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actical Illusion

권두현展 / KWONDOOHYOUN / photography   2008_0103 ▶ 2008_0117 / 월요일 휴관

권두현_#02630_종이에 혼합재료_100×150cm_2007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060831b | 권두현 개인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8_0103_목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현대 서울 종로구 사간동 80번지 Tel. 02_734_6111~3 www.galleryhyundai.com

존재 없는 실존의 체험 ● 이 사진은 그 무엇인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다만 그 무엇과 닮았다는 인상만을 찰나적으로 안긴다. 어디선가 보았던 장 면, 스쳤던 풍경, 알고 있는 누군가의 얼굴이 마냥 뭉개지고 흐려져 있는 듯하다. 안타까움과 절망감, 그리고 설레임과 호기심이 동시에 고개를 든 다. 작가의 비유처럼 그것은 마치 첫사랑을 닮은 이를 문득 길에서 마주쳤을 때와 같은 아픈 두근거림을 동반한다. 그/그녀는 분명 아니지만 너무도 유사한 그/그녀의 닮은꼴이 덧없이 스치고 속절없이 부유한다. 그는 상을 또렷하게 만들지 않는다. 자신의 눈으로 보았을 때 시각적으로 더도 덜도 아닌 그 만큼만 닮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고 건져 올린 다. 작가는 그 유사성의 형태를 카메라/기계의 힘으로 빌려 온다. 손으로 옮기면 어쩔 수 없이 주관적이 되기에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기계를 사용하는데 카메라는 그 무엇 같은 상을 보여주기에 적합하다. 그는 한 장의 사진을 통해 구체적인 정보를 주지 않고 다만 보는 이들이 "... 같은데"라는 생각을 자아내게 한다.

권두현_#02640_종이에 혼합재료_78×116.7cm_2007

자기 스스로 정신과 마음을 치유하는 방법의 하나로 자유연상법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불특정 단어를 제공하고 스스로 그 단어로 문맥을 형성하는 식이다. 권두현의 사진 역시 그와 유사하다. 다소 애매한, 그 무엇 같은 이미지를 던져주고 보는 이 각자가 자신의 기억과 경험에 의존해 그 사진이미지를 독해하도록 권유한다. 자신이 알고 있고 가보았던 사물과 공 간, 누군가를 차분하게 떠올려 보면 된다. 작가는 흔들리는 빛의 잔상과 떨리는 기억의 결합으로 보는 이에게 울림과 여운을 주고자 한다. 사진이 회상의 촉매제, 그러니까 기억을 발굴하고 기억을 재생하는 매개가 되게 한 다. 그의 사진은 기억을 건드린다. 삶은 너무 촘촘한, 그러나 너무 모호한 기억/상처로 수놓아져 있다. 산다는 것은 지난 기억을 갉아먹으며 나가는 일이고 기억에 기생하는 일이다. 우리들 모두는 각자 저마다의 완고하고 비밀스러운 기억을 고치처럼 두르고 산다. 그것들은 대개 불투명한 잔상으로 남아있다. 권두현의 사진은 기억으로 인도되는 징검다리와 같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이미지를 흘린다. 흔들어 놓는다. 춤을 추는 듯한 그 이미지는 마 치 흐릿하고 애매한 기억의 형태와 매우 유사하다. "상이 뚜렷하지 않을 때 사람들에게 여러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흐린 이미 지는 사람들에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과 지난 경험을 돌아볼 수 있는 여지를 줌으로써 각자가 감정적 변화를 일으킨다. 사람들이 나의 사진을 보았을 때 과거의 좋은 기억을 떠올리고, 생각에 잠길 수 있는 여지를 만들고싶었다"_작가노트

권두현_#02650_종이에 혼합재료_78×116.7cm_2007

뚜렷한 이미지는 사람들의 사고를 제한하기 때문에 흐릿한 이미지로 사람들 이 생각에 잠기게 유도하고자 한다. 초점이 맞지 않고 온통 뿌연 이미지는 사람들을 불안하게 한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흐리지만 어느 한 곳에 초점 이 맞춰진 이 사진을 찬찬히 살피다보면 어렴풋하게 공간과 사물이 인지된 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상상하고 기시감(旣視感)을 만나고 편안함을 느낀 다. 사진을 보는 이의 감정 상태에 따라, 본인들의 기억과 경험에 따라 자유롭게 해석되고 재경험 되도록 유인하는 사진이다."결국 작품은 작품을 찾아가도록 인도하기 위해서만 존재할 뿐이고, 이러 한 것은 우리로 하여금, 자신이 유지해온 그리고 자신이 사라짐으로써만 도 달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영감의 순수한 지점을 행하도록 하는 움직임이 다."_블랑쇼

권두현_#02670_종이에 혼합재료_100×150cm_2007

작가는 운동하고 있는 피사체에 몰입하여 피사체가 흔들어놓는 주변의 공기를 포착해낸다. 정지된 화면임에도 불구하고 공기의 흐름, 주변을 둘러싼 분위기 등이 감촉 되는 듯 하다. 그것은 마치 왕가위 감독의 영화장면처럼 흐른다. 빛과 색채가 춤을 추고 부유한다. 어떤 정점도, 고정된 공간도, 식 별 가능한 중심도, 원근법의 소실점도, 명쾌한 경계도 갖지 않기에 주체는 부재를 경험한다. 그는 관자에게 새로운 사진공간을 경험하게 한다. 희미하고도 불확실한 영상, 이미지와 함께 관자는 능동적으로 참여한다. 여기서 사진이란 매체는 실제와 환영의 구분을 해체시키는 도구가 된다. 이상화된 모방의 질서를 방해하고 예술의 의미와 진실간의 관계를 흔들고 순간의 덧없음을 강조하면서 하나의 주제로 귀결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하는 이해하기 어려운 모호한 존재가 되었다. 그것은 지각의 한계 너머, 그 이상의 것 을 창조하게 한다. 시각만을 요구하는 시각적 이미지와는 다르게 온 몸으로 지각하는 동시에 감각적인 총지각을 요구하고 기억과 경험을 발화시킨 다. 그런 차원에서 그의 사진은 다소 상식적이지만 포스트모던적 사유를 연 상시킨다. 한 가지의 확정된 해석보다는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는 것을 강조하면서 언어가 오직 하나의 단일한 의미만을 가지는 방식으로 제안하는 것 에 반대하면서 글쓰기가 역설적이며 자의적인 것으로 단정적 결론에 이르는 것에 반대, 오직 독자의 마음속에 다양한 의미작용을 유발시키는'흔적'만을 남길 뿐이라는 데리다의 주장, 그의 음성이 이 사진의 표면에서 겹성으로 들려온다. 동시에 게리 힐의 시적인 영상작업과 리히터 회화가 보여주는 모호한 떨림도 겹쳐진다. ● 권두현은 이미지를 미완으로 처리한다. 그래서 부재를 경험케 한다. 그것 은 혼란스러운 이미지다. 실체가 없는, 실체를 잃어버린 이미지이기에 그렇다. 그것은 마치 해체주의자의 텍스트처럼 끝없는 '과정'이 된다. 작가 의 죽음과 텍스트를 탈중심화 시키고 결론을 유예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그는 사진이란 테크놀로지를 메타언어적으로 사용, 이미지를 미완으로 처리하고 있다. 그의 사진은 불확정적인 상황을 경험하게 하는데 이는 세계의 실재성을 비실재화 하는 체험이다. 명료하게 이해할 수 없는 피상적 이미지 는 '부재안의 존재'라는 의미에서 무척 아이러니하다. 또한 관객의 시각 을 파괴하고 교란하기에 그 이미지는 다분히 멜랑콜리하다. 여기에는 탈근 대적인 개인개념도 얹혀있다. 파편화된 특성을 소유한 유동적인 개인이란 개념이 그것이다. 탈근대적 개인의 주체의 정체성은 결코 단일화 되지 않고 끊임없이 분열되어 나타난다. 아울러 탈근대적 시간경험은 일관된 시간 의 흐름에서 일탈한 비연속적인 기표들에 대한 분열증이다. 우리의 일상적 퍼스펙티브 속에서 나타나는 조화로운 유기체적 전체, 명료하게 드러나던 사물/풍경/얼굴이 이질적이며 결코 통일체를 이룰 수 없는 조각들로 드러나 게 된다는 것이다. 사물이 환각적인 차원을 드러냄과 동시에 파괴되는 부분으로 나타나고 따라서 '익명적 있음'만을 체험하게 만든다.

권두현_#02880_종이에 혼합재료_100×150cm_2007

인화지가 아닌 종이 위에 프린트를 하거나 유화로 그림을 그린 후 이를 다시 촬영하는 그의 사진은 카메라와 붓 사이에서 출몰한다. 카메라를 흔들거 나 움직이는 피사체를 장시간 포착하는가 하면 시간과 빛의 상관관계, 카메라의 기계적 특성을 활용해 이미지를 만들고 이를 순면 종이에 프린트하고 다시 색을 덧입힘으로써 여러 단계의 왜곡을 거친다. 그에 따라 사진이 자연스레 회화적으로 변환되었다. 사진은 얇은 인화지로 인해 깊이/높이가 없다. 측면이 부재하다. 반면 권두현은 프린트한 이미지를 캔버스 틀에 부착하고, 그 프린트된 이미지에 붓을 이용해 직접 색을 칠하거나 캔버스 틀 옆면에 색을 첨가했다. 캔버스의 측면도 회화의 영역이 되어 이른바 5면 회화 가 되었다. 마치 이인현의 '회화의 지층'이란 작업처럼 그것은 깊이를 지닌 회화/사진이 되었다. 그로 인해 사진은 단 하나만 존재하는 모노 프린트 의 운명이 되었고 아울러 사진 자체의 특성을 희석시킴으로써 사진과 부 조, 사진과 회화 사이의 간극에서 모호하게 위치하고 있다. 벽에서 일정한 높이를 갖고 튀어 올라온 사진은 평면/입체 사이에서 진동한다. 모호한 이 미지와 마찬가지로 장르 사이의 경계에서 모호하게 떨고 있다. 감각적인 디자인과 색채로 조율되어 있고 여러 의미 망을 겹으로 두르고 있는 이 멜랑콜리하고 애매하면서도 시적인 영상을 속도감 있게 안기는 그의 사진은 동시 대 이미지의 중요한 측면을 압축하고 있지만 동시에 과도한 서정, 피상적 인 감각의 현기증 나는 선회로 머물 수 있다는 아쉬움도 있다. ■ 박영택

권두현_#02930_종이에 혼합재료_78×116.7cm_2007

'찰칵' 소리 한번 들려오면 눈에 보이는 이미지 하나가 손안의 카메라에 담긴다. 붓질 한번, 종이 한 장 없이 말이다. 여기에는 카메라로 찍는 동작(action)과 프린트하는 작업(work)과정이 있다. 그 후 모니터와 인화지 위로 결과물이 나타난다. 디지털 시대의 사진 인화 과정은 다양한 프린터의 결과물이고, 이것은 필름 사진의 인화과정을 대신한다. 연출한 이미테이션 이미지가 홍수를 이루는 현대에, 난 아직도 현실의 생활에서 얻은 장면에서 더 큰 감동을 받는다. 인위적이거나 연출된 사진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 말이다. 그러나 사실 그 자체의 형상만을 담는 것이 목적이 아닌 그 때의 느낌과 감동을 표현하고 싶다. 늦은 저녁, TROCADERO에서 파리의 상징인 에펠탑의 점등 장면을 보는 순 간, 마치 하늘의 별들이 쏟아져 에펠탑을 장식하는 듯한 모습과 그 때의 감동은 또 한 번의 '찰칵' 소리와 함께 카메라에 담겼다. 이러한 순간순간 마주하는 내 삶의 감동의 형상들이 이번 작품들이다. 파란하늘에서 만난 생각하는 구름은 나를 과거의 삶을 돌아보도록 만들었으며, 마치 수상도시처럼 보이는 도시를 담은 배들은 어린 시절 보았던 만화영화의 꿈을 꾸게 하고, 사랑을 가득 담은 인형의 모습은 나를 눈물나게 한다. 사각의 공간 속에 들어있는 또 하나의 삶의 모습, 그 모습은 내 것 일수도 이 글을 읽는 당신의 것일 수도 있다. 내 사진을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들었느냐 보다, 그 속에 어떤 삶의 순간 이 어떤 느낌으로 담겨있는지 보아주기를, 찾아주기를, 느껴주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 권두현

Vol.20080103a | 권두현展 / KWONDOOHYOUN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