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개의 시선

최홍구_이선경_이태한展   2007_0616 ▶ 2007_0625

최홍구_>=(크거나 같다.)_가변설치_고무_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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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616_토요일_05:00pm

Kunst Doc 기획展

갤러리 쿤스트독 서울 종로구 창성동 122-9번지 Tel. 02_722_8897 www.kunstdoc.com

1. 쿤스트독은 현대미술의 다양한 층위를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진지한 대안과 나름의 역할을 실현하기 위한 공간이다. 이런 취지와 '세 개의 시선, 그 이야기'(2007년 6월 16일(토)~6월 25일(월))의 기획 의도는 동일하다. 이번 전시는 미술전시에 있어서 주된 요소인 주체(관객)와 장소(전시 공간) 그리고 대상(미적대상)에 대한 미술의 원론적인 고민에서 출발한다. 지금까지 한국 현대미술은 비판 없는 수용을 거듭해 왔고, 주어진 현실에 대해서는 문제제기 없이 단순히 맞서기에만 급급했다. 그러므로 주체와 장소 그리고 대상을 새롭게 조명하고 반성해 본다는 것은 한국 현대미술이 처한 현실에 대해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하려는 것이다. ● 이번 전시는 주체, 장소 그리고 대상을 근원에서부터 다시 고려한다. 예술이라는 범주 내에서 주체는 관객의 시선이고, 이 주체는 대상과의 관계성 속에서 주체성을 확보하게 된다. 따라서 미적 공간에서 주체를 대상화시키는 작업은 미술의 고유한 영역이다. 구체적으로 작가의 작업을 통해 보면, 이선경의 작업은 주체가 되는 보는 시선이 스스로 자신을 보는 데서 출발한다. 이것은 미적활동의 심미적인 측면에서 다른 활동과 구분된다. 이선경은 스스로를 바라보면서 모순된 자기 현실을 직시하고자 하는데 바로 이런 측면이 예술범주에서의 주체성을 고찰하는 한 갈래로서 비춰진다. 두 번째로 장소에 관하여 최홍구의 작업은 역사성을 띠는 미적대상이 사라진 장소성을 재현하고 있다. 이 장소성은 미술의 역사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구현하고 있다. 세 번째로 이태한의 작업은 한 남자의 뒷모습을 영상으로 재현하고 있다. 이 남성의 뒷모습은 대상화 된 주체를 의식하게 하는데 현대적 매체가 되는 영상으로 미적 대상을 파악한다는 것에서 기획 취지와 부합한다.

이선경_face_종이에 콘테_220×520cm_2006

2. 시선의 출현은 시선이 의식되기 바로 이전에 그곳에 무엇이 있다는 외부의 요청에 의해서 시작된다. 그 요청이라는 것은 시선이 늘 의식할 수 있도록 단서를 흘리고 있는 것을 말하며 언제나 대상에서 발견된다. 예를 들어 보면, 한 손에 휴대전화를 들고서 휴대전화를 찾는 경우나 안경을 쓰고서 안경을 찾는 경우가 그렇다. 처음에는 이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고민하고 찾게 되지만 휴대전화를 손에 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 혹은 안경을 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 시선의 출현은 현실화된다. 여기서 단서라고 한다면 대상화된 자기 자신이다. 거울을 통하여 안경을 쓰고 있는 자기 자신을 볼 때 거울은 자기 자신을 대상화된 자기 자신으로 투영하는 단서의 형식으로 자리 잡는다. 이처럼 시선의 출현은 세 가지로 나타난다. 하나는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주체의, 의식하고자 하는 숨겨진 열망이다. 다른 하나는 대상화된 주체의 자기의식으로 숨겨진 열망에 부합하는 가상의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대상화된 주체에서 주체의 숨겨진 열망을 드러나게 하는 투영된 형식으로서의 제한된 공간이다. 이러한 설명은 미술공간에서 동일하게 적용된다. 미술공간은 관객과 작품 그리고 공간으로 구분되며 주체의 자기 확인이라는 측면에서 시선의 출현을 구체화 시킨다. 이 말은 관객이 전시공간에 들어섰을 때, 주체로서의 관객은 스스로 모르는 사이에 이미 보는 것이 보이는 대상을 의식하고 있다는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관객 자신과 미적대상을 둘러싼 공간의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는 것을 전제하게 한다. 어떤 측면에서 미적공간의 모든 것은 대상화된 대상의 의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거기서 주체는 미적 대상화된 주체의 자기의식을 드러내며 이러한 과정이 관객에게 미적체험의 형식으로 주어진다. 이런 의미에서 예술은 시선의 세 가지 방향성으로 재현된다. 이것은 '보는 것'과 '보이는 것' 그리고 '보고 있다는 것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보는 것'은 주체의 능동적인 대상화 작업이고 '보이는 것'은 대상화 된 사물에서 주체의 능동성을 발견하는 것이며 '보고 있다는 것과 보이고 있다는 것'은 대상화된 자리에서 주체의 주관성을 통하여 시선의 자기 위치를 확보해 가는 노정이다.

이태한_숨-어깨 스틸_비디오_2003

이와 같은 세 개의 시선은 구체적으로 이선경, 이태한, 최홍구의 작업으로 가시화 된다. 이선경의 작업은 보고 있는 주체에서 보고 있는 자신을 응시하고 있다. 그 눈은 언제나 관객에게로 향하고 있으며 끊임없는 주체의 시선을 생산해내고 있다. 그 접근방식은 자신을 그리고 있다는 것과 자신을 증식시키는 것에 있다. 여기서 작품의 자기 주체성이 관객의 시선으로 질문을 던진다. 반면, 이태한의 영상작업은 양복차림의 등을 보이고 있는 건장한 남성의 뒷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미적대상이 대상화된 주체성을 여린 숨의 미동으로 관객의 시선을 의식하게 한다. 좀 더 설명하면, 시선이 시선의 뒷면을 보고 있다는 것에서 오히려 대상화 된 시선이 관객의 시선을 보게 되는 미묘한 시선의 간극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이것은 영상이라는 매체를 사용하여 또 다른 미적 가상으로서의 주체적 시선을 일깨우게 한다. 마지막으로 최홍구의 설치작업은 정확하게 말해서 공간작업으로 나타난다. 역사성을 띠는 예술작품들이 제거된 전시공간으로서의 미적공간에 질문을 던진다. 즉, 전시공간에 대한 질문을 던짐으로 시선의 활동성은 존재적 위치를 획득하게 된다. 이렇듯, 미적공간에서 시선은 자기 존재적 위치를 찾아가는 것인데 이것은 주체로서의 시선이 대상화된 시선의 질문에 반응함으로 고유한 미적가치를 취함으로 출현되는 것이다. ■ 김용민

Vol.20070616c | 세 개의 시선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