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적인 물질

엄익훈 조각展   2007_0622 ▶ 2007_0701

엄익훈_untitle_동_가변설치_2007

초대일시_2007_0623_토요일_06:00pm

갤러리 J1-2007작가공모 기획전 II

갤러리 J1 서울 마포구 당인동 12-1번지 제일빌딩 4층 Tel. 02_3142_4811

엄익훈-생성적인 물질 ● 엄익훈은 동이라는 물질에 작가의 신체를 개입해 형태변형을 꾀한다. 그 신체는 불과 연장으로 연결되어 있다. 물질은 본래의 쓰임새나 고정된 모습에서 벗어나 자의적으로 변태를 일으킨다. 재료가 또 다른 물리적 성질을 암시하는 형태로 변이되어 가는 과정을 눈으로 지켜보도록 하는 것이 이 조각가의 일이다. 그것은 물질과의 유희이자 고정된 물질에 상상력을 더하며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을 꿈꾸고 실현시키는 일이다. 조각이란 3차원적 공간에 물질을 어떤 상황성으로 연출해 놓는 일이다.

엄익훈_untitle_스틸_70×40×50cm_2007
엄익훈_untitle_스틸, 대리석_40×35×65cm_2007

그는 동이 파이프의 형태나 판의 상태로 자리한 것으로부터 출발해 이를 자르고 두드리고 구부리는 한편 열을 가하고 표면에 무수한 자극을 주어 다양한 질감과 표면의 상태로 전개시켰다. 그로인해 본래의 상태로부터 멀어져 다소 기이한 존재성을 시각화한다. 그것은 점차적인 시간의 추이를 반영하면서 서서히 작아지고 촘촘해지는가 하면 커다란 덩어리로 나뉘다가 위나 아래로 사라지는 듯한 환영을 연출한다. 무엇보다도 이 조각은 물질덩어리가 하나의 회화적 장면으로 펼쳐졌다. 그것은 물질로 이룬 회화이자 물질이 열/압력에 의해 구체적인 변화를 겪은 과정 자체를 보여준다. 아울러 좌대는 성격이 다른 물성을 선택해했다. 그러니까 나무나 돌로 좌대를 만든 후 그 위에 동/철을 수직으로 일으켜 세우거나 펼쳐놓은 형국이다. 마치 천 조각이나 원기둥처럼 자리해 그 표면에 무수한 사건을 전개시킨 형국이다.

엄익훈_untitle_동, 대리석_32×9×60cm_2004
엄익훈_untitle_동, 대리석_21×6×30cm_2006

전후에 전개된 현대조각은 금속을 손쉽게 연결시킬 수 있는 용접기술을 통해 철의 사용을 무한히 확장시켰고, 조각가들은 이러한 기술을 미술에 도입하여 전혀 새로운 개념의 조각을 발전시켰다. 철 조각, 용접기술은 이전의 조각과는 달리 작가들에게 표현의 자유로움과 공간을 점유해나가는 새로운 방법론을 보여주었다. 용접은 서로 떨어져 있는 금속을 불로 녹여서 연결하는 것이다. 이 용접기술은 거대하고 복잡한 형상제작을 가능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형태상의 자유로운 표현과 다양한 변화 역시 제공해주었다. 그로인해 조각이 회화에 버금가는 폭넓은 표현성을 획득하게 되었다. 용접조각은 조각의 재료가 돌이나 나무, 청동이라는 전통적 개념을 깨뜨렸을 뿐 아니라 조각의 영역을 깍아내기나 살붙임의 차원을 넘어 완전히 새로운 방법의 조형언어를 가능하게 했다. 그것은 또한 물질의 상황변화나 가변성을 적극 고양시켰다. 조각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생성적인 물질로 나아간다. 또한 단단한 덩어리만이 조각이 될 수 있다는 전통적인 개념이 와해되면서 공간 자체가 적극적인 조각의 표현매체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즉 조각이 공간을 물리적으로 점유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을 조각 내로 끌어들이는 동시에 매스를 부정하고 공간 속에 자유롭게 존재할 수도 있게 되었다. 마치 추상회화에서 깊이감이 없어졌듯 조각에서도 3차원적인 입체감이 없어진 것이다. 이제 공간은 단순한 빈 공간이 아니고 하나의 볼륨으로 작동하게 된다. 동이나 철이 불에 녹으면서 만들어지는 우연적인 효과로 표면에 다양한 질감을 낼 수 있어 '살아있는' 표현적인 작품이 된다.

엄익훈_untitle_동, 대리석_80×20×122cm_2007
엄익훈_untitle_동, 나무_85×35×105cm_2005

엄익훈의 조각 역시 동이라는 재료를 가지고 어떤 외부의 대상을 모방하거나 특정한 형태를 재현하고 연상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물질이 다채로운 변화과정을 드러낸다. 재료가 지닌 물성을 온전히 드러내는 것이 그의 조각의 요체이다. 아울러 그 물질을 생성적으로 만들고 하나의 풍경적인 물질의 초상으로 그리는가 하면 시간의 진행 아래 서서히 다른 상태로 전개되는 순간을 얼려놓는 일이 그의 조각적 관심이다. 그러나 그 결과물과 방법론이 기존 조각 작업의 관습적이고 고루한 틀 안에서 자유롭지는 못해 보인다. 다시 그의 동을 다룬 작업을 보면 무엇보다도 집약적인 노동이 얹혀져있음을 볼 수 있다. 그 아날로그적인 노동과 손의 축적은 물질과 작가의 신체가 어우러져 빚은, 유일무이한 물질의 상태임을 증거한다. 그는 동판이나 동 파이프에 오랜 손의 노동, 무수한 시간이 집적, 열을 가하고 입혀놓아 그 물질이 상태가 유연하게 흐르다가 서서히 소멸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에 따라 동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존재로 자리했다. 그것은 더 이상 고정된 물체의 개념에 사로잡히지 앉은 체 동적인 상태로 흐른다. 작가는 부동의 물질에 시간을 부여하고 주름을 잡고 일루젼을 주었다. 정처없이 순환하는 독특한 물질관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엄익훈의 조각이다. ■ 박영택

Vol.20070623d | 엄익훈 조각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