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 Episode 1_보이지 않는 위험

책임기획_유비호_한계륜   2008_0104 ▶ 2008_0114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코리아 에피소드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8_0104_금요일_06:00pm

스크리닝 / 2008_0115 ▶ 2008_0130 작가와의 대화 / 2008_0114_월요일_04:00pm 장소_대안공간 루프 3층 진행_성용희(대안공간 루프 큐레이터)   참여작가_김세진_유비호_장지아_조혜정_한계륜   후원_한국문화예술위원회_대안공간 루프_로렌스 제프리스_네오룩   관람시간 / 11:00am~08:00pm

대안공간 루프 서울 마포구 서교동 335-11번지 Tel. +82.2.3141.1377 www.galleryloop.com

#1 ● 『코리아 에피소드 1_ 보이지 않은 위험』이라는 다소 장황한 제목을 가진 이번 전시는 유난히 전시 제목부터 다양한 의미들을 생각하게 한다. 제목이 부여하는 친근감의 실체는 물론 동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블록버스터 영화의 제목이라는 데서 찾아야겠지만, 제목에서부터 의미심장한 해석을 부여하려는 충동은 다른 이유들 때문이다. 우선 한국 사회 이면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미디어 작품을 통해 전달하려는 의도를 가진 이번 전시의 제목이 에피소드이고, 코리아 에피소드인데, 코리아 에피소드 1이라는 점이 꽤나 그럴 듯 했다는 것이다. 에피소드는 아시다시피 작업의 근간이 되는 것과는 상관없는 것들이다. 사이사이 작업 전체의 변화와 내용을 풍부하기 위한 것들, 때로는 작업의 전체적인 플롯에 중요한 결과를 주기 위해 삽입된 것들을 말하는 에피소드는 장황한 서사를 대신하는 짧지만 감칠맛 나는 이야기들이다. 줄기와 근간이 아니라는 면에서 마이너인 셈이지만 전체적인 결과에 영향을 준다는 면에서 간과될 수 없는 것들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한국사회의 거대서사나 메이저와도 같은 이야기를 전달하려 하지 않고, 이면의 속내나 미시적인 이야기를 전달하려 한다는 면에서 이번 전시와 어울릴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냥 에피소드가 아니라 코리아 에피소드라 했을 때 이러한 기대감은 더욱 증폭된다. 한국사회는 어떤 면에서는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사회라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복잡다단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에피소드 1, 2, 3 ...으로 계속 계열화될 수 있는 설정을 가진다는 면에서 흥미롭다. 여러 면에서 주목거리인 한국사회라는 잡다하고 거대한 이야기를 던지기 위한 꽤 그럴듯한 작전이란 생각이 드는 것이다. 무한도전은 비단 연애오락 프로그램만의 화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끝내 계속해서 그 끝나지 않을 이야기들을 계속해서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내 노라 하는 정치학, 사회학, 경제학 등의 주류 학문에서 미처 담아내지 못한 한국사회의 이야기나 느낌을 전달하기 위한 작가들의 작전치고는 이 정도면 제법 용감무쌍하단 생각마저 든다. 분명 작가들의 뇌수와 심장에 각인된 이 사회에 대한 느낌은 남다를 것이고, 그렇게 감성화 된 정서들이 다시 학제화 되고 있는 최근의 학문 추세와도 부합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작가의 시선이 중요해지는 시대인 것이다. 부디 이 계열화된 시리즈가 계속되어 한국사회의 다양한 속내들이 까발려지고 회자되길 기대해본다. (이하중략)

장지아_Open your heart!_당신의 가슴을 찍어드립니다_단채널 비디오, 전사프린트, 티셔츠_00:01:55_2007

#4 ● 프리모던, 모던, 포스트 모던이 삼겹살처럼 지져지고 있다는 누군가의 술자리 농담처럼 한국사회는 잡다한 층위의 사회들이 늘 균열과 봉합을 되풀이하면서 지속되어 왔다. 전근대 봉건주의, 개발독재 모더니티, 식신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 신보수주의적 포스트 모더니티, 포스트 콜로니얼리즘, 문화대중주의 등의 숱한 레테르가 3-40여년의 짧은 역사 속에서 반복, 중첩되고(그렇게 비동시적인 것들이 동시성을 획득하고), 사계절의 변화보다도 더 자주 바뀌는 새로운 세대군의 등장은 그 어떤 나라보다도 프리모던, 모던, 포스트모던을 빠른 속도로 이해한 우리나라의 특성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것들이다. 그렇게 보자면 대한민국 짝짝짝 이외에는 특정한 자본주의, 특정한 사회양식으로 한국사회를 정의하려는 시도 자체가 무위로 느껴질 만큼 한국은 어떤 변화 속에 항시 움직여 왔던 것 같다. 그래서 이전의 단선적이고 거시적인 접근만으로 한국사회를 규정하려는 시도가 한물 간 것 같다는 세간의 평판은 반갑기조차 하다. 그런 학문적인 작업 역시 물론 계속 진행되어야겠지만 위로부터의 선언적인 규정만큼이나 실제 한국사회에 영향력을 끼치는 미시적이고 세세한 것들을 지겨우리만치 세세하게 드러내는 작업은 계속해서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그들보다 더 섬세하고 예리하며, 더 민감한 가슴과 뇌수를 가진 작가들의 경우 더욱 그러할 것이다. 카메라나 비디오와 같은 시각테크놀로지조차도 사회적 맥락을 갖고 일련의 담론들과 물질적 실천들이 서로 맞물린 것으로 이해하는 미디어 작업이라면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사회를 말하는 것이 아닌 사회를 어떤 식으로든 보여주어야 한다. ●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들의 관심은 실로 공통분모를 찾기 어려울 만큼 서로 다양하지만 적어도 전시에 참여하는 기본적인 태도와 입장만큼은 묶여질 수 있을 것 같다. 사회의 미시적인 힘들의 영향관계에 관심을 갖는 다는 것, 거대서사가 아닌 소수의 목소리와 감성에 시선을 천착한다는 것, 이러한 관심과 시선을 통해 비가시적인 사회의 작동 방식을 드러내려 한다는 것, 여전히 주변화 된 정서들이지만 이미 일상화되어 가고 있는 문제의식들을 본격적으로 끄집어낸다는 것, 늦었지만 빠르기도 한 실제적인 일상의 변주들에 주목한다는 것, 흔한 문제의식들일 수도 있지만 여전히 낯선 주제들을 환기시킨다는 것 등등. 아직은 에피소드 1이라는 시작점이기에 좀 더 많은 사회적 이슈와 담론들을 끌어내고 있지는 않지만 각각의 작업을 통해 이러한 지점들을 확인해볼 수 있는데, 이는 다소 늦거나 빠른 동시대 한국사회의 한 단면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너무 늦지 않아 다행이지만 너무 빠르지 않아 공감하기 편한 모 그런 것들 말이다.

조혜정_Beyond Silence:위대한 타자들_Grand(m)others_단채널 비디오_00:20:00_2007

장지아의 작업은 간단하지만 도발적이고 유쾌하다. 이 작업의 묘미는 단순히 가슴사진을 찍어 티셔츠로 만든다는데 있다기보다는 지역의 시민참여 퍼포먼스로 진행했다는 점에 있다. 성적인 표현에 관한 사회적 인식 지형이 변화하고 있는 바로 그 지점에서 섹슈얼리티가 갖는 자연스러움과 편안함을 매개로 하여 시민들의 솔직한 반응을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그런 측면 말이다. 섹슈얼리티가 공론장에 들어서는 일은 한국사회에서는 여전히 중요한 실험이고 궁금 거리이다. 그렇기에 가슴을 열어, 자신의 내밀한 부분을 기록하고 당당히 보여주며, 속옷에 조여 답답한 가슴을 풀어 헤치자는 이 작가의 유쾌한 주장이 사회적 공론화의 과정을 거치는 그 과정 자체가 흥미롭다. 한국적인 에피소드는 어쩌면 이런 식일 것이다. 가슴노출에 대해 싫어하고 어려워하는 시민들만큼이나 재미롭게 받아들이는 시민들이 이전보다 많은 그 애매한 지점 말이다. 후자의 경향을 위한 작가적 제안은 어쩌면 보이는 위험인 동시에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 아닐까 생각해본다. ● 조혜정의 '위대한 타자들 Grand (m)others'은 전통적인 페미니즘 시각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도 정서적으로 울림을 주는 작업이다. 여러 세대의 삶을 사셔야 했던 우리 시대의 할머니들은 어쩌면 작가의 말처럼 다양한 삶의 궤적을 살아온 이 시대 여성성의 전형들을 이룬다. 여성성의 문제를 보다 긴 호흡을 가진 통시론적 시각으로 살펴본다. 가까이는 현모양처로서의 지난한 삶을 사신 할머니로부터, 신여성, 위안부 등 각기 다른 삶의 할머니에 대한 작가의 시선은 제목이 갖는 조어만큼이나 이 익숙하고 낯선 타자들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존중이 베어 나온다. 잔잔한 이미지들의 몽타쥬라 할 정도로 이 작업은 이들 위대한 타자들의 이미지들을 시들은 해바라기, 자유의 여신상, 신여성, 전통 가옥, 성적인 판화, 하찮은 존재인 지렁이 등등의 이미지와 교차시킨다. 존재하는 것들, 사회적으로 주어진 것들, 역사적인 것들, 자연적인 것들, 성적인 욕망과 억압 모두에 걸쳐 자리하는 깊고 큰 존재로서의 우리 내 할머니들의 삶 말이다. 하지만 이렇듯 다양하게 몽타쥬 된 이미지들을 횡단하는 것은 여성의 삶에 대한 주의 깊고 애정 있는 시선으로 바라보려는 작가의 섬세한 태도가 아닐까 싶다. 어릴 적 작가 자신의 이미지처럼 보이는 엔딩으로 마무리 한 것 역시 단순한 타자, 이를테면 마이너리티로서의 타자성으로 이들의 삶을 고정시키지 않으려는 작가적인 고심으로 읽혀진다. 거리를 두어 관심을 가지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존경의 태도를 가지고 (주)객관화시키고, 그리고 종래는 그 거리를 지우려 하면서 타자를 바라보려는 진지한 그런 시각 같은 것들이 느껴진다.

한계륜_누드의 민망함에 관한 연구-한교수의 논문지도_단채널 비디오_00:10:52_2007

한계륜의 '누드의 민망함에 관한 연구'는 현직 교수이기도 한 작가의 매우 도발적인 이미지를 소재로 하고 있는 작업이다. 누드가 아직까지 민망한 사회에서 이 작업은 교수와 제자의 성적 거래라는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은 부적절한 관계나 거래를 교훈처럼 떠벌이지 않는 것이 미덕이다. 성적 금기와 성적 판타지라는 묘한 경계위에서 이 작업은 첨단 기법을 통해 그 모두이자 모두가 아닌 성적인 이미지의 힘을 매혹적으로 드러낸다. 부적절하기에 민망한 관계라고 생각되지만 호기심을 자아낼 수밖에 없는 금기된 섹슈얼리티, 성적인 이미지의 쾌락을 가시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 난이도 있는 이야기를 위해 무엇보다도 작가 스스로 옷을 벗어 주인공이 되었다는 점도 이 작업에서 엿볼 수 있는 미덕이 아닐까 싶다. 사회적 금기에 관한 발언은 그 주장이 도를 넘느냐 넘지 않느냐에 상관없이 무엇보다도 그 진정성을 위해서는 솔직해야 한다는 교훈을 되새기게 한다. 더구나 그 성적 이미지가 첨단 테크놀로지에 의해 다시 재맥락화 되어 일종의 심미성까지 획득하는 것이라면 문제는 더욱 복잡 미묘해 진다. 단순히 미디어에 전용된 에로티시즘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성의 문제, 성적 관계의 문제를 일시적이지만 매혹적인 테크놀로지의 맥락에서 재맥락화 시킴으로써 다른 각도에서 문제설정화 시키는 전략을 생각하게 하는데, 작가가 말하는 유혹적인 표면의 아름다움이라는 말이 계속해서 머리를 맴돈다. 성적인 담론은 아무리 무겁고, 고상하려 한 척 해도, 결국은 욕망과 쾌락의 문제로 (재)해석된다고 주장하고 싶었던 것일까. 구태의연한 성적담론이 한국이라는 완고한 사회의 공론장에 위태위태하고 불안하게 던져진, 그러나 동시에 야릇한 그런 느낌을 주는 작업이다. ● 김세진의 작업은 유난히 화려하고 촌스러워, 슬퍼기조차 한 도시의 네온사인에 대해 말을 건다. 그 자체만으로도 우스꽝스러운 도시의 야경을 이루고 있는 네온사인에서 발췌한 이들 문구들은 작업의 제목만큼이나, 당신의 낮보다 우리의 밤을 반짝이게 하는 것들이다. 우리네 밤 문화, 그 유난스러움에 번잡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묘한 애정을 불러일으키게 만드는 야경 말이다. 도시공간의 정체성에 관한 최근의 숱한 담론들 사이에서 그녀의 작업은 감각적으로 제시된 도시의 정체성에 관한 발언이다. 소비자본주의의 화려하지만 잡다해 보이는 네온 불빛만큼이나, 그 숱한 욕망의 지시체로서의 갖가지 호들갑스러운 문구들만큼이나 한국사회의 정체성은 그저 묘하거나, 일시적이고, 변화무쌍하기만 한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든다. 말 그대로 반짝이고 있지만 말이다.

김세진_반짝이는 밤_Shimmering Night_단채널 비디오_00:03:07_2007

유비호의 작업은 교과서적이라 들리긴 하지만 한국사회에서의 개인의 삶이라는 다소 일반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다. 거대사회와 미시적인 개인의 삶의 교차방식에 대한 관심과 시선은 비단 사회과학의 주제만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학문적인 설정이 그려내지 못한 미세한 이야기들을 작업을 통해 드러낼 수 있다는 면에서 유효한 측면은 여전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작업은 대기업 직장인과의 지속적인 미팅을 통해 사회내 존재로서의 개인 김민규의 삶을 그리고 있는데, 비슷한 나이대의 작가로서의 호기심의 시선이 깔려 있다는 면에서 흥미롭다. 작업의 귀결이기도 한 체제 내 안락의 삶을 긍정하는 김민규의 삶이 혹시 불안한 작가로서의 작가 개인의 특정한 시선과 겹쳐지는 것은 아닌지도. 하지만 그만큼 역으로 작가 자신의 존재론적 설정을 드러내는 것일 수도 있겠다. 작업에서 그려지는 한국사회의 대표 샐러리맨 김민규는 독립된 자신만의 일을 꿈꾸면서도 동시에 제도와 조직이 주는 시한부적 안락함에 안도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하지만 중간 중간 조직내에 길들여져 정체성도 없고, 수동적이며, 피조물처럼 변해가고 있는 자신의 삶에 대해 회의를 하기도 한다. 우리의 이런 일상적인 회의는 사실 너무도 지겹도록 반복된 회의이고, 또한 지극히 현실적인 구속력을 가지는 회의이기도 하다. 이 거대 세상이 우리에게 부여하는, 우리의 정체성을 되묻게 하는 회의이지만 전체적으로 극복될 수 없는 회의라는 면에서 슬프고 일시적인 회의이기도 하다. 그렇게 그는 이내 다시 긍정적이고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꿈꾸고, 그렇게 이 이야기의 시놉시스는 완결된다. ● 지극히 평범한 이 이야기가 어쩌면 지금 이 사회의 가장 보이지 않는 위험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결국 위험이라는 것은 우리가 보고 있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본다고 생각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평범한 일상 속에 다들 그렇게 고민하고 있지만 결국은 보지 않으려 하는 진실들 말이다. 김민규의 삶에서 얻는 교훈은 그것이 지나칠 정도로 우리의 삶과 닮아 있다는 것이고 그 공감만큼이나 제도 내에 얽혀 있는 우리 자신의 삶이 가시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스타워즈 시리즈에서는 볼 수 없는 제대로 된 보이지 않는 위험 말이다. 작가들의 작업의 면모를 대략 살펴보면서 보이지 않는 위험이라는 것이 결코 사회를 위협하는 암과도 같은 그런 위험만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잡다하고 일상적인 평범함에 깃든, 우리의 보다 나은 심미적 삶에 장애가 되고 굴곡이 되는 것들 자체, 아니 그러한 것들을 보다 적극적인 삶의 자세와 태도로 애써 보려하는 것 속에 다시 재정향 된 것들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야릇하지만 솔직한 성에 관한 담론들, 타자에 대한 진지한 관심과 태도들, 도시의 일상에서 바라보는 현실사회의 정체성을 각자의 방식으로 이해하려는 감성들, 지극히 평범한 사회 내 개인적 존재에 대한 관심과 자각들 모두 보이지 않는 위험함의 단서가 되는 것들이다. 이 모두를 옳고 나쁘다는 잣대로 그저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것이 아닌 개인의 미시적인 삶에 영향을 주는 감성적인 것으로 받아들여 이를 보다 적극적인 실천의 바탕으로 삼으려는 그런 노력이야 말로 한국사회의 보이지 않는 위험을 보려 하는 작가적인 시선, 견자의 시선이 아닐까 되물어 본다.

유비호_Beyond Silence: My Way_단채널 비디오_00:15:00_2007

#5 ● 어떻게 보자면 전시의 주제가 갖는 한국사회의 보이지 않는 위험에 대한 이번 전시의 참여 작가들의 발언은 생각보다 도발적이고 강한 것들이 아니다. 세세하고, 평범하고, 시시콜콜할 수 있고, 어떤 면에서는 흔한 우리네 주변의 일상 같기도 하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위험이라 했을 때 어느 정도 조응한 문제들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예를 들어 백화점이나 다리가 무너지고 유조선 기름이 유출되는 그런 위험함 이전에 사회 속의 길들여진 일상이나 평범함, 안주, 안락함, 애매한 감성, 우유부단한 태도 그 모두가 우리가 가진 위험의 문제일 수 있다는 면에서 말이다. 이러한 위험함을 알아차리는 것은 인식의 문제라기보다는 용기의 문제이고 태도의 문제이고 실천의 문제이기에 특별한 결단을 요청한다. 거창하게 말하지 않더라도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은 결국 어떤 식으로든 실천의 문제이고 비판적인 문제제기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니 더 국한시켜 말하자면 미적 실천의 문제, 감성적 에토스의 문제일 것이다. 그것이 예술이라는 레테르를 단 이상 더욱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이 특별한 바라보기의 시선은 민감하고 감성적인 시선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러한 위험을 바라보는 시선은 우리에게 주어진 가시성을 역전시키는 시선으로부터 비롯된다. 이를테면 너무나 흔해서 보지 못했던 것, 너무나 평범해서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것들을 참지 못하는 그런 시선들 말이다. 도처에 널린 일상적인 것들을 달리 바라보는 작가적인 시선들 속에서 우리는 종종 이를 확인하곤 했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의 세상을 향한 바라보기 역시 이런 맥락 속에서 배치된다. 참여 작가들 모두 조금은 남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봤던 것이고, 이제 우리가 그들이 바라본 세상을 다시 바라볼 차례이다. 이 보기의 순환 게임이 좀 더 나은 차이화로 확대되었음 한다. 이런 게임이야 말로 우리가 전시라는 매커니즘을 통해 구현해야 하는 실천적 놀이이기 때문이다. 반복이지만 다른 의미의 반복이길 기대하면서 마지막으로 앞서 인용한 푸코의 말을 한 번 더 인용해 보겠다. "참을 수 없는 것은 절대로 가시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보다 더한 것이다. ("An Interview with Gilles Deleuze", History of Present(Springm, 1986), p.1." 쉽게 보여 지는 것을 보는 것은, 보는 게 아니다. 아니 참을 만한 것이다. 참을 수 없는 것은 보여 지는 것이 아니라 보여 지는 것 너머에 있다는 말이 사뭇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비가시적인 사회의 위험에 대한 더 많은 공론화의 장이 생기길 기대해본다. ■ 민병직

Vol.20080104f | Korea Episode 1_보이지 않는 위험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