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정원에서 꿈을 꾸다

한상진展 / HANSANGJIN / 韓相振 / painting   2007_1027 ▶︎ 2007_1103

한상진_flash gardn-division day_벽에 페인팅_약 600×60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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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예진흥기금 신진작가 지원프로그램 선정展

갤러리 숲 서울 마포구 창전동 6-4번지 전원미술학원 B1 Tel. +82.(0)2.322.7911

정원, 빛으로서의 존재감 ● 한상진의 그림은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비정형의 얼룩이나 흔적들이 화면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여백과 어우러져서 화면 여기저기에 포치해 있는 이러한 얼룩이나 흔적들이 재현의 논리 대신에 (순수한) 형식논리에 의해 견인되는 모더니즘 회화의 강령을 충실히 답습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회화를 회화이게 해주는 당위성을 형식적인 요소에서 찾으려 했던 모더니즘의 이상은(당신이 보는 것이 보는 것이라거나, 캔버스 뒤쪽에는 아무 것도 없다는 프랭크 스텔라의 말은 이런 모더니즘적 환원주의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논리적으로는 가능할지 모르나, 실제로는 불가능한 기획이었다. 인간의 의식은 한갓 무의미해 보이는 얼룩에서조차도 의미를 찾아내려는 습성이 있기 때문이다. 작가가 비록 모더니즘의 세례를 받았다 하더라도 의미와 내용이 완전히 배제된 그림이나 형식논리에 천착한 모더니즘의 원칙 그대로를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모르긴 해도 생리에도 맞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의구심은 작가로 하여금 일정한 돌파구를 모색하게 한 것으로 보이며, 이는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은 얼룩과 흔적으로써 미처 그림으로 그려지지는 않은 그 무엇을 떠올려주는 암시와 상기의 문법을 찾아내게 한 것으로 보인다. 세상에는 그 실체를 육안으로 확인해볼 수 있는 정형의 형상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비가시적인 이미지나 비가청적인 소리와 같은 감각적 실재, 그리고 심지어는 순수 관념적 실재와 같은 비정형이나 무정형의 형상들도 많다. 이것들은 바람과 공기와 빛의 질감이나 시간의 지층처럼 구체적인 형상의 표층 위로 끄집어 올릴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러니까 한상진은 이런 암시적인 형상을 그린다. 그림 속에 자신을 투사하되 정형화된 언어로는 환원되지 않는 인상이나 느낌의 결들, 또는 온전한 형상은커녕 파편화된 조각으로만 겨우 복원될 뿐인 불완전한 기억의 편린들을 그린 것이다. 작가는 말하자면 순수형식이 아닌 의미가 내장된 형식(의미 있는 형식), 그려지지 않은 그 무엇을 떠올려주고 암시해주고 상기시켜주는 형식을 모색한다. 그리고 형식과 내용이, 형식과 서사가 만나는 접점에 주목하는 한편, (순수하게 혹은 다분히) 형식적인 그림 속에다 주체를 담아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다. 이로써 궁극적으론 의미 있는 것과 의미 없는 것의 비가시적인 경계를 넘나드는 싸움, 즉 순간순간의 감각으로써 그 애매한 실체를 거머쥐려는 싸움의 구실과 이유를 찾아낸 것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애매한 실체를 그 대상으로 한 것인 만큼 작가는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한참동안 헤맬 가능성이 다분하다. 그러나 작가는 이 과정을 모순으로 이해하는 대신 그 자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끌어안음으로써 존재론적 자의식과 연결시킨다. 무의미한 것들(사실은 그 속에 의미를 내장하고 있는 것들), 애매한 것들(사실은 그 속에 실체를 내장하고 있는 것들), 존재감이 희박한 것들과의 치열하고 진지한 놀이를 노는 것이다.

한상진_flash gardn-division day_벽에 페인팅_약 600×600cm
한상진_빛의 정원-회색, flash gardn- multiple gray_패널에 혼합재료_가변설치
한상진_빛의 정원-고요, flash gardn-silence_패널에 혼합재료_15×15cm, 가변설치
한상진_빛의 정원-우일雨日, flash gardn-rainy day_패널에 혼합재료_15×15cm, 가변설치

'빛의 정원에서 꿈을 꾸다'는 전시 주제에서도 드러나듯이 작가는 캔버스를 그 놀이가 전개되는 장으로 간주하고, 그 장을 빛의 정원으로 형용한다. 그리고 캔버스에서의 그림 그리기는 꿈을 꾸는 행위와 동일시된다. 여기서의 빛은 실재하는 빛이거나 물리적인 빛이라기보다는 작가가 자신의 심연으로부터 길어 올린 내면적인 빛이다. 아득한 기억의 저편으로부터 발해지는 일종의 심리적인 징후로서의 빛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빛의 정원은 말하자면 작가의 회상이 맞닿아 있는 과거의 한 시점을 지시하는 동시에, 일종의 심리적인 빛의 아우라가 드리워져 있는(마치 빛바랜 사진첩에서와 같은) 무형의 장소를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한상진은 철분이나 석분 그리고 흑연 등의 광물질 안료를 다른 안료와 섞어서 표면질감의 다변화를 꾀하는데, 이를 통해 드러난 여타의 비정형의 흔적이나 얼룩들로 하여금 이러한 기억과 회상의 잔영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미세 유리 알갱이 소재인 크리스털 비즈를 안료와 섞어 도포하는 과정을 통해서는 일종의 내재적이고 내면적인 빛을 형상화한다. 은근한 빛을 발하는 자기발광성 소재인 비즈의 표면질감이 보는 각도에 따라서 미세하게 반응하는 빛의 효과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비정형의 흔적과 얼룩들의 표면에 투명하고 은근한 빛의 막이 드리워져 있는 것 같은 이러한 느낌은 회상의 계기나 실마리로서의 (일종의 심리적인) 빛의 속성을 닮아 있으며, 그 빛의 산란효과로 인해 모호해진 사물의 형태(그림에서는 흔적이나 얼룩으로 나타난)가 기억의 불완전한 복원력을 떠올리게 한다.

한상진_빛의 정원에서 꿈을 꾸다展_갤러리 숲_2007
한상진_빛의 정원에서 꿈을 꾸다展_갤러리 숲_2007

이렇듯 광물질 안료나 비즈 소재를 차용한 작가의 그림은 재료 고유의 물성이 강하게 어필되는 편이며, 특히 화면에 산재해 있는 흔적과 얼룩들(회상의 불완전한 조각들)로 인해 드로잉의 성격이 강조돼 보인다. 백색과 검정색의 무채색이 주조를 이룬 일련의 그림들이 모노크롬 회화와의 영향관계를 떠올리게 하며, 감각적이기보다는 관념적인 그리고 나아가 금욕적인 느낌마저 불러일으킨다. 이와 함께 종이를 화면에 붙인다거나(콜라주), 특정의 형상을 석고로 떠내는(일종의 저부조 형식의 주형에 의한) 등 표면질감에서의 다양한 효과를 꾀하고 있다. 이로써 단순히 그림을 그린다기보다는 화면을 만들고 축조하는 식의 공작적인 과정과 방법이 적극적으로 운용된다. 그리고 그 프로세스(공작성)는 특히 본격적인 회화로서보다는 사실상 판화의 한 형태로 봐야할 공판법을 차용한 일련의 작업들에서 극대화된다. 그러니까 특정 문양의(대개는 기하학적 형태나 일상적인 오브제를 패턴화한) 구멍을 뚫어 만든 종이를 화면에다 대고 그 빈속을 안료로 채워 넣는 식이다. 이는 붓질에 의해 그려진 부분과 어우러지면서 화면의 표면질감과 그 효과를 다변화하는 한편, 그 자체가 마치 주조나 주형의 프로세스에 바탕을 둔 특정의 문양이 화면에 각인되거나 인출된 것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이러한 공판법의 과정이나 방법은 자잘한 화면들을 조합해 만든 일종의 모자이크 그림에서 다른 형상화의 계기를 얻고 있다. 마치 생활일기를 쓰듯 틈틈이 그린 소품들을 한데 모아 전체화면으로 재구성해낸 이 일련의 그림들에선 즉흥성과 우연성이 갖는 계기를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태도가 엿보인다. 대개는 여타의 비정형의 추상형상이나 양식화된 기하학적 형상이 지배적이지만, 이따금씩 책상이나 의자, 벤치나 욕조처럼 그 실체를 확인해볼 수 있는 구체적인 형상들도 있다. 이런 일련의 소품 조각들로써 유기적인 전체를 이루는 작품을 일종의 단위성(모나드형) 작업으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한상진_flash garden-the Trace_캔버스에 혼합재료_259.1×259.1cm_2007
한상진_flash garden-the Trace_캔버스에 혼합재료_259.1×259.1cm_2007
한상진_flash garden-the Trace_캔버스에 혼합재료_259.1×259.1cm_2007

이외에도 작가는 단순히 완결된 그림을 벽에 거는 대신에, 일종의 가변설치의 형식을 도입해 공간 자체를 작업의 일부로 끌어들이는 식의 공간 확장을 꾀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벽면을 마치 캔버스처럼 사용하는가 하면, 벽면을 이용해 자잘한 이미지의 편린들을 재구성하는 일종의 벽면 콤포지션 작업을 실현한다. 근작에 와서는 이런 벽면 작업을 아예 벽화(월 페인팅)의 보다 적극적인 형태로까지 발전시키고 있다. 벽면에다가 일종의 자기발광성 안료인 형광안료로 그림을(작가의 그림에 흔히 등장하는 기하학적 이미지나 일상적인 모티브를 단순화한 이미지) 그린 연후에, 외부로부터의 일체의 빛을 차단하고, 공간 내부에는 블랙 라이트를 설치한 것이다. 이로써 어두운 공간 여기저기에 붕 떠다니는 것 같은 이미지의 편린들이 암실이나 무중력의 공간을 연상시키고, 회상과 기억의 저장고를 연상시킨다(그 자체 빛이 회상이나 기억을 위한 계기로 작용하는 경우와는 또 다른 버전에 해당하는). 그리고 무엇보다도 작가의 자의식이 머무는 방, 무의식의 방, 회상의 방, 존재의 방을 대면하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이 일련의 작업들을 지지하고 있는 모나드들 즉 단위 이미지들 하나하나가 작가의 주체를 구성하는 요소로서의 존재의 편린들을 은유하며, 이는 그대로 여타의 그림들에서의 비정형의 흔적이나 얼룩들이 기억과 회상의 계기를 표상하는 것과 통한다. ■ 고충환

Vol.20071026h | 한상진展 / HANSANGJIN / 韓相振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