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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택 개인展   2007_0613 ▶ 2007_0624

김승택_개미마을_디지털 프린트_106×160cm_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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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613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2:00pm~06:00pm

갤러리175 서울 종로구 안국동 175-87번지 안국빌딩 B1(참여연대 옆) Tel. 02_720_9282 blog.knua.ac.kr/gallery175

과연 본다는 것은 우리에게 사실을, 진실을 전해주는 것일까? 'Seeing is Believing.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라는 명제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의구심을 가지고 질문하며 '본다는 것' 그 자체에 대한 진실을 파헤치려 노력해왔다. 하지만 주장만 있을 뿐 증명은 없다. 정답은 없는 것일까?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믿고 있는 것일까? 보이는 것을 믿는 것일까? 아니면 보는 행위 자체에 대해 맹신만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김승택_조형연구소_디지털 프린트_106×160cm_2007

김승택의 작업은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또 하나의 질문일 수 있다. 그는 실재와 허상 사이에 존재하는 틈, 그리고 그 틈이 발생하게 되는 이유에 주목하며, 여러 가지 실험들을 행하고 제시한다.거울에 비친 허상이라 여겨지는「여섯 가지 이유」와 그 움직임을 기록한 영상물은 실재와 허상, 지각과 인식 사이에 존재하는 어떤 괴리에 대한 증명의 제시일 수 있다. 그리고 그 증명 방법은 인식에 대한 배신을 수반한다. 유리판을 사이에 두고 대칭적으로 위치하고 있는 사물들은 그 유리판의 존재에 의해 실재와 허상으로 나뉘어져 인식되게 된다. 그렇게 거울에 비친 것이라 여겨지는 사물들은 실재하지 않는, 다만 빛에 의해 만들어진 이미지로 인식된다. 그러나 뭔가 이상하다. 거울에 비친 상이라면 보는 각도에 따라 상의 위치도 조금씩 변해야 한다. 하지만 유리판 뒤의 사물은 실재이기에 움직이지 않고 허상이 아닌 실재로 떠오르게 된다. 허상이라 인식했던 관람자의 믿음에 금이 가게 되는 것이다. 작가는 유리판과 어두운 전시 공간 등 여러 장치를 사용하여 1차적으로 관람자를 속이고, 속고 있는 관람자를 텍스트를 이용해 작품에 가까이 다가가게 한 후 진실을 폭로한다. 그렇게 상처 입은 인식은 관람자로 하여금 인식 그 자체에 대해 다시금 질문 할 수 있게 한다.

김승택_작업실_디지털 프린트_106×160cm_2007

유리판에 쓰여 진 그의 텍스트는 유리판을 거울로 인식하게 만드는 장치인 반면, 보는 이를 작품 속에 끌어들이는 기능도 한다. 사소한 일상에 관한 자전적 텍스트는 자신이 타인에게 '보여 지는' 존재이며, 또한 '보여 주는' 존재라는 것을 전제한다. 작가가 밝히는 거울을 보는 이유들은 타인에게 보여 지는 자신의 이미지를 꾸미고 다듬는 것으로, 보여 지는 이미지로서의 자기 방어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거울 앞에 서있는 작가(혹은 관람자)를 떠올리게 하는 이 텍스트는 거울과 유리판, 거울을 사이에 둔 실재와 허상, 유리판을 사이에 둔 실재와 실재 사이를 복잡하고 모호하게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이렇게 복합적인 생각들을 불러 오는 그의 작품은 '신 앞에 선 단독자'가 아닌 '거울 앞에 선 자신의 이미지를 바라보는 주체'로, 허상이 아닌 자신의 실제 얼굴을 단 한 번도 볼 수 없는 운명을 가진 우리들 주체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지를 만든다. 모든 것을 볼 수 있다고 믿는 우리에게 자신의 실제 얼굴을 결코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보는 것이 믿는 것이라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볼 수 없기 때문에 결코 우리 자신 또한 알 수 없는 것이 아닐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다만 우리는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인식하고 있다고 '믿고' 있는 것뿐이지 않을까?

김승택_희미한 기억_단채널 비디오_00:03:12_2006

그의 드로잉 작업은 컴퓨터 마우스에 의해 그려진다. 그렇게 선으로 그려진 공간은 이상하게 구부러지고, 굴절되어 있다. 중국의 산수화와 미래파의 그림에서 보여 지는 것처럼 다양한 시점이 존재하기도 한다. 그런 그의 드로잉 과정은 복잡하다. 실제 공간의 부분 부분을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하고, 컴퓨터상에서 그 이미지들을 겹치거나 이어 붙인다. 즉 디지털 이미지들의 콜라주(Collage)인 것이다. 어떤 방, 길게 늘어져 있는 작업실, 그리고 홍제동 문화촌의 풍경들은 부분부분 촬영되어 결합된다. 그렇게 이어진 그의 공간은 이상하게 구부러져, 위에서 내려다 본 장면이나, 하나의 띠처럼 보여 진다.

김승택_반사-글쓰기_단채널 비디오_00:03:29_2006

한 장의 사진속 공간을 볼 때는 왜곡된 굴절을 발견하기가 힘들다. 하지만 렌즈를 통해 모아진 사진 속의 빛들은 언제나 인간이 실제로 보는 것과는 다르게 굴절되어있다. 한 장 한 장 속의 굴절들은 눈치 채기 어렵지만, 수십 장의 사진이 겹쳐지고 이어지면 그 굴절은 증폭되어 비틀어지거나 구부러져 보이게 된다. 기존 사진의 것과는 다른, 또 다른 '파노라마(Panorama)'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김승택의 파노라마 사진은, 컴퓨터 마우스에 의해 그 윤곽만이 그려지게 되고, 공간을 지시하는 지표로서의 사진은 그 특성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하나의 드로잉이 된다. 그리고 이 드로잉은 실제 공간의 지표였던 사진의 또 다른 지표가 됨과 동시에 사진 그 자체 대신 픽셀로 만들어진 가느다란 선으로 덮여 원본 사진을 대체, 혹은 부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윤곽과 드문드문한 색 면 만을 보여주는 그의 드로잉은 실제의 기록이라고 여겨지는 사진 속 왜곡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직접 눈으로 보는 행위 또한 여러 가지 문제들을 안고 있고, 그것에 대해 고민하는 작가에게 매체를 통해 한 번 더 걸러지는 이미지의 진실성은 당연히 짚고 넘어가야 되는 문제가 되는 것이다.

김승택_6가지 이유_혼합재료_33×42×19.5cm_2007

단순하지만 많은 시간이 요구되는, 게다가 펜 마우스도 아닌 일반 마우스로 그려진 그의 드로잉은 노동집약적이라고 할 수 있다. 확대, 축소가 가능한 디지털 프린트의 특성으로 인해 구불구불하게 그려진 선은 축소됨으로써 곧게 보이게 된다. 그 노동의 흔적, 곧은 선과 더불어 인간의 물리적 흔적이 제거된 흰 화면(기계에 의해 출력된)으로 인해 그의 드로잉은 또 다른 미학적 요소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 서준호

Vol.20070615d | 김승택 개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