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7_1207_금요일_05:00pm
생명의 장-한국 현대미술에 나타난 몸展 FIELD OF LIFE-The Body in Contemporary Korean Art 참여작가 차기율_최원진_김효숙_전경선 김재홍_김준_구경숙_임미강_윤여걸 주최_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CSUS Library Gallery 후원_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_한국문화예술위원회
CSUS Library Gallery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몸Body'은 우리의 삶을 담고 그것을 반영함은 물론, 존재와 경험의 場인 세계를 구성하는 것이다. 따라서 각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신체의 표현이 문화적 생산물 속에서 중심적 역할을 했음은 당연한 것이라 하겠다. '몸Body'을 주제로 한 작품들에 나타나는 독특한 유형의 표현방식과 매체들은 결국 그 '몸Body'이 속한 문화와 시대적 상황, 그리고 그 존재에 대한 근원적 사실을 바탕으로 형성되는 것이다. 이렇듯 『생명의 장-한국현대미술에 나타난 몸(FIELD OF LIFE-The Body in Contemporary Korean Art)』展은 인간의 신체를 소재로 작업해 온 한국 현대 작가 9명의 작품을 통해 그들 작품에 깊숙이 관류하는 한국의 문화적 특징과 시대적 특성을 제시하고 동시에 '몸Body'이 각 작가마다의 개인적 경험과 관점에 따라 얼마나 다르게 드러나는 가를 보여주는 전시이다. ● 본 전시회에 초대된 작가들은 '몸Body'을 주제로 작업하는 한국작가들 중에도 특히 그 표현방법에서의 다양성을 고려하여 선정되었다. 비록 제한된 공간에서 전시되는 40여 점의 작품으로 한국 현대미술에 나타난 '몸Body'을 포괄적이며 온전하게 제시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나 회화, 소묘, 판화, 사진, 도자, 조각, 디지털프린트, 비디오, 애니메이션 등 현대미술의 표현매체를 폭넓게 보여주는 작가들로 구성하고자 하였다. 각각의 예술가들은 자신들만의 독특한 관점으로 육체에 접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공유하고 있는 문화나 시대의 흔적으로부터 그들의 작품이 반영하고 있는 개념이나 감성의 동일한 흐름, 그리고 미학적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 전시되는 작품의 수는 제한적이나 작품을 대하면서 우리가 발견했던 호기심과 흥분, 그리고 예기치 않은 발견과 같은 동일한 체험을 관람객들이 가질 수 있길 희망한다. 이 전시에서 우리는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몸Body'에 대한 우리의 문화적 해석이 갖는 다양성 속에서 심리적, 사회적, 역사적 유사성과 차별성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차기율은 다양한 인공물과 자연물을 결합해 거대한 설치작품을 창조한다. 그는 설치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아이디어를 가다듬고 명료하게 하고자 드로잉 작업에 집중한다. 그의 설치작품은 종종 이러한 일련의 드로잉 작업의 결과물이다. 그의 작품을 한정된 범주 안에서 요약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으나, 그의 전시에 공통적으로 강조되는 하나의 주제가 있다. 그의 설치작품들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우리의 존재나 육체가 문명과 자연 사이의 갈등하는 힘 사이에 어떻게 고착되어 있는지를 살피게 한다. 이 관점에서 볼 때 차기율의 작업은 우리의 삶에서 이러한 대립하는 힘들을 화해시키고자 하는 방법론에 대한 탐색이다. 그는 문명의 혜택을 거부하지 않으며 인공적인 것들을 흡수해 문명의 부패한 영향에 대처하는 치유책으로서 자연을 제시한다.
최원진은 하나의 풍경으로서 우리의 육체를 탐색한다. 자신의 신체 일부-손, 발, 가슴, 그리고 머리카락 등을 극단적으로 확대하여 거대한 크기의 시바크롬으로 인화한 그의 사진들은 감각적인 풍경을 보여준다. 이러한 풍경들은 언뜻 친숙한 듯 하면서도 동시에 신비롭고 낯선 기이한 세계처럼 보인다. 그의 사진은 흔히 인물과 연관되어 나타나는 주변 공간이나 움직임이라는 외부적 맥락을 완전히 제거하고 신체의 일부만을 확대함으로써 새롭고 매혹적인 환경을 창조한다. 이러한 환경은 낯선 영역에 의해 결정되며 예측하지 못한 빛과 그림자의 움직임에 의해 드러난다. 통상적인 기준점이 제시되지 않은 상태에서 최원진의 작품에 나타난 풍경의 크기는 기념비적이거나 혹은 미시적인 것으로 혼동을 계속할 것이다. 그가 창조한 이미지는 하나의 우주로서 인간육체에 관한 개념을 제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김효숙의 설치작품은 죽음의 고요함과 익명성을 표현하며 동시에 삶의 다양성과 생명력에 관한 느낌을 불러 일으킨다. 그녀는 이러한 역설적이고 신비하며 불가해한 비전을 손으로 만든 수백 개의 작은 테라코타 입상들을 제례적인 양식과 "군중"의 형태로 모으고 배열함으로써 달성하고 있다. 최소한의 수작업만으로 완성된 각각의 입상들은 격의 없고 생기 넘치는 표정을 하고 있으며 유약처리를 하지 않은 자연스런 색깔은 흙이나 무덤, 혹은 부장유물의 흔적을 보여준다. 이러한 관점에서 각각의 입상들에는 분명 원시성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입상들이 배열되거나 집적된 방식은 이러한 일면적인 해석을 벗어나 혼잡한 현대의 다양성을 암시하는 모호한 관점으로 대치된다.
전경선의 정교한 목조각 인물들은 육체를 '기억의 집(house of memory)'으로 간주한다. 전경선은 기억을 끊임없이 유동상태에 있는 연못으로 은유하며 이의 불안정성을 형상화하고자 한다. 정교하게 다듬어진 친근한 분위기의 작품인 "기억-꿈 IV(Memory-Dream IV)" 에서부터 실물보다 큰 인체조각들로 설치된 작업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은 다양한 크기를 갖는다. 전경선의 인체조각들은 다양한 원천으로부터 복합적인 상징들을 차용한다. 그 중의 하나로 사찰장식을 위한 전통적인 조각이나 마을 어귀에 서 있는 남녀 장승의 영향을 들 수 있다. 또한 그의 작품에 주로 등장하는 유동적 형태는 초현실주의 혹은 고딕식 신장(Gothic elongation of form)과의 연관성을 보여준다. 전경선은 이러한 다양한 영향들을 아울러 인간의 본질적인 고독이나 자아, 실존의 허약함을 드러내는 자신 만의 궤적을 따르고 있다.
김재홍은 한국의 정치사회 현실을 비판적으로 담고자 하는 민중미술작가로 활동했다. 그의 최근 작업은 일제시대 징병과 한국전쟁을 체험했던 한 도예가가 쓴 일기로부터 영감을 얻고 있다. 그의 대작 회화와 사진은 육체를 하나의 풍경으로서 묘사하고 있으며 이 육체 위에 폭력적인 역사가 남긴 지울 수 없는 생채기와 신체의 변형을 다루고 있다. 김재홍은 자신의 작품에서 전쟁이나 경제발전이 초래한 후유증으로 난도 당한 풍경을 암시하고 있으며 이는 풍경 내부에 존재하는 개인을 통해 투영되어 있다. 그는 인간의 육체를 가로지르는 상흔으로서 남북한 사이의 이데올로기적, 실질적 경계를 묘사하고 있다.
김준의 비디오 작품 "거품-아이보리 (Bubbles-Ivory)"는 연속적으로 등장하는 거품의 고리를 묘사하고 있다. 수평으로 놓인 사람의 다리에서 생겨난 기포들은 서서히 부풀어지며 다리를 들어올리고 마침내 터지고 만다. 이러한 거품들은 유행이나 소비행태에 따라 결정되는 "거품으로 가득 찬 사회"에서의 실존조건을 은유하고 있다. 특히 소비문화가 만연되어 있으며 쇼핑이 인기 있는 놀이가 되어버린 한국사회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김준은 로고와 상표가 인쇄된 실물보다 큰 벌거벗은 사람들의 디지털 이미지-이들은 종종 친밀하게 껴안은 모습으로 나타난다.-들을 통해 강력한 사회적 은유로서 문신이나 로고에 대한 그의 관심을 보여준다. 그는 상표와 문신을 개인의 의식에 부여된 감춰진 욕망의 은유, 부와 신분상승을 향한 충동의 은유로서 해석한다. 김준의 작품은 이러한 도상학이 삶의 가장 친밀한 양상들조차 부정하며 개인에게 정신적 육체적으로 강력하게 반영되고 있음을 제시하고 있다.
정체성과 몸에 관한 문제들을 다룬 이전의 조각과 설치작업에 이어 구경숙은 "보이지 않는(Invisible)" 시리즈를 통해 육체의 무형적인 삶에 초점을 둔다. 이 시리즈 작업에서 그녀는 일상의 실존 가운데서 보거나 느끼거나 인식할 수 없는 물, 림프(lymph), 혈액 등의 움직임이나 이것들의 세포로서의 삶을 표현한다. 사진용액과 인화지, 그리고 자신의 몸을 표현도구로 이용하여 그녀는 인체 내에 눈에 보이지 않는 신비로운 생명의 흐름을 나타내는 독특한 방식을 탐구하였다. 카메라 없이 사진화학적 반응으로 얻어낸 인체이미지는 한지 위에 디지털로 확대 인쇄되었다. 이러한 방식으로 완성된 작품은 기존의 사진적인 범주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바디그래프(bodygraphs)"라 부르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다. 구경숙의 작품을 어떻게 정의하든, "보이지 않는(Invisible)" 시리즈는 그녀의 몸, 정체성, 존재에 대한 새로운 탐색을 보여주고 있다.
여러 면에서 미술가이자 비평가인 필 로저스(Phil Rogers)의 말은 임미강 작업의 핵심을 잘 지적하고 있다. "임미강의 도조작품은 스스로의 인생에 관한 깊은 사고나 관심을 꿋꿋하게 표명하고 있으며 한편으로 자신이 속한 국가나 세계의 보다 넓은 주제에 대해 관찰하고 언급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그녀에게 있어서 전통의 보존은 중요한 문제이다. 그녀의 일부 작품은 한국인이라는 존재로서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한국적인 삶의 여러 양상들을 다루고 있다."라고 그는 임미강의 2004년 전시도록에 쓰고 있다. 이러한 면에서 그녀의 인물들과 설치작품들은 전통적인 도예기법과 상징주의를 모색하고 있으나 이러한 전통은 아상블라주(assemblage)와 같은 현대적 기법과 방법론의 도입으로 완화되고 있다. 이러한 기법의 혼합을 통해 창조된 작품들은 역설적이게도 창조적인 생명력과 자기 성찰적인 명상을 동시에 보여준다.
윤여걸의 판화와 애니매이션의 중심주제는 개인의 고독과 내성적인 우수, 그리고 심지어 소외일 수 있다. 그의 작품, 특히 목판화 작업에 등장하는 거대한 단일체적인 인물들은 무언의 무표정한 응시로 관람객을 대면한다. 치과용 전동도구들을 이용하여 마치 거친 그물망이나 잎맥으로 구성된 듯한 인물들의 목판을 제작한다. 이 인물들의 어색하며 기이한 신체비례는 원시적이며 완전히 진화되지 못한 육체를 암시한다. 우리는 이러한 작품들을 통해 이들 인물들을 왜곡시키고 억압하고 있는 근원적인 힘을 인식한다. 윤여걸의 작품은 문명의 온갖 허구를 벗기고 우리의 조상들이 가졌던 비전으로 관람객들을 인도한다. 그의 작품의 핵심은 현저한 사회문화적 진보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체 내에 감춰진 원시적인 원천과 대면하고자 하는 욕구를 드러내는데 있다. ■ 구경숙
Vol.20080131d | 생명의 장-한국 현대미술에 나타난 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