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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화이트 갤러리 WHITE GALLERY 서울 서초구 서초동 1720-8번지 흰물결빌딩 Tel. +82.2.535.7119 www.whitehall.kr
김지아나는 하나의 세상을 연주한다. 그녀에게 있어서 도예작업이란 일종의 악기와 같은 것이다. 그러나 만들어진 악기가 아니라 악기를 만들면서 연주까지 한다는 점에서 그녀는 총체적인 예술가라 할 수 있다. 도예가는 무릇 흙의 정신과 불의 마력을 동시에 다루는 사람이다. 이러한 점에서 그녀는 흙에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하려는 연금술사의 몸짓을 상기시킨다. 여기서 연금술사와 조금 다른 차이점이 있다면 도예의 방법론을 통해 흙을 어루만지고, 형태를 빚고, 조형적인 설치작업을 통해 자신이 작곡한 곡을 연주한다는 점일 것이다.
김지아나의 작품이 지향하는 특징 중의 하나는 개개의 유니트들이 하나의 완결된 형태가 아니라 전체를 구성하는 작은 부분들로 역할 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오케스트라를 구성하는 악기들과 같다는 사실이다. 하나가 전체를 위해 종속되고 전체가 장중한 하나의 곡을 위해 일체가 되는 것처럼 그의 작품은 하나가 전체로, 다시 전체가 하나가 되는 순환적 관계성을 드러낸다. ● 지난해 환기재단의 공모작가 기획전에 출품한 작품들은 바로 이러한 그녀의 생각을 명료하게 드러내 주고 있다. '점으로부터, 점으로'라는 주제의식이 반영된 개인전 형태의 전시가 바로 그것이었다. 김지아나는 모든 그림이 점으로부터 시작되듯이 자신만의 물감인 오브제로서 그릇형태인 보울(bowl)로 그림을 그린다고 말한다. 더구나 그 보울이 입체적 형태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하나의 점으로부터 출발하여 완성된 설치작품들은 다시 공간 속에서 미묘한 울림을 만들어 내게 된다는 것이다. 점, 공간, 시간성, 시선의 변화, 그림자 등과 같은 조형적 화두가 바로 그의 작품을 구축하는 중심적 키워드(keyword)들이다. 그녀가 생각하는 점으로서의 그릇형태의 오브제들은 자연의 우연성과 생명력이 동시에 내포된 프랙탈(Fractal)적 형태들이라 할 수 있다. ● 프랙탈은 카오스에 내재한 질서 있는 구조를 말하는 것으로, 고사리의 갈라진 잎사귀들이 전체적으로 닮은 모양을 하고 있는 것과 같은 자기유사성(Self-Similarity) 그리고 이렇게 닮은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순환성(Recursiveness)의 특징을 지니고 있는 것을 특별히 지칭한 말이다. 프랙탈론에 의하면, 프랙탈 구조는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나누고 있다. 하나는 자신의 모양을 몇 단계에 걸쳐서 재귀적(再歸的)으로 수학적 규칙에 따라 축소시키고 회전시켜 만들어지는 결정형 프랙탈과 다른 하나는 형상의 일부분을 계속 확대할 때 전체 모습과 통계적으로 유사한 형상을 갖는 비결정형 프랙탈이다. 결정형 프랙탈의 예로는 칸토르 먼지, 코흐 곡선, 코흐 눈송이, 시어핀스키 삼각형, 시어핀스키 양탄자, 피타고라스 나무 등이 있다. 비결정형 프랙탈의 예로는 자연 세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로서 브로콜리, 콜리플라워, 고사리, 나무, 해바라기, 벌집, 소라껍질, 눈꽃송이, 해안, 강줄기등이 있다는 것이다.
김지아나의 근작 중에는 빛으로 그린,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조명을 활용하여 얇은 도편(陶片) 위로 투과되도록 한 작품이 발표될 예정이다. 그녀는 도예작업을 하나의 회화적 표현수단으로 생각해 왔다면, 이의 확장된 지평에서 빛을 도입함으로써 가변적 상황을 더욱 극화(劇化)시키려 하는 것이다. 여기서 극화 혹은 가변성이라는 용어는 김지아나의 새로운 작품에서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차지하고 있다. 비평적으로 말하자면 김지아나는 창작동기를 유추하게 하는 제목과 결과적 표현으로서 작품 간의 편차가 큰 작업경향을 노정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간 미국에서 발표한 작품들을 분석해 보면, 자연의 현상 혹은 과학에 관한 주제(시간(Time), 움직임(Movement), 공간 속의 공간(Space in Space), 유전자 그림(DNA painting), 토네이도(Tornado) 등)와 내러티브(narrative)적 주제(사랑(Love), 달빛(Moonlight), 좋은 하루(Have a nice day!), 평형상태(Equilibrium) 등이 교차적으로 공존하고 있었다고 파악해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주제의식과 작품의 외형적 형식 간에는 작가의 의도였던 그렇지 않던 간에 적지 않은 간극이 목격된다. 나는 이 점과 관련하여 김지아나가 이러한 간극의 편차가 더욱 커지도록 의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론적 선택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예컨대 프랭크 스텔라(Frank Stella)의 사례에서 목격할 수 있듯이, 작가의 표현적 함의에 관람자가 어차피 감정이입의 완전한 상태에 도달할 수 없다면 제목과 작품과의 불이치성은 불가피한 것이며 이런 차원에서 작가의 자의적 혹은 주관적 메시지 전달은 일방적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그러한 것이다. 마치 모더니즘 미술에서 관습적으로 제시되기도 했던 작가의 주제의식을 방임했던 「무제(Untilted)」가 지닌 함의처럼 말이다. ● 생각컨대 김지아나가 빛으로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생각은 오브제로 삼아 설치적으로 구성한 보울의 복제형태들을 하나의 점으로, 회화적 궤적으로 본 것에서 연유하였다고 여겨진다. 이 지점에서 빛에 관한 그녀의 조형적 관심을 자극한 것은 도편의 투과성을 극대화시켜 보려는 의도와의 관련성을 간과할 수는 없을 듯하다. 빛 혹은 조명은 새로운 지각경험을 유발하는 매체이자 대량생산된 복제성과 관련이 있다. 그녀는 이 매체를 단지 새로운 지각경험을 유발하는 조형적 매개체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그의 예술적 표현의도를 확장해 나가는 방법론으로서 채택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김지아나는 벽면과 바닥을 대상으로 LED 조명을 도입하여 자신이 제작한 도판의 파편들과 접목하여 일정한 빛의 형상을 보여주고자 한다. 벽면에 설치될 작품들이 하나의 도예벽화처럼 기능하여 회화적 감흥을 던져주려 한다면, 바닥에 설치될 작품에서는 관람자들은 밑에서 비치는 조명의 빛에 의해 도편들의 중첩효과를 감지하게 된다.
여기서 김지아나는 근작들의 주제의식을 드러내고자 하는데, 그것은 우리 세계에 존재하는 자연의 질서 그 본질적 의미에 대해 성찰하게 하고자 하는 것이다. 벽면의 서로 다른 빛깔의 조명에 의해 원환으로 그려질 형태들이 관람자의 상상에 따라 태양이나 혹성의 표면, 조형적 요소가 주는 마력적 기운, 색채가 던져주는 상징성들과 관련한 어떤 의미들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 현장체험의 장에서 관객들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시각의 차이, 조명의 변이, 실제의 상황적 공간이 개입된 극화된 정황(情況)이 던져주는 조형적 사유의 끝자락(edge)을 어루만지게 될지도 모른다. 조명에 의해 창출된 새로운 도편의 미묘한 중첩효과가 마치 종이처럼 우리의 시선을 투과하면서 빛으로 채색한 현실 너머의 이미지를 연상가능하게 한다면, 아마도 그 반응의 가지 끝에서 김지아나의 조형적 미래는 새로운 날개를 펼칠 수 있는 가당한 힘을 얻게 될 것이다.
근작의 주제로 설정한 '점으로부터, 점으로'가 프랙탈적 변주곡으로 우리의 시선을 적셨다면, 김지아나의 '빛의 그림'들은 매체의 복합적 결합이 파생시킬 수 있는 물질성, 투과성, 시간성에 관한 도예의 새로운 미적가치를 제시해 나가고 있다. 김지아나의 이 실험적인 매체실험의 평원에는 도예의 기능, 미학에 관한 새로운 나무들이 프랙탈적 구조를 내포한 채 성장해 나가고 있다. 우리가 그것을 비평가의 관점, 관객의 입장에서 지켜볼 수 있음은 그녀의 작가적 미래와 관련하여 참으로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 장동광
Vol.20080110g | 김지아나展 / KIMJIANA / 金志我懦 / ceram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