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lams and Glimmers in Seoul

안세권展 / AHNSEKWEON / 安世權 / video.photography   2008_0109 ▶ 2008_0120 / 월요일 휴관

안세권_2005년 5월 2일 서울 청계천_디지털 프린트_132×268cm_2007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갤러리175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8_0109_수요일_05:00pm

후원_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175_Gallery 175 서울 종로구 안국동 175-87번지 안국빌딩 B1 Tel. +82.2.720.9282 gallery175.egloos.com

2000년대 서울 비사(秘事)-안세권이 이미지에 담은 서울의 속성들 몰락한 주변부: 월곡, 청계천 ● 안세권이 영상과 사진으로 담아낸 공간은 대부분 이제는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몰락한 곳들이다. 이 공간의 '몰락'은 애초 그 곳들이 선진 자본주의를 경원하는 대한민국의 '토건주의' 경제속도와 '과시형' 문화 취향에 발맞추지 못했기에 강제적으로 집행된 해체의 형태를 띠고 있다. 역설적이지만 그래서 또한 이 영상과 사진들에는 대한민국 대도시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성냥갑 형 아파트나 국적불명 절충주의 양식의 대형빌딩 같은 '발전'의 표상이 담겨있다. 말하자면 한 이미지에 '몰락'과 '발전'이 야누스적으로 동거하고 있는 셈이다. 가령 포클레인으로 깎이고 뒤집혀 줄 쫙쫙 그어진 희멀건 몸체의 땅덩어리 옆으로 수직 상승형 아파트 군락이 열과 행을 맞춰 불 밝히고 있는 성북구 월곡동 개발지대 사진을 보라. 또 가령 '1950년 6?25 동란 때 폭격 맞은 서울이 이랬을까' 싶게 처참할 정도로 바스러져, 철근과 콘크리트의 사체(死體) 안치소 같은 청계천 복원공사 초기(2004년 5월경) 현장 사진을 보라. 물론 우리는 그 사진에서 불가피하게 다음과 같은 것들도 보아야 한다. 원근법적 소실 선을 만들어내고 있는 눈부신 가로등과 난무하는 플래카드와 규칙적으로 처진 방진막. 이것들은 앞서 서술한 죽음의 공간 청계천에 병존했던, 쇠락한 현존과 신화적 발전의 뒤얽힌 기표다. 그리고 그마저도 2005년 10월 1일 화려하게 변신한 '행락지로서의 청계천' 개막과 함께 휩쓸려 사라져버린 파편성과 일과성의 대한민국 엠블럼(emblem)이다. ● 서울에서 공간의 변화는 점진적인 것이 아니라 앞선 시간과 단절하며, 한 장소가 이전에 가졌던 독특한 성격을 급히 털어버리며, 비약적으로 이루어진다. 안세권의 영상과 사진에서 서울 곳곳이 '몰락한 주변부'라는 반면(半面)과 '발전의 중심'이라는 반면을 하나의 얼굴로 한 채 등장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이다.

안세권_뉴타운 풍경, 2006 서울, 월곡동_라이트 패널_2007
안세권_뉴타운 풍경, 2007 서울, 석관동_라이트 패널_2007
안세권_뉴타운풍경, 2004년 서울 삼선동, 2007년 서울 월곡동_라이트 패널_2007

침묵의 시간: 새벽 5시, 2003년 7월 1일 이후 ● 모든 사진가들에게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기본적으로 사진을 찍는 일은 어느 정도 고독한 상태와 일정량의 침묵을 강제한다. 주변의 부산함이나 혼잡으로부터 떨어져 나와야만 대상을 정확하게 바라볼 수 있고 이미지화할 수 있으며, 셔터를 누르는 시간은 절대적으로 정중동(靜中動)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이런 요소는 안세권의 경우, 사진의 분위기를 통제함으로써 구현되고, 그 분위기는 사진의 색조(tone)를 통해 집약적으로 나타난다. 이를테면 사진을 찍는 이에게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고독과 침묵이 이 작가 작품에서는 이미지 톤을 통해 감상자에게 전달된다는 얘기이다. 안세권이 찍은 서울 사진들 대부분은 예외적일 정도로 푸른 색조를 띠고 있다. 그 색조가 어떻게 보면 피사체 '서울'을 매우 투명하고 선선한 공간으로 현상한다. 마치 푸른 수족관의 내부처럼, 겨울 새벽녘 환경미화원의 입 주위에서 피어나는 서릿김처럼 맑고 차가우면서도 단단해 보이는 이 서울의 이미지는, 작가가 아무도 깨어나지 않은, 여타의 존재와 사물이 숨죽이고 있는 시간에 피사체가 된 공간과 마주했음을 증명한다. ● 새벽 5시. 재개발 공사의 해체 과정에서 폐허더미로 변한 월곡 산동네 사진에서 전면에 포착된 온갖 건축 쓰레기, 절단난 생활의 부스러기들은 그 '파편성'으로 무척 소란스러울만한 피사체들이다. 그런데 안세권의 사진에서 이 개발의 노이즈(noise)가 너무나 고즈넉한 모습을 띠고 있는 것은, 오로지 사진가의 사진 찍는 목적과 그가 피사체와 마주한 시간이 '물질적 발전' 이데올로기로부터 궤도를 이탈한 데 있을 것이다. 불도저식 개발과 국민의 '경제적' 성공을 부르짖는 지금 이 곳의 목적론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과거에 대한 존중, 그 목적론의 시계바늘이 시끄럽게 가리키고 있는 생산성의 시간과는 다른 성찰의 시간. 이 심리와 시간성이 안세권의 서울 사진에 푸른 색조와 차가운 서리 기운으로 기입돼 있는 특수한 미장센이다. 그 미장센은 때로 늙고 추한 얼굴에 범벅된 짙은 화장처럼, 피사체가 된 대상의 현실적 곤궁과 신체적 고통을 나쁘게 미화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그의 사진에서, 월곡의 산동네 철거 주민들이 당장에 겪었을 약자로서의 배고픔, 내쫓김, 모멸은 청명한 사진의 분위기 속에서 억압되거나 가상이 되어 버리기도 하는 것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세권의 사진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면, 우리는 그 이미지들이 돌이킬 수 없는 서울의 실재했던 과거들, 이제는 '침묵'과 '망각' 속으로 사라져버린 현실의 순간들을 표지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찾을 것이다. 여기서 말한 '침묵'은 앞서 말한, 사진가가 사진 찍을 때 필수적으로 강요받는 침묵이 아니라 역사에서 버려져 더 이상 현재의 의식에 회부되지 않는 과거가 강요당하는 침묵이다. 예를 들면 2003년 7월 1일 청계천 복원공사 개시 이후, 우리가 더는 관심두지 않는 그 이전 시기의 청계천이 겪는 침묵이다. 거기 잡다한 노점상들 속에, 지저분한 상가 건물들 속에, 헌책방의 누런 책들과 불법비디오의 유치한 딱지 속에 너무나 분명하게 우리의 한때 삶이 기입돼 있었는데도 우린 그것들에 대해 말하지 않았고, 잊어버렸다.

안세권_2004 하이서울 페스티발 기간중 청계천 축제, 서울 청계 9가_라이트 패널_2007
안세권_2005년 그해 마지막날 청계천_라이트 패널_2007

빛의 양면적 이미지: 표면의 환상들 혹은 유령들 ● 어느 때부터인가 서울의 곳곳이 인공 빛으로 반짝이기 시작했다. 구두쇠 스크루지 영감의 어두운 침실 같았던 서울은 현재 마리 앙투아네트의 베르사유 궁처럼, 혹은 19세기 파리의 불르바르(Boulevards)처럼 광휘로 빛나고 있다. 한강 다리는 밤마다 연중무휴 365일 크리스마스 장식처럼 반짝이고, 서소문과 을지로에 집결된 대기업 사옥은 각종 조명 이미지로 굴뚝 산업의 황혼을 자축하는 분위기이며 그 주변 백화점들은 상품 물신을 첨단 조명장치의 광휘로 전파한다. 서울 시청 앞 광장과 청계천 물길은 또 어떤가? 루미나리에(luminarie) 축제 속에서 오색 빛이 군중 또한 장식으로 만들며 넘실거린다. 한편으로는 황홀하게 반짝이며 도처에 넘치는 이 빛들이 대한민국 서울의 강퍅한 삶을 위무해줄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그 강렬한 조명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만들어지는 그늘 또는 어둠이 이 매트로 시티를, 첨단 건축물을, 소위 '명품'을, 그리고 우리 개인을 유령처럼 실체 없고 기괴한 어떤 것으로 만든다. 손전등을 아래서 비추면 누구라도 귀신 얼굴이 되는 것처럼, 권위의 소도구로 애용되는 서울시의 조명들, 환상의 촉매제로 동원되는 후기 자본주의 상업 공간의 빛 장식들은 우리 현존의 얼굴을 유령화 한다.

안세권_Gelams and Glimmers in Seoul_라이트 패널_2007
안세권_Gelams and Glimmers in Seoul_라이트 패널_2007

완전히 어두운 전시장 공간에 설치되는 안세권의 라이트 패널(light panel) 사진작품들도 이와 같이 '유령적' 속성을 갖고 있다. 인화지에 출력한다면 일반적인 도시 풍경 사진처럼 견고하고 안정적으로 보일 안세권의 일련의 사진들은 자체 발광하는 '빛 판' 형식으로 제시됨으로써 공간 속에서 부유하는 비물질에 근사(近似)해진다. 내부에 빛이 없을 경우 우리의 상상력은 그 대상의 내면적 깊이를 탐사하지만, 자체 빛을 통해 스스로의 내장까지 비춰 보이는 대상에서 우리 감각이 하는 일이란 표면을 훑는 것이다. 그것은 테러시대 공항검색대가 요구하는 투명비닐가방과 닮은꼴로서, 드러난 이미지의 세부를 검사하거나 양상의 표피를 일견하기에 유용하다. 안세권의 라이트 패널 형식 사진을 두고, 우리가 서울을 기만적인 빛으로 유령화 할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과 동시에 그 자체 발광하는 사진들이 우리 일상 표면에 '숨은 그림'처럼 공존하고 있는 비밀스런 사실을 노출시켜 우리를 각성시킬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이러한 문맥에서만 타당하다. ■ 강수미

Vol.20080110c | 안세권展 / AHNSEKWEON / 安世權 / video.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