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의 방식∥ The Way of Dialogs∥

오용석_이진화_장아로미   2008_0116 ▶ 2008_0202

오용석_The 1st day_캔버스에 유채_89×145cm_2007

초대일시_2008_0116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월~토요일_09:00am~07:00pm / 일요일 휴관

정소영갤러리 CHUNGSOYOUNG GALLERY 서울 강남구 청담동 9-3번지 문영빌딩 B1 Tel. +82.2.3446.6480 www.chungsoyoung.com

『대화의 방식Ⅱ_The way of dialogsⅡ』에서는 지난 Ⅰ부에서 박종필, 황지윤 등의 작업을 소개한 데 이어 오용석(회화), 이진화(사진), 장아로미(사진) 등 세 명의 작가들이 새롭게 소개된다. 이번 전시에서 초점을 맞추고자 하는 것은 시각예술 안에서 이뤄지는 대화의 형태가 동시대적 차원에서 어떻게 형성되고 또 전개되는가 라는 물음을 던지는 일이다. 이는 변화하는 시대적 환경 하에서 형성되고 있는 새로운 감수성을 확인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들의 관점과 이야기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이른바 새로운 감수성을 보다 의미 있는 논의의 장으로 끌어들이고자 하는 것이다.

오용석_Arrival_캔버스에 유채_89×145cm_2007

오용석 ● 오용석은 현재에서 멀리 벗어나 있는 시간과 공간상의 특정 사건이나 인물에 주목한다. 이들은 대체로 미디어를 통해 알려지고 소비되어 온 사건 혹은 대상들이다. 그는 회화적 언어를 도구 삼아 포르노 배우의 실제 삶을 고민하거나, 과거의 연쇄살인사건을 추적하고 재구성한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연쇄살인 사건의 한 피해자인 '엘리자베스 쇼츠'를 중심으로 알려지지 않은 사건의 이면과 더불어 가해자의 욕망을 추적한다. 이런 이유로 얼핏 서정적인 풍경으로 비춰지는 그림들에는 죽음과 욕망의 흔적이 강하게 담겨 있다. 작가는 마치 호기심 많은 아이처럼 그 안의 모든 상황과 대상들에 질문을 던지고, 또 이를 존재론적 물음으로까지 넓혀간다.

이진화_나무가 자란다_디지털 프린트_67.5×45cm_2007

이진화 ● 이진화는 인도를 여행하면서 후미진 골목, 집들의 닫힌 대문, 빈 화장실 등의 공간을 사진에 담는다. 이와 더불어 작가는 이 사진들 위에 수채로 드로잉을 남긴다.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 일련의 공간들은 허름한 시간의 더께가 무겁게 앉아 있다. 그는 이러한 공간에 드로잉을 남김으로써 자신의 내적 정서를 이끌어내거나 반영한다.

이진화_나무가 자란다_디지털 프린트_67.5×45cm_2007
이진화_나무가 자란다_디지털 프린트_67.5×45cm_2007

그렇지만 사실 작가로부터 빚어진 나무들은 흔히 연상할 수 있는 생명, 희망, 따뜻함 등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무겁고 쓸쓸하다. 아마도 이는 어쩌면 외부의 것이 아니라 누구나 가슴 한 자리에 움켜쥐고 있는 상념의 방이며 내면의 풍경이다.

장아로미_plastic tuning #06_디지털 프린트_80×154.3cm_2008

장아로미 ● 장아로미는 브라이스 인형(Blythe)을 바탕으로 자신의 신체를 성형하고 버섯 등으로 이루어진 피안적 가상의 공간을 구축한다. 이는 변형된 유아적 소망과 꿈의 표상이다. 그렇지만 정작 그러한 시도들을 통해 작가가 만나는 것은 꿈에도 그리던 이상향이 아니라 오히려 기괴하게 왜곡되고 일그러진 자아다. 그것은 곧 상실과 소외의 경험을 키워감으로써 마치 성장통을 겪고 있는 어른아이와도 같은 작가 자신의 슬픈 자화상이기도 하다.

장아로미_plastic tuning #07_디지털 프린트_72×194cm_2008

그런 점에서 장아로미의 사진작업은 곧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하나의 성장기적 여정이다. 나아가 이는 작가의 주관적인 경험을 넘어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장아로미_plastic tuning #08_디지털 프린트_95×100cm_2008

위의 세 작가들의 작업들을 관통하는 어떤 구체적인 요소를 찾는 것은 쉽지 않다. 또한 그것이 이 전시의 궁극적 목적이 아님은 당연하다. 다만 여기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분명 이들이 기존의 형식이나 사유의 방식 안에서 움직이고 있지만 각각이 속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나름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어쩌면 아직 그것은 자아의 정체성과 작업의 방향성을 타진하는 차원에 머물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그들이 보여주고 있는 자기고민과 예술적 여정이다. 아마도 그 같은 대화의 방식에 동참함으로써 변화를 겪고 있는 우리 내면의 풍경을 대면할 수 있는 또 다른 단초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윤두현

Vol.20080117a | 대화의 방식∥ The Way of Dialogs∥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