至近之處

고경희 수묵展   2007_0608 ▶ 2007_0617

고경희_공학관에서 바라본 광장_한지에 수묵_180×120cm×2_2007

초대일시_2007_0608_금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8:00pm

갤러리 꽃 서울 마포구 서교동 337-36번지 B1 Tel. 02_6414_8840

자기의 상황, 현실에서 가장 근접하고 밀접한 것. 그것부터 그려나가기 시작하면 된다. 나는 학교풍경을 그린다. 대학 4년, 대학원 2년 반, 그 사이 조교를 계속 해오면서 좋거나 싫거나 캠퍼스 안에서 하루 반나절 이상을 보낸다. 지근지처至近之處라 했던가. 학교라는 장소를 선택한 이유는 굳이 경치가 좋은 풍경을 찾아 돌아다니지 않더라도 내 생활 속에서 접하는 가장 친밀하고 가까운 곳이기 때문이다. 멋진 경관을 자랑하는 명당을 찾아 사생하는 것은 순간의 감흥을 담아오는 것이 될 테지만, 나의 작업은 될 수 있으면 많은 시간동안 그곳에서 어울리고 사색하고 활동하며 직접 몸을 부딪친 공간을 담아내는 것이다. 꽉 들어찬 학교에서의 일과, 그 울타리 안에서 내 마음의 여유를 찾고 그림의 소재를 찾았다.

고경희_금잔디 광장 옆 진입로_한지에 수묵_117×90cm_2007

작품들에서 나타나는 장소들은 내가 오르던 건물이나 학교생활 속에서 호기심을 가지고 접근해본 곳에서 바라본 장소들이다. 대게 높은 건물의 창틈이나 옥상에서 습관적으로 자주 들여다보게 되는 장소들인데, 바라보는 장소와 시간에 따른 각각의 심상을 하나의 이미지로 응축하여 표현하였다. 마치 작가의 감정을 이입하여 일기를 쓰듯이. 작업을 하면서 놀라운 건 늘상 접하는 풍경이지만 경물을 대하는 마음을 담으면 그 공간이 특별한 장소로 변하고, 여기에 의미를 부여하고 표현을 하면 대상에 대한 심상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것이 내 작업의 원동력이 된다.

고경희_노천극장_한지에 수묵_97×206cm_2007

이제는 장소를 탐구하고, 그곳을 포착하여 마음의 휴식을 갖고, 그 공간에서 호흡하며 심미를 찾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렸다. 내 작업의 시작이 내가 지금 이 순간에 호흡하는 학교였던 것처럼 언젠가 내가 이 곳을 떠나게 될 때는 또 다른 곳이 나를 반길 것이다. 이 다음의 그림은 또 거기서부터 새롭게 시작될 것이다. 모든 것이 발 빠르게 돌아가는 시대에 '느림의 미학'이 통하는 것처럼, 나의 그림도 다소곳이, 천천히 대상을 바라보고 붙잡으려 한다. 수묵 표현의 큰 맥락 속에서 생활 깊숙한 곳에서부터 즐거운 발견을 붙잡는 작업은 계속될 것이다. 현실과의 강한 연결, 현실의 삶에 이어진 생각으로... ■ 고경희

고경희_퇴계인문관에서 본 교정_한지에 수묵_70×96cm_2007

평면 위에 놓여진 숨은 풍경'여름날 오후, 지평선의 산의 연봉들 또는 당신 위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나뭇가지를 눈으로 쫓을 때면, 그때 당신은 그 산들이나 그 나뭇가지의 분위기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발터 벤야민 ● 고경희는 학교 풍경을 작업 주제로 상당히 오랫동안 작업해 왔다. 그녀는 항상 사람들이 바쁘게 일상에서 흘려보내는 풍경들을 시간을 들여 응시하고 그 분위기를 느끼며 작업실까지 조심스럽게 담아 온다. 그리곤 호기심에 가득한 붓질로 그 일상을 해석해 본다. 그녀는 일상에 자신의 시각을 담아 같은 공간을 자신만의 해석이 담긴 같지만 같지 않은 공간으로 화폭에 옮긴다.

고경희_중앙도서관 앞 진입로_한지에 수묵_130×220cm_2006

그녀의 작업들은 일상에서 의식하지 않았던 의미 있는 장소와 각도를 포착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그 후 그녀는 이러한 공간을 자신의 의식 기저에 있는 감정을 가지고 다시 한번 해석한다. 소위 '작가의 해석'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단계를 거치면, 일상의 풍경은 평범하다는 꼬리표를 떼고, 어떠한 분위기를 담은 상황, 혹은 조건의 장소로 기록된다. 그녀의 해석법은 누구나 보는 것들에서 누구도 보지 못했던 것을 하나하나 끌어내는 방식이다. 이러한 작업 단계는 우리에게 일상이란 것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하며, 우리도 이미 아는 곳에 대한 정보는 잃어버리지 않으면서, 여기에 작가의 해석이 담긴 작품을 접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 앞에 다른 옷을 입고 나온 일상의 풍경은 보는 사람들에게 묘한 느낌을 들게 한다. 과연 저것이 내가 무심히 보아오던 그런 광경인가 ? 하는 의문과 함께...

고경희_경영관 노천카페_한지에 수묵_122×96cm_2007

그녀는 이러한 작업의 도구로 먹을 선택하였다. 먹이란 매체는 아주 묘한 매력이 있다. 그저 사람들이 흰색과 검은색, 그리고 회색조의 중간색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겠지만, 먹은 그 농담과 표현만으로 세상의 모든 색을 담아낸다. 이러한 먹으로 다시 색이 정의된 세상은 우리가 보던 그것보다 더욱 강력하고 깊은 울림을 담게 된다. 그녀는 이러한 작업을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경관을 바라볼 때의 느낌을 충분히 담아내기 위해서는 화면 안에서 머무는 것이 아닌 밖으로 이어지는 꽉 찬 화면구성이 필요했다. 어쩔 수 없이 사각형의 네 모퉁이 안에서 일정한 시점으로 바라본 경관을 담고 있지만, 그 공간에서 뻗어나가는 울림을 담고자 했다. 그것을 나는 수묵이라는 매력적인 재료를 탐구하며 하나씩 기록해나간다." 라고 소개한다.

고경희_학생회관 잔디정원_PM11:15 / PM4:00_한지에 수묵_192×133cm×2_2007

그녀가 바라보는 일상은 의미 없는 순간이 아니다. 매순간 이야기를 하는 타자이다. 일상은 우리에게 이야기를 한다. 학교 풍경 속에는 생동감, 편안함 그리고 학생들의 땀과 정성, 열정, 꿈이 숨은 그림처럼 숨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감성을 가지고 그런 이야기들을 듣고 우리에게 그녀 자신만의 언어로 통역을 해주고자 한다. ● 그간 작업에서 수묵표현의 큰 맥락을 따라 일상과 생활 속에서 이러한 즐거운 발견을 이야기하려는 작가의 학교풍경 연작의 과정을 돌아보면, 우리는 이번엔 그녀의 그림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 굉장히 궁금해진다. 자신만의 이야기를 숨긴 학교풍경이 이번엔 우리에게 어떤 말을 해줄 것인지 궁금하지 않은가? 함께 이야기를 들어보자. ■ 장태수

Vol.20070608b | 고경희 수묵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