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말해서,

동덕여자대학교 큐레이터학과 제7회 졸업기획展   2007_0613 ▶ 2007_0619

구성수_음악실_흑백인화_50×60cm_2003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동덕아트갤러리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7_0613_수요일_06:00pm

참여작가_옥정호_이민영_인효진_박호상_임흥순_구성수_이부록_방병상_홍지연_손성진_박정연_이현정

주최_동덕여자대학교 큐레이터학과 제7회 졸업 전시위원회

동덕아트갤러리 서울 종로구 관훈동 151-4번지 동덕빌딩 B1 Tel. 02_732_6458 gallery.dongduk.ac.kr

동덕여자대학교 큐레이터학과 졸업기획전『다시 말해서,』가 6월 13일부터 19일까지 동덕아트갤러리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시선의 차이에 따르는 '번역'의 여러 양상을 살펴보고 시각예술을 일종의 번역으로 간주했을 때, 번역한다는 것은 무엇인지, 번역된 것들은 어떻게 보여 지며, 무엇을 의미하는지, 번역들을 통해 세계에 어떻게 접근하는지를 질문해보는 자리이다. ● 사진, 영상, 회화, 드로잉 등의 작업을 해온 12명의 작가 (옥정호 이민영 인효진 박호상 임흥순 구성수 이부록 방병상 홍지연 손성진 박정연 이현정)가 참여해 약 4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박정연_motto series 하면되디_종이에 먹_47.5×80cm_2007

번역은 한 언어로 표현된 메시지를 다른 언어로 전달하는 작업이다. 우리는 같은 것을 다르게 정의하고, 표현하고, 설명하고 말한다.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그리고 깊이 자리하고 있는 번역행위는 눈에 보이지 않는, 우리가 쉬이 감지 할 수 없는 어떠한 '틀'에 의해 이루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과거에 말하지 못한 것들을 지금 말하기도 한다. 검열과 금기에 의해 감추어진 맥락의 여백, 무언가 은폐되거나 '미처 말하지 못한 것' 으로 인한 간극이 존재한다. 우리는 번역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역사적, 제도적, 문화적 측면에서의 변화와 생소함을 담고 있는 작품들을 통해, 사실 우리자신이 늘 세계를 번역 해왔고 지금도 그러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박호상_Guseong-dong (구성동)_컬러인화_127×152cm_2005

거리의 동상, 알 수 없는 구조물, 그것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자연스레 변했다. 세대의 변화는 이제 우리가 쉽사리 감지 할 수 없을 만큼 빨리 진행되고 있고, 그 사이에 끼인 세대들은 정착하지 못한 유목민처럼 떠돈다. 이를테면 임흥순의 [기념사진]은 역사를 되돌아보며, 중간세대인 작가가 격지 못한 역사를 마치 부모님의 앨범을 꺼내 보듯 보고 있다. 과거와 현재의 간극, 또는 그 두 시간의 중첩을 시각화 하며 상이함을 보여주고 있는 구성수의 [한알 고등학교]작품 시리즈는 '공간을 담는 것보다 시간을 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가까운 과거를 다루면서 교실이라는 공간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고 의미가 상실되는지 살펴보고, 특정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시간 지연에의 과정을 카메라로 포착하였다. 또한 겹쳐진 시간과 의미를 제도적 측면에서 볼 수 있는 이부록의 [맥락없는 사회]는 이순신 장군 동상과 맥아더 장군의 동상 사진을 중첩시킨, 홀로그램을 이용한 작품이다. 우리는 보이는 위치에 따라 이미지의 반만 볼 수 있는데, 이는 사람들이 같은 사물을 다르게 보는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예를 들어 '전쟁', '문화'와 같은 개념의 본질을 각자 다르게 바라보고 해석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방병상_A SPECTATOR Ⅱ_10회 연속 사진촬영_32×40cm_2006

우리는 이따금, '삶'은 선택 가능한 것이 아니라 정해진 패턴에 의해 강요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방병상의 [A SPECTATOR]를 통해 일정한 공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상적인 행동이 보이지 않는 이데올로기에 의해 통제되고, 작동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한편 민족독립의 수난사와 순국선열의 투쟁사에 관한 집단적 기억을 불러일으키도록 만들어진 형무소의 의미가 희석된 지금, 산책로나 데이트 장소, 관광지로 전이되어 역사적, 제도적 공간에서 일상적 공간으로 재해석 되었다. 이민영의 [서대문 형무소] 사진 속 인물들은 무심하게 자신의 일상을 반복해 나간다.

손성진_계약직 근로자 S씨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0.9×65.1cm_2004

그런가 하면 인효진의 일산호수공원을 담은 사진들은 현대인들의 인공낙원, 모조된 자연 속에서 누리는 중산층의 문화생활을 현실적이면서도 현실적이지 않은, 묘한 느낌으로 나타내고 있다.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자연을 파괴하면서도 그 훼손된 자연, 대자연을 번역해 모사한 인공자연을 품고 살아가는 기괴한 면도 볼 수 있다. 박호상의 아파트 단지안의 인공공원 사진 역시, 도시 속에서 유일하게 자연을 품고 있는 공원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제도가 만들어낸 공원, 제도가 만들어낸 번역물로 볼 수 있다.

옥정호_차이나타운_디지털 프린트_101.6×127cm_2006

미대진학을 준비하고 있는 학생들이 그려낸 석고상 소묘 작품들은 석고상 본래의 신화적, 역사적 성격은 희석된 채 한국입시미술제도라는 번역기로 번역된 결과물이다. 미대입시라는 제도와 그 제도에 기생하는 미술학원이라는 장치로 인해, 알면서도 모른 척 넘어가는 우리의 서글픈 현실을 보여주기도 한다. 손성진의 [계약직 근로자 손씨]는 어느 공공미술관에서 계약직 큐레이터로 일하는 자신을 그린 것인데, 이 역시 제도속의 개인의 위치에 대해 생각 하게 한다.

이민영_2005 Seodaemun prison no.1」_사진_76.2×76.2cm_2005~6

우리는 번역활동을 통해 원본과 만나며, 원본과 이별하며, 상이한 감정을 복구해 내기도 하며, 잃기도 한다. 이현정의 작품에서 보이는 흐릿해진 글씨는 소통불가능성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리고 박정연의 [Motto]는 첫눈에 보기에 우스워 보이기도 하지만, 이 작품은 70년대의 군사독재와 80년대 군사정권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경험을 통해 수십 년간 군사독재정권이 계속되는 동안 우리들의 삶과 문화 위에 절대적인 힘으로 군림했던, 오로지 성장추구와 결과만을 지향했던 '근면, 자조, 협동'이나 '정신일도하사불성', '최선을 다하자', '하면 된다' 등 중독성 강한 교훈과 가훈, 표어 등을 재해석한 것이다.

이부록_맥락없는 사회_렌티큘러_50×60cm_2005

반면 옥정호의 [차이나타운]에서는 '중국'이라는 기호만 간직한 관광 음식 단지라는 사실을 통해 중국과 남한 사이에서 모호하게 떠도는 차이나타운의 무국적성이 발견되기도 한다. 급조된 차이나타운은 남한과 중국의 관계뿐 아니라 남한의 개발 이데올로기의 기억을 드러낸다. 이 순간 중국 동네는 '말 그대로' 남한에 의해 만들어진 장소가 된다. 그런가 하면,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들은 미술관 아카데미에서 만든 프로그램을 통해 그림과 공예를 체험한다. 그 사람들이 우연히 체험하는 전통문화가 '다시' 우리에게 체험되기도 한다. 이로 인해 두개의 경험층위가 발생하게 된다. 소위 동양화라 말하는 작품들을 통해서 '한국적인 것' 이라는, 동시대성이 배제된 정의를 만날 수 있다. 한편 홍지연의 [20명의 나에 대한 생각_언어드로잉을 위한 스터디]작품은 자신을 본 외국인들의 시선을 이미지와 언어로 표현해낸 작품으로 언어와 이미지, 나와 타자의 관계를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이현정_일기 no.2_캔버스에 유채_130.3×162.2cm_2005

의미를 결정하는 것은 맥락이다. 번역된 결과물은 역사와 관습의 차이를 통해서 원래의 것과 다른 향기를 품고 우리에게 다가온다. 번역물은 우리의 살결에 닿는 바람처럼 자연스러운 것이 되기도 하고, 맑은 날의 소나기처럼 갑작스레 다가와 우리에게 생경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낯선 공기는 우리에겐 이전과 다른 감성을 불러일으키며, 특정한 문맥을 가진 역사적 공간은 일상 공간으로 전이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은 물론, 시간의 흐름으로 인해 발생하는 당연한 귀결이겠지만, 그 '자연스레 변한' 시선은 무심하면서도 편하고 또, 낯설고 의아하기도 하다. 작품들을 통해 우리는 지나간 역사와 새삼스레 마주하여 안녕을 고하기도, 애도하기도 하며, 특별한 감정을 만들어내지 못해 어색해 하기도 한다. 무엇이 우리의 시선을 변하게 했는지는 명확히 알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시시각각 끊임없이 번역행위로 점철되는 지금-이곳의 풍경과 우리 삶을 예민하게 성찰하고 재정의 하는 일이 우리의 과제가 아닐지.

인효진_ His Black Sunglasses_디지털 프린트_80×120cm_2003

우리의 전시『다시 말해서,』는 시각예술 안에서 시선의 차이에 따르는 '번역'의 여러 양상을 살펴보고, 시각예술을 일종의 번역으로 간주했을 때 번역한다는 것은 무엇인지, 번역된 것들은 어떻게 해석되는지, 무엇을 의미하는지, 번역을 통하여 우리는 세계에 어떻게 접근하는지를 질문해본다. 전시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이냐고 끝없이 물을 수도 있다.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이러한 물음과 답변의 과정에서 의미나 사태가 명확해지기도 하고, 오히려 더 불분명해지기도 한다는 것을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임흥순_기념사진 1979-1992_사진_41×61cm_2002
홍지연_14명의 나에 대한 생각_종이에 혼합 매체_62×130cm_2006

작품과 함께 전시되는 자료전시서문 ● '틀'을 주입하는 우리나라의 교육제도 안에서 만들어진 생각하기, 말하기의 방법이 전시도록안의 서문에서는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보여준다. 서문안의 어구들은 일률적이며, 관행적으로 좋은 말들 일색이어서 낯 뜨거워 지기까지 한다. ● 작품과 함께 전시되는 자료입시미술 ● 미대진학을 준비하고 있는 입시생들이 그려낸 석고상 소묘 작품들은 석고상 본래의 신화적, 역사적 성격은 희석된 채 한국입시미술제도라는 번역기로 번역된 결과물이다. 미대입시라는 제도와 그 제도에 기생하는 미술학원이라는 장치로 인해, 알면서도 모른 척 넘어가는 우리의 서글픈 현실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입시미술 석고소묘

작품과 함께 전시되는 자료사설 ● 고등학생들이 공부한 노트속의 사설과 기사, 그리고 그것들을 읽고 공부해 나간 학생들의 글은 제도적인 틀 안에서의 우리를 보여준다. 신문사설과 기사 역시 거대한 미디어 회사의 제도 안에서 번역된 것으로, 그것은 다시 학생들의 시각으로 재번역 된다.

외국인

작품과 함께 전시되는 자료외국인 ● Ide O'Connell씨와 Jan Mortlock씨가 미술관의 아카데미를 수강하며 만들어낸 작품들이다. 소위 '한국적이다' 라고 말하는 것을 다시 외국인의 시각과 경험으로 번역되어 우리에게 보여 진다.

스티로폼 화분

작품과 함께 전시되는 자료화분 ● 스티로폼 상자가 갖고 있던 본래의 의미가 일상적인 삶이라는 문맥 안에서 번역되었다. 소소한 일상으로 들어간 상자들은 '화분'이라는 이름의 역할을 다시 맡고 있다. ■ 동덕여자대학교 큐레이터학과

Vol.20070615a | 다시 말해서,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