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ndscape of mind

신사빈展 / SHINSABINE / 申思彬 / painting   2008_0107 ▶ 2008_0115

신사빈_untitled_캔버스에 유채_45×45cm_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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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8_0108_화요일_05:00pm

빛갤러리_VITGALLERY 서울 종로구 소격동 76번지 인곡빌딩 B1 Tel. +82.2.720.2250 Vitgallery.com

창작 과정에 관하여 ● 글을 쓴다는 것과 그림을 그린다는 건, 그 두 표현 매체는 나의 창작 생활에 있어서 자연스러운 병행관계에 있다. 자유로이 따로 따로 존재하던 그 두 표현 방식은 짧지 않은 공존의 시간을 통해 나의 사고 안에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졌고 서로 상호보완 해 가는 관계로 발전해갔다. 그래서 나는 창작인으로서의 노력은 '본다는 것'과 '사고한다는 것'에 각각 기초한 그림과 글이라는 상이한 두 표현 매체의 접근과 만남을 유도하는 데에 있었는지 모른다.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유도하지 않은 병행이었기에 만남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고, 그것이 또 앞으로도 창작을 위해 지속될 과제라 생각해본다. 이제 그림을 위한 작업일지를 써야 하는 하나의 과제 앞에 난 나의 글 세계를 다시 접목시키는 스스로를 보게 되는 것이다. 결국 두 매체는 나의 한 정신에서 만나는 것이고 나의 그림세계의 독특함은 그 두 매체를 병행시켜온 나 자신의 지난날 습(濕)에서 찾으려면 찾아야 할 것이다.

신사빈_untitled_캔버스에 유채_45×45cm_2007
신사빈_untitled_캔버스에 유채_45×45cm_2007

나의 창작에 바탕을 이루는 테마들은 주로 삶, 사랑, 자유의지 등의 주제들이다. 각각 다르게 정의 내려졌지만 궁극적 의미에서는 한가지로 통하는 주제들이기도 하다. ● '한가지로 통한다'함은 삶의 태도를 의미하기도 하는데, 한가지 삶의 태도에서 다양한 주제가 비로소 전개된다는 것이다. 나 자신에게 그 삶의 태도는 하나의 체험일 수 있고 믿음일 수 있다. 즉, 다양한 추상적 주제가 현실로 살아질 수 있는 데에는 체험에 바탕으로 한 나 개인의 믿음이 그 저변이 되어주는 삶의 원동력이고, 그 원동력이 한가지에서 다양함을 가능하게 해주는 바탕이 되어주는 것이다. ● 하지만 삶의 태도로서의 믿음이라는 범주는 단순한 개념적, 추상적인 범주가 아닌 구체적인 경험에 바탕한 삶 자체에 근거를 두고 있는 범주이다. 그래서 나의 작업의 주조를 이루는 사상들은 공허한 이상만을 추구할 수 없고, 경험적 현실주의에만 갇혀있는 것도 거부한다. 즉, 두 양면을 끊임없이 공존하는 데에 나의 창작작업의 양식은 자연스레 형성되고 그 공존의 노력에 창작을 위한 나의 개인적인 노력이 베어있는 것이다.

신사빈_untitled_캔버스에 유채_45×45cm_2007

반면 언급한 주제들. 삶, 사랑, 자유 등의 경험이 작업의 내용(Inhalt)을 채울 때에, 그 내용은 하나의 형식(Form)을 요구하게 된다. 그 형식은 시간(Zeit)과 공간(Raum)이다. 시간과 공간은 구체적 경험(Empirie)에 선험하는 초월 범주이고 순수 형식이다. 즉, 직접적인 내용이 그 선험적인 범주인 순수 형식에 부합될 때 내용은 비로소 내용이 되어지고, 글과 그림은 비로소 그때 예술로 대변되어지며 추상적인 주제들을 대변할 수 있는 열매가 되는 것이다. ● 삶이라는 부분에 있어서는 우연이라는 예기치 않은 부분이 생기게 마련인데, 그 부분은 나의 작업과정에 있어서 아직 오성에 의해 다듬어지지 않은, 원초적인 자료로 놓여있는 부분이다. 그 우연의 이야기들은 일기의 형식으로 직접적으로 기록되어지고, 형식의 순수 범주에 상응되기를 기다리는 부분인 것이다. 시간과 공간의 선험적 순수 형식에 상응하는 반성의 과정에서 그 부분들은 나의 인성에 맞게 걸러지고 다듬어지고 각각 알맞은 형식의 옷을 입게 되는 것이다.

신사빈_untitled_캔버스에 유채_58.5×49.5cm_1995

그래서 반성이라는 과정은 나의 작업과정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 과정을 좀더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나의 사고하는 방식을 언급해야 하는데, 거기엔 사고의 과정과 더불어 본다는 시각적 범주가 하나의 주요 범주로 자리잡고 있다. 본다는 것(Sehen)과 지성의 사고(Denken)는 반성(Reflektion)의 과정에서 만나고 서로 연결점을 찾게 되는 것이다. 나의 경우에 본다는 것은 물리적이고 직접적인 봄이 아닌 정신적인 집중과 비움을 수반하는 관조(Anschauung)가 더욱 적절할 것이다. 그 관조의 차원에서 다듬어지지 않은 직접적인 내용은 시간과 공간의 형식에 걸러지고 그 부분에서 나의 내면에는 어떤 자체의 구조(autonome Struktur) 라는 것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신사빈_untitled_캔버스에 유채_75×10cm_1995

시간에 관하여 ● 나에게 있어서 시간이라는 개념은 전적으로 주관적인 시간을 의미한다. 그건 칸트의 정의를 빌리자면 내면적 시간을 의미한다. 개개인의 타고난 성향에 따라 그 내면의 시간이라는 축이 상이하게 움직일 때, 세상에 통용되는 물리적 시간가운데 자신의 시간의 축을 발견하고 그 선을 관철시켜 나가는 데에는 적지 않은 노력과 인내 그리고 자신에 대한 절대적 신뢰가 수반되어야 한다. ● 그 노력은 내면의 시간이 세상에 통용되는 보편적 시간과 만났을 때에 특별히 더욱 요구된다. 그 만남은 다름(Anderes)과의 만남이고 하나의 충돌을 의미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 다름과의 만남, 시간의 충돌은 끊임없는 견제와 자신의 시간에 대한 성찰과 분석을 요구하게 되고 그에는 대단한 집중력을 또한 요하는 것이다. 내면의 시간이 어떻게 유지되어 갈 것인가 하는 화두는 한편으로는 응집된 긴장을 필요로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나의 시간에 부가되어진 불가지수의 요소들과 아울러 자신의 시간을 흥미롭게 만드는 요소가 되어주기도 한다. ● 해결의 실마리를 위해서는 깊은 내면적 시간에 대한 성찰이 늘 동반되어야 하고, 그 성찰은 무책임하게 흘러가는 시간을 용납하지 않는다. 즉, 다른 시간과의 만남은 내일을 연결하는 시간으로 실마리가 찾아져야 하는 것이다. 그를 향한 지향의 집중적 노력이 나의 현재 시간이고(Gegenwart) 이고 현실(Wirklichkeit)이 되는 것이고 나의 공간 안에 시간을 그어 가는 것이다. ■ 신사빈

신사빈_untitled_종이에 수채_15×21cm_2006

구조 점. / 선. / 면. / 공간. / 우리가 구조라 부르는 것을 만드는 요소들 / 그것들의 조화는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일까요 / 그럴지도 모릅니다 / 순환하고 있는 관계를 / 우리는 / 단지 / 발견하는지 모릅니다 / 밝아져 가는 영혼이 / 알아채는 것인지 모릅니다. //

色. 感. 슬픔 / 기쁨 / 고상함 / 발랄함 / 우울함 / 안도 / 희망 / 절망 / 고독 / 행복 / 두려움 / 용감함 / 동정 / 그리고 / 떨림 / ... // 어떤 마음이든 / 고운 영혼의 반영이지요 / 귀한 살아있음의 증거이지요 / 생명의 증거이지요 / 마음이 신비로이 움직이는 / 그래서 / 우리는 / 어떤 마음이든 / 살아 있다는 그 자체 하나로 / 감사해야겠습니다. // 그 마음이 / 색감에 투시될 때 우리는 / 마음 안의 / 또 다른 세상을 만나는 것입니다. // ■ 자작시집 『내면화』중

Vol.20080107e | 신사빈展 / SHINSABINE / 申思彬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