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불작가 오천룡 : 컬렉터 4인 소장展

CHUNRYONG H & 4 collectors   2007_0907 ▶︎ 2007_0915

오천룡_Starry Night_캔버스에 유채_60×73cm_2005

초대일시_2007_0906_목요일_06:00pm

갤러리 LM 서울 강남구 신사동 565-18번지 자스미빌딩 B1 Tel. 02_3443_7475

본 전시는 미술 애호가들에게 올바른 컬렉션 문화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는 뜻 깊은 전시이다. 고교 동창생들이었던 4인의 컬렉터, 각기 다른 사회 분야에서 뛰고 있는 우리의 아버지들 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우정으로 빚은 훈훈한 감동의 이야기이다. 작가 오천룡(1941년생)은 36년 동안 파리에 머무르면서 다양한 미술사조와 거장의 작품을 끊임없이 체험하고 탐구하면서 변화해온 자신만의 고유한 작품 세계를 보여주었다. 1965년 서울미대 졸업 후 추상작가로 데뷔한 후, 1971년 도불하였고 현재 파리에서 활동 중이다.

오천룡_Passerelle du canal Saint Martin_캔버스에 유채_53×45cm_1980

소장가들에 의해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또한 재불작가 오천룡의 12년만의 고국에서의 개인전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각별하다. 작가 오천룡은 60년대 구상에서 추상으로 전환하는 한국 근대미술의 증인이기도 하다. "서양그림이 과연 어떻게 생겼는지 실제로 한번 보고 싶다" 이 꿈은1971년 작가를 프랑스로 이끌었다. 그 후 파리의 아카데미 그랑쇼미에르와 파리국립미술학교에서 수학하며70년대 초기에 구상화로 회귀하다가 70년대 후기에 들어서는 모노크롬을 모색한다. 1977년 프랑스 문화성에서 유화 작품 마뉴땅시옹 가를 소장하게 되었다. 80년대에 접어들면서 흑색 윤곽선 발견 후, 이 작업에 한 동안 심취한다. 그의 이러한 변환을 거친 작업 모두는 색채감을 살리기 위한 멈추지 않은 작가의 연구의 결실이다. 오천룡 작가에게 색채가 지닌 의미는 생명과도 같은 것이다. 누구보다도 마티스를 존경한다고 고백한다. 95년부터 2001년까지 흰색 바탕의 나뭇잎 작업에 주력한다. 이 작업은 흰색 바탕이 내포한 동양의 여백의 미와 서양의 색채의 미가 결합된 동서양을 초월한 미학적 성과이다. 최근 파리 마티뇽가의 생또노레 보험사의 전시를 통하여 그 나뭇잎 시리즈를 처음으로 대중에게 선보였다. 흰색 바탕은 나뭇잎의 색감을 고조시켜 마치 오색 단풍이 빛과 공기로 산란되는 듯한 강렬한 자연의 생명력를 발산한다. ● 1950년대부터 김환기, 이응노, 남관, 한묵, 이성자 등 수 많은 작가들이 프랑스를 경험하며 작품의 다양한 변화를 선보였고, 이를 국내 미술계에 소개했다. 1971년 도불한 오천룡은 재불 작가 2세대로서 오로지 작업에 헌신하며 유럽 등지에서 작가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또한 현재 정헌메세나 대표로 활동하며 자신의 이국 땅에서의 체험을 토대로 젊은 차세대 작가들에게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오천룡_Perroquet_캔버스에 유채_28×33cm_1994

컬렉터 김창세, 박재휘, 서민석, 이영서 ● 제가 파리에 도착한 1971년, 제 친구들은 20대 말 즉 28살, 29살 때 였습니다. 그는 그 때를 회상하며, 친구들에게는 작가가 유명하거나 출중해서가 아니라, 단지 그림 그리는 친구 하나가 파리에 살고 활동하고 있다는 것에 자랑스러워했다고 한다. 그러다 어느덧 10년, 20년 그렇게 흘러간 시간들에 벌써 반생 이상을 파리에서 줄곧 버티고 있는 작가를 응원하고 지지해 주었다고 한다. 그러한 친구들이 네 명이나 있었기에 다른 곳에 눈길을 돌리지 않고, 묵묵히 오로지 작품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고 한다. ● 이번 소장작의 컬렉터인 김창세(국제 변호사), 박재휘(PACAT GmbH대표, 재독), 서민석(동일그룹 회장), 이영서(SNF회장)는 그와1961년 경기고교 졸업 동기들이다. ● 박재휘(1943년생)는 1972년 처음으로 작품 누드(1971년작)를 구입한 고마운 친구이다. 일찍이 독일에 도착하여 갖은 아르바이트를 다하며 열심히 생활하던 시절, 파리에 온 오작가를 찾아왔었다고 회상한다. 이번 전시에 13점을 출품하며, 그 외에도 데생, 수채화, 유화를 십여 점 더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 프랑크푸르트에서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 이영서(1943년생)는 1974년 무역회사 직원으로 유럽 출장 길에 작가의 파리 집에 들렀다가 복도 한 구석에 걸려있었던 센느강 강둑 풍경(1973년작)이라는 작품을 출장비를 덜어주며 가져 갔다고 작가는 회상한다. 그는 작가와 함께 중학교 미술반 활동을 함께 했는데, 오작가의 당시 그림 솜씨를 보고 경쟁이 안 될 것 같아서 그림 그리는 것을 포기했다는 일화도 있다. 그는 서울상대 졸업 후 무역회사 직원으로 시작하여 동양매직 대표이사를 역임했고 현재SNF회장으로 있다. 그는 소장작 9점을 출품한다. ● 서민석(1943년생)은 1971년 파리 출장길에 온, 작가가 만난 최초의 동창생이다. 현재 동일그룹 회장으로 파리에 정헌메세나협회를 세운 장본인이다. 1979년 서울에서 처음 열린 오천룡 귀국전에서 가슴을 보인 여인(1976-77년작)을 구입한 후, 꾸준히 모아서 현재 파리미술대학 시절 화실의 여인(1974년작) 부터 색채가 강조된 선(線)작업의 최근작 아가와 엄마(2005년작)에 이르기 까지 고르게 유화 10점을 소장하고 있다. ● 제일광장 특허법률사무소 대표로 있는 김창세(1942년생)는 4명 중에 가장 늦게 작품을 구입하기 시작하였다. 1967년에 도미하여 화공학 박사, 법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미국 Exxon 석유화학 회사에서 변호사로 근무하였다. 귀국 후 대우그룹에 입사하여 대우전자 부사장으로 퇴직한 후 지적재산권 분야 법률업무를 시작한 1988년 독일 출장 길에 퀠른 안화리나 화랑에서 열린 작가의 개인전에서 보트 호수(1984년작)라는 작가의 런던시절 작품을 처음으로 구입했다. 그 때부터 줄 곧 19년 동안 작가가 파리에 도착해서 처음 그린 뽕데자르(1971년작)를 비롯해서 최근작 별들이 총총한 밤하늘(2005년작)까지의 시대별 작품을 매년 2-4점씩 구입하여 현재 57점을 소장하고 있다. 무분별하게 작품구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컬렉터로서의 뚜렷한 가치관을 갖고, 오로지 오천룡 작가의 작품만을 고집하는 그는 작가에게 매우 귀중한 은인 이다.

오천룡_Pont des Arts_캔버스에 유채_54×65cm_1971

2007년 가을, 재불 작가 오천룡의 36년간의 프랑스 체류의 결실로 12년 만에 고국에 선사하는 이번 전시를 통하여 그의 다채롭고 깊이 있는 작품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컬렉터 4인의 소장품 전시라는 색다른 기획을 통하여 이 시대의 참된 컬렉션 문화를 선도할 수 있는 뜻 깊은 전시이다. 또한 이번 전시는 그간 작가를 지원하여 준 친구들에 대한 고마움에 대한 작은 보답의 메시지를 담고 있어 훈훈하다. 소장전과 더불어 특기해야 할 것은 소장품 전시작 국영판 도록의 출판이다. 전시작 89점에 대하여, 한 작품 한 작품, 오천룡 작가가 직접 제작동기와 이에 얽힌 일화를 곁들여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였다. 이는 작가가 관객과의 대화라는 또 다른 예술의 대중화에 대한 선언이다. ■ 갤러리 LM

Vol.20070909e | 재불작가 오천룡 : 컬렉터 4인 소장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