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lection, Paradox

구은경 칠예展   2007_0620 ▶ 2007_0626

구은경_A collecting mania - 상실에 대한 콜렉션_혼합재료_50×50×46.5cm_2006_정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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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620_수요일_05:00pm

가나아트 스페이스 1층 서울 종로구 관훈동 119번지 Tel. 02_734_1333 www.ganaart.com

실존의 공간 속에서 채집한 익명의 초상들 ● 이번 개인전에서 구은경은 현대인의 삶 혹은 일상적인 단상들을 내러티브(Narrative)한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우화적이고 서사적인 구조는 필연적으로 그가 전통적인 칠예를 하나의 기법적, 표현매체적 도구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명료하게 반증한다. 즉 칠예가 단지 실용적 목기나 목가구를 제작하는 전통적 매체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개념적 표현을 가능하게 하는 강력한 접속모드일 수 있음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구은경_A collecting mania - 상실에 대한 콜렉션_혼합재료_50×50×46.5cm_2006_좌측면
구은경_A collecting mania - 상실에 대한 콜렉션_혼합재료_50×50×46.5cm_2006_우측면

구은경의 이번 개인전 출품작들을 지배적으로 통어하고 있는 형식적 특징 중의 한 축은 알의 형태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 알의 형태를 절단하거나 마치 새장처럼 내부가 비치는 구조로 제작된 그의 작품들을 통해 우리는 그가 알을 하나의 완전하지 않은 세계나 한계 지워진 틀 안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 그리고 잠재된 내면의 세계 같은 것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엿보게 된다. 알은 자연계 특히 파충류나 조류의 새생명을 잉태하고 부화하기 전까지 보호되는 모태공간이다. 알은 그래서 미성숙한 생명체가 반드시 깨고 나와야만 구속적, 부자유한 공간인 것이다. 알 밖의 세상은 그래서 역설적으로 해방, 자유, 성장의지를 표상하는 반대의 세계이기도 하다. 구은경이 상정한 알의 형태는 그래서 내부와 외부, 잠재된 세계와 각성된 세계를 구별하는 하나의 경계표식인 것이다. 또 하나 구은경의 작품에서 인물 형상들은 픽토그램(Pictogram)에서 차용된 것들이다. 공공시설이나 다중이용공간에서 시설물이용을 안내하는 픽토그램은 하나의 도식화된 그림문자들이다. 구은경이 이 그림문자들을 사용하고 있는 이유를 유니폼과 같은 집단전형 혹은 익명성에 관한 비판적 성찰에서 찾을 수 있을 듯하다. 그는 미국, 일본, 인도의 공공시설물에 표시된 픽토그램들을 차용하여 작품에 반영하고 있는데, 여기서 소녀나 인도 여성상은 자신의 자전적(自傳的) 사유를 반영하는 매개체라면 뛰어 가는 남성상은 현대사회에 대한 우화적 성찰을 반영하는 표상들로 해석된다.

구은경_불가시 한 것을 향한 문은 반드시 보여야 한다_혼합재료_42×13×50.5cm_2007
구은경_Time limit_혼합재료_42×13×50.5cm_2007

그의 작품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 1898-1967)가 즐겨 다루었던 구름과 같은 형태의 판 위에 표현된 우화적 요소들이다. 구체적으로「Paradox, 우화」,「Collection, History」,「A Collecting Mania」와 같은 작품들이 그것인데, 이러한 유형들은 구은경이 초현실적이거나 비일상적인 상상의 뜨락에서 무언가 희망의 저 편을 바라보려는 의지의 소산으로 해석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Paradox, 우화」는 안과 밖이 뒤 바뀐 상황 즉 새장 안에 갇힌 소녀가 밖에서 순환하고 있는 듯한 목마를 바라보는 형태이다. 이러한 모순적이면서도 역설적 형국은 안과 밖이 보는 관점 혹은 상황에 따라 전도될 수 있다는 어떤 가능성을 예시하는 것이다. 또한 「Collecting, History」나「Universal, Life」의 경우 붉은 의자를 두고 끝없이 역주하는 듯한 남성 픽토그램이 표현되어 있는데, 이 역시 구름 위의 망상 혹은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 순환되듯이 반복되어 온 남성들의 권력의지의 허망함을 일깨워 주는 듯하다. 소녀상을 소재로 한 연작들은 탈출구를 찾는 불안한 심리적 상황을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들이라 할 수 있다. 예컨대, 「281개의 허구」나「가능성의 한계」라는 작품에서는 열쇠라는 특정한 사물을 등장시키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비밀의 문으로 들어가기 위한 많은 허구적 장치 속에 진정한 실체를 찾으려는 인간의 몸짓을 떠올려보게 된다. 환상 혹은 욕망의 방을 향한 인간들의 끝없는 희구, 그 열망의 물결 속에서 자기 자신 혹은 우리들은 늘 닿을 수 없는 것을 향해 발을 곧추세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Time limit」,「불가시한 것은 반드시 보여야 한다」와 같은 작품에서는 강박관념 혹은 시간에 쫓기며 살고 있는 우리들 삶의 한 단층을 여지없이 추스려 보게 한다. 나는 구은경의 이번 작품들 중「가치의 선택」과 「A Collecting Mania-상실에 대한 콜렉션」에 비평적 방점을 두고 싶다. 우선「가치의 선택」을 보자. 반구위에 부처처럼 죄정하고 있는 소녀의 머리 위에 밥과 시계가 저울추처럼 놓여져 있다. 생존과

구은경_가능성의 한계_혼합재료_42×10×50.5cm_2007
구은경_Paradox, 우화_혼합재료_35×35×29cm_2007

이번 구은경의 작품들에서 나는 칠예가 가질 수 있는 또 다른 가능성을 사막에 흐르는 오아시스의 물줄기처럼 싱그럽게 목도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우리들의 일상, 자전적 이야기, 현대인의 삶에 관한 비평적 성찰을 개념적 표현으로 들려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칠예 만이 가질 수 있는 그러나 칠예라는 경계 속에 머물지 않으려는 작가정신은 소중한 덕목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다. 구은경의 칠예작품을 실용적 기능이 없다고 이를 공예 아닌 영역의 이단적인 것으로 배척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만약 구은경의 작품이 칠예라는 기법과 기술로 조율되지 않았다면, 이번 개인전에서 보여 지는 작품에서의 내재적 특성과 개념적 사유들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구은경은 칠예를 가장 특별한 미디움으로 다루고 있으며 이러한 새로운 표현의 지평 속에서 우리들에게 진정한 컬렉션의 의미들을 상기시켜 주고 있다. 그것은 다른 의미로 공예와 순수미술 혹은 예술과 일상의 경계로 구분되지 않는, 그 넘다듦의 세상에서 발견한 의미의 장(場)일 수 있다는 강렬한 깨우침이기도 하다. 그래서 구은경의 작품들은 예술적 표현으로서 칠예로 빚어낼 수 있는 현실의 내러티브적 우화들, 그 조형적 표현가능성을 우리들에게 깊게 각인시켜주고 있다. ■ 장동광

Vol.20070622b | 구은경 칠예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