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08_0503_토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스페이스 함 space HaaM 서울 서초구 서초동 1537-2번지 렉서스빌딩 3층 Tel. +82.(0)2.3475.9126 www.lexusprime.com
'한국 그리기' - 드로잉의 또 다른 가능성 ● 런던에서 서울로 온 지 3년째를 맞아 화가 존 포일이 첫 개인전을 연다. 새로운 정주처에서 그가 보여 주는 관심의 초점은 '한국 그리기'에 맞춰져 있다. 출품작들은 처음 거처로 삼았던 서울 삼청동 인근의 인왕산, 경복궁, 북한산, 양수리 같은 곳에서부터 애써 멀리 찾아 나섰던 전라남도 목포, 강원도 철암 등지의 풍경 드로잉들이다. 얼핏 보기에 이들은 우리가 흔히 접해 온 풍경화들과 다를 게 없다. ● 그런데 이 드로잉들은 한 장의 그림이기에 앞서 새로운 공간 안에 작가가 자신의 몸을 조응시키고 새로운 세계를 깨달아가는 과정이다.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작업을 통해서 비로소 나는 한국을 깨닫기 시작했다. 내가 작업을 멈출 수 없는 것은 그 때문이다." 자연 환경만이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 역사적 배경이 런던과는 크게 다른 이곳을 대상으로 한 그의 '한국 그리기'가 우선 일련의 풍경화들과 차별성을 지니는 것은 이 지점이다. 단지 자신에게 비쳐진 풍경이 아니라 자신을 성찰로 이끄는 열정이 일어나는 장소가 그의 드로잉인 셈인데 그래서 도처에 한국 사랑만큼이나 방법적인 고민이 녹아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수직으로 상승하는 고딕 성당들과 그 대신에 완만한 곡선의 형태로 스카이라인을 형성하는 경복궁의 고 건축물들, 평원으로 이루어진 런던 벌판에 익숙한 눈으로 그와는 다른 질량으로 다가오는 인왕산이나 북한산을 그리는 일들은 기존의 자연 인식과 새로 마주한 세계 사이에 일어나는 숱한 갈등, 딜레마, 어긋남 들과의 투쟁의 연속에 다름 아니다. 그 드로잉들 앞에서 우리가 영국의 풍광들로 각인된 그의 기억과 새롭게 펼쳐지는 이곳 풍경 사이에서 감수성이 예민한 한 작가로서 얼마나 극심하게 흔들리고 있는 그를 어렵지 않게 만나게 된다. 근대기에 항구도시, 탄광도시로 융성했었건만 오늘날 앙상한 삶의 상흔들을 노출시키고 있는 전라남도 목포나 강원도 철암 등을 그리며 그는 근대화 과정의 아픈 역사적 기억에까지 다가가고 있다. 드로잉이 이 땅에 대한 단순한 시각적 표상이기를 넘어 대지에서 펼쳐지는 인간들 상호간의 영향 작용에 대한 경의이자 만남과 조응인 셈이다. 그렇듯이 그의 '한국 그리기'는 단순한 관상적 차원의 풍경화나 재현 저 너머의 삶의 세계를 향해 있다.
그렇다고 그에게 의문이 가시는 것은 아니다. 도대체 왜 숱한 당대적인 숱한 뉴미디어 형식이나 컬러 페인팅들이 아니라 하필 흑백 드로잉인가? 그리고 이토록 현란한 이미지들이 난무하는 이 세상에서 왜 그토록 고집스럽게 거친 자연이나 삶의 풍경 앞에 온 몸으로 마주하고자 하는가? 아방가르디즘이 모더니즘 미술에 전통으로 이미 깊숙이 자리 잡았으며,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이 만연한 이 시대에, 일견 존 포일의 태도는 시대착오적으로 보일수도 있으니 이런 의문이 드는 것을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다. 게다가 경박하기 짝이 없을 정도로 서구 미술계의 유행에 민감한 한국 미술계에서 그의 드로잉이 갖는 의미는 더더욱 시대착오적으로 보여질지도 모른다.
우리는 다만 그가 한때 사진 이미지를 이용한 작업이나 오일페인팅에 깊이 몰입했었던 경력의 소유자라는 사실, 드로잉에 대한 남다른 그의 몰입이나 열정이 프랑스 화가 세잔느, 영국 화가 데이비드 봄버그로부터 받은 깊은 감화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고백하는 작가의 말에서 어느 정도 이러한 의구심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그렇지만 그 무엇보다도 눈의 감각 즉 시각만이 아니라 그 시각을 압도하는 손의 촉각을 요청하고, 더 나아가 온 몸을 억세게 머슴같이 부리고 신체를 동반하며 전개시키는 존 포일의 드로잉은, 그것이 작가가 새로운 정주처인 한국의 자연이나 역사적 풍광을 대상으로 한 것이든 아니든 미지의 세계를 향해 무한히 열려진 새로운 미학적 실천 가능성을 열어 보여 주는 일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니 그의 흑백 드로잉은 그 어떠한 진보적 전망보다도 더 철저하게 진보적이다. 작가가 원하든 그렇지 않든, 존 포일의 이들 '한국 그리기'에서 이 땅에서 펼쳐져 온 장구한 역사의 수묵화 전통과 존 포일의 눈과 손에 흐르고 있는 서구의 감각이나 풍경화를 가로지르는 비교 예술학적인 비젼, 그리고 지난 몇 세기 동안 미술의 역사가 증명하듯이 드로잉이라는 장르의 또 다른 가능성을 기대하는 것을 그 누가 필자의 과욕이라고 탓할 수 있겠는가? ■ 이인범
Vol.20080504f | 존 포일展 / John Foyle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