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일기

이김천展 / LEEGIMCHEON / 李金泉 / painting   2008_0712 ▶ 2008_0830 / 월요일 휴관

이김천_박지원_장지에 수묵채색_153×102cm_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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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김천 블로그_blog.naver.com/lkc65

초대일시 / 2008_0712_토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월요일 휴관

이김천 스튜디오갤러리 LEEGIMCHEON STUDIO GALLERY 충북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 560번지 Tel. +82.(0)43.872.2135

조선시대 종묘제례악중에 수제천이라는 아름다운 음악이 있다.장중하면서도 유연하고 생생히 살아있으면서도 생경하지 않으며 힘찬 기운속에 당차도록 섬세한 소리의 이 음악을 듣고 있으면 머리칼이 치솓을 만큼 팽팽하면서도 편안한 그 아름다움에 빠져든다. 음악이 진행될수록 순간 순간 숨도, 시간도 멈춘 듯 정제된 느낌이지만 가락은 살아 꿈틀대며 나를 잊게 만든다. 이렇게 당당하면서도 유순한 음악이 있을수 있을까... 오랜시간을 들어 와도 매냥 새로울 뿐이다. 연음형식으로 가락이 끊어질 듯 다른 악기와 주고 받으며 이어지고, 악기마다의 소리가 섞여 들리는 듯 하지만 홀로 성성하다. 서로가 확연히 살아있으며 서로에게 끈적한 관계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자기 멜로디가 화음에 종속되거나 인위적인 조화의 틀속에 갖히지 않는다. 살아있다. 음악이 살아있다... 이 아름답고 훌륭한 음악이 다른 음악적 가치를 재단하는 유교적 치세의 틀로 조선시대를 지배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 조선은 유교국가다 불교를 억제한다, 불교만 억압했겠는가 유교 이외의 것은 다 억압했겠다. 유교안에서도 쪼개고 쪼개어 정점에 오른 개념들 외에는 전부 인정을 하지 않았다. 인정만 안한 것이 아니라 목숨도 빼앗았다. ● 조선초기 혼란기에 정치적으로 수습하기에 급급했고 사상적으로 사람들을 통치해 나갈 기틀을 마련하는 일이 시급하여 여러가지 유교적가치에 합당한 세상을 만드는데 주력 했겠다. 유교안에서도 성리학적 세계관으로 명분을 만들어 그 명분에 합당한 신분질서와 국가 모든 일에 수직적가치에 따른 절차와 형식을 두어 일일이 통제와 규제를 만들어 냈다. 입는 옷은 물론 사는 집, 그림의 색깔, 음악의 감정까지 모두가 유교적 가치로 등급을 두어 디자인했다. 당시 사람들이 참 갑갑했겠다... 결국 조선 이전까지 다양한 가치들이 어우러져 있던 세상을 유교의 수직적으로 폐쇄된 가치체계로 구조조정을 하기 시작했겠다. 그중에 먼저 음악을 통폐합 한 것이다. ● 교과서에 나오는 데로 당시의 당악, 향악, 아악을 박연으로 하여금 정리하게 했다지 않는가. 그런데 당악, 향악, 아악이 뭔가... 다빼고 향악만 보면 요즘 말로 민속악이겠다. 향악은 서로를 인정하는 개방된 가치관에서 태어난 고대인도지역의 아름다운 음악들이 배를 타고 직접오기도 하고 오랜세월 서역을 거쳐 각 지역에 동화되며 들어온 아주 다양한 음악이었을게다. 그 다양한 음악들이 우리의 산하에 어울리게 수용되며 멋드러지게 판들을 벌리며 아주 잘 살고 있었을게다. 고려말, 정치적으로는 불안했겠지만 음악은 풍성하고 다양했으리라. 볼만했겠는데... 아쉽다... ● 고려말 일부 집권세력에 불만을 품고 정권야욕에 불타오르는 전두환.. 아니 이성계일파들이 무력을 앞세워 군사쿠테타를 일으켜 정치체제를 전복시키고 반대세력을 정리하고는 사회정화차원에서 정화위원회를 두어 사회각계의 부정부패와 사회악 일소의 일환으로 퇴폐적으로 보이는 다양한 음악을 정리해 들어간 것이다. 깡패도 잡아 들여가며 정화운동의 서슬이 퍼랬겠다. ● 금지곡도 만들고, 별별 용비어천가를 만들어 정권을 홍보하며 왕조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아악을 정리한 것인데 당시 국보위에 협조한 학자들의 학문적 수준이 높아 시대와 공간을 뛰어 넘는 아름다운 음악으로 정리 해 낸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만든 것이 아니라 정리했다는 사실이 중요하겠다. 수제천의 경우 백제의 정읍사라는 노래의 가락에서 만들어졌다는데 상상력을 발동해서 정읍사 음악을 상상해보자. 거기에는 분명히 지금은 사라지고 없을 많은 악기들이 폭 넓게 쓰였을 것도 같다. 특히 요즘 기타로 불리는 비파도 있었을 게다... 기타... 좋다... 간절하고 화사하며 따뜻하고 냉철한 그 느낌이 너무나도 매혹적이다... 그러기에 국보위 음악특위위원들은 아마도 "비파 없애!!!" 했을 것이다. 계면성이 넘쳐 편향성이 강한 음악은 인간의 마음을 산란하게 한다며, 새로운 유교적가치가 지배하는 안정된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는 요망한 악기로 여겼을 것이다. ● 안타깝다... 세상에서 기타... 아니 비파를 누구보다 아름답고 독특하게 연주했었을 사람들에게서 비파를 빼았아 버렸다...지금 소리는 없고 옛 그림에서나 흔적을 볼수있다. 유신독재시절 히피단속을 하며 기타메고 다니면 압수하고 잡아가던 그 시절보다 더 했을 것이다. 비파가 아름답고 섬세한 소리로 가락을 연주해가며 다른 악기들과 평화롭게 넘나드는 음악...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다... 지금의 수제천에 장식음도 많고 빠르기도 달랐을 것이다. 인도음악의 다양한 악기로 연주되는 라가와 수제천의 중간쯤을 생각하면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그 정읍사의 개방되고 자유로웠을 음악을 그리워한다. 유교라는 폐쇄적 통치이데올로기에 소멸된 다양성을 그리워 한다.

이김천_연행도_장지에 수묵채색_150×210cm_2007
이김천_유리창_장지에 수묵채색_150×210cm_2005

현재 우리나라 사람들의 유교적 사고 패턴으로는 인도 음악을 제대로 감상 하기가 쉽지 않겠다. 엄청난 장식음과 복잡한 리듬, 잦은 빠르기의 변화, 길고도 지루한 속삭임, 쫑알쫑알 두런두런 말도 많고 탈도 많다. 불편하다. 넘쳐나고 절제되지 않은 혼돈 그 자체다. 속되고 요망하게 들린다. 아마도 지금의 우리들도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유교의 틀이 우리들 머리 속에서 다양한 느낌을 걸러낸다. 20,21세기까지 그 답답한 유교의 틀이 우리를 제대로 가둬놓았다. ● 당시 고려에는 인도, 서역음악... 그들과 또 다르게 유교의 인위적 절제의 손길이 닿지 않은 음악들이 생생히 살아있었으리라. 그러니 건국 초 사회정화의 기치로 눈알을 부라린 유학자들에겐 용서 할 수 없는 난잡함 이었을 것이다. 결국 당시 음악들의 복잡하고 다양한 조형언어를 싹 빼버리고 뼈대만 남겼겠다... 그래서 또 달리 보면 수제천이 더 멋있을수도 있다. 굵직하면서도 섬세한 그 독특한 아름다움이 다양한 음악의 일부로만 존재했으면 좋았을 것을... 그 정제된 미감이 수신과 치세의 사회적 틀이 되어 다른 미감을 억제하는 수단이 되었다... ● 당시의 그림이야기도 해보자. 그림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알아서 기는 분위기였겠다. 이미 유교적 가치로 먹칠이 되있는 먹물들이 알아서 그림의 내용과 색깔, 운필에 정아함을 바탕을 두고 있음에야 말 할 필요가 있겠는가. 사실 그림은 음악하고 확연히 다른 점이 있다. 음악은 조선의 아악이 그 바탕을 두고 있는 향악, 당악이나 주나라의 아악등이 모두 실크로드를 타고 서역을 통해 들어 온 개방된 음악이라는 특성으로 인해 개방성을 잃지 않고 있다. 개방된 음악이라면 악기간의 간섭이 심하지 않고 악기별 관계가 통제나 인위적으로 조화를 강제하기 보다는 대화하고 나누는 느낌이라 하겠다. 쉽게 재즈적인 특성이라 할수있겠다. 그 고대의 재즈음악을 아무리 유교적 가치로 권위와 위계를 잡아도 면면히 흐르는 그 자유의 냄새를 지울수가 없겠다. 개별악기가 전체에 종속되지 않고 평면성을 잃지 않으며, 거기에 자유로운 느낌의 공간감을 잃지 않고 있다. 그런데 과거 유럽음악은 수학적 절대가치로 경직된 소리공간에 화음으로 개별악기를 가두는 입체적 형식으로 발전시킨다. 아름답기는 하지만 악기마다 전체의 하모니에 종속되는 답답한 기계적 화음으로 느껴진다. 물론 지금의 유럽음악에서는 오래전에 열린 음악으로 방향을 틀었다. ● 과거 유럽의 음악을 조선의 유학자들이 봤으면 미치도록 좋아하고 환장을 했을 음악이겠다. 결국 당시 고려의 음악에서 권위와 금욕적 절제로 유교적 틀안에 집어넣긴 했으나 새로운 형식을 만들지 못하고 기존에 있는 음악을 정리하는 데 그칠수 밖에 없었겠다. 다행이다. 결국 조선후기 왕권을 더욱 지우기 위해 노론세력들이 민간에 흘려보낸 궁중음악은 약간의 흐드러짐과 흥청거림만으로도 영산회상으로 불리는 아름다운 풍류음악이 만들어지지 않는가... 조선초 국보위 음악특위위원들이 정리하고 통폐합한 흐드러짐과 흥청거리고 넘실되는 다양한 미감을 다시 살리면 호방하게 세상으로 열려있는 그 소리를 다시 듣는 일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 그런데 당시의 그림도 음악만큼이나 많은 표현기법과 화면구성 방식이 있었을텐데. 조선에서 그림의 유교적 가치기준을 제한된 표현방식의 중국 문인수묵화에 맞겨 버렸다. 당연한 일이겠다. 지금 생각하면 미국의 어떤 화풍 그림만 그려라 얘긴데.. 당시 사람들 참 착하다... 답답하다. 당시 세계의 다채로운 문화와 교류하며 매양 새로운 느낌으로 발전시킨 우리의 다양한 조형언어를 잃어버린 것이다. 우리의 감수성을 잃어버렸다. 결국 다양성을 잃어버린 중국풍 그림의 붓질에서는 유교적 폐쇄성이라는 어두운 그늘을 피할수가 없어 보인다. ● 어떻게 무엇이 얼만큼 좋거나 말거나, 좋은 것이 고정되어 있고 그외에 것은 사문난적이나 문체반정따위의 말로 공안정국으로 세상을 풀어가는 그들의 사고 밑바닥에 중화주의가 깔려있다. 그들 중화中華종교에 그리움의 표상으로 언제나 마음의 고향처럼 푸근히 자리잡는 수묵산수화... 징그럽다... 정말 싫다...

이김천_천문도_장지에 수묵채색_150×210cm_2007
이김천_필담_장지에 수묵채색_150×210cm_2007

조선후기 왕권을 무력화 시키고 나라를 장악하는데 성공하고는, 자신들 탐욕의 충족에만 혈안이 되어있는 노론 외척세도세력의 등장으로 그나마 우리 땅의 모습을 화폭에 옮기려거나, 사람들의 일상을 그려 내려는 노력들도 사그라들고 말았다. ● 부패와 무능, 탈법과 권위를 앞세워 변화를 두려워하는 한나라..노론세력은 오히려 발칙하게도 자신들의 불법을 가리기위해 느슨해진 자유민주주의 법질서 확립... 아니... 유교적 가치체계의 재확립이라는 미명으로 고답적인 15세기 가치로 무장된 세계관을 다시 또 유포시키며 유교 원리주의 강화에 나선 것이다. 지금 우리가 만나는 유교는 한나라당... 아니 노론 외척세력이 강화해온 경직된 교조적 조폭유교광신주의를 만나고 있는 것이다. ● 우여곡절 끝에 조선이 나름대로 쌓아온 그나마의 합리적 전통과 대안세력. 그리고 그들의 문화는 19세기 노론세력의 공안통치에 의해 탄압되어 무시되고 말았다. 2008년 현재 우여곡절 끝에 쌓아 온 민주주의를 한나라당세력이 한방에 날려 버리는 것과 비슷하겠다. ● 당시 노론집권세력의 부패와 무능과 부정으로 당시 발생한 많은 사회혼란속에 공공의 안녕과 준엄한 법 질서 확립 차원에서 유교적 원칙을 다 잡아 세운 덕분에 그림은 다시 중국의 고사, 산수나 인물, 화조등 틀에 박힌 산수화로 전락하고 만다. ● 오히려 19세기에 사군자가 제일 많이 그려지며, 난은 누가 잘치고, 대나무는 누구 대나무가 좋다는 둥의 역사거꾸로 돌리는 소리가 20세기까지 메아리져 온나라에 울려 퍼져 있었다... 당시에, 불행하게도 장승업등 몇몇 천재들이 등장하고 그 천재들 중에는 몇 대씩 그 대를 이어가며 전통이 되더니만 나중에는 남종수묵화라며 정통성을 만들어 낸다. 그 바탕에는 역시나 사대, 소중화사상이 깔려있음이 남종화라는 명칭에서도 보인다.

이김천_호곡장_장지에 수묵채색_150×210cm_2007
이김천_호질_장지에 수묵채색_205×210cm_2005

어쨌든 20세기에도 공안 통치는 이어졌으니 전통으로 치장된 그런 일그러고 얼빠진 수묵화는 계속 한국사람들에 가슴속 한자리에 진한 그리움으로 남아 있겠다. 결국 한국화 = 수묵화라는 말도 않되는 등식을 만들어 냈다. 이런 등식의 완성은 19세기 한나라... 노론부패세력의 유교원리주의 강화가 미술에 끼친 패악이다. 지금도 과거 정조가 그렇게 아악을 다시 살리고 시중의 잡스런 글과 그림을 단속하여 유교적 가치를 재확립하고 왕권을 확립하려는 집착만큼이나 수묵화가 시대속으로 사라지는 걸 안타까워 하는 아쉬움이 아직도 많은 것 같다. 나부터도 알록달록 색감을 그려가며 언젠가는 수묵의 근본된 세상으로 돌아가겠구나 하고 망령된 생각을 한적이 있었으니까. 근본은 따로 있고 물거품같은 현실은 언제나 일장춘몽이라는 말되는 것 같지만, 생각해봐야 할 세계관, 그렇게 개인을 무력하게 만드는 세계관을 교육받은 탓이겠다. 만약에 서양스러움과 동양스럽다라는 가치가 정말로 존재한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반대로 수묵화의 세계관은 서양적이라 생각한다. 근본 틀에서 희랍적인 이데아론과 별반 차이가 없다고 본다. 중요한데가 하늘이냐, 이데아냐, 중국이냐, 미국이냐, 지배군주냐, 가장이냐, 조폭보스냐에 차이일 뿐이다. ● 동양화가 현실적이고 현실에서 놀고 있는 듯 보이지만, 수묵화가 그려내는 그런 자연은 무균실에서 배양되어 박제화된 억지스런 풍경일 뿐이다. 자연은 우리의 생각처럼 그렇게 자연스럽지 않은 것 같다. 아슬아슬한 균형상태를 보이며 규칙적인 척 할뿐이겠다. 언제 지진으로 땅이 뒤집어질지 홍수로 물바다가 될지 예측하기 어렵다. 그런데 고정된 관념으로서의 자연은 우리에게 부조리한 현실, 그리고 부자연스런 갈등의 연속인 우리의 삶에서 갈등을 당당히 이겨낼 힘을 주기보다는 갈등을 외면하고 갈등의 정당함을 이해하지 못하게 하고 폭력으로 유지되는 질서와 조화의 모습을 정당화시켜주는 생각이 되기도 한다. 결국 갈등과 함께 살지 못하는 고고한 선비가 마치 멋진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잃어버리게 만든다. ● 살아 숨쉬는 바위나 나무 산들은 그렇게 화폭안에 있을 곳에 조형적으로 얌전히 자리잡고 있지 않으며, 또 그렇게 그렇게 생겨 먹지 않았다. 인간도 사람이 만든 제도나 수직적관계의 틀속에 얌전히 그렇게 그렇게 생겨먹지 않았다... 들을때 마다 새로운 수제천의 아름다움 만큼이나 우리 조상들의 아름답고 뛰어난 수묵화를 좋아하고 동경한다. 그러나 그것이 세상의 다양한 그림의 가치중의 일부로 건강하게 자리 잡아야지 고정된 전통적 그림가치 외의 것은 서권기가 없다거나 문자향이 없다든 둥의 공안관료적인 사고는 부담스럽다. 정말로 수묵화가 아니면 표현되기 어려운 그 독특하고 독보적인 경지가 있다. 그 고고하고 진중한 그 경지를 지켜 낼려면 과거의 억지스러운 영화를 잊어야 되지 않을까 싶다. ● 유교공안당국의 입장에서 보면 아쉽겠지만 조선의 유교통치 500여년 간 우리의 골수에 면면히 흐르는 자유의 에너지를 다 지우진 못했다. 그 자유에너지가 넘치는 요즘의 형형색색 기기묘묘한 그림들이 즐겁기만 하다. 우리의 제 모습을 찾는 느낌이다. 세상은 변하고 있다. 아니 이미 변해있는 세상에 내가 뒷북을 치는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 이김천

Vol.20080712c | 이김천展 / LEEGIMCHEON / 李金泉 / painting

2023/10/20-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