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과 1의 경계에서

디지털 시대의 해커로서의 예술가   2007_0613 ▶ 2007_0626

송미정_UNTITLED_플라스틱 컬러시트_52×80cm_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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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613_수요일_05:00pm

참여작가_김지현_김현성_손서현_송미정_신주영

기획_이수정 후원_그라우 갤러리

그라우 갤러리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8-36번지 오원빌딩 3층 Tel. 02_720_1117 www.graugallery.co.kr

오늘날의 편리한 기계들은 디지털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사전적 의미로 디지털이란 아날로그와 대응해서 사용하는 말로, 데이터를 한 자리씩 끊어서 다루는 방식을 말한다. 디지털방식에서의 정보는 불연속적으로 나열되며, 각각의 정보단위들은 분절되어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디지털은 0과 1의 이진수라는 수학의 논리로 된 시스템이지만, 그것은 언어와 달리 위계가 없다. 모든 자기독립성을 가진 정보들은 관념의 세계에서 부유하는데, 이에 위계와 연결성을 부여하는 것은 인간이 주체가 된 정보조합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 디지털의 언어로 이루어진 세계는 비물질적인 가상의 세계이며, 일견 거울 속의 세상처럼 그 안에도 또 다른 시간과 공간이 있을 것 같지만, 실은 아무 것도 없는 공허한 세계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러한 텅 빈 세계는 상상력에 의해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디지털 언어를 다루는 예술세계에서는 관객은 작품을 평가하는 적극적인 주체로 참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디지털 매체가 지배적인 것으로 변화하면서, 우리의 사고와 시각의 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화소와 같이 기본적인 단위로 이루어진 디지털의 사이버세계는 개념만으로 만들어진 환영이며, 개념적인 세계이다. 사람들은 그 안에서 안부를 전하고 자신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등 희로애락을 느끼기도 한다. 또한 디지털 매체를 통해 인터넷 게임에서와 같이 이미지를 통한 적극적인 상호작용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 곳은 시간과 공간의 경계가 없는 가상세계이며, 새로운 신화적 공간이다. 이전에는 회화가 이러한 공간을 재현했다면, 오늘날은 더욱 교묘한 디지털 가상이미지의 세계가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 오늘날 모든 정보는 디지털화 되어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되며, 사화는 그러한 속도에 발맞추어 예측할 수 없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이성으로도 감지할 수 없는 급속도의 변화는 기계문명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낳기도 하며, 막연한 기대와 희망을 불어넣기도 한다. 디지털시대의 예술가는 이러한 새로운 이미지의 세계를 관조하며 디지털문화의 단면 통하여 그 장점과 맹점을 보여준다. 중간 값이 없는 디지털 시스템 사이에 끼어들어 그것의 정확성에 대해 질문을 던지거나, 디지털 세대들의 감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렇게 작가들이 매체를 분석하고 보여주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방식은 해커와 닮았다. 즉 예술가는 중간 값이 없는 디지털 시스템의 구조나 개념에 정통하며, 그것의 개념이나 작용을 그대로 적용하여 모순적으로 그것의 약점이나 특징을 드러내고 있다. ● 이처럼 다섯 명의 작가들은 비판적인 방식으로, 때로는 긍정적 시각으로 오늘날의 지배적 매체가 지배하는 문화에 대해 다루고 있다. 디지털 방식을 차용하지만 실은 섬세한 수작업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들은 찬양하거나 파괴하는 방식이 아닌, 중립적으로 불연속적인 디지털 언어를 연속적이고 우연적인 아날로그적 방식으로 분석한다. 0과 1사이의 무수한 공간과 값들을 보여주려는 듯 디지털 매트릭스 속으로 침투하며 그 사이의 것들을 보여준다. ■ 이수정

작가소개_송미정 ● 송미정은 디지털 매체를 통하여 나타나는 이미지를 재해석 한다. 정보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디지털 이미지의 비물질적인 속성과, 그것이 시선을 교란시키는 방식을 다룸으로써 작가는 디지털 문화 전반에 대해 비판한다. 디지털 시스템이 우리 삶에 파고들면서 빠른 속도와 방대한 정보의 처리가 가능해지는 등의 긍정적 측면들에 대하여 인정하면서도, 화려한 기술에 의해 감성적 측면이 뒷전으로 물러난 것을 아쉬워한다. ● 오늘날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내면을 돌아볼 여유 따위는 없다. 위계가 없는 디지털문화에서는 모든 것이 평등하지만, 모든 요소들은 확실한 뿌리도 없이 공간을 부유한다. 작가는 이러한 디지털 정보처리방식이 지배적으로 군림하게 되면서 변화하는 시각적 인지방식에 피로와 불안을 느낀다. 그리하여 이러한 디지털 매체를 분석하고 비판하기 위해 '아날로그적 방식'을 사용한다. 작업방식은 시간이 많이 소요되고 매우 공을 들인 수작업이다. 이렇게 소재와 반대되는 작업방식을 선택하여 디지털 이미지의 불안정한 면을 포착한다. 디지털 이미지의 위계 없는 평면적 속성을 보여주기 위하여, 역설적으로 깊이를 보여주는 방법을 사용한다. 마치 퇴적층을 통해 시간성을 유추해낼 수 있는 것처럼 몇 십 겹으로 쌓은 시트지를 조각도로 파내어 깊이감(시간성)을 느낄 수 있게 한다. ● 원색적인 시트지의 색상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자연에서는 보기 힘들만큼 선명하다. 이러한 색상은 디지털 매체나 상업광고에서 자주 등장하는 색상이다. 작품 쓰인 자극적인 색상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이미 매체에 익숙해져 있음을 역설적인 화법으로 드러내고 있다.

신주영_UNTITLED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0×130cm_2007

신주영 ● 신주영은 현란한 네온과 직선적인 건물들이 가득한 도시 풍경에 향수를 느낀다. 도시에서 자라난 덕에 도시풍경의 구석구석에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겨 있고, 빠르고 복잡한 도시의 생활 속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작가는 자신이 "햇빛보다 TV브라운관과 모니터의 빛에 더 많이 노출되어 '일렉트로닉 광합성'에 힘입어 자라왔다"고 한다. 화려한 모션그래픽스 속에서 일상의 해방을 느끼고, 자극적인 영상과 MP3 음악과 함께 휴식을 얻으면서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기를 보내왔다. 작가는 스스로를 '일렉트로닉 인상주의자'임을 표방하며, 전자적이며 디지털적인 상황 속에서 행복을 만끽했던 순간들을 디지털 카메라로 포착하여 기록한다. ● 후기인상주의자들의 점묘법과 같이 신주영의 그림은 디지털 픽셀과 같은 점묘법으로 제작되어있다. 그리고 인상주의자들이 빛에 의해 아른거리는 풍경을 소재로 사용했던 것과 같이 현대의 도시풍경을 소재로 삼는다. 그러나 인상주의자들이 자연 속에서 햇빛에 의한 빛의 효과를 그린 것과 달리 도시에서의 현란한 불빛과 함께하는 밤풍경을 그렸으며, 유화 대신 아크릴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새롭다. 이러한 디지털 카메라로 찍어낸 사진을 컴퓨터로 보정한 이미지들을 디지털의 형식으로 재현했다. 새로운 매체들이 전달하는 이미지의 세례를 받아 작가의 시각적 인식의 방식까지도 변화하였지만, 재현의 방식은 고전적 회화의 기법이다.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것을 간편하게 출력하지 않고, 손으로 한 점 한 검 찍어냈다는 점에서 기록이라는 행위가 단순히 사실을 순간적으로 냉동시키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작가는 즐거웠던 순간 디지털 카메라로 포착한 이미지를 오랜 시간 발효시키는 방식으로 기술하고 있다.

김지현_through_디지털 프린트_53×127cm_2006

김지현 ● 김지현은 디지털 문화 속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그것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 소위 '디지털 세대'이다. 디지털 매체나 가상공간 등을 접촉하는 것을 특별한 경험이 아닌 일상의 일부로 여긴다. 그리하여 작가는 실재의 일상적 공간과 또 다른 일상인 디지털 공간이 자연스럽게 혼재하는 상황을 보여준다. 작품들은 3차원적 공간과, 그 공간을 재현하는 디지털 이미지가 공존하는 상황을 기록하는 다소 복잡한 방식을 취한다. 즉 특정 공간을 디지털 사진에 담아 그것을 실물크기로 출력한 것을 설치하여 새로운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을 다시 카메라로 찍어 출력한 사진으로 작품을 완성한다. ● 작품 속 공간들은 작가의 일상적 공간이며, 그 공간 안에는 '이미지'임을 강조하는 듯 얇은 종이에 프린트 된 작가 자신의 분신이 있다. 그 분신은 종종 'Violet Me'라는 또 다른 분신과 함께 다닌다. 디지털 공간 속에서 현실의 나를 대신하는 아바타가 있고, 현실의 나와 디지털 공간 속의 나 사이를 오가는 'Violet Me'는 한 공간에 공존한다. 'Violet Me'와 나는 어떤 것이 원본이고 어떤 것이 파생된 것인지 알 수 없이, 서로의 아바타로서 존재한다. 오늘날 디지털 세계 속의 삶마저 일상으로부터 떨어질 수 없게 되었고, 가상세계 속에 살고 있는 'Violet Me'는 또 다른 탈출을 꿈꾼다. 디지털 매체가 만들어낸 가상현실 속에서, 복제가 반복되며 새로운 형상으로 끊임없이 변이 가능한 속성을 보여준다. 마치 마주한 거울 속의 이미지가 무한히 반복되듯, 김지현의 작품 속에는 2차원과 3차원을 끊임 없이 반복하며, 자아와 분신의 분열과 결합이 반복된다.

김현성_Grid 03/02-#1,#2,#3_화이트보드에 혼합재료_30×30cm_2004

김현성 ● 김현성의 작품은 디지털 매트릭스를 연상케 한다. 작품은 각각 디지털적인 이미지와 시스템에 대한 설명이자, 작가의 정신세계와 사고하는 방식을 의미하는 것으로, 균일하게 배열된 금속성의 재질의 작은 사각형은 기하학적이고 기계적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것은 눈속임이었음이 드러난다. 균일해 보이는 간격은 눈에 띄지 않게 약간씩 차이가 있으며, 단단한 금속으로 보이던 사각형은 실은 부서지기 쉬운 화이트 보드에 채색한 것이다. 작가는 손수 선 하나하나를 긋고, 지나간 선 위를 여러 번 다시 지나가며, 조그만 사각형이 교차되는 꼭지점마다 +기호를 표시한다. 표시는 격자 안의 사각형이 각각의 단위체로 구획되어 있는 불연속성을 강조한다. ● 이러한 작품들은 합리성을 강요하는 강박적인 상황에 대한 고찰이자, 무너뜨릴 수 없는 성과 같은 이성을 가시적으로 재현한다. 그러나 그 안의 미묘하게 흐트러진 선과, 긁힌 자국, 부서질 것만 같은 재질은 그것의 빈 틈을 겨냥하는 동시에,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그 구조가 붕괴될 상황에 대한 두려움을 암시한다. 꾹꾹 눌러 그린 +기호처럼 사각형들은 빈틈 없이 정리되어 고착되어야 한다. 작품의 제작을 통해 계속적으로 증식하는 작은 사각의 유니트들은 그것이 모여서 만들어내는 형상, 나아가 전체 작품의 형상 속에서 끊임 없이 자신을 복제하고 있다. 작가는 촘촘하고 일정한 격자무늬와 같이 정돈된 사고에 안정감을 얻으면서도, 그것이 깨지고 쉽고 흐트러지는 것에 대한 불안감을 동시에 표현한다. 이는 합리적 사고의 형상화이자, 그러한 사고에 의해 창조된 디지털 시스템에 대한 형상화이기도 하다.

손서현_Portraiture I-tem series_종이에 아크릴채색, 반투명 유리_83×83cm_2006

손서현 ● 휴대폰을 쓰고, mp3로 음악을 들으며, HD텔레비전으로 방송을 시청하는 오늘날의 일상은 디지털 매체가 점유해 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일한 매체가 지배적으로 군림하면서 문화가 변화함은 물론, 인간의 사고방식도 큰 변화를 맞이한다. 손서현은 변화한 현대의 문화를 시사하는 것으로 온라인 게임을 선택했다. 게임 속 세상은 하나의 환타지이며 가상적인 것이지만, 이 환타지는 소설과 달리 의도대로 내용과 결말을 결정할 수 없다. 이것은 게임을 하는 주체의 시간과 게임 속 가상세계의 시간이 동시에 흘러가기 때문에 또 다른 '실재'로서의 세계를 구성한다. 그러나 이러한 세계의 실체는 입체의 환영을 보여주는 2차원의 평면, 즉 이미지일 뿐이다. ● 작가는 오늘날 삶의 모습은 점차로 표면화 되고 정보화 되어가고 있으며, 그것이 온라인 게임의 세계와 닮아있다고 본다. 작가는 자신의 지인들을 온라인 게임에 나오는 캐릭터처럼 그리고, 각각의 ID와 Item을 표시한다. 이것은 마치 온라인 게임의 등장인물의 캐릭터가 이미지, 아이템, 및 기능을 나타내는 몇몇 단어와 문장 등으로 요약되는 것과 같이, 사람의 개성도 외모와 재산, 학력 등으로 압축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아이템의 수가 곧 능력이자 다음 단계로 갈 수 있는 열쇠가 되듯이 현실세계에서는 특정 능력들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 작가는 온라인 게임의 캐릭터로 변신한 사람들을 Misty Glass라는 특수한 유리를 씌워, 마치 모니터에 비친 아이콘처럼 보이게 한다. Misty Glass는 이미지를 픽셀로 이루어진 것과 같이 보이게 하는 효과를 자아낸다. 그들의 모습은 가장 전형적인 포즈로 정지되어 있으며 뿌옇게 보여, 모니터 안의 등장인물과 현실의 관객과의 거리를 느끼도록 한다. 그들은 진열장의 상품들보다 더 간편하게 선택되는 아이콘이며, 수동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보유 아이템과 외모 등을 보고 아이콘을 클릭하여 캐릭터를 선택하듯이 사람을 환산할 수 있는 가치로 선택하는 현실에 대해 꼬집고 있다.

Vol.20070617c | 0과 1의 경계에서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