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AGE

PARK, Sejin_박세진 회화展   2007_1116 ▶ 2008_0106

박세진_노인의 공간_캔버스에 유채_130×162.3cm_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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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1115_목요일_06:00pm

입장권 / 일반_3,000원 / 학생_2,000원 / 단체 및 장애우 50% 할인

관람시간 / 11:00am~07:00pm

아라리오 갤러리 천안 충남 천안시 동남구 신부동 354-1번지 Tel. 041_551_5100 www.arariogallery.com

공존의 풍경 ● 세계의 풍경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곳에선 사물과 사람을 포함해 자연을 이루는 유기체와 무기물 까지도 시시각각 변화하며 다양한 모습으로 함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사물들은 주변을 감싸는 공간의 온도나 습도 또는 바람의 영향으로도 미세한 변화를 일으키고 다양한 흔적을 남긴다. 세계 속의 작은 사물이나 하나의 개체가 움직여가며 공간 안에 아로새긴 그 흔적들은 그곳의 모든 사물들이 서로 연관되어 움직이고 확장되었다는 하나의 증거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사물의 작은 움직임을 살펴보면 이곳의 풍경은 하나의 사건이 다른 사건들로 이어지며 한 점 사물의 흔적이 다른 개체와 집단의 정신 속으로도 흘러 드는 유기적인 공간이라는 것을 알게 해준다. 박세진의 회화는 이러한 유기적인 시공간의 순간을 우리 눈으로 확인하기 쉽게 풍요롭고 다채로운 모습으로 재현한다. ● 그녀가 자신의 회화에서 보여준 '풍경'들에는 하늘과 땅이 맞닿는 지평선의 경계가 존재한다. 그 경계는 자연의 원경이나 도시의 전경에서 발견한 시각이 판단할 수 있는 가장 멀리 있는 지점이다. 우리의 눈으로 볼 때 멀리 있는 것은 개체와 사물의 세부가 아니라 흐릿한 빛으로만 감지되는 어떤 형체들이다. 때문에 감각이 인식하기에 너무 멀리 있는 저편 경계의 공간은 가까운 사물과 개체의 형태를 기반으로 유추되거나 그 지점에 도달해 바라봤던 경험의 기억으로만 환기된다. 기억하고 유추할 수는 있지만 뚜렷하게 볼 수 없는 풍경의 지평선 멀리 있는 사물은 언제나 그 공간과 함께 뒤섞여 우리의 눈에 존재의 실체와는 다른 모습으로 반영된다. 또한 그러한 원경은 우리가 미시적인 사회의 환경 속에서 생활할 때 자칫 망각되거나 없는 공간으로 치부해버리기 쉬운 곳이다. 박세진은 우리가 망각하고 잘 느낄 수 없는 지평선의 공간을 자신의 화폭 안으로 끌어와 우리 눈으로 만져볼 수 있는 공간으로 표현하고 있다.

박세진_낮_캔버스에 유채_145.5×153cm_2006

실재하는 풍경에서 시각 끝에 걸려 있는 지평선의 공간은 우리가 속도의 힘을 얻어 공간을 확장할 수 있을 때는 (달리거나, 걸어서 혹은 여타의 교통수단을 이용할 경우) 또다시 사물의 특성을 판별할 수 있는 가까운 근경이 되지만 그럼에도 우리의 시야에는 여전히 다른 원경의 공간(다른 저 곳)은 남아 있게 된다. 즉 우리 풍경의 한 부분에는 늘 원경이 함께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것은 또한 어떤 의미에서는 재현된 풍경 속에서도 원경의 모습이 있어야만 시야의 자연스러움을 획득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가 포착하는 원경의 공간이나 그 공간 안에 있는 사물의 모습은 우리 눈에서 점점 작아져 가며 지평선을 경계로 빛을 남기고 저편으로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작가는 그 공간의 지루하고 더딘 빛의 이동이 우리 눈에 던진 어른거리는 빛을 주목했으며 자신의 풍경에서 다채로운 빛으로 꼼꼼하게 기록했다. 사물들의 움직임이 만든 반짝이는 빛의 반영, 그 빛에 대한 이야기에서 'Golden Age'가 출발한다. ● 그녀의 풍경들 중에서 원경의 공간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밀도 있게 표현된 작품은 '황금털'이다. '황금털'은 시각으로는 감지할 수 없는 원경의 공간 그대로를 우리 눈앞에 밀착시켜 무리 진 빛의 실체를 보여준다. '황금털'의 화폭 아주 가까이에서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것은 촘촘하게 빛나는 갖가지 황금색이다. 눈앞에서 바라본 그 황금빛은 가느다랗고 섬세한 하나하나의 영역으로 각 개체의 존재를 확인시켜준다. 그러나 얼핏 보면 비슷하게 닮아 있는 그들의 형태와 색채는 서로 빽빽하게 얽혀있어서 몇 발자국만 뒤로 물러나도 우리는 다시 덩어리진 빛의 무리만을 보게 될 뿐이다. 사물들이 빽빽하게 얽혀있는 경우엔 그 사물과의 거리가 조금만 멀리 떨어져도 우리는 각 사물의 경계보다는 그 사물들이 모여 이룬 커다란 형태와 색채를 먼저 보게 된다. 다시 말해 거리를 두고 바라보게 되는 사물들의 모습은 개체 하나의 모습이 아니라 그들이 얽혀있는 움직임이 만든 관계의 모습이다. 박세진의 원경에 존재하는 관계의 빛은 우리의 한정된 시야 안에서는 확인할 수 없었던 희미하게 빛나던 원경의 공간을 뚜렷하게 인식시켜주는 계기가 된다. 멀리 있는 공간의 빛은 사물이 개체의 형태를 지우고 주변공간으로 전이 된 모습이다. '황금털'은 우리로 하여금 사실적인 시각 안에서는 접할 수 없는 원경의 공간을 보게 해준다.

박세진_세사람_캔버스에 유채_52.7×42.5cm_2007

또한 이와 함께 박세진이 그린 풍경들 안에는 무리 진 빛과 어우러진, 가까운 거리에서 우리가 세밀하게 관찰할 수 있는 근경의 사물들이 놓여 있다. 그 사물들은 우리가 처한 사회 환경과 자연 안에서 유기적으로 접할 수 있는 세계의 모든 것들이다. 박세진은 그러한 사물들의 존재 방식과 움직임을 재현한다. 그녀가 그린 근경의 사물들은 원경에서 빛 무리로 보여진 사물들의 모호함 보다 훨씬 구체적인 궤적을 가지고 존재한다. 그러나 각 개체의 사물 사이를 이루는 경계의 표면도 역시 흔들리고 얽혀 있는 특별한 영역으로 구현되어 있다. 작품 '달려라 달려'를 보면 우리는 이러한 영역을 뚜렷하게 확인 할 수 있다. '달려라 달려'는 가까운 이곳에서 먼 저 곳으로 가는 길 위의 풍경이다. 공간을 잇는 길 위에서 달리는 사물들은 속도의 에너지로 뒤섞여 원경의 빛보다 더 구체적이고 현란한 빛을 보여준다. 그림에서 사물들이 움직일 때 만들어낸 관계의 힘은 각 사물의 경계 사이에 존재하면서 경계를 흔들어 새로운 무늬를 만들고 그 결합을 다양하게 한다. 이러한 사물들의 움직임이 만든 화려한 운동의 빛은 공간 안에 다양한 문양들을 쏟아내고 그 다양한 문양들은 사물들의 고정된 질서와 법칙을 바꾸는 새로운 작용으로 보인다. '달려라 달려'의 결과물로도 보이는 작품 '벗어난 궤도'를 보면 우리는 그러한 작용의 힘을 목격할 수 있다. 달리는 에너지로 인한 결속과 결합이 (나무와 자전거) 중력의 법칙을 벗어나는 순간 지상의 모든 존재들 역시 놀라움의 색채로 뒤덮인다. 움직임의 힘으로 이뤄진 공간의 새 질서는 비록 순간의 흔적일지라도 세계의 공간 속에 스며든다.

박세진_Crying soldier_캔버스에 유채_220×290cm×2_2007

사물과 사물 사이의 경계는 사물의 고유한 외관이 정리되어 형태가 지정되는 지점이다. 그러나 박세진은 근경에서 보여질 수 있는 뚜렷한 사물의 외관보다 사물과 사물 사이에 있는 경계 너머 우리의 눈으로는 잘 지각할 수 없는 엷은 층을 그려냈다. 그 공간은 사물들이 움직임으로 서로 부딪히고 흔들리며 섞여 드는 공간이다. 섞이는 작은 공간들은 각 사물 사이가 인접한 경계 면의 틈에서 전혀 색다른 공간들을 만들기도 한다. 각각의 그림에서 그곳은 망토의 주름진 자락과 대지 사이에 있고 하늘의 빈 공간과 일어나는 땅의 요란한 움직임 사이에도 있다. 또한 밤의 빛과 어둠 사이, 헐렁한 산기슭과 위태롭게 만들어진 계단 사이, 고단한 노동이 마무리되는 지평선과 저녁의 하늘 사이, 일렁이는 산자락과 그곳을 오르는 거인의 두 발 사이, 대낮의 검은 아스팔트와 그 위에 거칠게 그어진 황색선 사이 등 곳곳에 존재한다. ● 이렇게 사물 사이에 존재하지만 잘 보이지 않는 접점의 경계는 보이는 것의 풍경 너머 가시적 관찰로는 보이지 않는 풍경이 존재함을 드러내 준다. 사물들이 자신의 경계에서 그 고유한 색채와 형태를 버리고 섞여들 때 색다른 문양과 색채가 만들어 진다. 그렇게 파생 되고 새롭게 조직되는 문양들은 결국 새로운 공간을 세계 속에 밀어낸다. 그 세계는 작고 확고했던 사물들이 서로를 닮아가며 유기적으로 결합해 낳은 풍경이다. 그 풍경들은 시간과 속도의 힘을 가지고 공간을 새롭게 장식하고 존재하는 사물에 다른 빛을 투영해 세계의 다른 얼굴을 보게 한다. ● 이러한 박세진의 풍경에 대한 색다른 접근은 근경 사물의 유기적 관계를 뚜렷하게 드러내기 위해 계속 다양해져 왔다. 각 사물들이 점유하는 공간의 거리를 비사실적으로 배치한다든가('노인의 공간', '망토' 연작, '크라잉 솔저') 중력의 법칙까지도 벗어난 궤도('벗어난 궤도', '전설' '달려라 달려')에 사물들을 위치시킨다. 또한 자연과 유기적으로 얽혀있는 기계의 산물(나무와 얽혀 있는 자전거, 마이크를 들고 있는 황금상)이나 느닷없이 출현하는 동물들의 모습을 ('밤', '크라잉 솔저') 우리는 종종 목격할 수 있다. 박세진이 구성한 이 풍경들이 재현하는 새로운 정경은 풍경회화의 시각적 사실성에서는 벗어나있다. 그러나 풍경의 공간들을 이질적으로 재배치하고 한 공간 안에서 쉽게 만날 수 없는 동물들의 출현과 뒤바뀐 공간의 색채들은 ('세 사람') 우리의 상식으로 익숙한 공간과 색채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새로운 시선이 만드는 기이한 공간의 풍경은 작가가 그림에서 구현한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지만 또한 보는 사람에게는 능동적인 시선을 가지게 하면서 사물의 자율적인 다른 모습을 보게 한다. 사물의 다른 측면을 본다는 것은 사물을 새롭게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계기를 만들어 준다. 박세진의 풍경은 우리의 시선을 움직여 익숙한 경험에 젖어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도시의 전경과 자연의 풍경을 다른 관점으로 새롭게 바라보게 만든다.

박세진_숲_캔버스에 유채_180×280cm×6_2007

결국 풍경은 그림과 보는 자 사이의 적절하고 다양한 시선이 유지될 때 실체의 전부를 드러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박세진은 더 잘 보여주기 위해 보는 자와 각 그림간의 거리를 조율한다. 또한 풍경의 감춰진 부분이 우리 눈에 잘 들어오도록 공간을 잘라냈으며 화폭 위에 원경과 근경을 재배치했다. 공간의 거리는 풍경 안에서 세계의 모습을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 필요하다. 그리고 재현된 풍경을 새롭게 보기 위해서는 다양한 거리의 간격이 필요하다. 재현된 풍경이 일상성을 벗어나 새로운 공간에 위치 할 때 우리는 제대로 인식하기 다시 한 번 그림 앞에서 능동적으로 움직이게 된다. ● 박세진의 '숲' 그림은 이러한 거리의 간격이 풍경을 바라보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작은 공간 안에 여섯 폭의 화면으로 펼쳐진 그림은 일반적인 숲 풍경과는 달리 색다른 점을 보여준다. 그녀가 재현한 '숲'은 우리가 숲의 중심으로 걸어 들어가도 잘 볼 수 없는 숲의 내부를 보여준다. 그 내부는 숲을 이루는 빽빽한 잎사귀의 무성함과 한 화폭에서 다른 화폭으로 이동해 가는 공간의 비약을 통해 숲 속 유기체의 활기찬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려진 그림의 풍경도 실재하는 풍경과 마찬가지로 눈으로 관찰할 수 있는 적절한 범위를 벗어나면 관찰자의 또 다른 감각을 자극하게 된다. 그림에 둘러싸인 채 바라보게 되는 '숲'은 숲을 이루는 외관의 결정된 형태가 아닌 숲의 움직임을 전달해준다. 이렇게 좁혀진 거리의 간격은 우리가 그림 앞에서 머뭇거릴 틈도 없이 물감의 색채와 질감이 만들어낸 흔적들을 보게 하고 또한 우리로 하여금 다시 몇 발자국 뒤로 물러서게 해 전체 화폭들을 보게 하는 탄력적인 시선을 만들어낸다. ● 평평한 평면 위에 가상으로 존재하는 그림 그려진 풍경들은 세계의 다양성을 획득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마음의 풍경이 필요하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작가의 시선으로 재현되며 눈으로 익숙해진 시각적 사실성을 공간 안에서 새롭게 재배치해 사물의 또 다른 이면을 보여줄 것이다. 그런 작가의 시선과 흔적 위에 회화를 바라보는 사람의 자유롭고도 능동적인 시선이 놓여 질 때 사물과 흔적들은 풍경 안에서 가까이 있거나 멀리 있거나 그 유기적인 관계의 특성을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작품 중에서 유기적인 관계의 특성이 가장 잘 드러나 있다고 보이는 그림은 '밀레'이다. 역시 여섯 폭으로 그려진 작품 '밀레'는 씨 뿌리는 사람이 만들어 낸 능동적인 움직임이 대지와 그 자신에게 어떤 문양을 남기는 지를 보여주고 있다. 우선 씨 뿌리는 사람의 땅을 향한 움직임과 노동은 대지 위에 새로운 물결과 바람을 만들었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바람은 다시 씨 뿌리는 사람의 다음 움직임을 초래하고 있다. 그런 움직임들의 연계와 문양은 하나의 화폭으로 구획 지워진 공간의 경계들을 뚫고 자연스러운 속도를 얻어 다음 화폭으로 넘어간다. 이렇게 사물들이 움직일 때 만들어진 바람이 일으킨 영향이 공간 안으로, 존재 속으로 퍼져나가는 곳이 바로 앞서 말한 보이지 않는 풍경이 존재하는 곳이다. '밀레' 그림은 우리의 눈으로 쉽게 볼 수 없는 움직임이 만든 공간의 충돌과 결합을 보여준다.

박세진_밀레_캔버스에 유채_116.8×91cm×6_2007

이렇게 박세진은 자신의 풍경들을 통해 존재와 공간의 유기적인 움직임과 만남에 대해 기록해 놓았다. 그러한 움직임들은 때로 공간의 질서를 깨트리고 혼란의 색채를 드러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함께 어울리려는 움직임만이 사물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공간의 벽을 넘어 풍경을 확장시킨다. 유기적인 만남과 움직임은 사물이 서로 배척하지 않고 어울려 만드는 새로운 공간의 문양이다. 사물의 관계가 유기적일수록 새로운 세계는 확장되며 세계는 풍요하게 번성한다. 가까이 있는 지금의 이 공간은 바로 조금 뒤 멀리 있는 저 곳으로 바뀐다. 때문에 그녀의 풍경 속에서 공간들은 이 곳이나 저 곳이나 결코 다르지 않게 펼쳐져 있다. 결코 다르지 않은 원경과 근경의 공간들은 그 곳을 이루는 개체의 다양성과 개체의 무성한 번성으로 이루어진다. ● 'Golden Age'는 작가가 말한 바에 따르면 어느 특정한 시기를 일컫거나 지칭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것은 지나온 인류의 역사 속이나 지금이거나 혹은 미래에 닥칠 어떤 황홀한 시기를 일컫는 말이 아니다. 'Golden Age'의 풍경들은 시간과 공간을 온 몸에 고스란히 기록하는 모든 현존하는 존재들이 비어있는 공간에서 만나 새로운 문양들을 만들고 자신의 존재를 각성하며 인정하는 순간이다. 박세진의 그림들은 하나의 얼룩으로부터 구현되는 풍경들의 유기적인 관계와 이차원의 평면에서 달려나가는 공간의 속도를 체험하게 해준다. 그녀는 재현한 풍경 안에서 풍경의 길들을 여는 작은 문양과 흔적들이 우리와 함께 공존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가 상상하는 황금기의 모습은 풍요의 상징이다. 모든 개체의 다양성이 인정되고 그 유기적인 관계가 무성하게 뻗어나가는 그런 시공간을 우리는 박세진의 그림들과 함께 상상한다. ■ 강미재 Kang, Mijae

Vol.20071117c | 박세진 회화展

Art Peace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