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ality

박현수 회화展   2007_0601 ▶ 2007_0621

박현수_C-Untitled 3_캔버스에 유채_152×122cm_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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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601_금요일_5:00pm

송은갤러리 서울 강남구 대치동 947-7번지 삼탄빌딩 1층 Tel. 02_527_6282 www.songeun.or.kr

빛과 에너지의 상징적 표현형식 ● 인상파 회화의 탄생이 한 세기 반을 넘어서고 있는 지금에 있어서도 여전한 인기와 더불어 그 어떤 회화의 양식보다도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이면에는 색을 빛의 위치로 승화시켜 색의 절대가치 자체를 드높였던데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회화가 회화 자체의 정체성을 확보하며 스스로를 되돌아 볼 수 있게 했던 점은 또 다른 인상파의 업적인 동시에 회화의 역사에 새로운 장을 열게 했던 원천으로서도 의미를 지닌다. 이른바 자기비평적 시각이 바로 그것이며 이 시각은 미술사에 있어서 근대성의 확보라는 엄청난 에너지를 동반하고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때부터 회화는 단순히 외부의 대상을 자신의 평면위에 따 옮기는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차원에 머물지 않고 보다 독자적이고 자율적인 그림으로서, 대상을 빛의 차원에서 재해석하고 재구축해 가는 예술적 입지와 자유를 확보 할 수 도 있었다. ● 따라서 이러한 문맥에서 볼 때 오늘날의 모든 회화는 알게 모르게 인상파 회화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은 것이라 해도 결코 과한 말은 아닐 것이며 또 그러한 관점에서 새로운 회화의 형식은 그것이 비록 지극히 진보적이고 개별적인 요소의 것이라 하더라도 빛과 색의 개념적이고 추상적인 근대성의 논리와 방법론으로부터 결코 무관한 것이 아님을 알 수도 있다.

박현수_C-Untitled 1 / C-Untitled 2_캔버스에 유채_각 152×122cm_2007
박현수_Circle_캔버스에 유채_95×95cm_2007
박현수_Circle, Circle_캔버스에 유채_95×95cm_2007

박현수의 회화도 이러한 근대성의 논리와 긴밀한 상관관계를 지닌 채 보다 발전된 회화의 논리를 채택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선 발상적인 특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기실, 그의 회화는 회화가 갖는 절대조건을 반성적으로 되돌아보며 그 조건 자체를 색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방법론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출발되고 있다. ● 예컨대 회화의 평면위에 평평하고 엷게 발라지는 색의 두께를 의식한 채 그 엷은 구조 자체를 표현의 매체 내지 방법론으로 삼는 것이 그것이다. 얇은 색의 막을 뚫고 드러내는 화려하고 신비로운 색채의 '출현'은 그것이 화면에 그저 발라지는 얇은 붓 자국이 아니라 처음부터 색층의 아래에 존재했다가 작가의 손길에 따라 발산하는 일종의 색광과 같은 비물질적 존재로서 의식된다. 그것은 땅속 깊숙이 자리 잡은 광맥을 탐사하는 것처럼 평면아래 어디인가에 애초 자리 잡고 있을 색의 원천을 작가의 붓 작업이 찾아내고 파내어 세상에 선보이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때의 붓 작업은 얇은 평면을 탐사하듯 섬세하고 예리하며 그만큼 수공성을 높일 뿐 아니라 작업의 과정자체가 필연적으로 복잡한 다중적 구조를 갖게도 한다. 이를테면 배경과 이미지, 혹은 안과 밖이 서로 전치되어 버린다든지 뚜렷한 경계와 흐릿한 배경, 서로 반대되는 컬러가 바로 그것이다.

박현수_Rhythm_캔버스에 유채_122×122cm_2007
박현수_C-Nature 2_캔버스에 유채_61×122cm_2007
박현수_C-Untitled_종이_가변설치_2003~4

그 결과, 그의 작업은 일반적인 회화의 색 보다도 더욱 심층화 된 색의 존재성을 감수하게 할뿐 아니라 색의 이미지 자체가 비의적(秘儀的)인 분위기를 띄게도 한다. 작업적 이미지가 언뜻 고딕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와도 같은 신비로움이나 경건함을 던지는 이유는 바로 그와 같은 색의 존재성과 직결되어 나타나는 현상이라 할 것이다. ● 다만 작가 자신은 이러한 현상을 일종의 에너지 전도의 현상으로서 언급하고 있다. "바람은 실존하지만 눈에 잘 드러나지는 않는다. 나뭇가지, 잎의 흔들림, 책장의 넘어감 등의 부드러운 바람, 허리케인, 태풍과 같은 어마어마한 에너지의 바람..."이 있다고 설명하는 작가의 말이 그러한 현상과 사뭇 거리를 두는 해석 같지만 오히려 에너지와 빛이라는 비물질적인 요소를 원천으로 하여 에너지가 회화라는 평면의 장과 만나 하나의 상징으로서 환원되고 있다는 해석이 거기에 개입하면 결코 모순적인 것이 아님을 이해할 수 있고 또 그런 만큼 그에게 있어서 에너지란 오히려 색의 자율적인 기운으로서 해석되는 것이 올바른 관점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이 그저 어쩌다 단순하게 이루어 진 과정이 아니라는 사실도 여기에 덧붙여 둘 필요가 있다. 그것은 회화라는 것의 본질과 연결되어 스스로에 대해 던지는 자문, 곧 평면이 무엇이고 그 위에 발라지는 색은 도대체 어떠한 존재이며 색깔과 형태의 연합관계는 어떻게 구성될 수 있을 것인가를 오랜 유학생활 내내 사려 깊게 생각한 끝에 힘들게 찾아낸 결론이라는 것을 이해한다면 그의 작업이 지니는 회화적 문맥의 가치구조도 보다 자연스럽게 인식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 윤우학

Vol.20070617d | 박현수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