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8th Photo Festival

빅 뮤니츠展 / Vik Muniz / photography   2008_0806 ▶ 2008_0831

Vik Muniz_Atalanta and Hippomenes_after Guido Reni_C 프린트_236.2×180.3cm×2_2006

초대일시 / 2008_0806_수요일_05:00pm

주최 / 가나아트갤러리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가나아트센터 Gan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평창30길 28 (평창동 97번지) 1~3층 Tel. +82.(0)2.720.1020 www.ganaart.com

가나아트가 지난 2001년부터 시작한 포토 페스티벌이 올해로 8회를 맞이합니다. 포토 페스티벌을 통해 우리는 삶의 면면을 기록하는 가장 유용한 도구일 뿐 아니라, 일상과 가장 가까운 예술 매체로 해마다 발전을 거듭하는 사진에 더욱 주목하게 됩니다. ● 올해는 1961년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태어나, 현재 뉴욕을 비롯, 북남미, 유럽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세계적인 사진작가 빅 뮤니츠의 개인전을 개최합니다. 뮤니츠는 20대 후반, 자신의 조각을 기록하는 도구로써 사진에 흥미를 갖게 되면서 사진작가로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털실, 설탕, 잉크, 철사, 캐비어, 인공구름, 다이아몬드, 미술관에서 모은 먼지 등 다양하고 기발한 재료를 이용하여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이를 사진으로 기록합니다. 거장의 회화작품, 역사적 기록사진, 유명인의 이미지를 차용한, 일견 익숙해 보이지만 동시에 이질적인 이미지들을 통해 작가는 사진이 보여주는 현실과 예술의 재현의 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하는 한편, 촬영 후 공들여 창조한 작품을 폐기함으로써 세상의 모든 유한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내는 동시에 이를 무한으로 기록하는 일에 몰두합니다. ● 이번 전시에는 초콜렛, 흙, 쓰레기, 수수께끼 시리즈에서부터 최근작인 안료, 퍼즐 시리즈까지 총 30여점의 사진과 작가가 자신의 작업에 대해 직접 설명한 영상을 함께 선보입니다. 2006년부터 올해 초까지 3년에 걸쳐 시애틀미술관, 뉴욕 현대미술센터 P.S.1 등 북미 6개 지역을 돌며 진행된 순회展 『VIK MUNIZ : Reflex』에 연이은 이번 전시가 국내 관객들에게 빅 뮤니츠의 작품 세계를 보다 가까이 감상할 수 있는 뜻 깊은 자리가 되길 기대합니다. 날마다 새로운 표현의 영역을 열어 예술을 통해 더 자유로운 상상을 가능케 하는 동시대 사진예술과 함께 성장하는 가나아트의 포토 페스티벌이 될 수 있도록 애정을 더해 주시길 바랍니다. ■ 가나아트갤러리

Vik Muniz_Apollo&Diana_after Lucas Cranach_C 프린트_231.1×180.3cm_2006

환영의 윤리 (AN ETHICS OF ILLUSION) ● [...] 뮤니츠가 초기에 완성한 두 작품은 그가 향후 작품 활동을 통해 일관되게 고심하는 가장 중심이 되는 의문을 제시한다. 그 중 「Two Nails」(1987)를 보면, 사진 한 장이 못으로 벽에 고정되어 있다. 벽에 고정된 종이에는 이것과 동일한 못의 이미지가 찍혀 있고, 종이 속 못도 역시 종이를 통과하고 있지만 이는 실제가 아닌 가상일뿐이다. 이처럼 단순한 구성 작업을 통해 작가는 정답을 알려주지 않은 체, 이미지와 그것이 재현하는 대상의 차이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1988년부터 1990년까지 작업한 「The Best of Life」시리즈에서 뮤니츠는 신문, 잡지, 책 등에 무수히 많이 등장한 인간의 상처(트라우마)와 환희의 순간들이 포착된 사진들을 오로지 본인 기억에만 의존한 체 목탄 드로잉으로 재현해 놓았다. 그것은 미군 네이팜탄에 몸이 불타는 베트남 소녀, 달에 걸음을 내딛는 우주인, 타임스퀘어에서 종전을 기념하는 키스 장면과 같은 이미지들이다. 그 다음 뮤니츠는 자신의 드로잉을 사진으로 촬영함으로써,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사진 기록과 그것을 보는 사람의 동일 이미지에 대한 기억들 간의 대립과 충돌을 자아내고자 하는 것이다. 자신이 사진 작업을 통해 재현한 이미지와 그 이미지들이 환기시키거나 모방하는 집단적 기억 간의 충돌을 통해 뮤니츠는 사진과 대상물의 관계의 모호성을 피력하는 것이다.

Vik Muniz_Butterflies after Odilon Redon_C 프린트_243.8×180.3cm_2006

여기부터 두 가지 기본 절차들이 뮤니츠 작품에 방향을 제시하여 준다. 뮤니츠는 사라지거나 파손되기 쉬운 재료들을 사용하고 또 오브제를 조합하거나 드로잉 하는데 탁월한 기술을 발휘하면서 미술사에 등장하는 명작 혹은 당대의 주요 사건들로부터 차용한 이미지들을 재현한다. 예를 들어,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의 「최후의 만찬(The Last Supper)」을 초콜릿으로 재현하거나, 옛 전시회 기록을 참고하여 휘트니 미술관에서 모은 먼지로 도날드 저드(Donald Judd)의 조각을 재현하기도 한다. [...] 그 다음 곧 사라질 이 재현물, 즉 설탕 조형물을 촬영한 후 처분하고 사진만을 보존한다. ● [...] 관찰자는 어디선가 본 이미지임을 어렴풋이 그러나 거의 즉각적으로 깨닫게 되는데, 이는 이들 이미지가 우리의 집단적 기억 속에 오랜 기간 존속한 것임을 증명해준다. 그 후 뮤니츠 작품을 직시하는 관찰자는 작품의 재현에 사용된 여러 과정들을 추정하기 시작하면서 작업의 결과물을 담고 있는 사진들과 더 가까이, 그리고 오랫동안 관계를 형성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

Vik Muniz_Decorative figure on an Ornamental Background after Matisse_C 프린트 228.6×182.9cm_2006

앤디 워홀(Andy Warhol) 작품을 검은 후추, 카레, 붉은 후추, 고춧가루로 재현한 사진, 「리즈 테일러 polyptych Liz」는 원본 대상물과 뮤니츠가 재현해낸 이미지 간의 탈동조화(decoupling)를 유독 강하게 드러내는 작품이다. 워홀이 즐겨 쓰는 방식, 즉 사진을 전사하여 이를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표현한 마릴린 몬로, 재클린 케네디, 그리고 특히 앞에서 언급한 엘리자베스 테일러 등, 워홀이 모델로 삼은 유명인들의 실제 모습은 이미 워홀의 작품 속에서 대부분 사라진 상태이다. 워홀은 실크스크린의 제작방식에 따라 사람의 형상을 입자 단위로 분해한 후, 무작위로 여러 색상을 겹쳐 올린다. 뮤니츠가 이 작품을 찍는데 사용한 재료들을 보면, 후추 가루는 원래의 실크스크린이 가진 점들을 모방한 것이고, 무수한 색상들은 워홀의 드로잉와 페인팅의 다양한 색조를 연상시키는 것으로, 이는 여러 가지 상징적 연상 작용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재료의 독특함은, 유명 영화 배우의 얼굴처럼 너무나 친숙한 이미지에 대한 일반적 기억과 그것의 사진을 통한 재현 간에 또 하나의 심오한 의미의 층위를 형성하면서, 이 둘 간에 당연시되는 연계성을 약화시킨다. 이 두 층위 사이에 또 하나의 심오한 의미의 층위가 형성되는 것이다. 작품 속 색채, 질감, 크기 등을 통틀어 우리가 친숙하게 기억하는 워홀 작품의 이미지는 향신료로 만들어진 모방품의 사진 속 이미지와 충돌 관계를 형성한다. 여기서, 실제 리즈 테일러 대신 워홀의 실크스크린 작품 속 이미지가 뮤니츠 사진의 대상물이 되고 있다. ● 유사한 방식으로 뮤니츠는 로버트 스미드슨(Robert Smithson)의 「Spiral Jetty」, 그리고 월터 데 마리아(Walter de Maria)의 「Lighting Field」같이 30여 년 전에 제작된 대지미술 사진을 찍기 위해 완벽한 모형을 만들기도 하였다. 그는 지금은 사진으로만 남아 있는 이런 유명 작품들의 사진 속 모습과 거의 동일한 이미지들을 재현했다. 이런 작업 과정을 통해, 땅에 만들어진 작품의 사진 기록들을 다시 한번 자신의 사진을 위한 대상물로 바꾸고, 이 작품에 「Earthworks in Brooklyn」라는 훌륭한 제목을 붙였다. [...] 이러한 미묘한 의미의 변화를 통해, 뮤니츠는 대지 위에 있던 작품을 촬영한 사진 속 이미지와 그것이 처음 만들어진 곳에서의 물리적 존재 간의 '인식적' 거리를 연장시킨다. 이런 사진을 접했을 때 야기되는 개념적 혼란, 즉 쉽게 소멸되고, 쉽게 보기 힘든 작품의 재현물이 또 다른 형태의 예술품이 되었을 때 느끼는 당혹감과 경이감은 뮤니츠로 하여금 유명 대지미술 작품의 축소 모형을 촬영하는 것, 그 이상의 작업을 추구하게 만들었다. 뮤니츠는, 이전에 그가 원본을 재현해냈던 작품들과 거의 유사하게, 실제 다른 작가가 만든 대지미술을 마치 상공이나 원거리에서 촬영한 것처럼 모형을 만들었다. 다만 이는 실제로는 제작된 적이 없는 작품들이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더 나아가, 전통적으로 대지 미술은 일상 생활과 무관한 주제와 이미지를 다루는 반면, 뮤니츠의 작품들은 한결 같이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일상 소재를 주제로 삼는다. 따라서 흐릿한 표면 위에 놓인 숟가락, 옷걸이, 안경테 등이 그것이다. 그 외에도, 뮤니츠는 실제 대지미술의 번거로운 제작 방식을 그대로 따라, 예전에 모델로 삼았던 대지미술에 근접한 크기의 작품들을 직접 만들기도 하였다. 광산의 장비와 빈 부지를 사용하여, 뮤니츠는 모랫바닥에 종이봉투, 열쇠, 가위 등과 같은 일상 소도구를 거대한 아이콘적인 이미지로 확대하여 그려놓았다. 이 이미지들은 상공에서만 알아볼 수 있기 때문에 헬리콥터로 촬영을 하였고, 사진 속에는 흙에 새긴 단순한 그림뿐 아니라 수년에 걸쳐 광산 활동으로 형성된 주변 지형도 담겨져 있다. [...]

Vik Muniz_Camilla_C 프린트_233.7×182.8cm_2003

흥미로운 것은, 일반인의 눈으로는 테이블 위에 모래를 덮고 그려낸 옷걸이를 찍은 사진이나 실제 땅 위에 새겨놓은 거대한 열쇠를 찍은 사진을 분간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유사한 방식으로 제작된 두 그림을 담은 두 사진을, 유사한 크기로 현상하여 나란히 놓으면, 관찰자의 시선은 혼동을 느끼고 본인의 주변 공간에 따라 사진의 크기를 착각하게 된다. 뮤니츠는 의도적으로 이미지의 크기, 재료, 그리고 사진에 대한 혼동을 야기함으로써, 사물의 비율에 대한 사실적 인식을 분열시키며, 이러한 과정은 그가 추구하는 환영의 중요한 일부를 이룬다. ● 이런 독특한 작업 방식이나 재료가 보는 이의 흥미를 유발시키는 것은 사실이나, 뮤니츠는 이러한 표현 방식으로 사진 속 사물에 대한 흥미를 약화시키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뮤니츠가 추구하는 것은 사진에 대한 우리의 일반적 기대, 즉 외연적 인식을 변화시킴으로써 순간이나마 사진 속 대상으로부터 우리의 시선을 떨어뜨려 놓고자 하는 것이고 재현된 이미지를 통해 새로운 의미와 강력한 수사(rhetoric)를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다. 즉, 작업을 위해 선택한 이미지 속 내용과 작업 과정이나 재료의 상징성과 형식성을 서로 연계시키고 그것이 결합한 긴장 상태를 사진으로 기록함으로써, 뮤니츠는 예전엔 없던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영속시키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대상의 존재감이 축소되는 대신, 새로운 형태로 탄생한 이미지의 매력과 기이함은 보는 이의 시선을 자극하고, 그 결과 우리는 재현된 이미지를 다시 한 번 세밀히 관찰하게 된다. 이를 통해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해져 버려 더 이상 눈에 보이지 않게 된 풍경이나 형상, 사물들이, 물론 새로운 형태와 방식이긴 하나, 우리의 시선 속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이들 이미지들이 재현되면서 그 의미가 변형 혹은 추가되었을 수는 있지만, 이미지 고유의 특성은 뮤니츠의 사진 속에도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모나리자의 수수께끼 같은 미소나 망원경의 진부함 등과 같은 특징들은 그것들이 피넛버터나 젤리, 흙, 나뭇가지, 나뭇잎으로 재현되었어도 그대로이다. 때로는 이들 이미지를 재현하는데 사용된 재료의 특징상 그 대상들이 코믹해지거나 고유의 품위를 상실하기도 하지만, 이들 재료가 일시적이라는 특징은, 반대로 뮤니츠가 모델로 삼은 대상들의 완결성을 오히려 강화시키는 효과를 가져 온다. ● 환상가(illusionist)로서의 빅 뮤니츠에 대해 조금 더 정확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 뮤니츠는 자신의 작업 방식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므로 사진을 보면 누구나 쉽게 머리 속으로 작업 과정을 그릴 수 있다. 또한 자신이 재현한 이미지의 원작을 숨기거나 감추지 않고 드러낸다. 주의 깊은 관찰자는 사용된 재료가 케찹인지, 스파게티인지 타고남은 재인지 알아볼 수 있고 본인의 시각 문화적 배경에 따라 원작도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뮤니츠가 추구하는 것은, 새로운 위계질서를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옛 의미와 새로운 의미를 통합시키고 극도의 시각적 한계를 통해 "최악의 환영(worst possible illusion)"을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환영(illusion)'이라는 단어의 일반적 의미와는 상충적으로, 뮤니츠는 환영의 '윤리'를 제시함으로써 한 순간 숨어 있던 것이 다음 순간 발현되도록 하는 것이다.

Vik Muniz_Le phenomene de l_extase after Salvador Dali_C 프린트_123.2×177.8cm_2005

[...] 한편, 뮤니츠는 일상 재료 고유의 특징을 살려 유의미한 이미지를 표현하기도 한다. 알프레드 스티글리츠(Alfred Stieglitz)의 유명한 사진에 상응하는 이미지를 표현하는데 솜이 사용된 것은, 솜으로 구름을 흉내 내기 쉽기 때문이며, 가늘고 유연한 실은 섬세한 풍경을 표현하기 쉽기 때문에 클로드 로랭(Claude Lorrain)이나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의 풍경들을 재현하는데 사용되었다. 그리고 평면 이미지를 입체적으로 표현하는 데에는 철사가 적합하기 때문에, 전구, 재떨이, 동물우리와 같은 사물들을 물리적, 즉 입체적으로 표현하는데 사용되었다. [...] ● 일상 사람과 사물을 소재로 삼음에도 불구하고 빅 뮤니츠 작품들이 이론가 바티스타 알베르티(Battista Alberti)로 대표되는 이상주의적 데카르트 관점과 얀 베르메르(Jan Vermeer)로 대표되는 네덜란드의 경험주의적, 서술적 전통[iv]이라는 르네상스 이래 서양 미술사의 양대 사조 어디에도 속하기를 거부하는 것은 뮤니츠의 작품들이 숨겨진 의미로 가득하며 그 의미들이 끊임없이 변하고 성장하기 때문이다. 미켈란젤로 카라바조(Michelangelo Caravaggio), 지오반니 피라네시(Giovanni Piranesi),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urer) 등 공간의 이상적 기하학적 표현에 주력한 작가의 작품 속 이미지를 택할 때에도, 이들 이미지를 재현하는 데 사용한 재료의 평범함은 원작의 이미지가 보여주는 시각적 환영을 상쇄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들 작품이 초콜릿 소스, 실, 수 백 개의 핀 등으로 재현되고, 그것이 사진으로 기록되었을 때, 보는 이는 시선의 혼동을 느끼며, 원작의 풍경 속에서 명확했던 표면과 배경의 차이는 더 이상 뚜렷하지 않고 모호해진다. [...]

Vik Muniz_Hourglass_젤라틴 실버 프린트_152.4×127cm_1998

또한 17세기 네덜란드 회화의 전통적 시각 체계 역시 뮤니츠 사진의 재현모델이 되기엔 적절치 않다. 당대의 회화적 전통을 되돌아볼 때, 기본적으로 서술에 의해서만 표현이 가능하다는 전제 하에 현실을 임의로 프레이밍하거나 단절된 표면을 강조하는 등의 특징들은 뮤니츠의 사진 속 정적 이미지 등의 특징들과 어느 정도 상통하기는 하나, 베르메르, 렘브란트(Rembrandt), 얀 스텐(Jan Steen) 등의 작가들은 그림 속 사물의 완벽한 서술가능성(legibility)을 믿었다는 점에서 그 사물들이 존재하는 현실 세계의 인식적 불확실성을 믿었던 뮤니츠와는 상호 타협이 불가능한 것이다. 멀리서 뮤니츠의 사진을 보면, 분명 사람과 사물이 들어 있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서 그 작품 속 재료에 매료된 순간, 우리가 보는 것은 단순한 핀, 음식, 먼지 등의 하찮은 물질에 불과하며, 그 촉감까지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대상으로 다가온다. ● 따라서 이보다는 바로크의 시각적 표현 양식에서 뮤니츠 식의 불확실성과 근접한 양식을 찾아볼 수 있다. 바로크 양식은 위의 두 양식과는 달리, 회화에 담긴 현실 세계의 모호성을 인정하며, 따라서 현실의 정확한 묘사의 불가능함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모호성의 가치를 중시하므로, 뮤니츠는 하나의 시각적 경험을 일차원적인 것으로 축소시키거나, 한 이미지 속 대상물, 재료, 의미들이 드러내는 여러 가지 함의들을 비현실적으로 통합시키려 하지 않는다. 뮤니츠는 인간의 시각적 불균형, 분열, 오차 등의 약점을 오히려 매력의 대상으로 인식하며, 우리 시선이 '레디 메이드' 상태로는 인지할 수 없는 시각적 혼란에 초점을 맞추면서, 그런 불완전함을 깨달음으로써 얻는 희열에 주력한다. 따라서 뮤니츠는 자신의 작품을 보는 이가 오랫동안 작품을 응시했을 때 경험하는 시각적 관능성의 실현을 추구하는 것이다. ■ 모아시르 도스 아뉴스

Vol.20080805d | 빅 뮤니츠展 / Vik Muniz / photography