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부는 날

이환권 조각展   2007_0621 ▶ 2007_0712 / 주말 휴관

이환권_바람부는날_합성수지_woman-106×64×234cm / postbox-68×85×178cm_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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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621_목요일_06:00pm

포스코 미술관 초대展

관람시간 / 09:00am~06:00pm / 주말 휴관

포스코미술관 서울 강남구 대치4동 892번지 포스코센타 서관 2층 Tel. 02_3457_1665

바람 부는 날展 ● 고전시대의 인체조각은 이상화된 인간의 형상을 완벽하게 재현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환권은 고전시대의 조각처럼 현실세계 속의 인간의 형상을 추구하고 있지 않다. 이환권은 아예 처음부터 현실 속의 형상이 아니라, 이미지 세계 속의 형상을 좇고 있다. 그러니까 이환권이 만드는 인체는 가상공간 속의 인체들이다. 고전의 조소예술이 나르시서스의 형상을 좇았다면, 이환권은 나르시서스가 아니라 나르시서스가 사랑한 물 속의 환영(이미지)을 좇고 있는 것이다. ● 그래서 이환권의 인체들은 자유롭게 조작되거나 변형될 수 있다. 그 형상들은 마치 그림자처럼 길게 늘어나거나 짧게 짜부라져 있다. 작가는 모든 이미지가 무한정으로 조작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인체들을 멋대로 조작한다. 현실세계에서 그런 비례의 인체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이환권의 작품 속에서는 그럴 수 있다. 왜냐하면 어차피 그것들은 현실세계가 아니라 환영(이미지)의 세계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 그러나 이러한 왜곡이 마냥 낯선 것만은 아니다. 우리는 일찍이 시네마스코프같은 와이드스크린을 표준 TV모니터로 볼 때 그러한 영상의 왜곡을 경험한 적이 있다. 거기에서 영화 속의 인물들은 갑자기 위아래로 길어졌다. 그리고 또 우리는 이른바 '디지털시대'에 와서 왕년에는 특별한 프로페셔널들만 하는 것 같던 이미지의 다양한 조작과 변형을 누구나 간단히 할 수 있게 됐다. '포토샵' 등의 소프트웨어 덕분이다. 그 뿐만 아니다. 그보다 더 실감나는, 3차원에로 확장된 이미지 조작 프로그램을 활용한, 실제와 가상이 뒤범벅된 영상(C.G.)이 우리의 현실과 상상력을 휘젓고 다니고 있다. 그래서 이제 어린아이들도 사진 이미지의 현존성과 진실성을 믿지 않는 세상이다.

이환권_바람부는날_합성수지_woman-106×64×234cm / postbox-68×85×178cm_2007
이환권_바람부는날_합성수지_woman-106×64×234cm / postbox-68×85×178cm_2007

이환권의 인체조각 앞에 처음 섰을 때 나는 일종의 어지러움을 느꼈다. 물론 그 어지러움은 심한 형태의 왜곡에서 온다. 하지만 그것이 마치 아지랑이처럼 아스라하게, 때로 아찔하게 보이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 형상이 마구 조작ㆍ변형되는 이미지의 세계에서, 그 질서를 가진 채, 내가 서있는 실재세계로 넘어오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그러한 두 세계 사이에 있는 아스라함과 어지러움이 나르시서스를 더욱 견딜 수 없게 했고, 마침내 그 환영의 세계 속에 몸을 던지게 했는지도 모른다.

이환권_오늘은 공부하기싫어_합성수지_110×72×100cm_2007
이환권_오늘은 공부하기싫어_합성수지_110×72×100cm_2007

이환권의 인체는 심하게 왜곡돼 있지만, 어떤 몸짓을 갖고 있다. 그 몸짓은 아주 평범한 일상의 것들이다. 의자에 앉아 독서를 하는 남자(「책이 되다」), 책상에 엎드려 있는 여학생(「오늘은 공부하기 싫어」), 대화를 하고 있는 남녀(「같은 곳에 있지만」), 혹은 우체통에 편지를 넣는 여인(「바람부는 날」) 등이 그것이다. 그 몸짓은 내가 있는 실재하는 세계 너머 저 환영의 세계 속에 있다. 거기에서 그 몸짓이 그 세계를 건너 현실 속의 나에게로 와 무엇인가 말을 걸어온다. 어떤 의미를 보낸다. 그런데 이번에 전시되는 작품의 경우, 나는 거기에서 어떤 비극적 정조를 감지한다. 이를테면 작품「바람부는 날」에서 그 편지가 과연 행복한 내용일까 하는 의문이 인다. 왜냐하면 그녀가 누군가에게 보내는 것이 그 세대가 흔히 하는 문자 메세지나 이메일이 아닌 우체통을 통하는 편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기에 뭔가 무거운 내용이 있을 것이라 짐작하게 되기 때문이다. 독서에 몰두하여 마침내 책의 내용으로 함몰하는 사람의 모습「책이 되다」도 그렇고, 나른하게 늘어지며 존재감을 잃어 가는 듯한, 무책임하게 사라지고 싶은 듯한 소녀의 모습「오늘은 공부하기 싫어」에서도 나는 이 세계와 화해롭지 않은 존재의 표정을 읽는다.

이환권_책이되다_합성수지_280×59×150cm_2007
이환권_책이되다_합성수지_280×59×150cm_2007
이환권_같은곳에 있지만.._합성수지_Man-700×60×27cm / Woman-450×58×180cm_2007

그 중에서도 작품「같은 곳에 있지만」은 작가가 이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 즉 '평화와 조화'라기 보다는 '불화'를 겪고 있는 이 세계를 명백하게 드러낸다. 이 작품에서 남녀는 같은 장소에 두발을 딛고 대화를 하려하고 있다. 하지만 남자가 지평에서 그저 길게 뻗히고 있는 그림자 형상인데 반하여 여자는 허리 즈음에 이르러 벽에 부딪혀 그 형상이 꺾이고 있다. 그리하여 남녀는 서로 다른 자세로, 다른 차원에서 각각 말하거나 듣고 있는 모습이다. 참으로 절묘한 표현이다. 인간 사이의 소통의 어려움, 흔히 겪는 상호이해의 불가능함, 그 막막한 고통, '같이 있지만, 같이 있지 않음'을 이렇게 설득력 있게 3차원의 공간에서 표현한 것을 나는 아직 본 적이 없다. ● 이환권의 작업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의 한 중요한 국면을 드러내 보여준다. 그래서 나로 하여금 이 세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나는 이환권이 우리 조소예술의 지평에서 어느 한 부분을 새롭게 열어가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믿는다. ■ 이태호

Vol.20070623b | 이환권 조각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