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관적인 집 Subjective House

이소영展 / LEESOYOUNG / 李昭暎 / installation   2007_0601 ▶ 2007_0614

이소영_주관적인 집展_쿤스트독 갤러리_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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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영 홈페이지_www.leesoyoung.com                                   페이스북_www.facebook.com/soyoung.lee.9843499

초대일시 / 2007_0601_금요일_06:00pm

쿤스트독 기획공모展 Ⅰ

쿤스트독 갤러리 KunstDoc Gallery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12길 10-15 (창성동 122-9번지) Tel. +82.(0)2.722.8897 www.kunstdoc.com

문득 길을 잃은 주체가 자신의 집에 있다는 사건을 발견한다. 그것은 주체의 오성이 여전히 정상이었고 지각의 판단력이 희미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단지 잠깐 동안 그 주체는 기억상실에 빠져 있었고 장소성을 갖는 대상의 어떤 가상에 의해서 주체는 스스로에게 어지러운 증상으로 나타났다. 이 증상은 언제나 착각과 오인을 발생시키며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미래의 환영에 매달려 있다. 사실이지 존재의 자기 발견은 과거로부터 소급된 자기 지층에 정립되고 위치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사적이고 익숙한 공간에서 소외되어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이것은 자기 자신이 거울에 비춰진 실재하고 있음에 대한 환영에 마주하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소영_끊임없이 열리는 또는 닫히는_디지털 프린트_140×360cm_2007
이소영_여섯 겹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표면_디지털 프린트, 혼합재료_75×52×82cm_2007

거울 너머의 자기와 관계하는 세계는 모든 측면에서 '보는 자신'의 기억을 축척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은 한낱 허구며 익숙하지 않는 비존재적 상황에 끊임없이 내몰리게 한다. 여기서 '보는 자신'은 어떤 사물이나 무수히 기억된 공간의 잔상으로 소멸되어 버린다. 따라서 '보는 자신'은 이미 무게를 갖지 못하는 피안의 지점에서 방향성을 잃고 그곳의 대기 속으로 갇혀버리고 마는데 이것은 존재의 상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방향성을 기억하고 있는 존재'의 상실이다. 바로 그곳에서 존재의 발견은 역설된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방향성을 기억하고 있는 존재'는 거기에 있다는 것에 무뎌져 목적과 목적을 향해 달려가는 향락으로 자기 동일화된다. 이는 그야말로 객관화된 세계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목줄을 입은 주체로 남아버린다.

이소영_여섯 겹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표면_혼합재료_75×52×70cm_2007
이소영_창_디지털 프린트_88×58cm_2007

자아의 기억상실은 필연적으로 자아를 발견하게 하는 사건을 수긍하게 한다. 그것은 더욱 더 주체 자신과 밀접하게 관계하고 있는 장소에서 확고해 진다. 그것은 집이다. 이 집은 평상시에는 객관화되어 있는 공간으로 있다가 집 주인의 실수로 말미암아 주체의 주관적인 공간으로 변모되기에 이른다. 정확하게 말하면, 주체의 주관적인 인지활동은 객관화된 사물에서 사적인 시간의 경험이 녹아 있는 주관적 시선을 일깨운다. 이것은 종국에 가서 미적 활동으로 대유되는데 미적대상이 언제나 가상의 위치에서 그 가치를 확인하게 되는 것처럼 가상화된 집에서 존재의 실재는 발견된다. 즉, 주관적 인지활동으로서 집은 객관화된 세계와 주관화된 세계의 간섭이며 실재하고 있음에 대한 새로운 측면으로 제시되는 것으로서 기표다.

이소영_주관적인 집展_쿤스트독 갤러리_2007
이소영_Mein Kind spielt_디지털 프린트_125×80cm_2006

분명 '주관적인 집'에는 의자나 책, 커튼과 같이 또 다른 것으로 암시되고 있다. 이것을 섬세하게 따져보면 그 의자라는 잔상의 소리에서 울렁이는 음성의 주파수가 주체의 오인과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주관적 집'의 모든 것이 무게를 상실했기 때문이고 이는 시각적 음성으로서 무차별적으로 잠재워진 기억의 가닥들을 순간 동시에 보이게 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측면에서 '주관적인 집'은 미적대상의 가치를 확보하기에 이른다. 이 미적대상은 현실 밖에 있으면서 가상으로 현실에 참여하는데 이것은 미적대상의 주관성이 주체의 주관성과 상호 관계할 때만 미적대상으로 자리 잡는다. 그 만나는 지점이 외화된 현실의 가상이다. 이 가상은 단순한 환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 미적대상의 내용이 현실화 될 때 그 본연의 모습을 취할 수 없기 때문에 가상으로 구현되는 것이며 거기서 관객의 미적체험과 하나의 맥락을 형성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주관적인 집'의 재현은 미적 범주에 순수한 방식으로 포섭된다. ■ 김용민

Vol.20070607d | 이소영展 / LEESOYOUNG / 李昭暎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