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적 공간으로의 도피_Collage of mind

책임기획_U-form   2008_0103 ▶ 2008_0113

백종인_Mania_나무, 철_35×40×15cm_2006

초대일시_2008_0103_목요일_05:00pm

참여작가 백종인_선정_연수_오윤주_이정훈_조현예   관람시간 / 10:30am~06:00pm

드루아트스페이스 Duru Art Space 서울 종로구 화동 50번지 Tel. +82.2.720.0345

삶은 현실의 빛깔을 그대로 인식하며 살아가기엔 너무 벅찬감이 있어, 사람들은 때로 세상을 직시하기보다는 어디론가 숨고 싶을 때가 있다.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느냐는 삶을 풍요롭게 하는 관건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에게로 향하는 에너지는 긍정적인 힘을 주며 반복적인 일상을 지루하지 않게 하는 힘이 되어줄 수 있다. 개인적 시간의 축적을 다양한 형태로 보여주는 작가들은 작품을 통해 에너지를 발산한다. 그 에너지는 삶에 능동적으로 개입하면서 작가들의 일상을 풍요롭게 한다. ● 백종인은 도구를 보는 관점을 기능적 측면에서 멈추지 않고, 그것을 변형시켜 작품으로 만든다. 집요할 정도의 도구 모음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사물에 대한 관점에 얼마나 한계를 두고 있는지 새삼 느끼게 된다. 그리고 따뜻한 나무의 질감과 자연의 냄새가 우리의 오감을 자극할 것 같은 감성적 콜렉션이다. 이러한 도구의 변모는 사랑을 받으면 변하는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다 만들고 나서도 너무 예쁘고 귀여워 작가가 자꾸 만져보았을 것만 즐거운 상상을 주는 작품들이다. 대상에 쏟는 집착은 억지스럽지 않고 오히려 인간에 대한 호기심과 같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작가의 손때가 묻은 도구에 대한 사랑은 우리가 경험한 삶의 모든 것들에 대한 사랑과 집착을 대변한다. 인간의 삶에 실로 많은 영향을 끼치는 사랑은 우리에게 삶의 동기를 부여해주는 가치이다. 이와 같이 작가들은 자신을 이끄는 기제를 인식하고 탐구하면서 자신의 시간을 가꿔나간다. 만약 그러한 인식이 없이 지낸다면 인생은 순식간에 허무하고 무의미해질지도 모른다.

선정_Ok-Really_사운드 영상_가변설치_2007

우리는 시간과 공간을 가로지르며 tv, 라디오, 거리의 대형 스크린 등을 통해 수많은 따뜻한 말을 전해 듣는다. '사랑합니다', '또 하나의 가족', '세상에 빛을 이웃에 사랑을' 등. 이러한 문구들의 외침이 진정 마음에서 우러나왔는지 혹은 그렇지 않았는지 깊이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 말들은 당연히 기업의 이미지의 쇄신을 통해 이윤을 창출하리라는 업적을 완수하기 위해서 나왔기 때문이다. 그 우아하지 않은 수법에 몸서리칠 필요도 없다. 다만 그 말을 듣는 순간, 숨을 참거나 눈을 감거나 감각을 느슨하게 하면 괜찮을 것이다. 말 자체의 의미만으로 고마움을 느끼면서 말이다. 매우 사적인 공간인 화장실에서 유령처럼 나타난 팔없는 백설 공주의 위로를 들으며 울다 웃는다. (선정) ● 작가 노트에서 짐작할 수 있듯 우리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불완전성 때문인지 몰라도, 환경에 공존하는 많은 것들에 우리는 의미를 부여하고 쉽게 감동받지만 때로는 경계를 놓지 않는다. 어떤 상황에 대해서도 객관적일 수 있다면 그런 신경전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선정의 작품은 환경에 유약하게 노출된 개인의 삶에 대해서 부정적이지만은 않은 유연한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연수_꽃씨 뿌리다_우레탄_50×25cm_2006

연수는 생명력을 상징하는 인간, 동물, 식물을 만들면서 그 생명의 주체성을 드러나게 하는 요인에 대한 탐구를 해나간다. 사물의 이질적 특성이 같은 공간에 혼재하고 자신 자체보다는 환경에 의해 자신이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는 깨달음은 존재에 대한 호기심을 더 불러일으켰다. 인간의 몸에 꽃을 드리운다든지, 얼룩말 무늬대신 식물의 패턴을 넣는 것에서, 사람이고 동물이구나 하며 별 특별한 이미지가 아니라고 지나칠 수 있는 존재에 시선을 멎게 하는데서, 작가가 생명을 인식하는 태도를 짐작케 한다. 주체성과 이질성에 대한 질문은 그것이 왜 그렇게 불리는 지에 대한 의문과도 연결되어 있는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작가의 질문들은 작품을 제작하면서 이미지로 형상화된다. 무엇이 서로를 같게 하고 다르게 하는지, 존재의 가치를 어떤 기준으로 나누는지 왜 모순된 상황이 그 생명에 펼쳐지는지, 그것이 어떤 영향을 끼치고 결과적으로 "그것 같은" 특성을 부여하고 있는지...등 이러한 질문들은 우리가 삶의 과정에서 부딪치게 되는 의문과 꽤 닮아있다.

이정훈_파란트럭_디지털 인화_42×85cm_2007

이정훈은 도심에서 자주 마주치는 풍경의 재편성을 통해 자신의 환상을 채워간다. 작가의 풍경은 사진 합성으로 만들어진 가상의 풍경이지만, 어디선가 본 듯한 낯익은 장면과 사건들이 벌어진다. 개발붐이 일어 변화하고 있는 서울 도시 풍경을 너무나 쉽게 좌지우지 하며 바꿔버리는 작가의 모습은 현실을 개인적인 놀이로 게임화 시킨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자신만의 환상적인 도시 풍경을 만들기 위해 집착하는 것으로도 느껴진다. 사진에서 다뤄지는 풍경은 서울 시민이라면 누구나 알 법한 장소를 골라 이정훈의 공간놀이를 만나 재탄생된다. 합성기법에서 흔히 다루어지는 대칭의 구조는 현실적 공간을 비현실적으로 탈바꿈시키고 이율배반적인 현실의 모습을 상징하는 듯 보인다. 방향성을 잃은 비현실적인 도시의 모습은 그저 슬프다기보다는 재미있는 상상력의 결과물로 느껴진다. 왜냐하면 도시가 기능성을 완전히 잃은 모습이 아닌, 작가 특유의 말장난이 구석구석에서 발견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간판의 이름이나, 도로의 모양이나 사람들의 배치등 사진에서 보여 지는 뒤틀린 이미지에서 나타난다. 그래서 현실을 바라보는 작가 특유의 긍정적인 태도가 보여진다고 할까. 자동차나 건물, 사람의 반복 배치, 좌우가 바뀐 도로나 간판, 말도 안 되는 방향등이나 표지판, 뒤틀린 풍경은 작가만의 환상을 따라간다. 그것은 현실에서 존재할 수 없는 개념 속 풍경인 동시에 현실에서는 관람객에게 선물이 되어준다. 뜻하지 않게 만나게 되는 현실같은 비현실. 일상과 환경을 다른 시점으로 생각해보게 하는 계기. 무엇이든 바꿀 수 있는 상상력 같은 긍정적인 힘을 줄 수 있다고 믿는다.

오윤주_사진, 영상설치_가변크기_2007

다른 공간에서의 같은 구조, 비슷한 행동을 보여주고 있는 오윤주의 작업은 공간이 우리의 시간을 점차 잠식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몇 년 전부터 이어져 온 작가의 장소성이 중요시되는 일련의 작업은 영역확보로 그치는 문제가 아닌, 공간을 규정하는 보다 섬세하고 내밀한 작가의 태도가 일상과 작업을 동일시하고, 예술과 삶의 경계가 없어지는 상황을 맞으면서 나타나게 된다. 묵묵히 비슷한 패턴의 일상을 보내는 작가의 모습에서 또한 우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의 '자발적인 고립'이 작가가 숨 쉬는 장소, 공간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는 작가의 말에서, 마치 그것이 없어지면 그것의 존재를 알게 되는 이치와 마찬가지로 어떤 상황의 부재나 결핍이 가져다주는 다른 시점들이 작업의 소재가 되고, 그것이 오랫동안 일상을 지배하면서 실제 작가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는 과정에서 그것을 굳이 작업이라고 말하는 것조차 억지스러움을 깨닫게 되는 와중에, 어떤 진실함을 엿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진실함 때문에 마음이 더 풍요로워진다. 그 풍요로운 순간이 바로 지루한 일상과 같은 풍경을 나 자신이 아닌 타인의 입장으로 바라보는 입장이 되었을 때 오히려 만날 수 있는 것이라면, 오윤주의 작업이 그 경우 중 하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조현예_퇴보적 자세-Fetal position_단채널 비디오_00:04:33_2006

숨쉬는 것과 같이 자연스러울 수 없는 작업이라는 행위는 때로는 스포츠처럼 억지스럽다. 내가 흔들릴 때마다, 나를 온전히 충만하게 하는 이 행위는 평상시에 들여다보는 나의 내면보다는 더 깊숙한 나와 대면시켜줄 수 있는 창이다. 비일상적, 비정상적인 행위나 상황은 이런 의미에서 뜻하지 않은 선물이다. 이것은 하나의 작업형태로만 완결되지 않고 앞으로 내가 다른 형태의 작업을 하게 될 때도, 나를 공고히 해주는 것으로 언제나 진행 중일 것 같다. (조현예) ● 조현예의 작업은 한 공간에서 동일 행위의 집적을 보여준다. "마음다잡기"의 하나로 시작한 이 행위는 자기 암시, 믿음을 공고히 하는 자신만의 종교일수도 있다. 언제나 같은 행위이나 언제나 다른 순간을 맞는 이 느낌은 때로 비현실적이기까지 하다. 존재의 근원을 궁금해하거나 하는 등의 의문과 공상들을 불러일으키는 자기만의 공간에서의 활동은, 너무나 바쁜 삶을 살아 돌아볼 여유 없는 사람들에게 있어 행복을 유지할 수 있는 필수적인 것이다. 어떤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살아간다는 느낌과 언제나 의도가 순수하지 못함이라는 컴플렉스는 내면에 폭력이 될 수 있다. 자아를 찾기 위한 취미활동과 같은, 질 좋은 삶을 위한 대안들은 마음에 큰 위안을 주면서 열정을 불러일으켜 죄책감을 약화시킬 수 있다. 이와 같이 작가들은 작업을 개인적 공간 안에서 정당화하고 있다. 그 공간은 물리적, 심리적 공간이며 때로는 도피처가 되고 비현실적인 풍경이 된다.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활동과 사건들은 작가 개인의 지극히 내밀한 것이고, 때로는 범접하기 어려운 그런 고유한 것이 된다. 그 해답은 개개인의 마음으로 돌아간다. 마음은 절대 모방할 수 없는, 켜켜이 쌓여지면 그 때 비로소 흐릿하게 윤곽을 나타낸다. 시간은 그래서 마음을 쌓거나 날려 보낸다. 공간은 마음에 영향을 준다. 어떤 마음은 삶을 풍요롭게 한다. ■ 조현예

Vol.20080103b | 내적 공간으로의 도피_Collage of mind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