다. ■ 이보람

Vol.20070510c | 이보람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