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수묵

고경희_구인성_김성희_김장수_이영빈展   2008_0819 ▶ 2008_0919 / 일,월요일 휴관

김장수_ㅇㅇ아 밥 먹어_한지에 먹_58×87cm_2008

초대일시 / 2008_0819_화요일_05:00pm

워크숍 「2008년, 한국화 다시 생각하기」 일시 / 2008_0822_금요일_02:00pm 발제자 / 기혜경(덕수궁미술관 학예사) 김학량(동덕여대 교수)_신혜영(가인갤러리 큐레이터)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일,월요일 휴관

가인갤러리 GAAIN GALLERY 서울 종로구 평창동 512-2번지 Tel. +82.(0)2.394.3631 www.gaainart.com

장르의 구분이 불분명하고 매체의 혼성이 극히 자연스러운 오늘날 이 땅의 현대미술에서 유독 하나의 특수한 영역으로 자리해 온 분야가 있다면 그것은 동양화 혹은 한국화 - '동양화'라는 명칭이 일제의 잔재라는 이유로 '한국화'라 부르기를 자청해 온 우리의 전통회화는 사실상 중국의 절대적인 영향을 받은 것으로 '한국화'라는 명칭 또한 적절치 않다는 것이 필자의 개인적 견해다 - 일 것이다. 회화를 동양화와 서양화로 나누는 이분법적 구분이 오늘날 실효성이 있는가에 관한 한 매우 회의적이지만, 문화와 사상 면에서 동서양의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함을 인정하는 한 응당 동양화와 서양화의 구분은 있을 수밖에 없다. 다만 시대의 변화에 따라 동서양의 그림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변화하는 것이 마땅할 진데, 문제는 한 쪽이 다른 한 쪽의 일방적인 주도에 따라가거나 혹은 영향 자체를 부정하고 상대를 무조건 밀어내려는 극단적 태도일 것이다. 우리 나라의 미술현장에만 초점을 맞춰본다면 근대 이후 진지한 성찰 없이 무분별하게 서구 미술을 수용한 것이 잘못이라면, 전통회화를 수호하고자 높은 담장을 치고 그 안에 갇혀 있었던 것 역시 문제였던 셈이다. 맹목적으로 배우고 익힌 전통적인 화목(畵目)과 수묵 필법(筆法)에 따른 문인화나 산수화가 오늘날 사람들의 감동과 공감을 얻어낼 리 만무하다. 그러한 그림은 오히려 동양화가 고루한 옛 것이라는 반감만을 일으키고 창조적인 예술작품으로서의 동양화의 입지를 제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사실상 이러한 동양화의 위기와 그에 따른 전통의 현대적 계승이라는 화두는 오래 전부터 우리 화단을 지배해 왔다. 특히 1990년대 후반 재료를 혼용하고 소재를 확장하는 방식으로 전통산수를 새롭게 해석하려는 일부 작가들의 시도는 이후 동양화의 현대적 해석이 본격적으로 확대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2000년 이후 최근까지 양적으로 크게 성장한 '젊은 동양화'는 전통회화를 오늘날 시대에 맞게 적용하고 변형하는 데 있어서 진지한 성찰보다는 감각적인 변용에 초점을 맞추어 질적인 성장은 더딘 모습이다. 상당수의 젊은 작가들이 전통의 이미지를 표피적으로 차용하거나 단순한 소재로서 활용하고, 전통적 기법과 재료를 현대적 소재에 단순히 접목시키는 데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전통적 진경산수를 그대로 모사한 후 몇 가지 현대적 오브제를 삽입한다거나 장지에 수묵담채로 대중적인 캐릭터나 브랜드 로고를 그린다든지 전통적인 벽화기법으로 현대적 아이콘을 그려 넣는 식이다. 이러한 그림들은 대부분 작가 내부의 진지한 고민 없이 전통을 외부로부터 끌어오는 방식인 바 바람직한 전통의 현대적 계승이 되기 어렵다. 작가 스스로가 자발적으로 전통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추구하고 그것을 자신만의 고유한 시각으로 읽어내 창조적 조형언어로 표현할 때만이 바로 진정한 전통의 재해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때 비로소 동양화는 동시대의 보편적인 예술이 될 수 있다. 물론 그 표면적 양상은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사실상 오늘날 '젊은 동양화'의 문제는 전통을 감각적으로 활용하고 변형하는 그 자체에 있다기 보다 그러한 그림만이 주류로서 주목 받고 있다는 다양성 부족의 현실에 있을 지 모른다.

김성희_부유(浮游) 공간_한지에 수묵_212×195cm_2008

『일상의 수묵』은 이러한 '젊은 동양화'의 편향된 흐름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출발한 전시다. 최근 트렌드의 작가들과 달리 동양화의 전통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숙성시켜 자신 내부로부터 나오는 울림을 자신만의 고유한 표현 방식으로 그려내는 또 다른 경향의 작가군을 보고자 하는 것이다. 전시에 참여한 다섯 작가들은 주로 한지에 수묵과 채색이라는 전통 재료와 기법으로 자신의 내밀한 일상에 천착한 그림을 그린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들에게 지필묵은 가장 익숙하고 편하게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그려낼 수 있는 도구이며, 그러한 도구로 이들은 전통적인 화목을 그리기 보다는 자신의 삶을 둘러싼 '지근지처(至近之處)'의 친근한 소재들을 그려가고 있다. 최근 새로운 재료와 기법으로 전통산수에 도시 풍경을 접목시키는 일부 동양화 작가들의 '신(新)산수풍경'과 달리, 이들 '일상의 수묵'의 작가들은 주로 기본적인 재료와 기법에 충실한 채 객관적 대상으로서 '바라보는' 풍경이 아닌 지극히 주관적인 자신의 삶 한가운데서 '만나는' 일상에 주목한다. 또한 자신이 속한 삶의 '공간'과 그 안에서 의미가 되는 '순간'에 대한 내밀한 관찰로부터 나오는 진솔함은 작품의 은은하고 담백한 형식적 특징과 잘 어우러진다. 이들에게 한지와 수묵은 당위의 재료이기보다는 방법적 필요에 의한 조형수단이며, 그것의 자유로운 운용은 그들의 운신의 폭을 넓혀주어 다음 단계의 새로운 시도를 가능케 한다. 간략하게 다섯 작가의 면면을 살펴보자. ● 먼저 김성희(1974- )는 자신의 개인적인 삶의 공간을 한지에 농담을 조절한 먹의 필선(筆線)으로 하나하나 그어나가 형태를 완성한다. 그곳의 물건들은 일상의 시간에서 그녀가 반복하여 만지고 사용하는 것들로 애초에는 그녀와 아무 상관없던 것이었으나, 개인적인 필요나 욕구에 의해 생활공간 안으로 들어와 일정한 공간을 점유한 후에는 외부와 아무 상관없이 내부에서 언제나 그녀 자신과 호흡하는 것들이다. 일일이 가로 먹선을 그어가며 형태를 완성해가는 과정에서 화면 속 사물들은 또 한번 그녀의 들숨과 날숨의 진동에 따라 가늘게 흔들리며 반응한다. 세밀하게 떨리는 먹선으로 표현된 사물과 그것들이 놓인 삶의 공간은 애초부터 그곳에 있어 부유하는 생명체들처럼 불안하고도 자연스럽다.

고경희_화정7단지 앞 근린공원 PM 11:59_한지에 수묵_130×162cm_2008
고경희_화정7단지 앞 근린공원 AM 8:15_한지에 수묵_130×162cm_2008

강원도 홍천에서 태어나 자란 김장수(1974- )는 폐교가 된 자신의 어린 시절 학교에 대한 기억을 수묵으로 담담히 그려낸다. 비교적 옅은 먹과 갈필이 두드러지는 그의 그림은 여백을 적절하게 살려 전체적으로 담백하면서 사람의 마음을 아련하게 만든다. 그 가운데 고요한 학교 운동장에 놓인 그의 기억 속 소중한 물건들 - 구슬, 운동화, 주전자, 옷, 우산 등 - 은 때때로 채색의 옷을 입으며 보는 이의 시선을 잡아 끈다. 이렇듯 아주 작은 요소들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은 작가의 큰 장점이다. 「ㅇㅇ아 밥먹어~」, 「내일당번」, 「보물1호」, 「단상 위에 서다」 등 작가가 붙여 놓은 제목과 작은 물건이 놓여있는 담담한 화면을 번갈아 보고 있노라면 픽 웃음이 나면서 절로 저마다의 어린 시절이 떠올라 마음에 무언가 한 가득 차오른다. 『마음을 두다』와 『마음의 홍수에 잠기다』라는 두 번의 개인전 제목은 자신뿐 아니라 보는 사람의 마음을 건드리는 그의 그림의 특징을 한 마디로 잘 말해주고 있다. ● 자신이 다니던 대학교 교정과 자신이 사는 동네 주변을 채색 없이 먹만으로 그려내는 고경희(1981- )는 말 그대로 '일상의 수묵'이라는 전시 제목과 매우 잘 부합한다. 『지근지처』라는 제목으로 가진 개인전에서 그녀는 「퇴계인문관에서 보다」, 「금잔디 광장 옆 진입로」, 「공학관에서 바라본 광장」, 「다산경제관 뒷길」 등 자신의 학교(성균관대학교) 곳곳을 백묘법을 기본으로 한 수묵필법으로 담담하게 그려냈다. 대학 4년과 대학원 2년을 보낸 학교야 말로 그녀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매우 친밀한 일상의 공간이었을 것이다. 일정한 틀 안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부감의 시선으로 각각의 장소를 포착해낸 그녀의 그림들은 평범하고 진부한 풍경화처럼 보이지만, 평소 의식하지 않았던 어떠한 공간을 새롭게 바라보았을 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분위기를 세밀한 시선으로 포착해낸 것이다. 특히 같은 장소를 각기 다른 시간대에 그린 연작 - 지난 개인전에서의 「학생회관 잔디정원」에 이어 이번 전시의 「화정7단지 앞 근린공원」 - 은 동일한 풍경이 빛의 정도나 날씨의 차이, 혹은 그녀의 기분 상태에 따라 달라져 보임을 필법과 먹의 농담을 달리하여 표현함으로써 먹이 얼마나 미묘하고 매력 있는 매체인지를 극명히 보여준다.

구인성_꿈꾸는 하늘_한지에 혼합재료_143×140cm_2008

수묵 혹은 수묵담채로 그린 앞의 세 사람의 담담한 그림에 비해 구인성(1976- )의 그림은 비교적 채색도 강하고 먹도 진하다. 그간 그는 사람의 왕래가 잦은 도심의 횡단보도, 버스 정류장, 지하철 등의 모습을 배경 면은 밝게 채색하고, 사람 형상은 수묵의 진한 점들로 찍어 대비와 조화가 공존하는 특색 있는 화면으로 선보여 왔다. 먹점으로 매워진 사람들의 모습은 번잡하고 떠들썩한 도시의 인간군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며 대도시 서울에서 느끼는 작가의 이방인으로서의 감성을 드러냈다. 이번 전시의 그림들에는 군중은 사라지고 변형된 화면 안에 '공간'이 강조된다. 기존의 사각형태 화면이 아닌 사다리꼴, 물음표, 유턴사인 등 다양한 형태의 화면 안에 갇힌 횡단보도와 도로의 풍경은 이제껏 그려 온 공간들을 한 발자국 떨어져서 바라보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상상력을 가미한 새로운 조형적 표현을 위한 시도로 읽혀진다. 특기할만한 것은 오랜 기간 그가 먹을 다뤄온 방법인데, 그는 진하게 먹물을 먹인 삼합지(三合紙) 위에 한지를 대고 손가락이나 끌로 눌러서 형상을 만들거나 자연스럽게 배경에 먹색이 베이게 한다. 이러한 방법은 먹이 스미고 번지는 우연적인 효과에 의해 단순히 붓으로 그리는 것보다 훨씬 더 다채롭고 풍요로운 화면을 가능케 한다. ● 이영빈(1980- )은 전통기법으로부터 스스로 발전시킨 고유한 표현법으로 지극히 개인적이고 내밀한 일상을 담아내는 작가로 '수묵'보다는 '일상'에 무게가 실린다. 대중목욕탕, 여인숙, 자신의 방 등 평범하지만 은밀한 영역으로서 쉽게 공개되지 않는 공간을 조감도를 그리듯 활짝 펼쳐놓는다. 언뜻 낙서나 자동기술에 의한 것처럼 보이는 그녀의 그림은 연필선이 강조된 드로잉의 성격이 강하지만 동시에 닥지나 장지 위에 분채나 담채로 은은하게 채색한 고유한 회화적 특징 역시 무시할 수 없다. 거창하지 않은 소소한 삶의 단상을 동양화의 전통적인 일획의 필선 대신 가늘게 흔들리는 섬세한 선으로 그려낸 그녀의 그림은 기법과 소재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어 균형과 긴장을 동시에 발산한다.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나 자신을 씻는 행위이다. 그러기에 나에게 행복감을 가져다 준다. 아무것도 욕심내지 않고 단지 가슴으로 느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고 싶다"는 고백은 자신의 평범한 일상을 그려가는 그녀의 작업이 스스로를 돌아보고 치유하는 과정임을 잘 말해주고 있다.

이영빈_탕_장지에 혼합재료_42×164cm_2008

그것이 자신의 집 부엌이든, 어릴 적 기억 속 학교이든, 아파트 앞 공원이든, 늘 건너 다니는 횡단보도이든, 대중목욕탕이든 이들이 그림에서 보여주는 장면은 작가 자신의 내면에서 출발하여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지만, 그림을 바라보는 같은 시대의 보통 사람들 역시 공감할 수 있는 매우 구체적이고도 보편적인 이야기들이다. 사실상 이러한 소소하고 하찮은 삶의 단상이 그림의 소재가 되는 것은 거창하고 획일적인 화재(畵材)가 무의미해진 현대미술에서 이제 지극히 일반적인 일이지만, 이를 전통적 재료로 접근하는 동양화의 시도는 새롭게 느껴진다. 이는 그만큼 동양화의 소재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가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에 맞게 재료를 사용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듯, 자신이 사용하고자 하는 재료 안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기법과 소재를 시도 하는 것 역시 작가의 기본 태도일 것이다. 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보편적 예술로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근거지가 어디에 있는지를 아는 것과 그것을 짐으로 안고 살아가는 것은 분명 다른 일이다. 우리 '젊은 동양화'가 좀 더 진지하고 좀 더 자유로워져야 할 이유다. 『일상의 수묵』이 이를 위한 작은 움직임이기를 기대한다. ■ 신혜영

Vol.20080804g | 일상의 수묵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