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 Another me

고낙범_변웅필_허양구展   2007_0607 ▶ 2007_0624 / 월요일 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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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607_목요일_06:00pm

대구MBC Gallery M 대구시 수성구 범어동 1번지 대구문화방송 1층 Tel. 053_745_4244 www.gallerym.co.kr

나/또 다른 나 ● 눈에 보이는 신체의 얼굴과는 달리 재현된 얼굴은 앤디 워홀의 마를린 먼로의 작품에서 보듯이 그것은 일종의 이미지이다. 그 이미지는 스튜어트 유엔에 의하면 주체를 상실하고 시대의 유행을 쫓아 앙리 르페르브의 '공허로 가득 차 있는 기호 속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자화상일 수 있으며, 괴테가 바라보듯이 하나의 풍경일 수도 있다. 그 풍경은 우리의 시야에서 늘 보던 현상일 수 있지만, 우리가 가까이 다가가는 순간 그 현상들은 실체가 아닌 허상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여기 그 현상들의 실체를 탐험하는 서로 다른 시각의 세 작가(고낙범, 변웅필, 허양구)가 있다. 공허한 눈과 텅 비어 있는 표현들. 화면을 가득 채우며 숨 막히듯이 압도하는 그 얼굴 형상은 마치 유령이 우리를 보는 것과 같다. 즉 기의 없는 기표만 부유하는 말들과 같이 허양구의 작업은 무언가에 홀려 있는 얼굴들을 그리고 있다.

허양구. Today's Person-PM12-1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00×250cm_2007
허양구_현대인 AM12시_캔버스에 혼합재료_227.3×181cm_2001

그것은 마치 인간의 감정이 전혀 없는 하나의 마네킹, 달리 말해 마샬 맥루한의 『기계적인 신부』에 나오는 여배우들과 같다. "여배우들 자신은 그 과정에서 아무 할 일이 없다. 그들 대부분이 처음 도착했을 때에는 뛰어난 미모나 독특한 외모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밖으로 나올 때에는 달라진다. 눈과 입술, 입과 머리카락, 이 모든 것이 한 가지 유형으로 손질되어 있다. 그들의 얼굴은 콘크리트 판처럼 보인다. 보통 할리우드의 육체파 여배우라면 이름으로 부르기보다는 번호를 붙이는 편이 나을 것이다." ● 이러한 얼굴 형상을 통해 그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얼굴은 본래 한 개인의 삶의 역사와 그/그녀의 삶을 나타내는 것이라지만, 그의 얼굴 형상은 얼굴에서 한 개인의 역사를 사라지게 하는 것이다. 즉 그것은 미술평론가인 강선학이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듯이 감정 표현의 부재, 무감각한 개인들을 낳는 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개인의 삶의 역사를 말소하고 이미지(외관과 외양)를 추구하는 토양 속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우리는 무엇을 찾아 헤매고 있는가.'

변웅필_selfportrait as a man-49_캔버스에 유채_150×130cm_2007
변웅필_selfportrait as a man-50_캔버스에 유채_150×130cm_2007

허양구와는 정반대의 시각에서 얼굴의 실체를 찾고자 하는 작가는 바로 변웅필이다. 그의 화면은 허양구와 같이 압도하는 듯한 모습을 주고 있지 않다. 오늘날 외양을 추구하는 사회에서 그의 찌그러지고 망가진 얼굴 형상은 보는 이로 하여금 조금은 엉뚱하면서도 편안하게 다가서게 한다. 그의 얼굴 형상은 작가 자신의 자화상이다. 하지만 그 얼굴 형상에서 작가의 초상이라는 것을 연상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 그의 화면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그의 얼굴 형상은 우리가 알고 있는 얼굴 형상을 그리고자 할 때 갖게 되는 많은 요소들이 삭제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작가가 이야기했듯이 그 얼굴 형상은 화면 속에 어떤 인물의 특징이나 사회적 신분을 가늠할 수 있는 요소들, 예를 들어 머리카락(헤어스타일)이나 수염, 의상 등을 표현하지 않는다. 그 형상은 얼굴이 지니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본연의 모습'만을 표현하는 것이다. 기본적인 모습이란 바로 얼굴형과 이목구비이다. 즉 그 형상은 그 인물이 가진 고정된 인상이나 표정을 인식하지 못하도록 이런 기본적인 모습에 손이나 다른 사물을 통해 얼굴을 일그러트린 것이다. 일그러트려진 얼굴, 사실적으로 표현되었지만 알아볼 수 없는 인상 또는 어색하거나 무표정한 표정... 그의 얼굴 형상은 시대착오적인 몸짓이다. 누군가에게 과시할 수 있는, 즉 사회적인 신분을 표시할 수 있는 모습과는 전혀 거리가 먼. 그러나 그의 엉뚱하고 요상한 행위는 보는 이의 가슴에 조용한 파문을 던지며 자신이 지니고 있는 본래의 얼굴을 들여다보게 한다.

고낙범_설회색_캔버스에 유채_193.9×112.1cm_2001
고낙범_황토_캔버스에 유채_193.9×112.1cm_2000

유령과 같은 모습이나 얼굴을 의도적으로 일그러트리는 것과는 달리 사람들이 삶을 통해 살아온 그대로의 모습을 그리고자 하는 작가는 고낙범이다. 고낙범의 초상화는 사회의 유명인사가 아닌 작가 주변의 일반 사람의 초상들이다. 눈가에 자글자글한 주름, 엉크러진 머리카락, 씽긋 웃는 얼굴에서 드러내는 치아들, 늘어진 볼 살들......그의 초상화는 우리가 늘 만나는 바로 이웃의 누이, 아줌마, 할머니의 얼굴들이다. 그가 그리는 초상화의 주인공들은 탈 스트리터(조각가)가 '미학에 대한 개인적 철학의 바탕을 이루는 몇 가지 원칙들'이라는 부제로 이야기한 글에 잘 기술되어 있다. "고낙범이 그린 그림의 미학은 그의 가슴 한 쪽에 특별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 친구들, 지인에 대한 그의 존경과 사랑에 기초하고 있다. 그의 붓놀림 하나하나는 우리 모두가 강렬히 원하는 편안하고 믿음직한 친구와 우정이 가득 담긴 따스한 포옹을 하는 듯한 보기 드문 질적 수준을 표현해 낸다." ● 그리고 고낙범의 초상화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초상화 전체에 흐르는 단색조이다. 그의 초상화의 전면에 흐르는 단색조는 그가 그리는 남성이나 여성마다 색조를 달리하고 있다. 그의 초상화의 단색조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의 단색조는 1991년도에서 2003년의 초상화들의 일련의 제작들과 카츄 이유치(훗카이도 큐레이터)가 이야기하고 있듯이 한국의 오방색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그의 단색조를 이해하는 것은 카츄 이유치에 의하면 현세의 액땜과 무병장수, 화평을 기원하는 한국의 전통적인 해석에서 찾고자 하지만 동양 철학이 본래 지니고 있는 오행의 성질에 입각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즉 동양 철학에서 오방색은 오행을 상징적으로 대변하는 것으로서 여성들이나 남성들이 본래 타고날 때부터 지니고 있는 성질과 성향을 의미하는 것이다. ● 2005년의 가나포럼스페이스의「비온 뒤, 두 개의 모나드」는 그의 초상화에 담긴 단색조들에 대한 깊은 인상을 각인시키게 한다. 그가 15년 이상이나 단색조들을 통해 초상화에 표현해내고자 하는 일관된 모습은 또한 카츄 이유치가 이야기한 융의 아니마/아니무스의 원형이라는 도식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보다는 그가 삶을 통해 살아온 모습에서 존경하게 된 사람들이나 사랑을 바탕으로 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감안해 볼 때 동양의 오행의 이치 그대로 그/그녀가 본래 타고난 성향을 생(生)을 통해 잘 구현한 그 사람의 품성을 동양의 우주로 통하는 다섯의 성질 중의 하나의 원형으로 보고 그것을 찾아내어 그려내고자 한 것은 아닐까. ● 이렇듯 얼굴은 한 개인의 삶의 이력을 보여주는 것이지만, 고낙범과 변웅필, 허양구의 세 작가의 시선을 통해 여행하게 되는 얼굴은 우리의 일상의 삶에서 우리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아니 그 어디쯤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우리의 또 다른 얼굴일지도 모른다. ■ 조관용

Vol.20070609e | I & Another me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