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자신이 극장인 사람

정상현展 / JUNGSANGHYUN / 鄭相鉉 / video.photography   2008_0110 ▶ 2008_0117

정상현_조각적인 습격_단채널 비디오_00:06:04_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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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8_0110_목요일_06:00pm

송은갤러리_SONGEUN GALLERY 서울 강남구 대치동 947-7번지 삼탄빌딩 1층 Tel.+82.2.527.6282~6289 www.songeun.or.kr

현실계와 상호 작용하는 틀 ● 정상현의 작품에서 세트는 현실의 이곳저곳에 놓여지면서 모든 장소를 무대처럼 연출하게 하는 장치이다. 그것은 '보는 통로'가 되며, '세상과 마주하고 있는 최소한의 방어벽'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작업에서도 나타나듯, 그러한 방어벽은 흔들리고 있다. 구분되던 두 가지 차원이 교란되고 있는 것이다. 틀을 위협하는 것은 바로 위험과 부조리한 요소들로 가득 찬 현실세계이다. 세트 안의 세계는 창이나 문 저 너머에서 흘러갈 뿐이었던 격동적 요소로부터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 정상현의의 작품에서 틀은 픽션적인 구도로 실제를 보여준다는 발상을 통해 현실과 환상의 다차원적인 관계를 게임하듯 설정해 왔지만, 근자에 와서 틀은 중성적인 통로나 완충 장치를 넘어 외부의 힘이 직접 작용하고 있다. ● 가령 풍경 속의 차가 지나갈 때마다 세트가 흔들리는 작품, 심지어는 세트를 실제 자동차가 치고 지나가는 것처럼 연출한 것도 있다. 세트는 작가만이 자유롭게 운용할 수 있는 안정된 놀이적 공간으로서의 위상을 잃고 점점 위태로운 공간으로 변해가고 있다. 틀은 사건이 일어나는 세계를 극화시킨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모형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이해시키는 원형이 된다. 요컨대 그것은 조직화를 통해 인식시키는 것이다. 축소 모형은 요소와 요소 간의 관계를 총체적인 관점으로 조율함으로서 단순한 투영을 넘어서 개념적 차원을 획득한다. ● 그것은 현실이 가지는 여러 차원을 조정함으로서, 현실과 거리를 두기도하고 현실과 밀착시키는 장치가 되기도 하다. 퍼트리샤 워는 「메타 픽션」에서 현실을 허구(fiction)와 분리시키는 틀을 문제 삼았다. 그녀는 많은 현대 예술 작품이 어디서 하나의 틀이 끝나고 다른 틀이 시작되는지는 알 수 없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현대예술은 틀과 틀 파괴의 교대 반복, 즉 틀을 지각할 수 없도록 만들어서 환상을 구성하고, 틀을 계속해서 노출시킴으로서 환상을 깨뜨리는 방식을 취한다. 여기에서 현실과 허구라는 단순한 이분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현실과 허구를 가르는 이분법이 해체된 상태에서, 현실 또는 픽션은 단지 상이한 여러 가지 틀의 집합이며 관습들과 구조들의 상이한 결합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다.

정상현_톰의 분노_단채널 비디오_00:07:27_2007

더 나아가 틀로 짜여진 것과 틀로 짜여지지 않은 것 사이에는 어떠한 구분도 있을 수 없다고 주장된다. 다만 형식의 단계들이 존재할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론들은 너무 멀리 나아갔다. 모든 것을 틀로 환원시킨 후, 틀 자체의 위상도 불확실해지는 과정은 현대 언어학이 밟아온 궤적과 상당히 유사하다. 즉 사물과 분리된 언어는 다시 기표와 기의로 나뉘어지고, 종국에는 내용이 없는 기표의 흐름만이 현실을 채워가는 상황 말이다. 틀의 역할이 과장된 나머지, 현실과 무관한 자족적 장치로 물화(物化)될 때 작가는 현실계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현란한 시각효과로 가득한 현대의 영상물-영화, 게임, 애니메이션은 물론 대형 전시장을 채우는 미디어 작품 등-이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그에 비하면 정상현의 작품은 매우 단촐하다. 몇 가지 요소로 삭감된 작품의 구성요소들의 변주를 통해 찻잔 속의 폭풍같은 효과를 자아낸다. ● 그의 작품에서 세트라는 구조물은 현실, 또는 환상을 구성하는 행위로서의 틀짜기(framing)와 관련된다. 정상현의 많은 작품이 틀 속에서 또 다른 틀이 계속 나타나는 복합적인 양식을 취한다. 이전 작품에서 세트 안에 미니어쳐가 장치되기도 했던 안정적 구도가 건너편의 현실처럼 요동치는 것은 위태로와 보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자칫 언어의 감옥에 갇힐 수 있는 보다 큰 위험을 극복할 수 있는 방식이라고 생각된다. 현실이 단순히 주어진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차원이 상호교차 되는 복잡한 것이며, 계속적으로 구조화되는 것이고 따라서 열려있는 것이라면, 그것을 포획하는 그물망 역시 현실과 더불어 역동적으로 운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실이나 역사는 이론적으로는 허구적인 구성일 수 있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폭력적인 현실에 의해 쓰러지는 수많은 존재들은 현실을 손쉽게 괄호 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 이선영

정상현_펼쳐진 파란 방_디지털 인화, LCD, 하드플레이어_57×320cm_2007

자기 자신이 극장인 사람 ● 아침에 눈을 뜰 때, '나는 안전한가?'라는 질문을 하게된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공격받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고 그것을 떨쳐버리려고 애를 쓸수록 해답에서 멀어지는 느낌을 받는다. 현대인의 자격이 없는 것일까? 살아가는 방법이 틀린 것인가? 아니면 처음부터 그렇게 짜인 각본대로 살 수 밖에 없는 걸까? 그냥 파란 방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습기차고 어두운 방에 오래 있다보면 스스로의 모습에 지쳐있는 자아와 대면한다. 파란색은 '절망, 고독, 이별'과 '정화, 치유, 희망'의 양면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알 수 없는 불안감과 분노, 피할 수 없는 공포의 색깔이다.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벽면의 촉감은 서늘하고 날카로우며 무섭기까지하다.

정상현_여행자의_눈_PlayStation_Portable_00:03:11_2007

같은 장소, 같은 조명 아래서 공간에 대한 사진 찍기를 반복한다. 이 원근법을 응용한 사다리꼴 세트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다. 벽면에 흘린 색깔을 따라 심리적 흔적들이 연출되고 바닥으로부터 무심한 기둥들이 조금씩 자라나며 방의 문들은 열림과 동시에 어느덧 닫혀버린다. 일련의 과정들은 공간 스스로가 자라고 진화하는 형태를 보여준다. 인식할 수 없는 순간에도 비어있는 것들은 조금씩 움직이고 활동한다. 창밖의 풍경은 달력 그림이다. 어떤 이미지가 이와 같이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모습을 극명하게 보여 줄 수 있을까? 일직선으로 배열된 계절의 순간적 풍경들은 시간이 흐르고 있음을 객관적으로 표현한다. 그곳에서는 바람이 불어 꽃잎이 날리고 수면 위에는 물안개가 피어오르며 눈이 펄펄 내리고 있다. ● 내가 살고 있는 혹은 내가 바라보는 이미지의 조합은 현실적인 감각을 마비시키는 동시에 허구적인 이미지들이 현실처럼 보이게 하는 은유적인 시각장치이다. 절박한 현실을 증명하기 위하여 비현실적 장치를 차용하는 것이다. 허구를 통해 현실을 마취시키려는 시도는 세계 내에서 존재하기 위한 안전한 피난처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는 우리가 믿어왔던, 보아왔던 세상에 대한 시선과 부조리한 삶에 대한 습관적 관념을 다시금 재고하도록 허락한다. ■ 정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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