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 수필 [冊 - 隨筆]

임수식展   2007_0607 ▶ 2007_0617

임수식_수필_장지에 컬러인화_21×17cm_2006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박건희문화재단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7_0607_목요일_06:00pm

후원_박건희문화재단

대안공간 건희 서울 종로구 종로6가 43-3번지 Tel. 02_762_7332 www.geonhi.com

수필은 청자(靑瓷) 연적이다. 수필은 난(蘭)이요, 학(鶴)이요, 청초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이다. 수필은 그 여인이 걸어가는 숲속으로 난 평탄하고 고요한 길이다. 수필은 가로수 늘어진 페이브먼트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길은 깨끗하고 사람이 적게 다니는 주택가에 있다. ● 수필은 청춘의 글은 아니요, 설흔 여섯 살 중년 고개를 넘어선 사람의 글이며, 정열이나 심오한 지성을 내포한 문학이 아니요, 그저 수필가가 쓴 단순한 글이다. 수필은 흥미는 주지마는 읽는 사람을 흥분시키지는 아니한다. 수필은 마음의 산책(散策)이다. 그 속에는 인생의 향취와 여운이 숨어 있는 것이다.

임수식_수필_장지에 컬러인화_21×17cm_2006

수필의 색깔은 황홀 찬란하거나 진하지 아니하며, 검거나 희지 않고 퇴락하여 추하지 않고, 언제나 온아우미(溫雅優美)하다. 수필의 빛은 비둘기빛이거나 진주빛이다. 수필이 비단이라면 번쩍거리지 않는 바탕에 약간의 무늬가 있는 것이다. 그 무늬는 읽는 사람의 얼굴에 미소를 띠게 한다. ● 수필은 한가하면서도 나태하지 아니하고, 속박을 벗어나고서도 산만(散漫)하지 않으며, 찬란하지 않고 우아(優雅)하며 날카롭지 않으나 산뜻한 문학이다.

임수식_오감도_장지에 컬러인화_19×15cm_2007

수필의 재료는 생활경험, 자연관찰, 또는 사회 현상에 대한 새로운 발견, 무엇이나 다 좋을 것이다. 그 제재(題材)가 무었이든지 간에 쓰는 이의 독특한 개성과 그때의 무드에 따라 '누에의 입에서 나오는 액(液)이 고치를 만들듯이' 수필은 써지는 것이다. 수필은 플롯이나 클아이맥스를 필요로 하지 않는 다. 가고 싶은 대로 가는 것이 수필의 행로(行路)이다. 그러나 차를 마시는 거와 같은 이 문학은 그 방향(芳香)을 갖지 아니할 때에는 수도물같이 무미(無味)한 것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임수식_책가도 1_장지에 컬러인화_83×112cm_18조각_2007

수필은 독백(獨白)이다. 소설가나 극작가는 때로 여러 가지 성격을 가져 보아야 된다. 셰익스피어는 햄릿도 되고 폴로니아스 노릇도 한다. 그러나 수필가 램은 언제나 찰즈 램이면 되는 것이다. 수필은 그 쓰는 사람을 가장 솔직히 나타내는 문학 형식이다. 그러므로 수필은 독자에게 친밀감을 주며, 친구에게서 받은 편지와도 같은 것이다. ● 덕수궁 박물관에 청자(靑瓷) 연적이 하나 있었다. 내가 본 그 연적은 연꽃 모양을 한 것으로, 똑같이 생긴 꽃잎들이 정연히 달려 있었는데, 다만 그 중에 꽃잎 하나만이 약간 옆으로 꼬부라졌었다. 이 균형속에 있는 눈에 거슬리지 않는 파격(破格)이 수필인가 한다. 한 조각 연꽃잎을 꼬부라지게 하기에는 마음의 여유를 필요로 한다.

임수식_책가도 3_장지에 컬러인화_87×104cm_15조각_2007

이 마음의 여유가 없이 수필을 못 쓰는 것은 슬픈 일이다. 때로는 억지로 마음의 여유를 가지려 하다가 그런 여유를 갖는 것이 죄스러운 것 같기도 하여 나의 마지막 십분지 일까지도 숫제 초조와 번잡에 다주어 버리는 것이다. ■ 피천득

Vol.20070610a | 임수식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