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선약수 上善若水

송필용 회화展   2007_0530 ▶ 2007_0620

송필용_흐르는 물처럼-생명의 순환_캔버스에 유채_227.3×133.3cm_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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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530_수요일_05:00pm

이화익 갤러리 서울 종로구 송현동 1-1번지 Tel. 02_730_7818 www.leehwaikgallery.com

낮은 데로 흘러 선(善)을 이루다 ● 송필용의 물은 장강(長江)이다. 2004년 '흐르는 물처럼'이라는 타이틀 아래 물 그림만으로 인상적인 전시를 가졌던 만큼 이제는 다른 주제로 눈을 돌릴 법도 한데, 지금도 그의 화포 위에서는 도저한 물줄기가 간단없이 흐른다. 잘 변하는 인심이 금세 울고 웃는 봄 날씨 같다면, 자연의 깊은 뜻은 봄 날씨에도 개의하지 않고 흐르는 장강의 물 같다. '상선약수(上善若水)'의 의미에는 이런 불변성도 한 부분 차지할 것이다. 송필용은 그렇게 물을 닮았다. 그리고 그렇게 자연을 닮았다.

송필용_흐르는 물처럼-생명의 순환_캔버스에 유채_194×130.3cm_2007

이번 전시에 송필용이 내놓은 작품의 절반은 폭포를 그린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보길도 세연지 연못의 어리연꽃과 섬진강 매화, 해남 땅끝 등을 소재로 한, 흐르는 물 그림이다. 수직과 수평의 미학이 균형 있게 조화를 이룬 전시라고나 해야 할까. 태초부터 물은 인간으로 하여금 수평을 의식하게 했다. 너른 들판도 수평에 대한 인식을 일깨웠지만, 넓은 호수나 바다처럼 순전한 수평의 이미지로 다가온 것은 아니었다. 땅은 넓게 펼쳐지다가 산으로 솟구쳐 올라가기도 하고 계곡으로 패이기도 한다. 하지만 물은 돋아난 곳이 있으면 곧 낮추고 패인 곳이 있으면 어느새 메운다. 세상이 하나의 고른 바탕 위에 세워진 것임을 끝없이 일깨운다.

송필용_흐르는 물처럼-생명의 순환_캔버스에 유채_60.6×72.7cm_2005

수직의 존재를 그 어느 것 못지 않게 강하게 상기시키는 폭포도 따지고 보면 수평을 향한 열망의 소산이다. 땅 위로 솟아오른 나무와 달리 폭포는 끝없이 낮은 곳으로 내려가려 한다. 그렇게 폭포는 수직으로 떨어지며 수평을 말한다. 근원을 향한, 본질을 향한 의지를 드러내 보인다. ● 이번에 송필용이 선보이는 폭포 그림의 거개가 지리산의 계절폭포를 그린 것이다. 천지에서 흘러내린 백두폭포 한 점과 금강산 외줄 폭포 한 점이 끼어 있지만, 초점은 지리산의 이름 모를 폭포들에 맞춰져 있다. 비가 한 번 오고나면 더욱 드세게 쏟아져 내리는 이들 폭포는 근원을 향한 운동이 세상 그 어느 운동보다 뜨거운 열정을 담은 것임을 보여준다. 폭포의 타격은 지구가 하나의 거대한 북인 양 온몸을 울리는 음파로 변해 우리의 육체를 흔든다. 그런 대단한 촉각을 송필용의 그림은 우리에게 환기시킨다.

송필용_흐르는 물처럼-생명의 순환_캔버스에 유채_91×65.2cm_2006

지난 그림들에 비해 폭포의 소가 보다 의식적으로 표현되고 물보라와 물거품이 보다 격정적으로 표현된 것은, 화가가 근원을 향한 물의 열정을 보다 선명히 그리길 원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근원으로 흘러든 물은 수평의 의지로 세상을 다스리고 지탱한다. 수평의 의지에는 우열이 없고 차별이 없다. 물은 어떤 생명도 차별하지 않는다. 낮은 곳이 보이면 가리지 않고 흘러들어 그곳에 생명줄을 댄 모든 피조물을 먹이고 살린다. 꽃으로 피어나고 새의 날개로 퍼덕인다. 물고기의 지느러미로 물살을 가른다.

송필용_흐르는 물처럼-생명의 순환_캔버스에 유채_89.4×130.3cm_2007

이런 물의 수평 의지를 대변하는 송필용의 연못과 강 그림은 중생을 살피는 그 대자대비의 정서를 전통 동양화의 분위기로 한 차원 더 승화시킨 것이다. 어리연꽃이 보석처럼 피고 물고기가 떼를 지어 노닌다. 차오르다가 이지러지는 달의 이미지 또한 모든 게 수평에서 시작해 수평으로 돌아가는 세상사를 연상시킨다. 수평은 그렇게 처음이요 근원이며, 바탕이요 어머니이다. 상선약수란 결국 지고의 선이 근원, 곧 어머니와 같음을 이르는 말이라 하겠다. 앞에서 송필용이 충분히 그렸을 법한데도 물 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고 했다. 어머니와 함께 있다고 어머니가 지겨울 리가 있을까. 어머니를 향한 아들의 효심으로 붓을 든 것인 양 송필용의 화포에서는 물을 향한 따뜻하고 정감 어린 시선이 충만하게 느껴진다.

송필용_흐르는 물처럼-땅끝에서_캔버스에 유채_80.3×116.7cm_2006

화가로서 송필용이 물을 향해 남다른 관심을 갖게 된 지는 사실 오래 됐다. 20여 년 전 담양으로 작업실을 옮길 때도 그의 유별난 물 사랑이 한몫 했다. 소쇄원의 물길이 좋았고 물과 어우러진 근처의 풍광이 좋아 성큼 작업실을 옮겼다. 일대의 가사문학권이 물길 때문에 이뤄진 정자문화에 기초한 것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그의 물에 대한 관심은 가사문학에서 만나게 되는 서정성과 떼려야 뗄 수가 없다. 혼탁하고 고단한 세상사의 갈등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자연에 묻혀 심성을 다스리려 한 강호(江湖)가사의 지은이들처럼 그 역시 흐르는 물을 보며 자연의 유구한 이치를 되새김질했다. ● 인간세상의 갈등이 제아무리 큰들 유장한 강물의 포말보다 클까. 물은 흔들려 파도를 낳기도 하고 부닥쳐 물거품을 만들기도 하지만 그것은 순간의, 표면의, 작디작은 흔들림이다. 본류는 그에 상관없이 세상을 떠받치고 세상에 생명을 부여하는 소중한 사명을 묵묵히 수행한다. 그 침묵의 수행이 아름답기에 물 앞에 선 우리는 그예 숙연해진다. 물에게 생명 순환의 절대적인 빚을 지고 있는 우리가 아닌가. 화가의 붓길이 바로 그 사실을 그 어떤 구구한 설명보다 명료하게 드러내 보인다. 역시 물을 그린 그림도 물만큼 좋다. ■ 이주헌

송필용_물안개 속의 홍매_캔버스에 유채_72.7×60.6cm_2006

이바 니웃드라 산수(山水) 구경 가쟈스라 / 답청(踏靑)으란 오늘하고 욕기(浴沂)란 내일 하새 / 아참에 채산(採山)하고 나조헤 조수(釣水)하새 / 괴여 닉은 술을 갈건(葛巾)으로 밧타 노코 / 곳나모 가지 것거 수 노코 먹으리라 ● 화풍(和風)이 건닷부러 녹수(綠水)를 건너오니 / 청향(淸香)은 잔에 지고 낙홍(落紅)은 옷새 진다 ● 준중(樽中)이 뷔엿거든 날다려 알외여라 / 소동(小童) 아해 다려 주가(酒家)에 술을 믈어 / 얼운은 막대 집고 아해는 술을 메고 / 미음완보(微吟緩步) 하야 시냇가의 호자 안자 / 명사(明沙) 조한 믈에 잔 시어 부어 들고 / 청류(淸流)를 굽어보니 떠오나니 도화(桃花)ㅣ로다 / 무릉(武陵)이 갓갑도다 져 매이 긘 거인고 (정극인의 '상춘곡' 중에서)

Vol.20070603c | 송필용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