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aINst intervention

조종성展 / JOJONGSUNG / 曺宗成 / mixed media   2008_0403 ▶︎ 2008_0427 / 월요일 휴관

조종성_Architecture against space 1_제품케이스, 건축모형지_24.3×18.9×6.8cm_2005

초대일시_2008_0403_목요일_05:00pm

금호미술관 영아티스트 기획展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금호미술관 3층 전시실 KUMHO MUSEUM OF ART 서울 종로구 사간동 78번지 Tel. +82.2.720.5114 www.kumhomuseum.com

개입에 대하여_against Intervention 관조(觀照)라는 '한 눈 팔기' ● 조종성의 평면작업은 한마디로 '중국의 관념 산수화 속에서 산을 둘러보다 잠시 머무는 집에서 바라보던 풍경을 마음에 담아 그린 것'이다. 이는 관념 산수화의 연장선에 있으며 관람자들이 작품을 눈으로 만 보지 말고 그림 속에서 상상력으로 체험하기를 넌지시 권하고 있다. 화가 자신 역시 관조(觀照)속에 이동하는 정중동(靜中動)의 감상법을 거쳐 작품을 제작한다.

조종성_Architecture against space 2_제품케이스, 석고_9.4×7.2×4.3cm_2007

즉 관람자들이 산수화를 두 개의 곡면인 망막을 통해 감상하는 동안 그는 마치 그가 즐겨 쓰는 표현대로, 초능력을 가진 도사처럼 가상공간인 그림 속으로 산책하듯 걸어 들어가 체험한 것을 마음에 담아 또 하나의 관념 산수화를 제작한다. 오늘날 컴퓨터를 통해 게임을 하고 가상 카페에서 동호인들을 만나고 가상의 집인 블로그를 방문하기도 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현대인들조차 그림이라는 가상공간에 출입한다는 것은 어지간히 부지런하거나 예민하지 않으면 관람들에게 기대하기 힘들다. 이것이 민첩한 상상력에 기초한 부지런한 '한 눈 팔기'며 따라서 그의 '삐딱하게 보기'의 방식은 '산만한 한 눈 팔기'가 아닌 '엉뚱한 한 눈 팔기'라 할 수 있다. 나아가 그런 그의 상상력이 제공한 '엉뚱한 한 눈 팔기'식 보는 습성은 그림뿐 아니라 세상을 보는 방식에도 확장시켜 적용하기를 가늠한다.

조종성_Architecture against space 3_제품케이스, 건축모형지_22.8×6.3×1.5cm_2005

그림에서 나온 집에서 나온 집 ● 화가의 시점이란 원래 2차원의 세계에 관한 것이다. 화가는 '어떻게 보는가' 뿐 아니라 2차원인 평면에 그림을 그리면서 '어떻게 보이게 하는가'를 고민하는 사람들이다. 그 결과 서양화에서는 원근법이란 투시법이 탄탄한 이론을 구성했다면 동양화가들은 삼원법으로 풍경을 표현했는데 이를 통해 두 세계의 관념적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간혹 고개지의 그림「여사잠도」나 종병의 이론서「화산수결」을 빌려 동양화에도 원근법을 찾아볼 수 있다고 설명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그러나 보편적으로 동양의 산수화는「임천고지」를 지은 중국 북송의 산수화가겸 이론가인 곽희에 의해 알려진 고원법, 심원법, 평원법이라는 삼원법을 활용해 그들의 자연관을 표현해왔다.

조종성_Architecture against space 4_제품케이스, 건축모형지_32×19.7×4cm_2005

조종성은 고정시점을 이동시점으로 전환한 작업을 2차원에서 실현하는 화가의 규율을 깨고 구지 3차원에서 실현시키는 무모함을 즐긴다. 뿐만 아니라 이동시점에서 3차원으로 환골탈퇴(換骨脫退)한 '무모한 집'은 실용적인 측면에서도 '불편한 집'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최근 일본에서 웰빙을 컨셉으로 동선을 늘임으로써 의도적으로 불편한 집을 디자인한 실험적인 사례는 조종성의 '불편한 집'이 시사하는 '무모함'과 공동의 가치를 생산한다. 동시에 모형이긴 하지만 조종성의 '이동시점으로 본 (불편한) 집'은 반듯한 집만을 찾아다니는 생활인의 강박증을 해소해 주며 동시에 시각적인 쾌감을 선사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동시점으로 본 '불편한 집'을 돌아보다 보면 간과할 수 없는 미술사의 한 페이지를 상기시키는데 그것은 서구 원근법의 영향을 받기 이전의 러시아 화가들이 회화에서 표현했던 역원근법의 컨벤션(convention)에 관한 것이다. 서양의 원근법적 시각에서 보면 그들의 그림은 어눌하고 미숙한 단계로 보이지만 러시아의 역원근법은 그들 고유의 논리와 투시법의 체계에 의해 제작되었기 때문에 러시아 사람들 눈에는 결코 미숙하거나 어눌해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이렇듯 '어떻게 보는가'의 문제는 화가에게 투시법의 영역과 관련 있는데 그 속에는 시공간에 대한 그 문화권 사람들의 관념이 반영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가령 시공간에 대해 자연 과학적인 입장에 근거한 것이 서양 원근법이라면 러시아 회화에서 나타나는 역원근법에는 일상적인 지각과 세계관이 스며있다.

조종성_Architecture against space 5_제품케이스, 건축모형지_26×19.5×13.7cm_2007

이와 관련해 한동안 동양인들의 시각을 길들였던 원근법이란 불가항력 속에 '숨겨진 화가의 시점을 찾아서' 라는 조종성의 지난 전시와 이번 전시의 주제인 '개입에 대하여(against intervention)' 역시 이와 문맥을 같이한다. 거시적으로 볼 때 이는 러시아의 사례를 포함해서 동양의 문제일 뿐 아니라 세계 강국, 혹은 경제 대국의 참을 수 없는 거센 문화논리에 대해 비서구권에서 자국의 또는 지역의 문화를 사수하는 목소리로 확대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젊은 화가는 자신이 본능적으로 감지하고 추적해 온 작품들이 이 거창한 주제를 건드린다는 사실을 숙지해야 한다. 그러니 민첩한 상상력과 적당한 손재주만으로 감당할 수도 이어질 수도 없는 작품임을 인지해야 한다는 말이다. 와중에 미시적으로는 세상을 보는 내 안의 '고정된 시점'을 지우고 '이동 시점을 찾는 일'만으로도 화가로서 자족할 수 있다. 다만 그렇게 제작된 작품의 울림이 세상을 향해 제대로 작동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조종성_이동시점으로 본 집 2_건축모형지_가변설치_2007

불편한 집의 다중코드 ● '작가는 이 형식적 틀이나 가상의 제약을 어쩌면 투명한 플라스틱 케이스가 대신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투명 플라스틱 제품 케이스 안에 있는 건축물은 안정되고 편안한 공간속(in space)에 있는 것 같지만, 실은 틀과 제약을 뿌리치고(against space) 싶은 것이다.'? ■ 조종성 작가의 표현처럼 케이스는 곧 실제의 건축 조건과 제약을 지시하기도 하는데 이때 케이스는 조건과 제약을 넘어 건축에 대한 '개입 (介入)'으로 비약된다. 도시계획과 건축법과 같이 인간의 공존이라는 명분이 감수해야 하는 조건들 외에도 기본적인 안전수칙 및 자본주의가 자산과 부동산이라는 이름으로 변질시킨 건축에 대한 필요충분조건들과 환경에 대한 선행조건 들을 '투명 케이스'는 통틀어 함축한다. 하지만 작가는 조건과 제약으로서의 숙명 같은 투명 케이스에 순응하거나 길들여지기보다 투명케이스에 갇힌 집처럼 질식할 것 같은 침묵으로 저항하고 있다. 평면작업에서 산수를 담은 '프레임으로서의 집'과 입체로 환원된 '이동시점으로 본 집' 역시 외관상은 시점이라는 지극히 미술적인 문제로 보인다. 하지만 '이동시점'이라는 지역적인 문화적 코드와 특정 지역인들의 시지각적 컨벤션의 차원에서 원근법이라는 투시법과 관련된 서양미술사의 절대적인 영향을 '개입'이라는 정치적인 용어로 선택함으로써, 강자의 논리에 대한 맹목적 추종을 힐난하고 강대국의 문화적 우월감에 저항하는 정치적인 색채가 이면에 덧칠해져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하물며 그가 '케이스 속의 집'에서 얘기하고자 하는 것이 도시 속에 난무하는 무허가 건축이 아님은 삼척동자도 알 것이다.

조종성_이동시점으로 본 풍경_장지에 먹_165×165cm_2007

개입에 대한 개입 ● 또 하나의 관점에서 보자면, 조종성의 세 개의 집은 결과적으로 실용적인 측면에서 불편한 집이다. 첫 번째 집은 집 외부에 펼쳐져야 할 풍경이 집이라는 프레임 내부에 가득 차 있으니 한마디로 '도치(倒置)성 패러독스'라 할 수 있다. 그러니 실용적 관점에서 불편할 수밖에 없다. 두 번째 집 역시, 미관상 즐거움을 줄지언정 삐딱삐딱한 집을 실제로 짓는다면 낭비를 예상해야 할 것이고 그 집에서 생활한다면 적응기간 동안을 수행이라 각오해야 할 것이다. 이런 전제하에 두 번째 집인 '이동시점으로 본 집'을 들여다보면 첫 번째 집인 '산수화를 담은 집'과 세 번째 집인 '케이스 속의 건축 모형'의 성격이 모두 내재되어 있으며 '미학적인 집'에서 '실용적인 집'으로 변이의 분기점에 해당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케이스 속의 집을 '건축 모형'이라 부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따라서 건축 모형을 덮고 있는 투명케이스는 내용물을 보호하는 것 같이 보이지만 이면에 건축물의 성격에 "개입"하려는 의지가 강해 보인다. 그래서 "건축 모형이라는 공간이 저항하는 저 투명케이스는 도시에서 건축에 대한 여러 제한 조건과 법규들이다." 라고 세 번째 집인 건축 모형들은 작가의 입을 빌어 불편을 호소한다. 그러나 '개입'이라는 맥락에서 보자면, 원근법이라는 고정시점은 화가의 보는 방법론의 다양성에 대한 '개입'이었고 세 번째 집의 사례처럼 투명 케이스는 건축에 대한 부정적이거나 혹은 긍정적인 개입이었다. 그런데 이율배반적이게도 우리들은 '개입에 대항(against intervention)하기 위해 개입한다.' 평면 작업인 산수화의 프레임으로서 집이라는 틀 역시, 산수화의 구도에 '개입'하고 있고 이동시점으로 본 집이 나오기 전 과정인, 중국 관념 산수화속 집을 지우는 작업 역시, 젊은 화가가 중국 산수화에 '개입'한 흔적이다. 그리고 언어로 타자의 그림에 여백을 채우려는 이 글 역시, 조종성 작품에 대한 명백한 개입이다. ■ 이름

Vol.20080411c | 조종성展 / JOJONGSUNG / 曺宗成 / mixed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