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RACES

이경희展 / LEEKYUNGHEE / 李庚姬 / printing   2008_0123 ▶︎ 2008_0129

이경희_The Traces-2006_종이, 아크릴에 디지털 프린트_28×26cm_2007

초대일시_2008_0123_수요일_06:00pm

GALLERY I 기획초대展   관람시간 / 11:00am~06:00pm

갤러리 아이_GALLERY I 서울 종로구 낙원동 283-13번지 2층 Tel. +82.2.733.3695 www.egalleryi.co.kr

디지털로 복원해 낼 수 있는 것들은... 동시대를 주도하고 있는 디지털 테크놀러지의 영향은 미술영역 어디에서나 발견된다. 정보의 홍수 속에 나타나는 이미지 매체를 합성하고 컴퓨터 페인팅을 통해 이질감들을 응집시키는 과정들은 나에게는 허상을 실존으로 만들어가는 흥미있는 작업이 되어갔다. 나는 넘쳐나는 매체들과 이미지 속에서 각각의 이질적인 불안함들을 보았고, 그것들은 나의 지독한 우울함의 감성을 자극하였으며 그 냉정한 기계적은 프로세스 속에 서정적인 감성을 표현하고 싶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 작업을 나의 정체성을 교란시키던 바로 그 컴퓨터에서 찾고 있었다. 나는 본래의 맥락을 해체하고 새로운 맥락을 분주하게 찾아다니고 있다. 실체를 알 수 없는 사진속 이미지들은 서로 어우러지면서 향수를 불러주고 있으리라 믿고 있으며 이질적이고 무관계한 것들은 무의식의 지층에서 의식의 층으로 불러낼 수 있다고 믿는다. 오랜 기억 속의 편린들이다... ■ 이경희

이경희_The Traces-1993_종이, 아크릴에 디지털 프린트_28×26cm_2007

디지털프린트로 복원해낸 기억의 편린들 ● 이경희의 작업은 동시대에 있어서의 이미지가 존재하는 방식과 그 지정학적 위치에 대한 반성에 맞닿아 있다. 컴퓨터를 도구로 하여 생산된 그 이미지들은 창작 주체의 재현 논리에 바탕을 둔 전통적인 문제의식을 재고하게 만든다. 그의 작업에 도입된 컴퓨터는 단순히 외부로부터 요구된 명령을 수행하는 도구 이상이며, 나아가 주체와 세계와의 관계를 컴퓨터와 세계와의 관계로 전도시킨다. 즉 컴퓨터는 주체와 세계가 감각적인 접촉을 통해서 이미지를 생산해내는 방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과 체질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 과정이나 결과 역시 오리지널리티에 바탕을 둔 이미지와 창작 주체의 아이덴티티를 동일시하는 천재신화에 바탕을 둔 창작 개념을 재고하게 한다. 즉 창작 주체는 컴퓨터의 눈을 통해서 세계를 보며, 컴퓨터의 입과 귀를 통해서 세계와 소통한다. 컴퓨터가 주체의 태도를 대리하며, 주체의 인격을 대신한다. 나아가 컴퓨터가 진정한 자아를 획득하며, 진정한 주체로서 등재되기에 이른다. ● 대신 주체는 그 구체적 실체가 희박한 익명적 주체, 가면적 주체, 정보적 주체로 변질된다. 그리고 현실과 가상현실을 넘나드는 악몽과 더불어 마침내는 모니터 속으로 사라지는 『비디오드럼』의 영화 속 주인공처럼 컴퓨터 속으로 잠수한다. 주체와 컴퓨터의 지정학적 위치가 전도되고, 주체의 욕망이 컴퓨터의 욕망에게 먹힌다. 컴퓨터는 주체의 인격을 대리하고, 주체의 장소를 탈취하고, 마침내는 주체의 존재를 사라지게 한다. 컴퓨터는 스스로가 더 이상 가상 인격체이기를 거부하는 대신에 보다 실질적인 인격체를 욕망한다. 의미를 실행하는 수동적 주체에 머물기를 거부하고, 의미를 생산하는 능동적 주체를 욕망한다. 단순한 주체의 대리물이기를 거부하고, 주체와 대등한 또 다른 주체, 자율적인 주체를 욕망 하는 것이다. ● 작가의 작업은 이처럼 창작주체와 미디어, 도구의 사용자와 도구와의 전도된 관계를 대변해준다. 이는 작가 개인의 문제의식에서 더 나아가 컴퓨터로 나타난 사회 문화적 현상을 반영하고 있으며,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동시대의 이미지의 정체성에 대한 코멘트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설득력을 더한다.

이경희_The Traces-2003_종이, 아크릴에 디지털 프린트_28×26cm_2007

이경희가 그려낸 화면 속 이미지들은 컴퓨터의 도움을 받아서 작가가 생산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는 표면적인 현상일 뿐, 사실은 컴퓨터가 진정한 주체가 되어 그 이미지들을 생산한 것으로 봐야 한다. 마치 하얗게 발광하는 모니터 속의 커서가 그 눈을 끔벅이며 주체를 재촉하는 것처럼 컴퓨터가 주체의 욕망을 빌려 자기의 욕망을 실현한 것이다. 컴퓨터가 주체를 초대하고, 주체를 유혹하고, 주이상스(신의 음료수)로써 그를 도취케 한 것이다. 컴퓨터 자체는 신인류의 출현을 예고하고 있으며(온갖 첨단의 미디어로 무장한 유목전사 곧 디지털노매드와 같은), 마치 예견된 미로와도 같다. 그리고 우리는 기꺼워하며 그 미로 속에서 길을 잃는다(마치 이전에 책 속에서 그랬듯이). 그 속에서 하나의 이미지는 이중적인 의미로 읽혀지고, 또한 이중적인 이미지는 다중적인 의미로 해석된다(마치 책이 그 보이지 않는 행간과 이면에다가 표면적인 의미와는 또 다른 의미를 숨기고 있었듯이). 어떤 것, 바로 그것으로 나타난 지시대명사가 그 자리를 잃는 대신에 모든 이미지는 매트릭스의 자궁 속으로 흡수된다. 그리고 모든 의미는 상식과 선입견과 편견의 지평 위로 떠올라서 표면적인 차이와 경계를 상실한 채 하나로 뒤섞인다.

이경희_The Traces-2005_종이, 아크릴에 디지털 프린트_28×26cm_2007

실제로 작가의 화면속의 이미지들은 그 회로망 속에서 어떤 하나의 이미지가 다른 이미지와 질적으로 다르지 않으며, 하나의 의미가 다른 의미에 비해 더 결정적이거나 피상적이지 않다. 등장하는 모든 이미지는 등가를 이루는 것으로 나타나며, 다만 그것이 차용되어지는 맥락 속에서만 표면적인 의미가 달라질 뿐이다. 그런데 도대체 작가의 작업 속에 맥락이 있는가? 엄밀하게 말해 작가의 작업은 맥락이 없는 이미지, 맥락을 상실한 의미를 대변해준다(맥락이 없다기보다는 그 맥락이 결정적이지 않다는 말이다). 이런 맥락 없음에 대해서는 작가 자신의 작업에 대한 태도와 관념 탓으로 돌리기보다는, 컴퓨터 자체의 메커니즘에 기인한 것으로 봐야 하며, 그 만큼 작가의 작업은 컴퓨터 자체의 생리에 밀착돼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 사실 컴퓨터 속에는 무수한 맥락들이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그 자체 결정적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맥락의 망들은 차용과 인용에 의해 가공되고 편집되기를 기다리는, 변형되고 변질되기를 기다리는 비결정적인 의미소(하나의 의미로 형상화되기 이전의 의미의 원료)가 저장된 창고와도 같다. 작가는 마치 무의식의 지층과도 같은 그 저장고로부터 이미지를 캐치하고, 이를 의식의 층위로 불러낸다. 마치 유체와도 같이 흐르는 대양(이미지의 바다)으로부터 이미지를 불러내고, 이를 만화경과 같은 스펙트럼으로 되살려낸다. ● 이처럼 이경희의 작업은 외관상 이질적이고 무관계한 것처럼 보이는 이미지들의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그 이미지들은 테레핀 냄새에 묻어난 예술혼과 그 예술혼이 투사된 질료의 흔적 대신, 익명적이고 기계적이고 편평한 이미지를 되돌려준다. 질료를 결여한 이미지, 한낱 정보의 형태로 압축된 이미지, 손에 잡힐 듯 생생한 현실감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 실체가 없는 이미지를 되돌려준다. 이처럼 그 실체가 희박한 화면 속에서 자연과 문명이 충돌하는가 하면, 현재와 과거가 하나의 결로 교차한다. ● 삶의 상처를 떠올리게 하는 스크래치가 회화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가 하면, 여기에 알고리즘으로 나타난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추상적인 연산부호들이 결부되면서 일종의 개념적인 성격을 더한다. 그 망점이 드러나 보이는 인쇄된 이미지들, 그 실체를 알 수 없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사진 속 이미지들이 서로 어우러지면서 마치 영화의 스틸 장면과도 같은 분위기를 연출해낸다. 그런가하면 마치 카오스와도 같이 혼란스러운 이미지의 다발 속으로부터 어떤 하나의 이미지가 화면의 표면으로 떠오르는 동안, 또 다른 이미지는 희미한 흔적을 남긴 채 화면 속으로 사라지고 있는 중이다.

이경희_The Traces-2007_종이, 아크릴에 디지털 프린트_28×26cm_2007

이처럼 등장하는 이미지들은 컴퓨터의 망(미로의 다른 이름인) 속을 떠다니는 익명적이고 부유하는 정보에 맞닿아 있으며, 본래의 맥락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서핑(사물의 표면현상에 천착하는)과 매핑(자기만의 인식지도를 그리는)의 놀이에 맞닿아 있다. 더불어 동시대에 있어서의 이미지가 정보와 동격임을 말해주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창작주체의 관점이 새로운 이미지를 생산하기보다는 기왕의 이미지를 소비하는 방식(예컨대 재구조화하고 재영토화하는)에 맞닿아 있음을 말해준다. 그 이미지들은 비록 화면 속에 고정된 형태로 제시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임의적으로만 그러하다. 즉 화면 속 이미지들은 본래 그것들이 속해 있던 맥락을 해체하고, 대신 새로운 맥락을 찾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이는 잠재의식 속에서의 현상인 것이며, 그만큼 작가의 작업은 결정적이기보다는 비결정적이고, 즉물적이기보다는 암시적이다. 이경희의 작업은 비록 컴퓨터를 매개로 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사실은 이런 비결정성이나 암시적인 성질로 인해 기계적인 프로세스와는 거리가 먼 정서적인 환기력을 획득한다. 이를테면 향수, 기억, 회상과 같은 심리적이고 서정적인 계기들이 읽힌다. ■ 고충환

Vol.20080122c | 이경희展 / LEEKYUNGHEE / 李庚姬 / pr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