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의 겨울

윤창호 사진展   2007_0613 ▶ 2007_0619

윤창호_그 남자 1 the man 1_디지털 프린트_33.2×50.8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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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613_수요일_06:00pm

갤러리 토포하우스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4번지 Tel. 02_734_7555 www.topohaus.com

7.50.8cm x 33.2cm 디지털프린트 8.26.4cm x 40.6cm 디지털프린트 Sentimental Journey ● 볼 수 없는 것을 보게 하는 것이 사진이다. 시간을 되돌려주는 것도 사진이고, 말로 다할 수 없는 것을 대신하게 하는 것도 사진이다. 사진을 본다는 것은 그런 점에서 말해질 수 없는 어떤 것들의 총체이다. 사진 속에는 한 순간에 사라진 익명의 존재들의 포즈와, 너무 하찮아서 누구에게도 눈길을 끌지 못한 삶이 있다.

윤창호_길 위의 여인 an women on the road_디지털 프린트_33.2×50.8cm
윤창호_넵스키nevsky_디지털 프린트_33.2×50.8cm

윤창호의 "모스크바의 겨울"은 지난 삶과 시간의 그림자이다. 그가 애무했던 시간의 초상이고 찰나 속에 어루만진 어제의 삶의 자국이다. 모스크바의 흐린 풍경은 세피아로 덧칠된다. 머무르고, 스치고, 흘러갔던 아득한 날의 풍경이 그곳으로부터 걸어 나온다. 한 사진가를 끌고갔던, 그리하여 다시 그 사진가의 카메라로 끌려왔던 아름다우면서도 애잔한, 애잔하면서도 서러운 과거로의 센티멘털 여행이다.

윤창호_눈길 a snow covered road_디지털 프린트_26.4×40.6cm
윤창호_산책 a stroll_디지털 프린트_40.6×26.4cm
윤창호_푸쉬킨 pushkin_디지털 프린트_33.2×50.8cm

그의 사진에서 말로는 부족할 때, 혹은 말로는 다할 수 없을 때 사진이 보여줄 수 있는 깊은 언어적 표상을 본다. 공감은 내면을 관류하는 어떤 하나됨이다. 그가 거닐었던 그날의 길과, 그가 맡았던 그날의 공기와, 그가 마음에 새겼던 그날의 잿빛 하늘은 마음으로 다가서는 내면의 울림이다. 그것은 시간의 나그네만이 교호하는 마음의 풍경이다. 후미진 저쪽, 삶의 아득함이 사라져 가는 시간의 파편들이다. ● 사진은 시간의 거울이다. 되돌아갈 수 없는, 아니 되돌릴 수 있다면 되돌아가고 싶은 기억의 거울이다. 윤창호의 사진은 누군가의 시간, 누군가의 공간, 알 수 없는 존재들의 삶의 흐릿함을 보게 한다. 사진 속 이미지들은 모스크바의 겨울의 어둠의 단상이다. 그리고 그것은 예기치 않음이다. 그의 사진이 아름다운 것은 시간으로부터 밀려난 예기치 않은 존재의 흐릿함 때문이다."모스크바의 겨울"은 삶의 가장자리로 놓인 작은 소외에 눈길을 주고, 그리고 그 하찮은 소외들이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모스크바 겨울의 환등성이다.

윤창호_눈이내리네 1 snow falls 1_디지털 프린트_33.2×50.8cm
윤창호_눈이내리네 2 snow falls 2_디지털 프린트_40.6×26.4cm

사진은 존재의 마지막 포즈이다. 또, 어느 시간, 어느 자리에서 누구도 감싸주지 않았던 미완의 풍경이다. 윤창호의 사진은 그것들을 비춘다. 그러자 그것들의 삶의 상처처럼 되살아난다. 센티멘털 여행은 지난 시간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일이다. 그렇게 말해지지 못했던 조각난 생의 파편들이다. 모스크바의 겨울은 동일한 시간, 동일한 장소에 있었던 한 사진가와 익명의 존재들 사이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흐린 지문들이 여기저기 찍힌 어제의 단상이다. ● 세상의 모든 사진은 찍히는 순간 과거가 된다. 또, 찍히는 순간 죽음이 된다. 그러나 기억으로 되살아나는 과거이고 죽음이다. 윤창호의 "모스크바의 겨울"은 영원히 기억되는 프루스트의 지나간 여인이고, 늘 예기치 않게 되살아나는 마들렌의 향기와 같다. ■ 진동선

Vol.20070613b | 윤창호 사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