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DBELT

신창용_이완展   2007_0605 ▶ 2007_0619

신창용, 이완_REDBELT展_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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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605_화요일_05:00pm

오픈퍼포먼스_2007_0605_화요일_05:30pm

책임기획_신창용_이완

호기심에 대한 책임감 서울 종로구 부암동 254-5번지 Tel. 011_9991_1701 www.curiosity.co.kr

백색 와이셔츠에 블랙 슈트(Black suit)를 입은 두 명의 싸나이가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총들을 두 손에 쥐고 우리 앞으로 걸어오고 있다. 신창용 & 이완의「REDBELT」포스터는 마치 갱 영화의 포스터처럼 보인다. 그러고 보니 김태경 감독의 「두뇌유희 프로젝트, 퍼즐」(2006) 포스터가 떠오른다. 머시라? 김감독의「퍼즐」 포스터가 쿠엔틴 타란티노(Quentin Jerome Tarantino) 감독의「저수지의 개들(Reservoir Dogs)」(1992) 포스터를 '차용'한 것이라고?

김태경_두뇌유희 프로젝트, 퍼즐_2006 쿠엔틴 타란티노 _저수지의 개들(Reservoir Dogs)_1992

당 기자, 오늘 열분들게 보도할 내용은 영화가 아니라 전시회다. 따라서 기자는 김태경 감독의 「두뇌유희 프로젝트, 퍼즐」과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저수지의 개들」 사이의 '차용 논란'에 대해 개입하지 않겠다. 도대체 전시회 포스터에 갱 영화 포스터를 차용한 이유가 무엇일까? ● 두 명의 싸나이가 다름아닌 작가 신창용(右)과 이완(左)이 아닌가. 신창용은 M-14소총을 이완은 M-4소총을 어깨에 걸치고 있다. 이완은 권총까지 가지고 있다. 그들은 마치 어떤 건물을 사수하는 사복 경호원처럼 보인다. 어떤 건물? 글타! 신창용과 이완이 '사수(?)'하는 건물은 미국 뉴욕 시 센트럴 파크에 있는 메트로폴리탄미술관(Metropolitan Museum of Art)이다. 그렇다면 이번 신창용 & 이완의 「REDBELT」 프로젝트 미션은 동서고금의 미술품 약 백만 점을 소장하고 있다는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을 사수하는 것이란 말인가? ● 신창용 & 이완과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사이에 'REDBELT'라는 검정문자가 개입되어 있다. 그 검정문자 'REDBELT' 중앙을 가로질러 '빨강 줄'이 그어져 있다. 도대체 'REDBELT'란 무슨 뜻인가? 빨강 줄? 적색 지대? 접근금지 구역? 갤러리에 접근하면 발포? 전시회에 입장하면 발포? ● 갤러리 '호기심에 대한 책임감'에서 2007년 6월 5일부터 6월 19일까지 개최될 신창용 & 이완의 「레드벨트」 프로젝트는 신작만으로 이루어진 전시이다. 신창용은 자신의 이미지와 함께 '이소룡'을 등장시킨 평면작업 10여점을, 이완은 금메달과 트로피 그리고 슬롯머신 등 10여점을 「레드벨트」 프로젝트를 위해 특별히 제작했다고 한다. ● 물론 신창용 & 이완의 「레드벨트」 프로젝트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들은 신작 이외에 오픈 퍼포먼스도 준비 중이다. 오픈 퍼포먼스에는 두 명의 '레드벨트 걸(REDBELT GIRL)'을 초대하여 관객을 유혹하고자 한다. 레드벨트 걸? 레드벨트 걸이 어떻게 관객을 유혹한단 말인가? 도대체 레드벨트 걸의 미션은 무엇인가? '레드벨트 보이'는 없는가?

RED BELT-신창용_이완 2인展_갤러리 호기심에 대한 책임감_2007

신창용 & 이완 왈, 현대미술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이라고도 할 수 있을 이번 신창용과 이완의 2인전은 동시대의 고착화된 미술시스템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되었다. 이번 REDBELT의 사업목적은 작가와 미술관 그리고 관객의 소통관계 속에 개입하여 그 사이에 물리적 바리케이트를 쳐 그 무엇도 소통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 작가와 화랑(미술관) 그리고 관객 사이에 물리적 바리케이트(barricade)를 쳐 놓겠단다. 와이? 동시대의 고착화된 미술시스템에 딴지걸기 위해서? 도대체 동시대의 고착화된 미술시스템은 무엇인가? 그리고 작가와 화랑 그리고 관객 사이에 물리적 바리케이트를 어떻게 쳐 놓는단 말인가? 신창용 & 이완 왈, 전시장을 찾아 갤러리를 둘러본 관객들에게 실망감을 줄 수도 있는 답답한 미술판에서의 소통단절의 현실을 신창용, 이완은 화려한 전시장의 조명과 작업 속에 번뜩이는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그것은 볼 수 없게 만드는 어쩌면 현실의 반어법적인 풍자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리하여 관객의 관심을 유도하고 볼 수 없게 만드는 신선한 충격요법을 한국의 미술계에 던져 주어 좀 더 다양한 예술로 향한 견인차 역할을 하는 것이 우리의 기획 의도라 할 수 있겠다. ● 신창용과 이완이 말하는 '동시대의 고착화된 미술시스템'이란 '전시장을 찾아 갤러리를 둘러본 관객들에게 실망감을 줄 수도 있는 답답한 미술판에서의 소통단절의 현실'을 뜻하는 것 같다. 그들이 진술한 작가와 화랑 그리고 관객 사이에 쳐 놓겠다는 물리적 바리케이트란 전시를 '볼 수 없게 만드는' 것을 뜻한다. 근데 어떻게 관객이 전시를 볼 수 없게 만든단 말인가? ● 신창용 & 이완 왈, 2명의 작가는 전시를 위해 신작을 제작하고 홍보를 할 것이며 오픈식 퍼포먼스 또한 준비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전시장을 미리 준비하여 연출된 무장병력 3인을 동원하여 들어가고 싶지만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 펼쳐지게 된다. ●'물리적 바리케이트'란 동원된 '무장병력'을 뜻한다. 그럼 그 무장병력이 '레드벨트'? 신창용 & 이완의 「레드벨트」 프로젝트는 그들의 신작을 갤러리 '호기심에 대한 책임감' 전시장에 디스플레이 한 상태에서, 전시장 앞에 레드벨트 맨(무장병력)을 배치시켜 관객이 전시장을 들어설 수 없도록 저지시킨다. ● 물론 갤러리 '호기심에 대한 책임감'은 일종의 쇼윈도우 갤러리란 점에서, 그들은 전시장 유리창 전면을 썬팅할 계획이다. 그들은 전시 타이틀 '레드벨트'를 고려하여 유리창 전면에 빨강 썬팅지를 붙일 예정이라고 한다. 따라서 관객은 전시장 문을 열고 들어서지 않는 한 전시장 안에 설치된 작품들을 볼 수 없다. ● 근데 문제는 전시장 입구에 무장병력이 버티고 있다는 점이다. 오잉? 빨강 썬팅지로 붙여진 유리창 전면 중 구석에 약간 썬팅지가 뜯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무장병력으로부터 출입금지를 당한 기자, 빨강 썬팅지가 뜯어진 부분을 통해 전시장 안을 훔쳐보았다. 하지만 그 뜯어진 부분의 위치가 코너이고, 뜯어진 부분의 크기가 너무 작고, 전시장 밖과 안 사이의 물리적 거리감 때문에 기자는 그들의 신작을 '제대로' 볼 수 엄따! ● 어느 작품은 부분만 보이고, 어느 작품은 거리가 멀어 제대로 볼 수 없고, 어느 작품은 뜯어진 썬팅지의 크기와 위치 때문에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따라서 기자를 더욱 감질나게 한다. 오잉? 그럼 신창용과 이완은 관객에게 호기심을 유발시키는 전시를 계획한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그들이 말하는 '동시대의 고착화된 미술시스템'이란 관객이 전시장에서 전시된 작품을 보는 시스템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 근데 신창용과 이완에게 그런 고착화된 미술시스템은 전시장을 찾아 갤러리를 둘러본 관객들에게 실망감을 줄 수도 있는 답답한 '전시시스템'으로 보였던 것 같다. 따라서 그들은 기존 전시시스템에 딴지를 걸기위해 전시장 입구에 레드벨트 맨을 배치하여, 관객의 전시장 출입을 금지시키고자 한다. ● 신창용 & 이완의 「레드벨트」 프로젝트는 갤러리 전시장에서 작품을 둘러본 관객들에게 실망감을 줄 수도 있는 답답한 전시와 마찬가지로 전시장을 찾은 관객에게 전시를 제대로 관람할 수 없는 실망감을 주는 것을 의도한다. 이를테면 작품을 보아도 관객과 소통되지 않는 현실에 대해 그들은 아예 물리적인 무장병력을 투입하여 소통을 두절시키고자 한다고 말이다. 그런 점에서 신창용과 이완의 프로젝트는 그들이 진술했듯이 일종의 국내 전시'현실의 반어법적인 풍자'로 읽혀질 수도 있을 것 같다. ● 신창용 & 이완의 「레드벨트」 프로젝트는 무엇보다 많은 관객의 방문을 필요로 한다. 만약 그들의 전시에 관객의 방문이 없다면, 그들의 전시는 무의미하게 될 것이다.(그들의 의도는 수포로 돌아갈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전시홍보는 물론 오픈 퍼포먼스에 리드벨트 걸(REDBELT GIRL)을 초대하여 관객의 관심을 유도하고자 하는 것이다. ● 기자가 생각하기에 신창용 & 이완의 「레드벨트」 프로젝트는 호기심을 유발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그럼 그 호기심에 대한 '책임감'은 무엇인가? 물론 관객이 온전히 볼 수는 없겠지만, 전시장 안에 그들은 신작들을 기존 전시방식을 채택하여 전시해 놓음으로써 '책임감'을 다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대략 400여 페이쥐에 달하는 평론가 사인방(김동일, 류병학, 박준헌, 신보슬)의 텍스트들을 출력한 (가제본) 도록도 관객에게 제공할 예정이다.

제50회 베니스 비엔날레 스페인관_2003

스페인 사람만 출입 가능한 파빌롱 2003년 베니스비엔날레를 방문한 대부분의 관객은 스페인관의 산티아고 시에라(Santiago Sierra) 작품을 볼 수 없었다. 왜냐하면 스페인관의 시에라 작품을 보기위해 관객은 제복 차림을 한 2명의 경비원에게 스페인 여권을 제시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매우 적은 관객(스페인 여권을 제시한 사람)만이 스페인관을 방문했다.

스페인관 앞에서 관객출입을 통제하는 경비원들_2003

정헌이 왈, 관계자가 서서 스페인 여권을 요구하는 아이러니칼한 상황을 연출하면서, 국제 관계에서의 비자의 문제, 즉 출입국과 관련하여 최근 더욱 까다로와진 국가간의 긴장 관계를 냉소하고 있었다.

산티아고 시에라(Santiago Sierra)_스페인관 내부 전시장 가벽 설치_2003

근데 스페인관 안을 방문한 스페인 관객의 말에 의하면, 그곳엔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단지 바리게이트 역할을 하는 벽만 제작되었을 뿐이다. 시에라는 그 작업을 「벽을 보다(FACING THE WALL)」라고 명명했다. 소문에 의하면 오픈날 머리에 후두를 쓴 여자가 마치 부처처럼 벽면을 보고 명상하는 퍼포먼스를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가 관객 방어벽으로 설치한 벽이 그의 작업이 아닌가?

산티아고 시에라(Santiago Sierra)_벽을 보다(FACING THE WALL)_퍼포먼스_2003

여자만 입장 가능한 클럽 2006년 광주비엔날에 설치된 임민욱의 「오리지널 라이브클럽(Original Live Club)」에는 남자 입장불가 딱지가 붙었다. 그 클럽 입구에는 남성전용클럽이 상투적으로 제공하는 여성의 성적이미지들이 상영되고 있다. 그 클럽에 들어간 여성관객의 말에 의하면, 그 클럽내부에는 여성들만의 행위에 관계되는 설치물들이 배치되어 있단다. ● 임민욱 왈, 이 공간 내부에 대한 묘사는 반드시 경험을 통해서만 외부로 소통, 전달되거나 혹은 좌절될 것이다. 여기서의 좌절은 생존방식과 유형에 관한 고찰에서 출발하는 실존적 좌절로부터, 비엔날레와 같은 전지구적 미술 네트워크와 지역, 개인 간의 소통적 좌절 등, 크고 작은 좌절들을 대변한다. 갤러리에 들어가지 마시오! 스페인 사람만 입장 가능한 시에라의 작업이 국적을 문제 삼고 있다면, 여자만 입장 가능한 임민욱 작업은 성별을 문제 삼고 있다. 베니스에서 '스페인이'이 아니란 이유로 전시장을 입장할 수 없는가 하면, 광주에서 '남자'란 이유 때문에 클럽에 입장할 수 없다. 한 술 더 떠 신창용과 이완의 「레드벨트」는 국적과 성별을 불문하고 모조리 입장 불가능하다. '관객'이란 이유 때문이다. ● 물론 국적을 문제 삼는 입장불가나 성별을 문제 삼는 입장불가 그리고 국적과 성별을 불문한 입장불가의 행위 자체가 작업의 일부이다. 시에라의 작업 경우 관객은 작업의 일부인 스페인관 입구에 벽돌로 쌓여진 벽의 부분을 볼 수 있다. 임민욱의 작업 경우 남자관객은 작업의 일부인 클럽의 외관을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신창용과 이완의 작업 경우 구멍을 통해 전시장에 전시된 작품들을 '피상적'이나마 볼 수 있다. ●'잔디밭에 들어가지 말라!'고 하면 잔디밭에 들어가고 싶어진다. '작품에 손대지 마시오!'라고 하면 작품을 만지고 싶어진다. '접근금지!'라는 표지판을 보면 기웃거리고 싶어진다. 글타! 무엇을 하지 말라고 하면 우덜은 하고 싶지 않을 때도 하고 싶어진다. 완존 청개구리 심보다. 신창용 & 이완의 「레드벨트」는 '관객'을 '청개구리'로 간주한 것 같다. ● 근데 그 '청개구리'가 갤러리 안으로 결코 들어갈 수 없다는 점이 문제다. 왜냐하면 관객이 갤러리 입장불가를 무릅쓰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들어가야만 청개구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관객, 당신은 작가의 '금지'를 깨고 청개구리가 될 것인가 아니면 작가의 거부당한 관객으로 남을 것인가? ■ 류병학

Vol.20070605g | 신창용_이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