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세에서 샹그릴라로의 정신적인 여행

이강소 회화展   2007_0509 ▶︎ 2007_0717

이강소_An Island-06222_캔버스에 유채_162×130.3cm_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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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518_금요일_05:00pm

샘터화랑 서울 강남구 청담동 80-21번지 Tel. 02_514_5122

이강소의 최근 회화 작품들: 현세에서 샹그릴라로의 정신적인 여행 ● 「섬에서」,「강에서」,「샹그릴라」,「무제 시리즈」와 같은 이강소의 최근 회화 작품은 보는 이들을 당황케 한다. 이 그림들이 도대체 무엇을 그린 것인지, 어떻게 이해해야 되는 것인지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이강소의 그림은 무궁무진한 해석을 불러 일으킨다. 첫눈에 얼핏 보면, 시선이 끌리는 추상표현주의 그림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실, 외국 평론가들이 이강소의 서체적 그림을 마크 토비나 사이 톰블리의 전형적인 작품과 이미 비교한 적이 있다. 예를 들면, 비비언 레이노어, 동양과 서양의 합성, 뉴욕타임즈, 1993/5/16. 하지만, 보다 추상적인 토비 (예, 뉴욕 모마 소장품인 1953년작,「8월의 언저리에서」)나, 톰블리의 (예, 모마 소장품인 1962년작「레다와 백조」) 작품들과 달리, 이강소의 그림은, 자세히 다시 들여다 보면, 오리, 배, 물, 구름, 비, 폭풍, 바위, 산 그리고 집이라고 알아볼 수 있는 이미지들을 연상 시킨다. ● 이강소의 능숙한 서예적 붓질, 단색조의 미묘한 변화의 활용과 세련된 여백의 운용 등을 염두에 둘 때, 어떤 이는 아하, 이 작가가 유화 또는 아크릴 물감을 엷게 써서 전통 수목화를 캔버스에 그려 냈구나 하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이강소의 서체적 그림 속에 자주 등장하는 오리 또한 한국 전통 회화의 주제이기도 하다. 조선 화가 홍세섭의「유압도」(19세기후반 경, 국립중앙박물관 소장)가 여기, 예로 떠오른다. 그렇다면, 이작가는 자신의 동세대와 전세대의 한국 작가들이 막중한 과제의 하나라고 여겨온, 동/서양의 합성을 통한, 급박한 근대화와 경제 성장 추구 속에 소홀히 해온 자국의 오랜 예술 전통의 재활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짐작할 수 있을까? 아니면, 이강소와 같이 서양인이 아닌, 아시아 작가들이 출생지의 토착민 전통의 어떤 것을 간직하고 있으리라고 예상하고, 습관적으로 찾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러한 예상이 빗나갈 때, 서양 작가가 아닌 작가 작품들은 뭔가 진짜 같지 않고, 너무 서구적이거나, 서양 작가들이 이미 몇 년 전에 한 것의 모방처럼 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 같다. ● 이강소가 전반적으로 단색조의 색채를 사용하는 것을 한국 전통 도자기에서 보여지는 전형적인 한국적 예술 감수성과 연관 짓는 한국과 서양 비평가들이 더러 있다. 예를 들면, 윌리엄 지머의 장 미셜 바스키아 - 조나단 보롭스키 - 리차드 보스먼 이강소 테리 윈터스 전시 (1992년 뉴욕 해나-캔트 갤러리) 도록 글. 그런가 하면, 이강소 그림의 은은한 색상을 70년대 한국 화단을 주도한 단색주의 회화의 특징과 관련 있다고 보는 평론가들도 있다. 예를 들면, 엘리노어 하트니, 리뷰: 이강소의 해나-캔트 전시, 아트 뉴스, 1992/10, p. 141. 한국, 일본 그리고 다른 여러 외국 평론가들이 박서보를 비롯한 주요 단색주의 작가들의 절제된 색상의 독특한 활용을 묵상적인 도교 또는 불교적 전통의 현대 미술적 표현이라는 견해를 펼쳐 왔다. 이강소에 의하면, 단색주의 작가들과의 친분을 통해 자연적으로 한국 모노크롬 운동에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다고 한다. 이 저자와의 전화 인터뷰, 2007/3/2. 그러나, 단색주의 대표 작가들과 달리, 이강소는 평론가들이 그의 작품에서 한국적 특징이라고 말하는 것을 그의 오리지널티의 주 구성요소로 삼으려고 하지 않는다. 이 저자와의 전화 인터뷰, /2007/3/6.

이강소_An Island-0624_캔버스에 유채_162×130.3cm_2006

사실, 작가로서 초창기인 70년대에는, 또래의 젊은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현지 미술에 대한 관심보다, 이강소는 한국 바깥, 특히 미국과 유럽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후 국제 미술 발전 상황을 더 알고 싶어 했다 (지금과 달리 그 당시에는 한국 작가들이 해외 여행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는 것을 염두해 둘 필요가 있다). 이강소의 70년대 실험 작품의 유명한 예로 1975년 제9회 파리 비엔날레에 출품한「무제 75031」를 들 수 있다. 묶인 산 장닭이 흰 석고 가루를 뿌려놓은 원을 돌아다니게 고안된 설치를 포함한 개념 미술적인 작품이었다. 다른 70년대 작품들은 로버트 라운센버그의 네오 다다적 작품, 칼 안드레 또는 로버트 모리스의 미니멀 조각, 그리고 60년대 말과 70년대 초 사이 일본에서 일어난 모노화 (문자 그대로, 물파)의 작업들과 유사성을 보이는 것들 이었다. ● 전통적인 미술 형식인 회화에 중점을 두고 있는 이강소의 최근 작업은 어떤 평론가들이 볼 때, 70년대의 실험 정신으로부터의 후퇴라고 보여질 수도 있을 것 이다. 그는 원래 60년대에 서울대에서 회화를 전공 했다. 왜 이강소가 회화로 복귀 했을까? 그 이유를 먼저 70년대 한국적 상황이라는 맥락에서 찾아 보아야 될 것 같다. 패기에 찬 젊은 작가들이 70년대에 그룹으로 또는 단독으로 개념 미술, 퍼포먼스, 설치, 환경 예술과 프로세스 아트 등을 실험 했다. 그러나 이들 실험 미술에 대해 당시 신문은 웃기는, 미친, 또는 기이한 짓 등으로 보도하고 있어, 아주 낙담 시키는 것 이었다. 예를 들면, 웃기는 새 의미 전위미술 『70년 AG전』, 서울신문, 1970/5/5; 극을 걷는 전위미술, 서울의 해프닝 쑈, 중앙일보, 1968/6/1. 아주 극소수를 제외한, 당시 평론가들 조차도 이들 젊은 작가들이 무엇을 시도하려고 하는 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겨울 공화국이라고 부르는 시절이었던 당시 시민들의 사상, 도덕, 헤어 스타일과 패션까지 감시, 통제하던 억압적인 정부는 회화와 조각같이 통상 개념의 미술이 아닌, 예술 활동이 혹시 좌파적인 사회적, 정치적 비판을 하지 않나 의심스럽게 지켜 보았다. 이러한 암울한 정치적,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 물론 상업적으로도 - 그나마 순수 미술로 가장 높게 평가하고 있던 회화로 이강소는 복귀하지 않을 수 없지 않았을까?

이강소_An Island-060027_캔버스에 유채_162×130.3cm_2006

이강소는 자신의 회화 재기가 1980년대에 넓은 의미의 전통적인 회화가 국제적으로 재등장한 것과 일치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화랑가와 미술 수집가들은 이 회화의 재등장을 반가워 했지만, 평론가들 중에서는 부정적으로 70년대의 개념 미술과 미니멀 아트에 대한 보수적 반동으로 보기도 했다. 이강소는 널리 보도된 신표현주의 회화의 화려한 상업적 성공을 8년 중반에 미국에서 직접 확인할 기회가 있었다. 1985년, 그는 알바니에 있는 뉴욕주립대학에 일년간 객원 교수 겸 작가로 미국에 가게 되었고, 미국에 2년을 더 머물게 된다. 뉴욕 지역에 체류하는 동안, 신형상 회화나 신표현주의 스타일의 요소들이 엿보이는, 그의 서명과도 같은 현재 회화 스타일에 착수 하였다. ● 작가의 말을 추수 하면, 그의 70년대의 실험 작업은 미술 개념이 거의 회화와 조각으로 한정되어 있었던 대학시절 교수들과 선배 세대들의 진부함에 대한 젊은 작가의 본능적인 거부 반응에 의해서 행해졌다면, 80년대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회화 중심의 작업은 성숙한 작가가 인생의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 정신적 필요에 의해 나아가고 있다고 보여진다. 이 저자와의 전화 인터뷰, /2007/3/6. 이 저자와의 최근 인터뷰에서 이강소는 이 세상에는 확실하고, 절대적이고 영원한 것은 없다는 말을 여러 번 반복 했다. 위와 같음. 그는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그의 직관적인 철학적 세계관은 공 사상으로 대변되는, 우리 인간 사고 중심으로 현상 세계를 이해하는 것에 대한 성찰을 요구하는 불교의 가르침과 닮았다. 반야심경에 나오는 유명한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는 구절을 따르면, 공개념은 연기설의 상호작용에 의한 결과를 가지고 실재라고 믿고 있는 인간 현실의 허구성을 지적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명백한 것 같고 보이고, 만질 수 있는 현상들이라고 여겨서, 선행적 조건에 영향을 받고 있는 인간의 인식이 실재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은 사실 환상일 뿐, 본래의 어떤 진실도 없는 것이다.

이강소_An Island-07035_캔버스에 유채_91×116.7cm_2007

불가사의한 공 개념이 이강소의「섬에서」,「강에서」,「샹그릴라」,「무제 시리즈」등의 시리즈가 연상 시키는 형태와 그것의 흔적, 그림자, 실루엣, 반사물, 거울에 비친 이미지들의 관계 사이를 아름답게 엮은 상호작용 속에 되울려 온다. 이강소의 그림은 감상자가 그 것을 평온한 섬 풍경이나 흐린, 폭우의, 또는 번개치는 하늘을 아래 오리들이 물 위에 떠있는 광경 또는 인적이 없는 배가 있는 멜랑콜리한 풍경 등으로 알아맞히는 데서 오는 처음의 재미에서 그림의 의미와 목적을 추측하면서 얻을 수 있는 다른 차원의 즐거움과 환희로 옮겨갈 수 있도록 치밀하게 고안 되었다. 여기 이 오리는 한국 전통 문화에서의 지조와 화목한 결혼의 상징인가? 아니면, 보다 보편적으로 해석해서, 다른 새들과 마찬가지로, 자유의 혼을 상징하는 것일까? 외롭게 보이는, 다소 유령 같은 배는 고독과 정신적 성찰에 대한 은유로 이해해야 될까? 아직도, 이강소 그림은 이러한 해석 외에 뭔가 더 있어 보인다. ● 여기서, 흥미를 더욱 돋구는 것은 바로, 이강소의 그림이 감상자로 하여금 육체와 정신, 존재와 부재, 실체와 무, 삶과 죽음등 반대되는 세계들 사이에 대한 자신들의 명상을 숙고해 보도록 한다는 것이다.「섬에서」,「강에서」,「샹그릴라」,「무제 시리즈」등의 시리즈 속에서 이강소는 이러한 상반되는 세계들을 격정적인 에너지로 넘치는 공간 속에 유려하게 섞어 짜고 있다. 풍경을 연상시키는 이강소의 어떤 작품 속에서는, 가끔 화면에 뿌리기도 하고, 흘리기도 하면서, 또한 자신의 제스처적인 자국을 비벼대거나 지우기도 하는 작가의 자유 분방한 글쓰기 같은 힘찬 붓질들이 헤엄치거나, 날아가는 오리 떼로 감지될 수 있는 형상으로 감상자의 상상 속에 일시적으로 사로 잡힌다. 때때로 흥에 넘치는 작가의 붓칠에 의해 오리 형상들이 지워졌거나 덮어 그려졌지만, 지운 흔적 속에 그 형상을 찾아볼 수 있다. 어떤 오리 형상은 사라지기 직전에 펄럭거리는 것 같다. 이강소의 다른 그림들을 보면, 골격만 거칠게 그려진 인기척이 없는 배의 형상이 그 배의 존재를 선행하는 인간의 존재를 분명한 부재를 통해 암시하고 있다. 여러 그림 속에서, 유령 같은 배의 형상이 엉성하게 그린 수법 그 자체에 의해서, 또는 작가의 흥분된 제스처적인 붓자국으로 이루어진 위협적인 구름에 의해, 그 존재가 위협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 오리, 배 그리고 사슴은 이강소가 자주 그리는 소재들이다. 그는 이들 소재에 대해 특별한 애정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리게 되었다고 한다. 위와 같음. 빈번하게 등장하는 오리 소재로 말미암아, 이강소는 오리의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명성은 뭔가 잘못되었지 않나 싶다. 작가에 의하면, 감상자들이 연관시키고 있는 문화적 중요성이나 은유적 의미들은 우연의 일치인 것 같다. 위와 같음. 그에게는 이들 소재가 자신의 존재와 예술과의 관계에 대한 지속적 탐구를 (이러한 탐구가 아주 다른 측면이었지만, 70년대의 실험 작업을 통해서도 이루어 졌다) 실행하는 데에 그가 가장 선호하는 매개체일 뿐 이다. 이강소에게는 회화의 영역에만 머물지 않고, 조각과 프린트 작업을 포함하는 (현재는 사진과 도예까지 확장되고 있는) 그의 창조적 행동이야말로 그 자신의 활력과 정체성의 원천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가 화가로서 활동하는 한, 그는 계속해서 의미 있는 존재가 되려는 그의 의지를 자신의 작품 속에서 예술적으로 실천할 것 이다. ● 이강소의 작품은 아직도 알 수 없는 궁금증을 남긴다. 작가는 한정된, 일시적인 존재로서의 자신의 존재에 대한 현실을 의식함으로 발생된 허무적인 근심을 그의 예술을 통해 해결할 수가 있었을까? 단서를 그의 배 그림 속에서 찾아볼 수 있을까? 황량한 곳에 또는 암울한 바다 위의 외로운 배가 마치 불교에서 말하는 유명한 뗏목 비유와 같이 그가 목적지인 정토 또는 샹그릴라 (티베트와 인도 사이의 히말라야 어느 곳에 존재한다는 전설적인 파라다이스)로 건너간 뒤, 버려진 것같이 보인다. 작가는 그러한 목표에 정말로 도달 했을까? 이강소 그림은 작가의 비밀을 싶게 알려줄 것 같지 않아 보인다. ■ 안은영

Vol.20070526e | 이강소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