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den & WILD

박정연展 / PARKJUNGYEON / 朴正昖 / painting   2007_0523 ▶ 2007_0605

박정연_새로운 만국기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33.3×53cm×100_2007

초대일시_2007_0523_수요일_06:00pm

문화일보 갤러리 2007 전시공모 당선전

문화일보 갤러리 서울 중구 충정로 1가 68번지 Tel. 02_3701_5760 gallery.munhwa.co.kr

새로운 만국기 ● 이 작업은 이번 전시의 첫 번째 에피소드이자 기업의 로고나 심벌, 국기를 그리는 내 작업의 인덱스에 해당하는 작업이다. 주변에서 흔히 발견되는 상표나 국기들을 단순히 캔버스에 옮긴 것처럼 보일수도 있겠지만 나름대로의 일정한 방법론이 존재한다. 세계의 100대 브랜드를 중심으로 했지만 우리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브랜드는 생략하거나 세계적인 브랜드는 아니지만 우리사회에서 친숙하게 존재하면서 영향력을 가진 것들은 물론 작가 개인적인 열망이 담긴 것들, 친밀한 브랜드도 고려하였다. (이러한 사례나 태도를 디자인에서는 brand hijacking 이라고 부르기도) 캔버스의 규격은 가로 3, 세로 2의 가장 보편적인 국기 규격을 선택하고, 로고와 심벌을 식별가능한 선에서 불필요한 글자는 삭제하였다. 단 글자부분을 생략하면 의미전달이 어렵거나 식별이 불가능한 경우는 부득이 글자를 집어넣었음은 물론이다. 4개월의 제작기간이 걸린 이 작업은 만국기가 우리 시대와 사회에서 더 이상 장식이상의 역할을 하지 않으며, 우리의 의식주와 의식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이러한 기업이나 단체의 로고와 심벌임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였다. 기업이나 단체가 만드는 상품이나 제도는 사용되면서 소모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개인의 기억에 남고 집단 사이에서 문화를 만들면서 점점 더 힘이 세지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100개의 캔버스에 펼쳐진 이 작업의 시작은 사실 언젠가 눈에 들어온 사소한 츄잉검의 포장지였음을 밝혀둔다. 국내 L사의 자일리톨 검의 포장지는 가로의 띠와 왼쪽으로 치우쳐진 둥근 도형위에 네 개의 꼭지점을 가진 붉은 별이 그려져 있었다. 나는 그 검의 포장지와 인공기가 유사한 형태를 갖고 있다고 생각했고, 사물들이란 결국 소모품에 불과한 것들이지만 사용이 반복되면서 우리의 충성과 복종을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유사국가의 지위를 가지며 사물의 겉모양의 도형이나 포장은 곧 국기와 다름없지 않은가 생각했던 것이다.

박정연_새로운 만국기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33.3×53cm×100_2007
박정연_United Symbols of America_캔버스에 유채_151×227cm_2007

United Symbols of America ● 우리시대의 미디어는 수많은 광고들로 넘쳐나고 있다. 광고가 넘쳐날수록 소비자들은 현명하고 합리적인 소비를 할 수 있지만, 광고가 가져다주는 폐해는 생각보다 더 가공할 만한 것일 수도 있다. 실제로 많은 기업들은 상품을 개량하고 개선하는 것보다 더욱 많은 돈을 광고에 퍼붓고 있다. 개인이 원하는 양보다 훨씬 더 많은 광고에 노출된 이러한 상태가 공해와 다름없다. 미국에서는 이러한 무분별한 광고사회에 반기를 드는 adbuster 운동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adbuster를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반-광고 캠페인으로 보는 시각에는 다소 무리가 따르지만 현대와 같은 광고사회에서 광고가 갖는 비인간성, 광고주들의 비인륜적인 기업운영이나 착취 같은 문제를 내부로부터 드러내고 반성하고자 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점이 크다고 하겠다. 당시의 adbuster는 성조기의 왼쪽 상단구역인 파란 바탕에 흰별을 당대의 기업로고로 바꾸어 놓았었다. United Symbols of America 는 당시의 adbuster의 한국형 버전인 셈이다. 우리나라에 끼치는 미국의 영향은 말로 다 설명할 수도, 필요도 없을 것이다. 나는 adbuster가 손대지 않았던 흰색과 붉은 줄에도 미국의 상표와 심벌로 채워 넣었다. 이러한 태도는 과거의 반-광고운동과는 다른 맥락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광고와 상품 없이 우리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비판과 열망같은 양가적 감정이 광고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에 녹아있는 것같이 미국 혹은 미국기업에 대한 복합적인 태도가 그림 속에 공존하는 것은 아닐까.

박정연_S-Republic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51×227cm_2007

s-republic ●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두 개의 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우리나라에서 삼성과 서울대학교의 위상과 역할은 단순한 재벌기업과 국립대학교의 그것을 뛰어넘는 것이다. 재미있는 점은 최근에는 업종이 다른 일류 기업과 브랜드가 각자의 이미지의 업그레이드를 노리고 서로 교류하고 협정을 맺는 일이 비일비재해지고 있다는 점인데 삼성과 서울대라는 일류끼리의 연합은 어떤 영향을 가져올까? 실제로 어떤 변화를 가져오고 있는 것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박정연_(international) LOVE_판넬에 아크릴채색_75×122cm_2006~7 박정연_Plutonium card (rice free)_판넬에 아크릴채색_75×122cm_2006~7
박정연_박정연_Mistercard _판넬에 아크릴채색_75×122cm_2006~7 박정연_Mistercard (for men)_판넬에 아크릴채색_75×122cm_2006~7

mistercard, mistercard(for men) ● 자본주의 사회에서 한 개인의 능력은 경제력이다. 이것은 남성이나 여성을 불문하고 적용되는 것이지만 대한민국사회에 아직까지 뿌리 깊게 내재한 성 역할은 남성들에게 경제력이 없는 남자는 무능한 남자라는 굴레를 한 겹 더 씌우고 있다. 콤플렉스 위에 가중된 또 하나의 콤플렉스! 따라서 경제력이 없는 남성이 정상적인 여성들의 사랑을 받을 가능성은 현저히 떨어지게 된다. 이러한 풍속도가 꼭 현대의 도시생활에서의 멋진 사랑을 꿈꾸는 것에만 국한 되지는 않는 것 같다. 2001년 911테러당시 단지 자본주의 국가에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 순간 세계무역센터 빌딩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희생자가 생겼다. 테러의 주동자들이 겨냥한 곳이 자본주의의 심벌과 같은 뉴욕의 한복판 세계무역센터라고 하더라도 그때 희생된 희생자들은 자본주의의 핵심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다. 마이클 무어는 '볼링 포 콜롬바인' 에서 '우리가 공포를 느낄 때, 누군가는 돈을 번다.'고 했는데 과연 자본주의의 속성은 그렇지 아니할까. 타인의 불행이나 사고, 죽음 앞에서 우리가 취하는 행동은 짧은 동정 뒤에 신속한 대처이다. 더욱 안전해지기 위해 단단한 성같은 집을 사고 조금 더 안전하다는 자동차를 산다. 그러나 누구나에게 이러한 대처가 가능한 것도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개인의 직업과 신용도에 따라 혜택과 서비스가 다른 카드를 발급받는다. 앤디워홀은 '부자나 가난한 자나 몇 센트만 지불하면 코카콜라를 사먹을 수 있는 멋진 미국' 이라며 자신의 시대와 국가를 찬양했지만 우리는 치밀하게 계산된 직업평가와 개인 신용도, 보유자산과 가족관계에 따라 사회적인 대우와 혜택이 달라지는 21세기의 대한민국을 살고 있는 것이다. 물론 모든 것에는 예외가 있다. 북한의 김정일은 발급기관이 애매모호한 곳으로부터 와일드카드를 발급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는 지금 어디선가 땡전 한 푼 없이 떵떵거리며 카드를 막 긋고 서명을 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박정연_Jumper (from 911 terror)_판넬에 아크릴채색, 실크스크린_46×61cm×24_2006
박정연_Pyramid - the Order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3×80cm×26_2007

pyramid -the Order ● 세계에는 200여개 국가들이 공존한다. 세계 대전과 소비에트 연방의 분열, 아프리카의 내전 등은 20세기 초 100여개에 지나지 않았던 국가의 수를 두 배로 불려 놓았다. 사람사이에도 우열이 생겨나듯 국가와 국가사이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그것을 국가고유의 약호(코드)로 풀어보면 재미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국제기구들은 각 국가에 일련의 세 개의 알파벳을 붙여 그 국가를 간단히 표기한다. 이를테면 미국은 USA, 영국은 GBR, 중국은 CHN, 우리나라는 KOR이다. 각각의 기구별로 약간씩의 차이는 있지만 대동소이하다. 나는 이러한 국가 코드와 국기를 결합하여 3분의 2는 국기를 그리고 나머지 3분의 1은 국가의 코드를 그려 넣었다. 이미지와 글자를 결합하는 방식은 유럽에서는 중세부터 쓰이기 시작하였고 rebus형식이라고 한다. 각각의 캔버스를 피라미드 형태로 배열하면 마치 한편의 음모론과 같은 결과가 눈앞에 펼쳐진다. 정점에는 역시 미국이 있고 위쪽으로 갈수록 역사와 자본 문화강대국이 아래쪽으로 갈수록 이름도 생소한 소국들이 존재한다. 물론 이러한 것을 곧이곧대로 믿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최소한 그럼직한 가정이 아닐까싶다.

박정연_hidden & WILD展_2007
박정연_hidden & WILD展_2007

hidden & wild라고 이름붙인 이번 전시에서 나는 국가와 국제정치에 대한 일반의 무관심과 이에 반비례하게 국경을 넘나드는 자본의 팽창을 현대사회의 이미지들을 사용하여 나의 직관과 상상력으로 시각화시켜보고자 하였다. 한 개인의 무모한 제안이며 아직 덜 다듬어진 주장이지만 나와 타인의 의견들의 의견들에 귀 기울여 더욱 진일보한 노정을 발견하는 전시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 박정연

Vol.20070603a | 박정연展 / PARKJUNGYEON / 朴正昖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