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공간-Space of flows

장희진 회화展   2007_0928 ▶︎ 2007_1009

장희진_wave detail view_gouache, gel on modelled canvas_120×240cm_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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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928_금요일_06:00pm

갤러리 도올 기획展

갤러리 도올 서울 종로구 팔판동 27-6번지 Tel. 02_739_1405 www.gallerydoll.com

장희진의 풍경은 나뭇가지로 비쳐드는 숲의 풍경이다. 그간 수평, 수직의 요철형태에 자연의 이미지를 표현하던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특히, 크게 바람이 불어오는 듯한 웨이브 형태의 작품을 선보인다. 캔버스 사각 틀 안에 요철과 같이 음영으로 처리된 이미지는 가까이서는 표면의 줄무늬가 만드는 빛의 각도에 따라 추상화로 보이며, 멀리서는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사실적 풍경화로 보인다. 특히나 패턴화된 요철이 조성된 화면에 특정의 한가지 색채로만 자연의 이미지를 그리는데, 자연 자체보다는 자연이 머문 흔적, 그 형상을 보이게 하는 사이공간의 빛의 이미지를 연결하여 그린다. 자연 자체의 형상이 아닌 사이공간을 그리는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특히나 큰바람이 있는 듯한 웨이브 배경으로서 공간의 흐름-흐르는 공간에 그 의미를 두었다. 장희진의 그림에서는 기하학적으로 패턴화된 배경과 단색조로 그려진 자연의 형상들, 어찌 보면 아주 절제된 미니멀리즘적으로 보이면서도 강렬한 색채에서 오는 화려한 이미지가 공존한다. 자연의 실제 풍경을 사진으로 찍어 인화와 프린트 과정을 거치며, 그 사이 공간의 빛의 연결로 얻게 된 단순화된 풍경은 이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듯 작가의 손에 의해 수공예 기법으로 만들어진 요철 위에 강렬한 단색조로 그려진다.

장희진_a space_gouache, gel on modelled canvas_120×240cm_2007

장희진의 그림은 평면이 아니다. 입체적인 줄무늬를 만들기 위한 축적(Accumulation)의 과정을 거쳐 들어가고 나온 요철이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작가는 캔버스 위에 일일이 테이프를 규칙적으로 얇게 붙인 후 그 위에 모델링을 겹겹이 쌓아 올린다. 수십번 층을 올리고 난 후 테이프를 떼어내고 사포로 문질러 다듬는다. 작가의 섬세한 노력과 에너지로 만들어낸 요철 위에 풍경이 그려지게 된다. 두층의 높낮이를 가진 배경은 그사이로 두개의 풍경을 가지게 된다. 이때 보이는 풍경들은 형상이 아니라 사이공간에서 보이는 빛들을 찾아 점의 터치로 연결한 것이다. 결국 장희진의 작업은 허상을 그려나가면서 실제의 이미지를 얻어낸다. 장희진의 그림 안에서는 자연의 재현과 허상이 주는 이미지, 즉 환영이 공존한다. ● 작가는 자신의 작품 속의 주인공은 '사이-in between'라고 하였다. 만져지는 현실적인 것들 사이에 숨어있는 조연 공간들을 사이공간으로 보고 그것들을 찾아나간다. 그것들은 존재하는 나무들이 만들어낸 만져지지 않는 공간을 보여주는 일종의 경계이며 만져지지 않는 형태, 끼어있어 찾아가는 공간이다. 그녀의 풍경은 비어있는 것과 채워지는 것, 존재하는 것과 보여지는 것에 대한 시공간에 대한 의문의 제기이다. ● 존재하지 않는 형상-사이공간의 빛의 이미지로서 자연의 이미지를 개념적으로 표현하는 작가는 공간의 흐름으로 그 개념을 확장하여 크게 웨이브 치는 듯한 배경으로 새로운 공간감을 더한다. ■ 갤러리 도올

장희진_a space_gouache, gel on modelled canvas_70×250cm_2007
장희진_wave detail view_gouache, gel on modelled canvas_70×250cm_2007

미디어 시대의 자연의 의미 ● 현대인에게 자연은 무슨 의미일까. 그는 자연을 찾아나서기 보다는 자연풍광을 선전하는 카탈로그의 관광지 사진을 보고 즐기며, 힘겹게 산을 오르기보다는 TV 속의 에베레스트 등정 장면에 공감하며,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방영되는 불을 내뿜는 활화산 장면에 감탄한다. 자연 자체보다는 자연의 이미지를 향유하는 것이다. 사진과 영상, 잡지와 각종 인쇄물 등의 온갖 매체들이 이러한 자연의 이미지를 유포시킨다. 이 매체들은 자연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는 일종의 아우라를 부여해서 자연을 신비화한다. 자연 그 자체란 모든 살아있는 유기물이 그렇듯이 아름답지만은 않다. 그리고 대개는 삶의 현장으로부터 동떨어져 있기 마련이다. 미디어는 자연의 아름다운 국면만을 극대화하고, 더욱이 눈앞에다 들이밀 듯이 실현해보여주기 때문에 쉽게 매료된다. 자연보다 더 아름다운 이미지, 자연보다 더 자연 같은 이미지, 마침내는 실제의 자연과는 최소한의 상관성마저도 결여한 고도로 추상화된 이미지(자연의 순수한 표상을 획득한 이미지)가 실제로 자연을 대면하기까지의 수고로운 과정을 덜어준다. 더욱이 정작 자연을 대면할 때의 감각경험은 순간에 지나지 않지만, 한 장의 사진 속에 찍힌 자연의 이미지는 두고두고 그 감각을 즐기게끔 해준다. 현대인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연을 상실한 것이다.

장희진_a space_gouache, gel on modelled canvas_70×250cm_2007

자연을 소재로 한 장희진의 그림은 자연에 대한 이러한 왜곡된 현실인식을 주지시키는 한편, 현대인이 상실한 자연을 되돌려주려는 기획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이를 위해 작가는 자연의 감각적 외피를 그대로 재현하기보다는 일정정도 이를 추상화한다. 자연을 직접적으로 모사하는 대신에 일종의 암시적인 과정과 방법을 통해 감각적인 표면의 이면에 가려진 자연의 본질(자연성)을 상기시키려는 것이다. 얼핏 보면 그림에서의 자연은 그 실체가 잘 드러나지가 않는다. 그림에선 다만 기하학적인 줄무늬 형태의 패턴화된 문양이 반복적으로 중첩돼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히 화면에 그려진 것이 아니라 마치 저부조처럼 깊게 패인 요철의 형태로서 현상하며, 이 요철이 화면에다 그림자를 만들고, 나아가 시점에 따라서 화면을 다변화시키기조차 한다. 작가는 이렇게 패턴화된 요철이 조성된 화면에다 특정의 한 가지 색채로만 자연의 이미지를 덧그리는데, 자연 자체보다는 자연이 머문 흔적, 그 자취를 암시할 뿐이다. 예컨대 파문을 일으키며 번져나가는 수면에 투영된 자연의 반영상을, 그리고 벽면에 드리워진 자연의 실루엣 형상을 연상시킨다.

장희진_a space_gouache, gel on modelled canvas_70×250cm_2007
장희진_wave detail view_gouache, gel on modelled canvas_70×250cm_2007

이처럼 작가의 그림에서의 자연은 기하학적 문양과 단색조의 화면으로 한정돼 있다. 미니멀리즘적 환원을 떠올리게 할 만큼 금욕적이면서도 장식적인 이 화면을 통해 작가는 자연의 감각적 실제보다는 그 관념적 실재를 표상한 것이다. 그리고 이는 바람과 대기가 하나로 어우러지고 빛과 어둠이 서로 희롱하는 자연의 비가시적인 영역을 드러낸다. 화면에 새겨진 규칙적이고 반복적인 결로써 자연의 결을 드러내는데, 이는 자연의 호흡이나 숨결과도 통한다. 또한 프린터와 같은 각종 미디어를 통해 재해석된 자연의 이미지를 암시하며, 엄격한 화면 구성과 유기적인 이미지와의 결합을 통해 미디어 시대의 자연의 (진정한) 의미를 되묻고 있는 것이다. ■ 고충환

Vol.20070930b | 장희진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