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꿈꾸다

이혁진 그림조각展   2007_0627 ▶ 2007_0703

이혁진_무제_에폭시에 아크릴채색_각 90×30×24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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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627_수요일_06:00pm

갤러리 아트싸이드 서울 종로구 관훈동 170번지 Tel. 02_725_1020 www.artside.org

너는 네 자리에서 배제되었다 ● 시커멓게 웅크린 빌딩들의 그림자 틈바구니에 끼어 있다. 마음이 옴짝달싹 못하고 있는 와중에도 몸은 창밖으로 분주히 넘나든다. 군데군데 찢겨진 어둠을 버겁게 비집고 나와 한줄기 물길이 되어 서서히 밀려가다가 다시 소용돌이치며 무겁게 밀려오는 도심의 야경 그 빛의 무게로 짓눌린 어두운 대기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난 발 밑에 세상의 끝을 메달고 다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중력을 거부하며 발끝을 타고 오르는 무게감에 어깨는 잔뜩 힘이 들어간 채 움추려 들고 거세게 두드리던 심장고동은 피부 속으로 잦아든다. 그리고 흐릿한 풍경을 흡수하는 망막 위로는 나른한 오후에 불가항력의 기운으로 내 몸을 따사롭게 덮어 내리던 은빛 외투의 눈부신 빛깔을 왜곡시키고 아울러 나의 시간마저 퇴행시키는 허연 상실감이 덕지덕지 내려 앉는다. 그것은 눈에서 넘쳐나 이내 두 뺨을 타고 흘러내리다가 입술가에 촉촉하게 맺혀 슬픔이라는 언어로 우물거리며 목구멍을 타고 넘어 들어간다. 그리고는 지칠줄 모르는 에너지원처럼 거대하게 퍼져나가는 메아리처럼 끊임없이 현기증을 뿌려대며 내 몸을 조용히 흔들어대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게 흔들리는 몸으로 걷고 있을 때 지하철 기둥에서 나를 노려보고 있는 기호와 마주쳤다.

이혁진_무제_에폭시에 아크릴채색_60×30×150cm
이혁진_무제_에폭시에 아크릴채색_60×60×220cm

그 기호는 무딘 쇳소리로 이야기한다. 넌 네 자리에서 배제되었다! 난 억울한 마음에 어리석음으로 한껏 부어 오른 가슴을 젖히고 부끄러운 낮빛을 삿대질하듯 들이밀며 볼멘소리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 내 자리는 어디란 말인가? 기호는 어처구니 없는 내 반응을 전혀 예상하지도 못했다는 듯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되묻는다. 네가 서 있는 그 곳이 너의 자리라고 생각하는가? 네가 차지하고 있는 자리에 네가 없다는 것을 정말 모르고 있단 말인가? 그 소리는 현기증과 함께 나를 향해 쏟아져 내렸다.

이혁진_무제_에폭시에 아크릴채색_90×40×170cm
이혁진_무제_에폭시에 아크릴채색_110×40×190cm

이것은 무슨 소리인가? 늘 나의 발 바닥에 붙어서 내가 가는 곳 어디나 항상 따라다니던 이 세계로부터 내가 버림을 받았단 말인가? 그것이 아니라면 어둠속에서 단조롭고 2차원적이던 세상이 거품처럼 부풀어 올라 어느새 나의 발 밑으로부터 벗어나 급기야 텅빈 공간속에 나만 홀로 남겨둔 채 떠나버린 것일까? 어지러운 웅얼거림이 잦아들자 난 예상치 못한 충격으로 다가온 그 진실을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렇다면 그 기호의 외침처럼 내가 내 자리에서 어느 순간 배제되었다면 나는 정말 나 일수 있을까? 어쩌면 내 자리로부터 배제되기 이전에 난 그 자리에 없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찌그러진 진실의 알을 깨고 나의 가장 깊은 곳에서 은밀하고도 혐오스러운 몸짓으로 솟아오른다. 그러면 나는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일까? 내가 속해 있다고 믿고 있는 이 세계는 무엇이란 말인가? 나로 인하여 존재하는 모든 것 속에 부재하는 나는 내가 머물고 싶어하는 자리를 쫒는 결코 그 자리에 설 수 없는 나를 꿈꾸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직 꿈꾸는 행위로만 숨쉬며 살 수 밖에 없는 내가 아닌 그저 나이고픈 그는 슬픈 것이다.

이혁진_무제_에폭시에 아크릴채색_190×30×100cm
이혁진_무제_에폭시에 아크릴채색_130×10×250cm
이혁진_무제_에폭시에 아크릴채색_120×10×260cm

그렇게 슬픔은 꿈 속에서 잉태되고 그의 등 뒤 어둠 속에서 키워지고 있다. 이제서야 정체를 드러낸 그의 슬픔은 뾰족하고 누렇게 뜬 송곳니 사이로 비열한 웃음을 흘려대며 나의 복종을 강요하고 있다. 녀석이 내게 요구하는 단 한가지 복종은 거미가 능숙한 동작으로 제 몸 속에 엉킨 실타래를 한 올씩 풀어내듯 꿈속에서 풀어낸 절망의 실로 나를 위한 단 한 벌의 수의를 만드는 것이다. ■ 이혁진

Vol.20070627a | 이혁진 그림조각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